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체험학습이 던진 질문
학교의 현장체험학습은 존폐의 기로를 지나 실시하지 않는 쪽으로 점점 방향이 잡혀가는 듯하다.
2022년 11월 강원도에서 체험학습 중이던 학생이 버스에 치여 사망한 사고가 있었다. 이와 관련해 2025년 2월 진행된 1심 재판에서 인솔교사는 금고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2심에서 담임교사의 전적인 책임으로 보기 힘들다며 선고가 유예되었음에도 교육현장에는 체험학습에 반대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교총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초・중・고 교사의 80% 이상이 현장체험학습 실시에 반대한다고 응답했다.
이는 당연한 반응이다. 예측하기 어려운 사고에 대한 책임을 인솔교사가 떠안는 것도 부담스럽고, 책임을 따지는 근거가 되는 교사의 ‘주의 의무’가 어디까지인지도 불분명하다.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위험부담이 큰 체험학습을 운영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잖아도 교사들은 학교 밖 교육활동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는데, 안전사고에 대한 이 판결이 체험학습을 기피하는 분위기에 쐐기를 박은 것처럼 되었다.
학교 밖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은 교사가 아무리 사고에 대비하고 사전교육을 한다 해도 교내 활동에 비해 위험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다른 것을 관찰하느라 혼자 뒤처지는 아이는 물론, 무리를 벗어나 다른 방향으로 가는 아이, 인도에서 갑자기 차도 쪽으로 가는 아이 등 현장학습에서는 정말 별일이 다 생긴다. 장난을 치지 않고 그냥 걷다가도 넘어져서 다치거나 어딘가에 피부가 쓸리거나 하는 상황도 비일비재하다.
최근 갔던 수학여행에서는 한 아이가 들고 있던 카메라에 부딪혀 이가 부러지기도 했다. 이건 아이의 부주의라고 하기도 어려운 사고였기에 더욱 안타까웠다. 교사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아이들을 살펴도 이런 상황은 순식간에 벌어진다. 현장학습에서 교사가 어쩔 수 없이 학생들을 더 철저하게 ‘통제’하게 되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2025년 6월, 학교 교육활동의 안전사고 책임에 대해 교사의 책임을 면해주는 「학교안전법」 개정안이 시행되었으나 그럼에도 교사의 부담은 크게 덜어지지 않았다. 이 법안은 교사가 “‘학생에 대한 안전사고 예방교육 및 조치를 다한 경우’에 민형사상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명시하지만, ‘조치를 다한 경우’가 구체적으로 어떤 경우인지는 알 수 없다.
하루의 체험학습을 가기 위해서는 수개월 전부터 기획에 돌입해 학교운영위원회 심의, 예산안 준비와 정산, 사전 답사와 동선 점검, 안전교육 등 처리해야 할 일이 한둘이 아니다. 교사가 과연 이렇게까지 해야 할 만큼 이 활동의 의미와 효용이 있는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들이는 노력에 비해 체험학습이 그만한 교육적 의의가 있는가 싶은 것이다. 의미 있는 체험의 기회가 적었던 과거와 달리, 요즘은 오히려 각 가정에서 더 안전하고 내실 있는 경험을 아이에게 제공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든다.
교육과정으로서 현장체험학습의 의미
이 같은 상황에서 묻고 싶은 것은 우리가 ‘현장에서 몸소 겪으며 배우는 것’의 교육적 의미에 대해 충분히 숙의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단순히 체험학습의 시행 여부를 논하기 전에 이 활동이 학교교육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교육과정에 꼭 필요한지에 대한 깊은 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 후에,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런 교육과정이 필요하다고 결론 내린다면 ‘어떻게 하면 더 내실 있고 더 안전하게 운영할 수 있을지’ 대책과 방법에 대한 숙고가 이루어져야 한다.
물론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에 마주하는 순간 이 교육적 논의들은 힘을 잃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교사는 교육을 구상하고 실천하는 사람으로서 이 근본적인 질문에 답을 구해야만 한다. 현장체험학습을 하든 안 하든 이 질문 자체가 ‘몸소 겪는 배움의 경험을 통한 교육의 의미’를 고민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체험학습이 이렇게 폐지되고 있는 현실이 너무 아쉽다. 모름지기 교육은 아이들의 삶에 바탕을 둬야 한다. 아이들이 현장에서 몸소 겪으며 배우는 일의 교육적 가치와 의미는 너무나 크다. 때로 아이들은 교실에서의 오랜 공부보다 단 하루의 현장체험학습에서 더 큰 배움을 얻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도 아이들의 기억에 그 하루가 길게 남는 경우도 많다.
