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풍향계

어떤 학교가 살아 있는 학교인가

2020-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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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원을 제대로 가꿔보자는 결심을 한 뒤부터 나는 원예 분야에서 내용이 가장 충실하다는 책을 한 아름이나 구해 읽기 시작했

다. 그러면서 무관심 때문에 폐허가 되어버린 도심 빈민가의 공터를 어떻게 가꿀지 고심했다. 처음에는 답해야 할 질문들이 너

무나 많았다. 무엇을 길러야 이곳 기후에도 잘 적응하고, 먹을거리도 되면서 미적 욕구까지 충족시킬 수 있을까? 채소밭으로는

어느 정도의 공간을 할애할까? 약초는? 화초는? 친구들의 도움으로 치운 산더미 같은 폐기물과 쓰레기 밑에서 산성화된 채 딱

딱하게 굳어버린 흙을 어떻게 회복시킬까?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자연적인 방식을 따를까, 아니면 이런 문제를 단시간에 해

결해주는 화학제품을 써서 시간을 절약할까?

 

다시 말해 나는 훌륭한 정원을 구성하는 요소에 대해 묻고 있었던 것이다.

학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좋은 학습 환경을 만드는 기본 원칙이 무엇인지 묻는 데서 출발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은 고인

이 된 실비아 애쉬턴 워너Sylvia Ashton-Warner의 말을 빌리자면, 좋은 학교는 유기적이다. 워너는 저서 『선생님Teacher』에

서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밝혀 놓았다.

 

 

나는 어쨌든 뚜껑이 없는 것이 좋다. 예측 불가능성, 생기발랄함, 나이를 막론하고 재미있는 사람, 신나는 일,

삶의 모든 것을 덮어두지 않고 모두 드러내는 것이 좋다. 덮개란 덮개는 종류를 막론하고 다 싫다. 삶의 진정

한 형태가 좋다. 학교에서도. 나는 유기적 형태와 사랑에 빠졌다.

 

 

예를 들자면 워너는 아이들이 자주 쓰는 단어를 사용해서 읽기를 가르쳤다. 아이들은 초급 읽기 교과서 대신 자신들이 직접

삽화도 그리고 거기에 설명을 달아 놓은 책을 읽었다. 아이들은 춤으로, 노래로, 때로는 연극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표현했다.

작은 마을 학교에서 매일같이 펼쳐지는 드라마를 바탕으로 글을 깨친 것이다.

 

이렇듯 좋은 학교는 아이의 세상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이다. 아이의 싱그러운 생기와 상상력을 무미건조하게 보관하는 창고

가 아닌 것이다. 좋은 학교는 아이의 존재 전체에 영향을 미치며, 머리뿐만 아니라 가슴의 요구까지 충족시킨다. 정서, 지능, 신

체를 모두 아우르는 생생한 체험을 일궈낸다는 뜻이다. 좋은 학교는 몸짓과 소리와 빛깔로 살아 움직여야 한다. 이런 곳에서 배

우는 모든 것은 실체적 의미와 목적을 갖게 된다. 각종 과목으로 구성된 교과과정을 치르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진정으로 중요

하고 관심을 기울일 만한 분야를 탐구하는 것이 목표이다. 이러한 배움은 시의 적절하고 흥미진진하며, 다양한 기술과 지식을

통합한 실질적 활동에 기반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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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학교는 공동체이기도 하다. 수사적인 의미로서가 아닌 실존하는 공동체이다. 공동체는 협력의 장이자 구성원 모두가

발언권이 있는 곳이다. 강제적 지배와 상명하달식의 권위가 아닌 상호합의에 기반을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공동체가 학습 환

경인 곳에서는 아이들에게 제반 운영에 동참할 권리를 준다. 아이들은 어른이 만들어준 학생회라는 테두리 안에서 주변적인

사안만 다루는 유명무실한 참여가 아니라 중대한 사안에 대해 진정한 민주적 의사 표현 권리를 행사한다. 이로써 학생들은 학

교를 단지 교사나 행정직원의 것이 아닌 자기의 것으로 여기게 된다. 때문에 자신을 위해, 서로를 위해, 그리고 학교의 안정을

위해 자연스럽게 책임의식을 갖는다. 뿐만 아니라 어릴 때부터 민주주의를 실천한 아이들은 성숙한 시민의식을 갖춘 사회 구

성원으로 성장한다.

