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족 없는 사회
아이가 성장하는 데는 가까이에 롤모델이 되는 어른이 필요하다. 아이들은 알게 모르게 주변 어른들을 보면서 어른으로 자란다. 예전에는 삼촌이나 고모, 이모가 부모를 대신하는 또 다른 롤모델이 되어주었다.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동네 언니나 아주머니, 아저씨가 부모 역할 일부를 맡아 아이들을 함께 돌봤다. 베이비시터를 고용하지 않아도 누군가가 그때그때 부모의 빈자리를 메꾸었다.
급격한 도시화와 함께 마을이 아이를 기르던 시절을 뒤로 하고 이제는 양육의 책임이 전적으로 부모 또는 엄마 손에 맡겨지면서 아이들의 성장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부모가 아이와 거리를 두지 못할 경우 지나친 관심 속에 자기중심적인 경향이 강화되거나 숨이 막히게 되고, 형제자매 사이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을 배우지 못한 채 자라게 된다. 그리고 외동아이가 자라 결혼해서 부모가 되면 그의 자녀에게는 이제 삼촌도 이모도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사촌도 있을 수 없다.
미성숙한 부모와 고립된 핵가족 안에서 아이가 제대로 성장하기란 힘들다. 한 자녀 세대가 2대만 이어져도 아이의 성장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 부모는 맞벌이를 하느라 아이의 성장기 시간을 충분히 함께하지 못하고, 핵가족 속에서 미성숙한 어른으로 자라나 자신의 아이를 갖게 되면 미숙한 부모 밑에서 더 미숙하게 자라는 아이들이 늘어나면서 사회가 점점 열화되어간다.
형제가 여럿이던 시절 아이들은 형들을 믿고 기세를 올릴 수 있었다. 형제나 사촌이 없는 남자아이들이 위축되는 것은 동물적 본능이다. 오늘날 형제자매가 줄어든 것은 여성에게도 마찬가지지만 남성들에 비해 여성들은 남남끼리도 쉽게 친해지는 경향이 있다. 자매와 사촌의 빈자리를 친구가 메운다. 친구끼리도 곧잘 손을 잡고 다니는 여자들과 달리 남자들은 쉽게 친해지지 못한다. 수다를 잘 떨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사회적 동물로서 인간의 자존감은 자신이 연결되어 있는 무리에서 나온다. 가족과 친구를 넘어 연결감이 확대될수록 자존감이 높아진다. 오늘날 젊은 여성들이 남성들에 비해 자존감이 높은 까닭은 페미니즘 운동을 통해 서로 연결되고 세력화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집회에 여성들이 더 많이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집단행동을 통해 연결감을 자각하면서 자존감이 더 높아지는 상승작용이 일어난다.
이는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한국의 경우 남녀 차이가 두드러진다. 여성들이 연결된 데 반해 개별화되어 있는 젊은 남성들은 상대적으로 더 위축된다. 취업도 결혼도 힘든 2030 남성들은 일용할 자존감을 조달할 길이 막혀 있다. 그중 일부는 일베화되어 그 세력에 기대어 억지 자존감을 끌어올린다. 남성 권익 보호와 페미니즘 반대를 기치로 신남성연대 같은 단체가 결성되기도 하나 결속을 확장하고 지탱해줄 이념이 빈약하다.1)
혈연을 넘어선 가족 만들기
인구가 줄어드는 것도 아이들의 성장에 좋지 않은 환경이다. 경쟁이 줄어드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지만 그만큼 다양한 친구들을 만날 기회가 줄어든다. 한 반에 60명 넘게 와글거리던 베이붐 대세는 초등학교만 나와도 친한 친구가 여럿 생겨났고, 중고등학교 친구들은 대부분 평생을 갔다. 한 반에 이삼십 명만 있으면 마음 맞는 친구를 사귈 수 있는 확률이 절반 이하로 줄어든다. 게다가 상대평가 내신제는 경쟁률을 줄여주지도 않는다. 아이들이 체감하는 경쟁은 오히려 옛날보다 더 심해졌을 것이다.
서구의 68혁명, 한국의 87혁명은 베이비붐 세대가 주동한 것이다. 전쟁 직후 인구가 늘고 과학기술의 발달과 함께 생산력이 비약적으로 늘어나면서 젊은이들 사이에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기운이 넘치던 시절이었다. 대학에서 딴짓을 해도 일자리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있었다. 인구수에서 압도적인 베이비붐 세대가 쪽수를 믿고 설친 것도 있다. 기성세대를 우습게 보는 분위기였다. ‘서른 넘은 사람은 믿지 말라’는 말이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했다.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해 서른만 넘어도 ‘노땅’ 취급받던 시절이었다.2)
80년대까지만 해도 부모들은 무식했다. 학력도 국졸, 중졸이 대부분이던 시절, 가부장 문화에 절어 목에 힘주는 아버지들을 고졸, 대졸 자식들이 ‘꼰대’로 보고 멀리했다. 퀸의 노랫말처럼 68세대는 ‘아버지를 죽이고’ 제 잘난 맛에 자신들의 삶을 살았다. 형제가 많았던 것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대개 둘째는 첫째보다 모험심이 강한 편이다. 형이 있으니 자기는 해보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도 좋지 않을까 하는 심리가 작용했을 것이다. 응석은 막내 몫이었다. 이제 형제도 없고 다들 첫째이자 막내여서 응석받이가 되었다.