물론 학교 안에서 배울 수 있는 것도 많지만 ‘학교에서만’ 배움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반드시 현장에 가야만 배울 수 있는 것들도 있다. 예를 들어 역사적 명소, 국가유산, 공공기관 및 정부기관, 사회적 의미가 있는 장소, 지역 문제를 살펴보는 것이나 자연과 생태에 관한 것은 교실에서 아무리 내실 있게 배운다 한들, 현장에 가서 직접 보고 겪는 한 번의 경험에 미칠 수 없다.
이런 경험을 가정에서 할 수 있지 않은가라는 주장도 일리가 있으나, 배움의 공동체로서 ‘함께’ 가야 배울 수 있는 것들도 여전히 있다. 프로젝트 학습에서의 모둠활동을 가정이 수행할 수 있는 역할로 보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또한 모든 가정이 아이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 어떤 아이에겐 여전히 학교에서의 현장학습이 소중한 경험이 될 수 있다.
“하면서 배운다”라는 존 듀이의 말처럼, 실제로 모든 아이는 행함으로써 배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도 떠오른다. 책이나 매체를 통해 얻는 지식도 중요하지만 어딘가에 가서 경험한 것은 그보다 훨씬 큰 힘과 삶의 영감을 준다. 그런 경험들이 쌓일 때, 아이들이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해갈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오히려 고민해야 할 것은 체험학습 폐지가 아니라 개선 방안이다. 단순히 즐거움을 위한 단발성 이벤트가 되어서는 안 되며 단체관광 수준의 경험도 지양해야 한다. ‘아이들이 좋아하니까’라는 명분으로 깊은 고민 없이 놀이동산을 가는 식의 체험학습이 굳이 학교에서 ‘학습’이라는 이름을 달고 행해져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현장체험학습은 교사의 고민을 바탕으로, 분명한 교육적 의도와 목적이 있어야 한다. 특히 아이들도 스스로 그 의미를 깨닫고 내면화할 수 있어야 그 경험이 진정 가치 있는 배움으로 승화될 수 있다.
프로젝트 수업의 정점, 체험학습
나는 긴 프로젝트 수업의 흐름 속에 현장체험학습을 담아내는 교육과정을 구성한다. 특히 사회과와 예술교과, 창의적 체험활동 등에서 이러한 작업을 하는데, 이 과정에서 현장체험학습은 수십 차시 수업의 정점을 찍는 교육활동이다. 그리고 이를 위한 수업활동은 ‘사전학습-현장체험학습 실시-사후학습’의 과정을 반드시 거친다.
자신이 어떤 배움의 과정을 거치는지 이해한 아이들은 배움에 적극적으로, 그리고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예를 들어 한국의 근현대사를 지식으로 접하던 아이들이 그 일이 실제로 벌어졌던 현장을 가면, 직접 피부에 와닿는 배움을 얻는다. 일종의 경외감을 느끼기도 한다. 예술적 경험도 마찬가지다. 책 속에서 그림으로만 보던 작품들을 실제로 감상하며 또 다른 예술적 영감을 얻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전학습과 현장체험학습을 하나의 과정으로 이해한 아이들이 교사가 시키지 않아도 현장에서 스스로 열심히 자료를 조사하며 내용에 집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제 겪는 배움으로 아이들의 내면에 무언가 움직임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현장을 다녀와서는 반드시 보고서와 감상문을 상세하게 적도록 하는데, 아이들의 글을 보면 자유시간도 없던 현장체험학습에 왜 몰입하여 참여했는가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 등장한다.
“놀러 가는 게 아니라 공부하러 가는 거니까, 가기 전에 사전 공부를 단단히 했다.” “수업시간에 모둠끼리 가보고 싶은 장소를 정하고 엄청 준비했기 때문에 현장체험학습이 기대된다.” “직접 가서 보니까, 더 자세히 알게 되고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다.” 특히 “전태일기념관은 역사를 알고 가니까 더 슬픈 것 같았다” 같은 반응에서는, 사전준비를 충분히 하고 떠난 현장체험학습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것, 그래서 과정 중심의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고서 작성을 통한 발표회나 나눔의 자리까지 갖고 나면 아이들의 배움은 더욱 깊어진다.