 

 

공동체로서의 학교에서는 교사와 학생이 한편이 되어 공통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교사는 무서운 감독이나 규율반장이나 비판

자가 아닌 선배, 멘토, 안내자가 된다. 교사와 학생은 늘 에너지와 친밀감과 영감을 주고받는다. 이러한 교감 속에서 교사는 학생

만큼이나 영혼의 양식을 얻는다. 교사도 외부의 제약, 상부의 간섭, 학사 일정에 맞춰 가르쳐야 하는 압박 같은 것에서 자유로워

지면, 자신을 치밀하게 짜인 각본에 가두지 않고 가르치는 과정에 온몸으로 뛰어들기 때문이다.

 

경쟁적으로 성적을 내고 등수를 정하는 것은 학교의 공동체 의식을 갉아먹는다. 이러한 구조는 학생들을 서로 대결하게 만들고

공동체 의식 대신 분리와 고립을 부추긴다. 경쟁에서 진 학생은 말할 나위 없다. 경쟁은 상대방을 능가하는 것이 공개적으로 명

시되고 합의된 목표인 환경, 그러니까 경기장에나 어울리는 것이다. 경쟁이 공동체 안에 포함되어서는 안 된다.

 

공동체가 곧 학교인 곳에서는 학생들의 상대적 성과를 정적인 숫자로 나타내지 않는다. 아이 한 명 한 명의 지적, 정서적, 신체적,

 사회적 계발을 역동적이고 개별적으로 가늠한다. 이를 위해 많은 학교에서 학생들의 한 해 동안의 성과를 포트폴리오로 만들어

관리한다. 프리스쿨 교사들은 학생과의 상담과 교사들 간의 상의를 통해 상반기가 끝날 무렵 학생 한 명 한 명에 대해 아주 세밀

하게 평가한 평가서를 쓴다. 이 평가서는 학생이 성취한 것에 초점을 맞추고,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이 있으면 이를 간략하게 지적

한다. 그러고 나서 학부모와 면담하면서 평가서의 내용을 더 깊이 있게 설명한다.

 

공동체는 본질 자체가 포용적이다. 주어진 틀에 맞추지 못하거나 어떤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람을 배제하는 집단은

공동체가 아니라 파벌이다. 공동체는 획일적 동질성을 강요하기보다는 구성원 개개인의 차이를 존중한다. 악의적으로 골탕 먹이

기, 무시하기, 괴롭히기 따위의 아이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학대는 불평등하고 배타적인 환경이 낳은 부작용이다.그러므로 공동체

의 핵심 요소는 다양성이다. 진정한 배움의 공동체는 이를 넘어 구성원들간의 실질적인 다양성을 길러내고

받쳐준다.

 

어느 학교든지 진정한 공동체라면 최고로 중요한 요소는 사랑임을 알 것이다. 사랑은 공동체의 구성원을 하나로 이어주고,

숭고한 목표를 향해 달리기 위해 모든 인간이 필요로 하는 일체감과 소속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학교에서 사랑과

 늘 붙어 다니는 관심과 친밀감은 명확히 규정된 역할 분담 때문에 억눌리고 만다. 학생은 학생의 역할만, 선생은 선생의 역할만, 행

정 담당자는 행정 담당자의 역할만 해야 한다면, 상호접촉의 가능성은 상당히 줄어든다. 공동체에서는 모든 참여자들이 주어진 역

할의 단순한 수행을 너머,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존재하게 해주는 격려와 지원을 받는다. 그래야만 비로소 사랑과 관심이 꽃을 피운

다. 일반 학교의 핵심 요소가 된 나이별 분반 또한 일체감의 가능성을 제한한다. 반면 나이 구분을 두지 않는 학교의 분위기는 훨씬

더 즐겁고 가족적이다. 좋은 학교에서는 동갑이 아닌데도 단짝이 되는 아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러한 아이들은 지구에서 보낸

햇수를 초월하여 공통 관심사 때문에 친해지는 것이다.