형제자매의 교육적 의미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2촌인 형제자매가 없으면 그 자녀에게는 삼촌, 사촌이 있을 수 없다. 친족 관계가 급격히 좁아져 친족이라는 전통적인 세력망을 형성할 수 없게 된다. 태어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자기편이 얼마나 있느냐는 사회생활을 하는 데 적지 않은 변수로 작용한다. 사회화 과정은 피아를 구분하고 자기편을 늘려가는 과정이다. 혈연과 지연 같은 전통적인 관계망을 넘어 학연, 교(회)연, 직(장)연 등 다양한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우리는 세상에 뿌리를 내리게 된다.
형제 없이 자라는 아이들을 위해 공동육아 같은 새로운 육아문화가 생겨난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대안학교도 비슷한 역할을 한다. 공동육아어린이집과 대안학교는 유사 친족 관계를 만들어낸다. 아이들이 서로 형제나 사촌 같은 사이가 되고, 부모들은 다른 아이들에게 이모나 삼촌 역할을 한다. 기숙학교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사실상 제2의 부모 또는 삼촌이다. 관계력을 키우는 점에서 대안학교는 아이들의 성장에 좋은 환경이 될 수 있다.
공동육아나 대안학교가 아니어도 도시에서 다양한 관계망을 만들어갈 수 있다. 동네 태권도도장 사범도 어린아이들에게 삼촌 역할을 할 수 있다. “우리 아들은 태권도장 관장이 다 키웠다”고 말하는 엄마처럼 ‘마을이 아이를 키운다’는 말은 오늘날에도 틀린 말이 아니다. 운이 좋은 경우 학원이든 마을배움터든 다양한 곳에서 아버지나 삼촌의 빈자리를 대신할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 아이들 주변에 다양한 관계망을 만드는 것이 아이의 성장에 무엇보다 중요하다.
1) 신남성연대 대표를 맡았던 두 사람이 연달아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건은 그 연대가 얼마나 부실한 연대인지를 시사한다.
2) 80년대 전국노래자랑 영상을 보면 20대 출연자들 대부분이 요즘 30~40대 모습을 하고 있다. 이른바 여성의 결혼 황금기(?)가 23살이던 시절이었다.
_현병호(민들레 발행인)
친족 없는 사회
아이가 성장하는 데는 가까이에 롤모델이 되는 어른이 필요하다. 아이들은 알게 모르게 주변 어른들을 보면서 어른으로 자란다. 예전에는 삼촌이나 고모, 이모가 부모를 대신하는 또 다른 롤모델이 되어주었다.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동네 언니나 아주머니, 아저씨가 부모 역할 일부를 맡아 아이들을 함께 돌봤다. 베이비시터를 고용하지 않아도 누군가가 그때그때 부모의 빈자리를 메꾸었다.
급격한 도시화와 함께 마을이 아이를 기르던 시절을 뒤로 하고 이제는 양육의 책임이 전적으로 부모 또는 엄마 손에 맡겨지면서 아이들의 성장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부모가 아이와 거리를 두지 못할 경우 지나친 관심 속에 자기중심적인 경향이 강화되거나 숨이 막히게 되고, 형제자매 사이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을 배우지 못한 채 자라게 된다. 그리고 외동아이가 자라 결혼해서 부모가 되면 그의 자녀에게는 이제 삼촌도 이모도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사촌도 있을 수 없다.
미성숙한 부모와 고립된 핵가족 안에서 아이가 제대로 성장하기란 힘들다. 한 자녀 세대가 2대만 이어져도 아이의 성장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 부모는 맞벌이를 하느라 아이의 성장기 시간을 충분히 함께하지 못하고, 핵가족 속에서 미성숙한 어른으로 자라나 자신의 아이를 갖게 되면 미숙한 부모 밑에서 더 미숙하게 자라는 아이들이 늘어나면서 사회가 점점 열화되어간다.
형제가 여럿이던 시절 아이들은 형들을 믿고 기세를 올릴 수 있었다. 형제나 사촌이 없는 남자아이들이 위축되는 것은 동물적 본능이다. 오늘날 형제자매가 줄어든 것은 여성에게도 마찬가지지만 남성들에 비해 여성들은 남남끼리도 쉽게 친해지는 경향이 있다. 자매와 사촌의 빈자리를 친구가 메운다. 친구끼리도 곧잘 손을 잡고 다니는 여자들과 달리 남자들은 쉽게 친해지지 못한다. 수다를 잘 떨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사회적 동물로서 인간의 자존감은 자신이 연결되어 있는 무리에서 나온다. 가족과 친구를 넘어 연결감이 확대될수록 자존감이 높아진다. 오늘날 젊은 여성들이 남성들에 비해 자존감이 높은 까닭은 페미니즘 운동을 통해 서로 연결되고 세력화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집회에 여성들이 더 많이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집단행동을 통해 연결감을 자각하면서 자존감이 더 높아지는 상승작용이 일어난다.