걷기 중심의 학교 밖 여행(수학여행) 또한 아이들에게 큰 영감을 주는 배움이었다. 아이들과 자연 속에서 걷고 이야기 나누며 며칠을 함께 보냈는데, 아이들과 교사가 하나의 공동체로 더 단단해지는 경험을 했다. 원래 살던 마을에서는 보기 어려운 것들을 함께 보고, 평소 나누기 어려운 이야기들을 꺼내며 우리는 서로 ‘삶을 나누었다’고 느꼈다. 이러한 교육적 경험은 아이들에게도, 그리고 교사인 나에게도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함께 성장하는 경험을 가져다주었다. 교실 안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감정이었다. 이런 경험이야말로 현장에서의 ‘체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깊은 배움이 아닐까.
현장체험학습이 가능해지려면
내가 학교 밖 교육활동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함께하는 어른들이 충분했기’ 때문이다. 체험학습을 갈 때면 최소 다섯 명 이상의 학부모 보조교사와 함께 했다. 스무 명가량의 학생에 담임교사를 포함해 대여섯 명의 어른이 함께하면, 안전문제나 돌발상황에 충분한 대처가 가능했다. 보다 철저한 준비를 위해 인솔 학부모들과 최소 두 번 이상의 사전모임을 갖고 현장체험학습의 목적과 프로젝트의 전체적인 흐름, 현장에서의 동선과 시간 계획을 공유했다. 그리고 인솔자로서 우리가 대비해야 할 게 어떤 것들이 있을지도 미리 논의했다.
교사 혼자 전체적인 교육활동을 진행하면서 모든 부분을 일일이 신경 쓰기는 어렵다. 체험학습의 교육적 의미와 목적에 대해 공감한 학부모들은 현장에서 사고 대비를 위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주셨다. 아이들에게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되, 적절하게 안전 도우미 역할을 해주시는 학부모 보조교사 덕분에 학교 밖 활동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핵심은 안전에 대비할 수 있는 충분한 인원이 함께하는가다. 만약 학교 차원에서 현장체험학습을 반드시 필요한 교육활동으로 여긴다면 한 학급당 최소 두세 명의 어른이 동행할 수 있게 방법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학교 내부 인원을 안전요원으로 투입하는 것이 어렵다면 학부모 혹은 지역사회의 도움을 받아 인력풀을 구축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이 인원을 확보하기 어려운 것이 몇몇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고려할 때, 안전한 교육활동을 위한 인솔자 마련은 교육지원청의 책임과 역할이라고 봐야 한다.
한 사례로 인천교육청에서 인천 소방본부와 협업해 운영하고 있는 ‘퇴직 소방관 안전요원 인력체계’를 들 수 있다. 안전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퇴직 소방관들과 협업하여 교육청 차원에서 체험학습 지원체계를 구축한 것은 특히 좋은 사례다. 현장체험학습에 부담을 느끼는 학교가 늘어나고 있는 현시점에서 교육지원청은 본연의 역할에 맞게 실제적인 지원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나는 현장체험학습을 둘러싼 오늘의 어려움을 딛고, 아이들에게 의미 있는 교육 경험이 이어지기를 바란다. 학생뿐 아니라 교사도 보호받을 수 있는 법적 방안과 실제적인 지원 정책이 마련되어야 이 교육활동이 지속가능할 것이다. 교사 개인의 책임을 넘어 학교 밖 교육활동을 법적·행정적으로 보완하고 지원하는 것도 우선되어야 한다. 이와 별도로 인솔교사들도 ‘교육자로서’ 현장에서 ‘몸소 겪는 배움’의 의미에 대한 숙의를 꼭 거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들이 전제되지 않은 현재의 여건에서는, 사라져가는 체험학습에 관한 어떠한 고민도 그저 공허한 미련에 지나지 않는 것일지 모른다.
_김지훈(도곡초등학교 교사. 카카오 브런치에서 교육 분야 크리에이터로 활동한다.)
