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풍향계

[VOL.02] 아동중심주의와 교육_루소의 철학이 진보교육에 미친 영향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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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중심 교육관의 등장


1762년 출간된 『에밀』은 서구인들로 하여금 아동을 ‘발견’하게 함으로써 근현대의 교육사상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아동에 대한 이해와 아동의 발달단계에 기초한 루소의 교육이론은 당시 주류 사회의 관습에 대한 비판이자 정치 이론이기도 했다. 『에밀』의 표지에 루소는 자신의 이름과 함께 ‘제네바의 자유시민’이라고 썼다.1) 프랑스에서 주로 활동했지만 루소는 오늘날 스위스에 속하는 제네바의 시민으로서 정체성과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의 모든 저술 활동은 결국 어떻게 건강한 시민사회를 만들 것인가에 집중된다. 

정치와 사회, 교육에 관한 루소의 사상은 인간의 불행이 자연(본성)에서 멀어지면서 초래되었다는 관점을 토대로 하고 있다. 학문과 예술이 오히려 인간을 타락시켰다고 비판하는 『학문예술론』에 이어 『사회계약론』에서는 “사람은 날 때부터 자유롭지만 어딜 가나 사슬에 묶여 있다”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에밀』에서 인간의 고유한 자연성(본성)이 온전히 발달할 수 있으려면 어떤 교육이 필요한가를 묻는다.

교육사상사에서 루소의 사상은 하나의 분기점을 이룬다. 그전까지 교육은 어른이 아이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어른들이 생각한 방법(훈육)으로 가르치는 것이었다면 루소는 고유성을 지닌 새로운 존재인2) 아동의 타고난 본성이 자연스럽게 발현될 때 온전한 교육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기독교 원죄설에 기반한 인간관에서 출발하는 기존 교육이 아이들의 본성을 억제하여 좋은 습관을 갖게 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면, 루소는 원죄설을 부정하고 자연에서 비롯되는 모든 것은 선하다는 전제 위에 억압이 아닌 발달의 관점에서 교육을 바라보았다. 아이의 흥미와 경험을 중시하는 아동중심 교육관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이다.

루소는 『에밀』에서 아동의 발달단계를 유아기, 아동기, 소년기, 청소년기, 청년기로 나누고 각각의 단계에 적합한 교육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이야기한다. ‘자연인-사회인-시민’이라는 단계별 교육 이론에 따라 1~3장에서는 에밀이 자연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4장은 사회인으로, 5장에서는 시민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리면서 여성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이고 있다. 자연인의 시기인 소년기까지는 자생력을 기르는 데 힘쓰고, 청소년기에는 사회인으로서 필요한 상생력을, 청년기에는 시민으로서의 공생력을 기르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에밀의 동반자인 소피의 교육을 통해 바람직한 여성교육에 대해 이야기하는 루소의 시각은 전통적 여성관에 머물러 있다. 여성으로서 타고난 소피의 자연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시각은 에밀의 자연성을 존중하고자 하는 관점과 일치하지만, 루소가 말하는 여성의 자연성이라는 것이 남성중심의 세계관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대적 한계를 벗어나지는 못했다.3) 그렇게 본다면 『에밀』 1~4장에서 루소가 예찬하는 아동의 자연성(본성)이라는 것도 ‘타고난 선함’이라는 전제 위에 서 있는 만큼, 이를 인정하지 않는 (원죄론을 주장하는) 이들에게는 잘못된 기초 위에 세운 교육론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당시의 가톨릭과 개신교 모두 『에밀』을 금서 목록에 올리고 루소를 핍박한 이유다. 

그럼에도 루소의 교육사상은 19~20세기 교육개혁가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페스탈로치, 프뢰벨 같은 교육사상가들은 루소에게 영감을 받아 다양한 교육운동을 펼쳤고, 20세기 전반기에 미국 교육을 바꾸어놓은 존 듀이의 ‘민주주의와 교육’에 관한 사상 또한 루소에게 빚지고 있다. 20세기 후반에 일어난 프리스쿨 운동은 루소의 교육 이론을 작은 학교에서 구현하고자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교육사학자 윌리엄 보이드는 『에밀』의 교육사적 의미를 “18세기의 교육적 저작물 중 비길 만한 것이 없을 정도로 중요하며, 그것이 교육의 이론과 실제에 끼친 영향으로 판단한다면 인류 역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교육적 저작물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라고 말한다.4)

 

원죄설과 천부인권설 

 

