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풍향계

[vol. 15] 교육감 선거가 교육을 바꾸지 못하는 이유

2026-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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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1 교육개혁의 자장에서 벗어나야 할 때 

 

지방선거가 끝났다. 12대 4로 진보 진영이 승리한 것 같지만 사실상 패배한 선거다. 교육감은 여전히 진보 쪽이 우세하지만 이는 달리 대안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지 이들이 잘할 거라는 기대 때문이 아니다. 2010년 이래 진보교육감이 압도적으로 당선되었지만 지난 15년 동안 교육현장은 점점 나빠졌다. 이번 선거에서 10대 6으로 진보의 지분이 줄어든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의 교육 파행은 수요자 중심주의에 기반한 5.31 교육개혁이 빚어낸 거라고 봐야 한다. 아동 중심, 학생 중심을 천명해온 진보주의 교육이 수요자 중심주의와 맞닿아 있지만, 보수 또한 수요자(시장) 중심주의에 동조하면서 지난 30여 년간 교육 정책은 외길로 달려왔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강조하면서도 실제로 교육은 정치 논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지난 30년을 돌이켜볼 때 정치는 교육의 기조를 바꾸지 못했다. 

5.31 교육개혁안을 만든 10명의 전문위원 중 무려 8명이 보수, 진보 정권을 가리지 않고 교육부장관을 역임한1) 데서도 정치 논리가 교육에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않음이 드러난다. 진보적 정책으로 꼽히는 자유학기제는 박근혜 정부에서 처음 시작했으며 정시 확대 같은 퇴행적 정책이 문재인 정부 때 이루어졌다. 그 배경에 정치 논리가 작동했겠지만 정치색과 교육 정책의 진보성은 무관함이 드러난 셈이다.

5.31 교육개혁이 의도한 것처럼 교원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키우고 아이들에게 미래 사회에 필요한 역량을 길러주자는 취지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공교육의 공공성을 높이자는 데도 다들 동의하는 바다. 학생의 개별성을 배려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다. 그런데 왜 교육은 점점 망가지는 걸까?

오늘날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교육 붕괴 현상은 수요자 중심주의가 빚어낸 것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수요자 중심주의는 개인주의와 맞물려 보편성보다 개별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교육 정책을 만들어낸다. 표준화 교육과 입시 중심 교육의 부작용을 줄이는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 부정적인 면이 더 두드러진다. 학습자 중심, 수요자 중심 논리가 교육 불가능의 현실을 빚어내고 있는 것이 아닌지 살펴야 할 때다. 열심히 하려고 애쓸수록 문제교사로 몰리면서 많은 교사들이 ‘아무것도 안 하기’를 선택하기에 이른 오늘날의 교육 현실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학생의 선택권과 자율성을 강화한다고 좋은 교육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개인의 선택권과 자율성의 가치를 높이 사는 자유주의에 기반한 근대문명에 내재된 문제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자유주의는 능력 있는 이들의 자유를 강화하는 데 더 기여해왔다. 생태계에서 가장 유능한 종인 호모 사피엔스의 권리를 위해 다른 수많은 종들의 생명권이 위협받고 있듯이, 자유주의는 유능한 인간들이 더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든다. 사회주의나 생태주의가 견제 역할을 맡지만 역부족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능력주의가 ‘공정’과 ‘정의’의 이름으로 포장되는 것이 현실이다. 

 

수요자 중심 패러다임을 넘어

 

국가수준의 교육 정책은 정치보다 경제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수출 위주 경제 정책을 추진해온 한국은 세계 경제 흐름에 더욱 민감한 구조여서 경제의 변화에 따라 교육의 흐름이 바뀌어왔다. 1980년대 이후 세계를 지배해온 신자유주의는 지금도 우리 사회 전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개인의 주도적 선택을 강조하며 정부의 규제를 줄이고 시장의 자율에 맡기면 경제가 발전하고 국민의 복지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신자유주의는 우파와 좌파 정부를 가리지 않고 스며들었다. 

1995년에 나온 5.31 교육개혁안은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세계화 전략 속에서 김영삼정부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대비하며 ‘수요자 중심’의 교육철학 위에 세운 것이다. 서방 국가의 안전보장기구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경제 분야 파트너로 1961년 발족한 OECD는 1990년대 이후 경제를 넘어 세계 각국의 교육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교육정책 수립에 기초자료를 제공하기 위해 1997년부터 3년마다 실시하는 국제학생평가(PISA) 또한 OECD가 주최한다.2) OECD는 2002년에 교육국을 설치하여 교육과 노동시장, 경제를 결합하는 작업을 꾸준히 추진해오고 있다. 

교육개혁을 서두르기 전에 철학을 바로 세우는 것이 우선이다. 공교육은 무엇보다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교육개혁의 방향 또한 그쪽으로 맞춰져야 한다. ‘역량중심 교육’이라는 OECD 교육국의 권고를 따라야 할 이유는 없다. 개인의 역량을 높이는 것이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길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국적 기업의 유능한 인재는 어느 국가에 도움이 될까. 개인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식 경제는 빈익빈부익부 현상을 가속시킴으로써 사회불안을 야기한다. 자율성을 부추기는 교육 또한 능력주의 사회를 만들어내기 십상이다. 

이제는 5.31 개혁안의 수요자 중심 패러다임을 넘어서야 할 때다. 그런데 교육감 직선제는 수요자 중심주의를 부추긴다. 선출직은 유권자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 교육의 장기적 비전에 따라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선거를 대비해 당장 실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것부터 챙기는 것이 선출직 공무원들의 생리다. 진보 진영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후보 단일화에 힘을 쏟아왔고 단일화에 성공한 지역은 거의 당선되었다. 이번 서울 교육감의 경우 진보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잡음이 있었지만, 교육공무직 노조는 처우 개선과 노조 활동 강화 등을 요구하며 정근식 후보 지지를 선언했고 그의 당선에 상당한 공헌을 했다. 

교육감 직선제는 민주주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실제로는 중우정치에 가깝다. 정책도 이해하지 못하고, 후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노인들이 아이들의 미래를 결정하고 있다. 수요자 중심 교육을 추구하면서 교육감 선거에서는 정작 수요자의 요구를 배제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현행법상 교사는 정당 가입이 금지되고 선거운동도 할 수 없다. 교원 노조가 선거에 나서지 못하는 구조는 교사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축소시킨다. 교사가 학부모의 갑질에 속수무책 당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청소년과 교사의 정치 활동을 보장하되 교육감 직선제를 보완하는 선거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교사들이 자살과 침묵시위로밖에 목소리를 낼 수 없는 현실을 바꾸어야 한다. 선거를 계기로 교사와 학생, 학부모들이 교육 문제를 깊이 있게 토론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가야 할 때다. 선거는 민주시민교육의 가장 중요한 고리다. 지금처럼 수많은 사람들의 돈과 시간, 에너지를 허비하는 선거가 아니라 실제로 교육의 변화에 기여하는 선거가 될 수 있게 제도를 바꾸자. 절차적 민주주의의 한계를 넘어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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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명현(김영삼정부), 김덕중(김대중정부), 문용린(김대중정부), 안병영(김영삼정부, 노무현정부), 이기준(노무현정부), 김신일(노무현정부), 이주호(이명박정부, 윤석열정부), 서남수(박근혜정부)

2) PISA는 만 15세 학생들을 대상으로 읽기, 수학, 과학 능력을 평가하는데, 그 평가 결과와 순위는 OECD 회원국뿐만 아니라 비회원국들에서도 중요한 지표로 작용한다.


_현병호(민들레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