체험학습이 던진 질문
학교의 현장체험학습은 존폐의 기로를 지나 실시하지 않는 쪽으로 점점 방향이 잡혀가는 듯하다.
2022년 11월 강원도에서 체험학습 중이던 학생이 버스에 치여 사망한 사고가 있었다. 이와 관련해 2025년 2월 진행된 1심 재판에서 인솔교사는 금고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2심에서 담임교사의 전적인 책임으로 보기 힘들다며 선고가 유예되었음에도 교육현장에는 체험학습에 반대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교총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초・중・고 교사의 80% 이상이 현장체험학습 실시에 반대한다고 응답했다.
이는 당연한 반응이다. 예측하기 어려운 사고에 대한 책임을 인솔교사가 떠안는 것도 부담스럽고, 책임을 따지는 근거가 되는 교사의 ‘주의 의무’가 어디까지인지도 불분명하다.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위험부담이 큰 체험학습을 운영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잖아도 교사들은 학교 밖 교육활동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는데, 안전사고에 대한 이 판결이 체험학습을 기피하는 분위기에 쐐기를 박은 것처럼 되었다.
학교 밖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은 교사가 아무리 사고에 대비하고 사전교육을 한다 해도 교내 활동에 비해 위험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다른 것을 관찰하느라 혼자 뒤처지는 아이는 물론, 무리를 벗어나 다른 방향으로 가는 아이, 인도에서 갑자기 차도 쪽으로 가는 아이 등 현장학습에서는 정말 별일이 다 생긴다. 장난을 치지 않고 그냥 걷다가도 넘어져서 다치거나 어딘가에 피부가 쓸리거나 하는 상황도 비일비재하다.
최근 갔던 수학여행에서는 한 아이가 들고 있던 카메라에 부딪혀 이가 부러지기도 했다. 이건 아이의 부주의라고 하기도 어려운 사고였기에 더욱 안타까웠다. 교사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아이들을 살펴도 이런 상황은 순식간에 벌어진다. 현장학습에서 교사가 어쩔 수 없이 학생들을 더 철저하게 ‘통제’하게 되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2025년 6월, 학교 교육활동의 안전사고 책임에 대해 교사의 책임을 면해주는 「학교안전법」 개정안이 시행되었으나 그럼에도 교사의 부담은 크게 덜어지지 않았다. 이 법안은 교사가 “‘학생에 대한 안전사고 예방교육 및 조치를 다한 경우’에 민형사상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명시하지만, ‘조치를 다한 경우’가 구체적으로 어떤 경우인지는 알 수 없다.
하루의 체험학습을 가기 위해서는 수개월 전부터 기획에 돌입해 학교운영위원회 심의, 예산안 준비와 정산, 사전 답사와 동선 점검, 안전교육 등 처리해야 할 일이 한둘이 아니다. 교사가 과연 이렇게까지 해야 할 만큼 이 활동의 의미와 효용이 있는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들이는 노력에 비해 체험학습이 그만한 교육적 의의가 있는가 싶은 것이다. 의미 있는 체험의 기회가 적었던 과거와 달리, 요즘은 오히려 각 가정에서 더 안전하고 내실 있는 경험을 아이에게 제공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든다.
교육과정으로서 현장체험학습의 의미
이 같은 상황에서 묻고 싶은 것은 우리가 ‘현장에서 몸소 겪으며 배우는 것’의 교육적 의미에 대해 충분히 숙의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단순히 체험학습의 시행 여부를 논하기 전에 이 활동이 학교교육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교육과정에 꼭 필요한지에 대한 깊은 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 후에,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런 교육과정이 필요하다고 결론 내린다면 ‘어떻게 하면 더 내실 있고 더 안전하게 운영할 수 있을지’ 대책과 방법에 대한 숙고가 이루어져야 한다.
물론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에 마주하는 순간 이 교육적 논의들은 힘을 잃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교사는 교육을 구상하고 실천하는 사람으로서 이 근본적인 질문에 답을 구해야만 한다. 현장체험학습을 하든 안 하든 이 질문 자체가 ‘몸소 겪는 배움의 경험을 통한 교육의 의미’를 고민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체험학습이 이렇게 폐지되고 있는 현실이 너무 아쉽다. 모름지기 교육은 아이들의 삶에 바탕을 둬야 한다. 아이들이 현장에서 몸소 겪으며 배우는 일의 교육적 가치와 의미는 너무나 크다. 때로 아이들은 교실에서의 오랜 공부보다 단 하루의 현장체험학습에서 더 큰 배움을 얻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도 아이들의 기억에 그 하루가 길게 남는 경우도 많다.