아동중심교육을 처음으로 주창한 루소가 자신의 아이 다섯을 모두 고아원에 보낸 사실을 알면 많은 사람들이 놀란다. 귀족과 친구들의 후원 또는 부정기적인 원고료 수입에 기대어 궁핍하게 살았던 그였기에 한편으론 이해가 되기도 하지만, 『에밀』의 저자로서 비난을 피하기 어려운 행동인 것은 사실이다. 루소 또한 뒤늦게 그 일을 후회하며 아이를 찾고자 했지만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찾을 수 없었다고 고백록에서 말한다. 『에밀』을 쓰게 된 것도 아이들에 대한 속죄의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당시의 사회적 배경을 감안하면 루소의 그런 처신이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갓난아이를 도시 근교의 유모에게 맡기는 것이 사회적 관습이었다. 대부분의 신생아들이 엄마 품을 떠나 유모 손에서 자랐다(1780년 파리의 신생아 21,000명 중 2만여 명이 유모에게 맡겨졌다). 무관심과 비위생적 환경 속에서 숱한 영아들이 죽어갔지만 친엄마들은 슬퍼하지 않았다. 두세 명의 아이가 죽어나간 유모에게 또 아이를 맡기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아이들은 운 좋게 살아남은 뒤에야 네댓 살 때 ‘친엄마’에게 ‘입양’되었다.5) 말하자면 루소는 아이를 유모에게 맡기는 대신 고아원에 맡긴 셈이다. 

18세기까지만 해도 프랑스에서 아이들의 45퍼센트가 열 살이 되기 전에 죽었다. 그럼에도 인구는 꾸준히 늘어나 민중들은 더욱 가난해졌고 성인들도 단명해서 계모나 계부 아래 자라는 아이들이 급증했다. 계모에게 학대당하는 ‘신데렐라’ 이야기의 배경이기도 하다. 많은 아이들이 고아원이나 숲에 버려지거나 구걸에 내몰렸다. 당시 프랑스 사회에 만연했던 ‘고양이 학살’은 약자들이 처한 극한적 상황을 말해준다.6) 이는 프랑스혁명의 시대적 배경이기도 하다. 

루소의 고백록은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과 함께 서구 역사상 대표적인 고백록으로 꼽힌다. 아이러니하게도 한 사람은 원죄설을 만들어냈고 또 한 사람은 원죄설을 폐기했다. 천 년 넘게 서구사회를 지배해온 인간관, 다시 말해 모든 인간이 죄를 안고 태어난다는 인간관에서 모든 인간은 천부인권을 갖고 태어난다는 인간관으로 180도 바뀐 것이다. 인간이 신의 용서와 사랑에 의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믿음은 자유의 근원이 내 안에 있지 않다는 고백이기도 하다. 반면, 인본주의는 자유의 근원이 인간 안에 있다고 천명한다. 천부인권 사상은 프랑스혁명과 미국독립운동을 거치면서 근대 헌법의 사상적 토대가 되었다. 

2천여 년 동안 서구인들은 신이 인간을 사랑한다는 복음(기쁜 소식)의 허구(이야기)에 기대어 살아왔다면 현대인들은 천부인권을 천명한 헌법의 허구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다. 모든 인간이 권리를 타고나며, 스스로 원하는 사회를 만들고자 권리를 양도하는 사회계약을 맺는다는 정치철학은 개인을 계약의 주체이자 정치적 행위의 주체로 세운다. 인간이 원죄를 갖고 태어난다는 기독교식 세계관이 모든 인간은 빚을 지고 태어난다는 뜻이라면7) 현대인들은 자신을 빚진 자로서 인식하기보다 권리를 가진 자로서 인식한다. 개인의 권리의식에 기반한 개인주의가 현대인들의 자아관과 세계관의 토대를 이루게 된 배경이다. 

루소는 여러 면에서 역설적인 사상가이다. 개인이 타고난 권리와 자유를 공동체에 양도함으로써 사회계약을 맺고 일반의지를 형성한다고 본 루소는 자연법을 무너뜨린 자연법 사상가이며, 이성을 공격한 계몽주의자이자, 자기 자녀들을 고아원에 버린 아동의 구원자이기도 하다. “인간을 동물보다 뛰어난 존재로 만들어준 문명이 도리어 동물보다 더 비참한 상태에 빠뜨린다”는 역설은 많은 사상가들에게 ‘인간 소외’에 대한 영감을 주었다. 역설로 가득한 루소의 사상은 거기에 기초한 근대 문명에 내재된 역설을 생각해보게 한다. 오늘날 아동중심 교육이 오히려 아동의 성장을 방해하는 것도 그 일면일 것이다.

 

인정투쟁과 사회계약론

 

“사람은 날 때부터 자유롭지만 어딜 가나 사슬에 묶여 있다.” 루소의 이 말은 참인 명제일까? 사실상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어떤 조건 아래 놓이게 된다. 과거에는 대부분의 인간이 특정 신분으로 태어나 평생을 그렇게 살다 죽어야 했다. 투표권이 재산을 가진 성인 남성에게만 주어졌던 루소 시절에도 그러했고, 신분제도가 사라지고 보편선거가 시행되는 오늘날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부모를 선택할 수 없고, 조국을 선택할 수도 없다. 어떤 곳에 태어나느냐에 따라 그의 모국어가 정해지며, 그 언어의 틀 안에서 사고하게 된다. 사실상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구속 상태이며 그 속박 속에서 살다 죽는다. 

