교육 풍향계

[VOL.02] 탄핵 심판 중계 시청, 민주시민교육이 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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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탄핵 심판 과정에서 일부 교육청이 관내 학교에 당일 생중계 시청을 자율 결정하도록 권고한 것을 두고 논란이 있었다. 교육청의 이러한 권고는 현직 대통령 탄핵 심판이라는 중대 사안을 통해 학생들에게 민주주의 절차와 헌법기관의 기능을 직접 확인하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큰 교육적 의미가 있다. 

 그러나 실제로 공문 시행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이후, 이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있었다. 지금 시기에 적절한 민주시민교육 방식이라는 의견과, 교사들의 교수학습 활동에 대해서까지 공문을 시행하는 것은 그 자체로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의견이 맞섰다. ‘자율 결정’이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육청의 공문이 학교 현장에 일종의 압력으로 작용하여 자율적인 판단을 저해하고 ‘동원 방식의 시민교육’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교육 대상의 자발적인 의사와 참여보다는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조직적이고 지시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동원식 교육’은 참여자들의 주체성과 비판적 사고 능력을 저해하고, 특정 관점이나 이념을 주입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교육청 공문에 명시된 ‘자율 결정’이라는 문구는 각 학교가 탄핵 심판 생중계 시청 여부를 스스로 판단하여 결정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 경우 학교는 교무회의 등의 절차를 거쳐 학급별, 학년별, 또는 전교생 단위로 시청 여부를 결정할 수 있고, 시청 방식 또한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교육청의 권고가 학교 현장에 미치는 영향력을 고려할 때, 학교가 다른 결정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아직도 학교는 교육청의 권고를 ‘지시’로 여기기 때문이다. 

 일부 교육청의 시청 권고가 진정한 교육적 의미를 가지려면 학교의 자율적인 결정이 실질적으로 존중되어야 하고, 시청 과정에서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와 토론을 장려하는 교육적 접근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단순히 생중계를 보여주는 것을 넘어, 사전·사후 심층적인 교육 활동을 통해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력을 키우고 그들이 다양한 관점으로 이 사안을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 아울러 학교 교육에서 정치적 사안을 다루는 원칙을 정립하고, 모의 투표나 토론 수업 등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다양한 교육 방법을 개발하고 적용해야 한다.   

 독일 정치교육의 헌법으로 불리는 ‘보이텔스바흐 합의’는 정치 교육의 중요한 원칙으로, 학생들에게 특정한 의견을 강요하거나 억압해서는 안 되며, 학문과 정치에서 논쟁적인 것은 수업 중에도 반드시 논쟁적으로 재현되어야 하고, 학생들이 제시하는 의견을 존중해야 함을 강조한다. 이 합의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면서도 학생들이 다양한 관점을 접하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데 필요한 지침을 제공한다. 

  학교 교육에서 사회 현안을 다루는 것은 학생들이 현실 사회의 다양한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비판적 사고 능력을 기른다는, 중요한 교육적 의의를 지닌다. 하지만 교육청의 권고가 학교 현장에 압력으로 작용하여 획일적인 시청과 특정한 해석을 강요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면, 이는 자발성과 비판적 사고를 핵심 가치로 하는 시민교육의 본질에서 벗어난 동원 방식의 교육이 될 수 있다. 그 시발점이 진보적 관점이든 보수적 관점이든 마찬가지다. 학교라는 시민교육 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한 기본 원칙은 입장을 막론하고 지켜져야 한다. 

 학생들이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와 핵심 가치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고, 타인의 권리와 존엄성을 존중하며, 공공 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시민적 효능감을 높이도록 돕는다는 측면에서 시민교육의 실행 주체인 학교는 민주적 공동체로서 구성원의 자율 참여와 의사 결정을 존중하는 책임 있는 실천의 장이 되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선고 시청 논란은 학교 교육과 민주주의의 관계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일부 교육청의 중계 시청 권고에 대하여 단순히 찬반 논란에 그칠 것이 아니라 계기교육의 필요성과 방식, 교수학습 행위에서 정치적 중립과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 함양, 교원의 정치기본권 확보 등 학교의 민주주의에 대해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담론이 활성화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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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영기_오랜 공직자 생활을 끝내고 해방을 맞아 자유로운 글쓰기에 전념하고 있다.『교사, 학습공동체에서 미래교육을 상상하다』를 비롯해 십여 권의 책을 썼다. 현재 연세대학교 교육학부에서 교육과정을 주제로 예비교사들과 만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