물론 학교 안에서 배울 수 있는 것도 많지만 ‘학교에서만’ 배움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반드시 현장에 가야만 배울 수 있는 것들도 있다. 예를 들어 역사적 명소, 국가유산, 공공기관 및 정부기관, 사회적 의미가 있는 장소, 지역 문제를 살펴보는 것이나 자연과 생태에 관한 것은 교실에서 아무리 내실 있게 배운다 한들, 현장에 가서 직접 보고 겪는 한 번의 경험에 미칠 수 없다.
이런 경험을 가정에서 할 수 있지 않은가라는 주장도 일리가 있으나, 배움의 공동체로서 ‘함께’ 가야 배울 수 있는 것들도 여전히 있다. 프로젝트 학습에서의 모둠활동을 가정이 수행할 수 있는 역할로 보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또한 모든 가정이 아이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 어떤 아이에겐 여전히 학교에서의 현장학습이 소중한 경험이 될 수 있다.
“하면서 배운다”라는 존 듀이의 말처럼, 실제로 모든 아이는 행함으로써 배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도 떠오른다. 책이나 매체를 통해 얻는 지식도 중요하지만 어딘가에 가서 경험한 것은 그보다 훨씬 큰 힘과 삶의 영감을 준다. 그런 경험들이 쌓일 때, 아이들이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해갈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오히려 고민해야 할 것은 체험학습 폐지가 아니라 개선 방안이다. 단순히 즐거움을 위한 단발성 이벤트가 되어서는 안 되며 단체관광 수준의 경험도 지양해야 한다. ‘아이들이 좋아하니까’라는 명분으로 깊은 고민 없이 놀이동산을 가는 식의 체험학습이 굳이 학교에서 ‘학습’이라는 이름을 달고 행해져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현장체험학습은 교사의 고민을 바탕으로, 분명한 교육적 의도와 목적이 있어야 한다. 특히 아이들도 스스로 그 의미를 깨닫고 내면화할 수 있어야 그 경험이 진정 가치 있는 배움으로 승화될 수 있다.
프로젝트 수업의 정점, 체험학습
나는 긴 프로젝트 수업의 흐름 속에 현장체험학습을 담아내는 교육과정을 구성한다. 특히 사회과와 예술교과, 창의적 체험활동 등에서 이러한 작업을 하는데, 이 과정에서 현장체험학습은 수십 차시 수업의 정점을 찍는 교육활동이다. 그리고 이를 위한 수업활동은 ‘사전학습-현장체험학습 실시-사후학습’의 과정을 반드시 거친다.
자신이 어떤 배움의 과정을 거치는지 이해한 아이들은 배움에 적극적으로, 그리고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예를 들어 한국의 근현대사를 지식으로 접하던 아이들이 그 일이 실제로 벌어졌던 현장을 가면, 직접 피부에 와닿는 배움을 얻는다. 일종의 경외감을 느끼기도 한다. 예술적 경험도 마찬가지다. 책 속에서 그림으로만 보던 작품들을 실제로 감상하며 또 다른 예술적 영감을 얻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전학습과 현장체험학습을 하나의 과정으로 이해한 아이들이 교사가 시키지 않아도 현장에서 스스로 열심히 자료를 조사하며 내용에 집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제 겪는 배움으로 아이들의 내면에 무언가 움직임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현장을 다녀와서는 반드시 보고서와 감상문을 상세하게 적도록 하는데, 아이들의 글을 보면 자유시간도 없던 현장체험학습에 왜 몰입하여 참여했는가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 등장한다.
“놀러 가는 게 아니라 공부하러 가는 거니까, 가기 전에 사전 공부를 단단히 했다.” “수업시간에 모둠끼리 가보고 싶은 장소를 정하고 엄청 준비했기 때문에 현장체험학습이 기대된다.” “직접 가서 보니까, 더 자세히 알게 되고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다.” 특히 “전태일기념관은 역사를 알고 가니까 더 슬픈 것 같았다” 같은 반응에서는, 사전준비를 충분히 하고 떠난 현장체험학습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것, 그래서 과정 중심의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고서 작성을 통한 발표회나 나눔의 자리까지 갖고 나면 아이들의 배움은 더욱 깊어진다.