자연주의자였던 루소에게는 자연인의 상태가 자유로움으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절대왕정 체제였던 당시의 유럽 대륙은 거의 모든 인간이 눈에 보이지 않는 사슬에 묶인 채 살고 있었으니, 자유에 대한 간절한 바람이 저런 선동적인 표현으로 나왔을 것이다. 루소는 학문과 예술조차 인간을 자유롭게 하기는커녕 타고난 자연성을 억압하는 기제로 보았다. 그는 과연 인간이 이 사슬을 끊어낼 수 있을지 물음을 던지면서 『사회계약론』과 『에밀』에서 그 길을 제시하고 있다. 

봉건사회에서는 귀족 계층만이 존엄성을 인정받았다면 근대사회는 모든 사람이 존엄한 존재임을 전제로 성립한다. 루소는 그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서 인정투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보고, 그 과정에서 모두가 자유를 잃어버리게 된다고 보았다. 결국 근대가 지향하는 자유가 스스로의 가치를 훼손하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진다고 본 것이다. 루소는 인정투쟁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을 방지하려면 자생력과 상생력, 공생력을 길러야 한다고 보았다. 이런 능력을 갖춘 개인들이 사회계약에 참여하여 제도를 만들고 운영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 루소가 말하는 시민교육의 핵심이다. 『에밀』은 그러한 교육의 방법을 이야기한 책이다.

인정투쟁 이론을 만들어낸 루소는 스스로 평생에 걸쳐 인정투쟁을 벌였지만 그의 영향력은 사후에야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그것도 루소 자신이 상상할 수 없었을 정도로 크게. 루소의 인민주권설은 미국독립운동과 프랑스혁명의 사상적 기초가 되었다. 칸트는 『에밀』을 읽느라 시계처럼 정확하던 산책 시간을 잊을 정도였으며, 헤겔과 니체의 사상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에밀』과 함께 그가 쓴 소설 『신 엘로이즈』와 수상집 『고독한 산책가의 몽상』은 문학의 사조를 낭만주의로 바꿔놓았고, 괴테와 실러 같은 작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세기의 금서이자 베스트셀러였던 『에밀』이 출간되고 백 년 후인 1862년에 나온 세기의 명작 『레 미제라블』은 프랑스혁명 전후의 시대상을 배경으로 비참한(misérable) 존재의 존엄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빅토르 위고는 장 발장이라는 한 인간을 통해 가난하고 비참한 처지에 놓인 사람도 도덕적으로 진보할 수 있고 가치 있는 시민이 될 수 있음을 말한다. 이는 루소의 인간관, 사회관과 일치하는 지점이다. 

버트런드 러셀은 『서양철학사』에서 “처칠과 루즈벨트가 로크의 후예라면 히틀러는 루소의 후예”라고 말했다. 루소가 하늘에서 들었다면 몹시 억울해했을 이 비평은 일말의 진실을 담고 있다. 그의 일반의지론이 칸트와 헤겔, 니체를 거쳐 히틀러에게 영향을 미친 점이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루소가 말한 일반의지는 깨인 시민들의 자발적인 의지가 모인 것이다. 나치즘을 독일의 사회적 자유주의에 대한 두려움이 낳은 반작용으로 본다면 루소의 영향이 없다고 볼 수 없지만 반작용에 대한 책임까지 물을 수는 없는 일이다. 루즈벨트가 추진한 뉴딜 정책 또한 로크보다 루소의 사상과 맥이 닿는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히틀러보다 레닌을 루소의 후예로 보는 것이 더 맞지 않을까? 

루소는 계몽주의의 이성 중심을 비판한 계몽사상가로서 독특한 사상사적 위치에 있으며 또한 자유주의에 사회주의 요소를 들여온 최초의 사상가이기도 하다. 자유주의자들이 그토록 지키고자 애쓴 사유재산이야말로 사회를 타락시키는 주된 요인이라고 보고 재산의 유무를 떠나 공공선을 지향하는 모든 사회구성원들의 일반의지로 법을 만들고 사회를 운영해야 한다는 루소의 사상은 초기에는 급진적 사상으로 몰려 핍박을 받았지만 역사의 방향은 결국 그의 사상과 흐름을 같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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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8세기까지만 해도 국민국가의 정체성이 뚜렷하지 않아 제네바라는 도시국가의 시민 정체성이 더 강했을 것이다.

2) 한나 아렌트가 말하는 ‘탄생성’ 개념은 루소에게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3) 여성은 순종의 미덕을 갖추고 남성을 즐겁게 해주어야 하며 아내와 어머니, 가정주부 역할에 충실할 수 있도록 교육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4) 윌리엄 보이드, 『서양교육사』, 이홍우 옮김, 교육과학사, 2008.

5) 엘리자베트 바댕테르, 『만들어진 모성』, 심성은 옮김, 동녘, 2009.

6) 로버트 단턴, 『고양이 대학살』, 조한욱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6.

7) 독일어에서 죄(Schuld)와 부채(Schulden)는 어원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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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병호_《민들레》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