 

사랑에는 즉흥성과 신체 접촉이 포함되며, 갈등도 당연히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대부분의 학교가 이 세 가지 모두를 일상에서 배

제하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일번가 학교에 대한 조지 데니슨의 기막힌 통찰력에 따르면, 우리는 갈등이 끝까지 가도록 놔두는 데

서 소중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갈등이 완전히 풀릴 때까지 노력한 사람들은 갈등으로 인해 더 가까워진다. 반면 엄격한 통제와 지

속적인 감시로 갈등을 억제하면 모든 사람들이 안전거리를 유지한 채 고정되어버리고, 따라서 사랑을 키우는 데 크게 공헌하는 예

측할 수 없는 접촉이 거의 일어나지 않게 된다. 근래에 전염병처럼 번지는 학교 총기 난사 사건에 비춰볼 때, 안전거리를 유지하는

환경이 과연 안전한지 의문이 쏟아질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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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학교는 또한 투과성이 좋은 숨을 쉬는 그릇과 같아서 학교 안과 바깥 세상 사이에 잦은 교류가 이루어진다.

아이들과 나누고 싶은 기술이나 아이디어가 있는 어른들은 학부모가 아니더라도 언제든지 환영받는다. 이러한 학교는 교실 밖

에 있는 흥미로운 배움의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 늘 노력한다. 아이들은 도제 수업을 받거나 사회봉사 활동을 하면서, 또 인턴으

로 일하면서 진짜 세상살이에 직접 참여하는 기회를 얻는다. 먼 미래의 애매한 목표를 위해 끝없이 준비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바

로 지금 진정한 노동을 해보는 것이다. 다시 말해 좋은 학교에서는 삶과 배움이 같은 뜻을 지닌다.

 

어쩌면 좋은 학교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니일이 『서머힐』에서 말했듯이, 아이를 학교에 끼워 맞추려 하지 않고 학교를 아이

한테 맞추는 자세인지도 모른다. 이 핵심 요소를 설명하기 위해 니일이 소개한 일화가 있다.

 

하루는 자신이 아끼던 온실을 지나가는데 한 사내아이가 온실 유리창을 부수고 있었다고 한다. 서머힐에서 생활한 지 얼마 안

된 아이였는데 아직 반사회적 충동에 사로잡혀 있었다. 니일은 분노에 찬 그 신입생을 꾸짖는 대신 같이 유리창에다 돌을 던졌

다. 깜짝 놀란 아이는 자기 혼자 고립되었다는 생각을 멈추게 되었고, 곧 돌멩이를 내려놓더니 무엇이 그토록 자기를 괴롭히는

지 니일에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 뒤로 아이는 파괴적 충동에서 벗어나 학교 분위기에 더 잘 적응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융통성이 좋은 학교의 특징이다. 지적, 정서적, 또는 육체적으로 곤경에 빠진 아이들에게 똑 같은 표준에 적응하라고

강요하기보다는 각각의 아이들을 위해 개별 맞춤형 전략을 세우는 학교, 개성을 억누르지 않고 키워주는 학교, 다수에게 맞는 방

식의 검증된 유효성에 기대기보다는 끊임없이 새로운 방식을 모색하는 학교, 위험을 무릅쓸 줄 알고 자신이 만든 규칙과 정책

에도 예외가 있다는 것을 과감하게 인정하는 학교가 좋은 학교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좋은 학습 환경을 위한 단일한 공식은 없다. 좋은 학교의 본질은 외부 구조가 아니라 구조를 만드는 사람들

 속에, 그리고 그 사람들간의 일상적 소통 속에 있다. 물론 좋은 학교의 기본 원칙인 유기적 기능, 인간관계, 공동체, 민주주의, 융

통성, 자유, 신뢰, 책임, 선택, 그리고 사랑을 소중히 가꿔야 한다. 그러기만 하면 가능성은 거의 무한대로 펼쳐진다.

 

- 크리스 메르코글리아노, <살아 있는 학교 어떻게 만들까>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