걷기 중심의 학교 밖 여행(수학여행) 또한 아이들에게 큰 영감을 주는 배움이었다. 아이들과 자연 속에서 걷고 이야기 나누며 며칠을 함께 보냈는데, 아이들과 교사가 하나의 공동체로 더 단단해지는 경험을 했다. 원래 살던 마을에서는 보기 어려운 것들을 함께 보고, 평소 나누기 어려운 이야기들을 꺼내며 우리는 서로 ‘삶을 나누었다’고 느꼈다. 이러한 교육적 경험은 아이들에게도, 그리고 교사인 나에게도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함께 성장하는 경험을 가져다주었다. 교실 안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감정이었다. 이런 경험이야말로 현장에서의 ‘체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깊은 배움이 아닐까.
현장체험학습이 가능해지려면
내가 학교 밖 교육활동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함께하는 어른들이 충분했기’ 때문이다. 체험학습을 갈 때면 최소 다섯 명 이상의 학부모 보조교사와 함께 했다. 스무 명가량의 학생에 담임교사를 포함해 대여섯 명의 어른이 함께하면, 안전문제나 돌발상황에 충분한 대처가 가능했다. 보다 철저한 준비를 위해 인솔 학부모들과 최소 두 번 이상의 사전모임을 갖고 현장체험학습의 목적과 프로젝트의 전체적인 흐름, 현장에서의 동선과 시간 계획을 공유했다. 그리고 인솔자로서 우리가 대비해야 할 게 어떤 것들이 있을지도 미리 논의했다.
교사 혼자 전체적인 교육활동을 진행하면서 모든 부분을 일일이 신경 쓰기는 어렵다. 체험학습의 교육적 의미와 목적에 대해 공감한 학부모들은 현장에서 사고 대비를 위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주셨다. 아이들에게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되, 적절하게 안전 도우미 역할을 해주시는 학부모 보조교사 덕분에 학교 밖 활동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핵심은 안전에 대비할 수 있는 충분한 인원이 함께하는가다. 만약 학교 차원에서 현장체험학습을 반드시 필요한 교육활동으로 여긴다면 한 학급당 최소 두세 명의 어른이 동행할 수 있게 방법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학교 내부 인원을 안전요원으로 투입하는 것이 어렵다면 학부모 혹은 지역사회의 도움을 받아 인력풀을 구축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이 인원을 확보하기 어려운 것이 몇몇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고려할 때, 안전한 교육활동을 위한 인솔자 마련은 교육지원청의 책임과 역할이라고 봐야 한다.
한 사례로 인천교육청에서 인천 소방본부와 협업해 운영하고 있는 ‘퇴직 소방관 안전요원 인력체계’를 들 수 있다. 안전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퇴직 소방관들과 협업하여 교육청 차원에서 체험학습 지원체계를 구축한 것은 특히 좋은 사례다. 현장체험학습에 부담을 느끼는 학교가 늘어나고 있는 현시점에서 교육지원청은 본연의 역할에 맞게 실제적인 지원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나는 현장체험학습을 둘러싼 오늘의 어려움을 딛고, 아이들에게 의미 있는 교육 경험이 이어지기를 바란다. 학생뿐 아니라 교사도 보호받을 수 있는 법적 방안과 실제적인 지원 정책이 마련되어야 이 교육활동이 지속가능할 것이다. 교사 개인의 책임을 넘어 학교 밖 교육활동을 법적·행정적으로 보완하고 지원하는 것도 우선되어야 한다. 이와 별도로 인솔교사들도 ‘교육자로서’ 현장에서 ‘몸소 겪는 배움’의 의미에 대한 숙의를 꼭 거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들이 전제되지 않은 현재의 여건에서는, 사라져가는 체험학습에 관한 어떠한 고민도 그저 공허한 미련에 지나지 않는 것일지 모른다.
_김지훈(도곡초등학교 교사. 카카오 브런치에서 교육 분야 크리에이터로 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