이는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한국의 경우 남녀 차이가 두드러진다. 여성들이 연결된 데 반해 개별화되어 있는 젊은 남성들은 상대적으로 더 위축된다. 취업도 결혼도 힘든 2030 남성들은 일용할 자존감을 조달할 길이 막혀 있다. 그중 일부는 일베화되어 그 세력에 기대어 억지 자존감을 끌어올린다. 남성 권익 보호와 페미니즘 반대를 기치로 신남성연대 같은 단체가 결성되기도 하나 결속을 확장하고 지탱해줄 이념이 빈약하다.1)
혈연을 넘어선 가족 만들기
인구가 줄어드는 것도 아이들의 성장에 좋지 않은 환경이다. 경쟁이 줄어드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지만 그만큼 다양한 친구들을 만날 기회가 줄어든다. 한 반에 60명 넘게 와글거리던 베이붐 대세는 초등학교만 나와도 친한 친구가 여럿 생겨났고, 중고등학교 친구들은 대부분 평생을 갔다. 한 반에 이삼십 명만 있으면 마음 맞는 친구를 사귈 수 있는 확률이 절반 이하로 줄어든다. 게다가 상대평가 내신제는 경쟁률을 줄여주지도 않는다. 아이들이 체감하는 경쟁은 오히려 옛날보다 더 심해졌을 것이다.
서구의 68혁명, 한국의 87혁명은 베이비붐 세대가 주동한 것이다. 전쟁 직후 인구가 늘고 과학기술의 발달과 함께 생산력이 비약적으로 늘어나면서 젊은이들 사이에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기운이 넘치던 시절이었다. 대학에서 딴짓을 해도 일자리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있었다. 인구수에서 압도적인 베이비붐 세대가 쪽수를 믿고 설친 것도 있다. 기성세대를 우습게 보는 분위기였다. ‘서른 넘은 사람은 믿지 말라’는 말이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했다.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해 서른만 넘어도 ‘노땅’ 취급받던 시절이었다.2)
80년대까지만 해도 부모들은 무식했다. 학력도 국졸, 중졸이 대부분이던 시절, 가부장 문화에 절어 목에 힘주는 아버지들을 고졸, 대졸 자식들이 ‘꼰대’로 보고 멀리했다. 퀸의 노랫말처럼 68세대는 ‘아버지를 죽이고’ 제 잘난 맛에 자신들의 삶을 살았다. 형제가 많았던 것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대개 둘째는 첫째보다 모험심이 강한 편이다. 형이 있으니 자기는 해보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도 좋지 않을까 하는 심리가 작용했을 것이다. 응석은 막내 몫이었다. 이제 형제도 없고 다들 첫째이자 막내여서 응석받이가 되었다.
형제자매의 교육적 의미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2촌인 형제자매가 없으면 그 자녀에게는 삼촌, 사촌이 있을 수 없다. 친족 관계가 급격히 좁아져 친족이라는 전통적인 세력망을 형성할 수 없게 된다. 태어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자기편이 얼마나 있느냐는 사회생활을 하는 데 적지 않은 변수로 작용한다. 사회화 과정은 피아를 구분하고 자기편을 늘려가는 과정이다. 혈연과 지연 같은 전통적인 관계망을 넘어 학연, 교(회)연, 직(장)연 등 다양한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우리는 세상에 뿌리를 내리게 된다.
형제 없이 자라는 아이들을 위해 공동육아 같은 새로운 육아문화가 생겨난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대안학교도 비슷한 역할을 한다. 공동육아어린이집과 대안학교는 유사 친족 관계를 만들어낸다. 아이들이 서로 형제나 사촌 같은 사이가 되고, 부모들은 다른 아이들에게 이모나 삼촌 역할을 한다. 기숙학교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사실상 제2의 부모 또는 삼촌이다. 관계력을 키우는 점에서 대안학교는 아이들의 성장에 좋은 환경이 될 수 있다.
공동육아나 대안학교가 아니어도 도시에서 다양한 관계망을 만들어갈 수 있다. 동네 태권도도장 사범도 어린아이들에게 삼촌 역할을 할 수 있다. “우리 아들은 태권도장 관장이 다 키웠다”고 말하는 엄마처럼 ‘마을이 아이를 키운다’는 말은 오늘날에도 틀린 말이 아니다. 운이 좋은 경우 학원이든 마을배움터든 다양한 곳에서 아버지나 삼촌의 빈자리를 대신할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 아이들 주변에 다양한 관계망을 만드는 것이 아이의 성장에 무엇보다 중요하다.
1) 신남성연대 대표를 맡았던 두 사람이 연달아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건은 그 연대가 얼마나 부실한 연대인지를 시사한다.
2) 80년대 전국노래자랑 영상을 보면 20대 출연자들 대부분이 요즘 30~40대 모습을 하고 있다. 이른바 여성의 결혼 황금기(?)가 23살이던 시절이었다.
_현병호(민들레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