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풍향계

방을 청소하고 아름답게 꾸미는 일

민들레
2023-01-02
조회수 495


이처럼 방을 꾸며주는 업체도 있지만 스스로  자기 방을 꾸며보는 것이 백번 낫다.


'세상을 탓하기 전에 방부터 정리하라’라는 조언으로 유명해진 조던 피터슨은 몇 해 뒤 새로 낸 책에서 방을 청소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며 ‘방 하나를 할 수 있는 한 아름답게 꾸며보라’고 조언한다. 새해를 맞아 손쉽게 시도해볼 수 있는 좋은 시작이다. 방을 아름답게 꾸미거나 정원을 가꾸는 일은 일상에서 미의 세계와 연결되는 일이다. 청소를 하다 보면 정신이 맑아지고 몸이 개운해진다. 벽에 걸린 그림 한 점, 거실 한켠에 놓인 소박한 예술 작품은 잠시 다른 세상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예술은 눈에 보이는 세계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연결하는 다리다.

아이들은 대체로 방 청소에 관심이 없다. 어지르는 것은 어린아이들의 특권이다. 십대들도 대개 방 청소에 무심하다. 여자아이들 방이 더 어질러져 있는 경우도 많다. 필요한 소품들이 더 많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가 잔소리를 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그보다 집안의 다른 공간을 아름답게 가꾸어 공간이 말없이 가르치게 하는 것이 낫다. 기숙사를 운영하는 학교라면 기숙사의 공용공간을 정갈하고 아름답게 꾸미면 된다. 교실을 청소하고 벽에 아름다운 그림을 걸고 화단을 가꿈으로써 아름다움에 눈뜨게 하는 것이 학교교육의 ‘숨은 커리큘럼’이 되게 해야 한다. 발도르프학교가 잘 하는 일이다.

십대가 되면 방은 어질러놓아도 옷차림이나 화장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아름다움에 눈을 떠서라기보다 사회에 눈을 떠서다. 사회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변화다. 단지 멋을 부리려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공동체와의 관계 설정을 고심하는 것이다. 다른 이들의 주목을 끄는 모든 행동은 공동체에서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싶은 욕구의 발로다. 학교는 아이들의 화장을 단속하기보다 그 욕구를 교육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피어싱을 하고, 아이돌에 열광하며 어른들은 알아들을 수도 없는 노래가사를 흥얼거리는 아이들은 나름 사회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자 애를 쓰고 있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대중문화는 함께 자란다. 근대화는 표준화를 통해 유동성을 높이고, 유동성이 높아져 균일화가 진척되어 사회가 정체될 조짐이 보이면 또 새로운 유행이 등장하여 에너지 낙차를 만들어낸다. 민주주의는 끊임없이 새로운 정치권력을, 자본주의는 새로운 산업과 신상품을, 대중문화는 새로운 장르와 문화권력을 창출한다. 권력과 재력, 인기는 거의 모든 인간들이 추구하는 것이기에 점점 그 순환이 빨라지는 방향으로 세상이 바뀌어왔다. 권력도 돈도 유행도 돌고 도는 것이 현대 사회의 모습이고, 그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유동성이 높아지는 것은 근대화의 피치 못할 결과이므로 거부한다고 피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인구가 늘어나고 상호작용이 증가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나게 된 농업혁명과 산업혁명이 대다수 인간들에게 더 힘든 삶을 안겨주었지만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에너지 낙차가 없는 평등한 사회가 이상적인 사회는 아니다. 낙차가 없으면 사회가 정체되고 정체되면 퇴행하기 마련이다. 아미시 공동체처럼 친족간의 성폭행이 예사로운 일이 된다. 근대화라는 돌아갈 수 없는 다리를 건넌 이상 부작용을 줄이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민주시민교육과 문화예술교육이 지향하는 방향은 다르지 않다. 민주주의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이 당당해지는 과정이라면, 문화와 예술은 아무것도 아닌 이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판을 만든다. 굿판이나 축제 같은 비일상적 시간과 공간을 통해 억눌렸던 소리가 터져 나오게 만든다. 문화예술인들은 인간계와 영계를 잇는 무당처럼 그 본성상 경계인이다. 보헤미안처럼 떠도는 것이 그들의 운명이다. 공연을 위해 떠돌기도 하지만, 그렇게 경계를 넘나드는 과정에서 보통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그것을 이쪽저쪽에 전하는 것이 그들이 맡은 역할이기도 하다.

대중문화가 꽃을 피우는 시대다. 기술문명이 발달하면서 문화예술의 표현 방법은 달라져도 공동체에 활기를 불어넣고 커뮤니케이션을 활성화시키는 기능은 다르지 않다. 현대의 광대는 국가의 경계를 넘나들며 지구촌을 하나의 마을로 만든다. 오늘날 그 중심에 K팝과 드라마, 영화가 있다. 드라마틱한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첨예한 문제 상황에 맞닥뜨린 한국 사회에서 촉이 예민한 문화예술인들이 만들어내는 작품들 속에는 세계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뭔가가 있다. 문화상품의 관점에서 K컬쳐를 바라볼 것이 아니라 인류문명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를 고민할 때다. 트렌디한 상품을 팔아 외화를 벌어들일 궁리를 하기보다 인류에게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5천 년만에 세계무대에서 주역을 맡았으니 제대로 한번 해볼 일이다.


_현병호(민들레 발행인)

0 0

서울시 성북구 동소문로 47-15, 1층

민들레출판사 T. 02-322-1603  F. 02-6008-4399

E. mindle1603@gmail.com

공간민들레 T, 02-322-1318  F. 02-6442-1318

E. mindle00@gmail.com

Copyright 1998 민들레 all rights reserved

이용약관             개인정보처리방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