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이 ‘대한민국 CEO’를 자처하며 “바이(Buy) 코리아”를 외쳤던 이명박 정부 당시 학교장은 교무실에 ‘학부모 소비자 헌장’을 붙여놓고서 교사들을 교육하기도 했다. “학생과 학부모는 소비자이고 학교와 교사는 서비스 제공자로서 소비자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담론이 퍼지면서 학부모와 학교의 관계가 변하기 시작했다. 권위적인 학교문화를 바꾸자는 취지였겠지만 교사와 학부모의 관계를 서비스 제공자와 소비자의 관계로 풀어간 것은 교육의 토대를 허무는 일이었다.
학교폭력이 사회적 문제가 되면서 학폭 관련 기록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기 시작하면서부터 학폭을 처리하는 과정과 결과에 학부모들이 더 예민해지고 학교에 민원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멀쩡하던 부모도 자녀가 학폭에 연루되는 순간 이성을 잃고 교사에게 온갖 악다구니를 쏟아붓는 사례를 너무 많이 봤다. 가해자로 한번 낙인찍히면 끝까지 꼬리표가 달리는 학폭 생기부 기재가 시작된 뒤부터 나타난 현상이다.” 한 교사의 고백이다. 학폭 문제를 교육적으로 풀기보다 대학입시에 기댄 손쉬운 해결책을 택한 결과다.
학교폭력 사건의 가해자 학부모가 적반하장으로 민원을 제기하는 경우도 흔하다. 지역 교육청과 도교육청에까지 민원을 넣어 교사를 곤경에 빠트리기도 한다. 교사가 잘못 처리한 경우도 없진 않겠지만, 아이의 일방적인 말만 듣고 교사를 공격하는 부모들이 적지 않다. 시스템이 없으니 감정이 앞서게 되고, 학부모 개인 대 교사 개인의 대결로 치닫게 된다.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병가를 내는 교사들도 적지 않다. 공공영역인 교육 현장이 악성 민원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장치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민원 처리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민원은 ‘사인(私人)이 행정기관에 행정처분 등 특정한 행위를 요구하는 것’이다. 국가가 민원 제도를 두고 있는 것은 공권력의 사각지대에서 피해를 입는 국민을 구제하기 위해서다. 왕조시대의 신문고처럼 힘없고 억울한 백성을 구제하기 위한 제도다. 모든 제도에 부작용이 따르듯이, 개인의 이익을 위해 민원 제도를 악용하는 이들이 있다. 어떤 가게 주인은 가게 간판을 가린다고 가로수 가지를 잘라 달라고 민원을 넣는다. 민원 노이로제에 시달리는 공무원들은 민원인을 설득하기보다 그들의 청원을 들어주고 만다. 그리고 그 피해는 시민들에게 돌아간다.
“결국 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 실수도 할 수 있고 좀 불편할 수도 있다. 이런 일에 매번 본인의 바닥을 확인해볼 필요가 있을까. 좀 다정한 세상에서 살고 싶다.”* 자신의 아이가 민원인처럼 되지 않도록 키우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한 민원 담당자의 고백이다. “존재의 의미를 민원에서 찾는 것 같은 민원인이 있다. 사실 존재에 무슨 큰 의미가 있겠나. 그냥 저 인간도 존재하기 위해 저러는가보다 하고 이해를 시도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공무원의 고충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공공의 이익보다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을 시민이라 할 수 없다. 사익을 앞세우는 민원인들에게 공무원들이 휘둘리지 않을 수 있게 제도를 설계해야 하지만, 유권자의 표에 민감한 민선 자치단체장들은 민원에 취약하다. 민원제일주의가 민주주의는 아니다. 유권자에게 약한 선출직 공무원들의 약점이 일선 공무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 민주주의의 약점이다. 이 약점을 악용하는 악성 민원인들을 제어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민주주의의 건강성을 지키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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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 차 직장인이라는 기묘염 브런치 ‘어우, 안녕하십니까. 고객님_민원에도 정도가 있다면’ 가운데.
_현병호(민들레 발행인)
대통령이 ‘대한민국 CEO’를 자처하며 “바이(Buy) 코리아”를 외쳤던 이명박 정부 당시 학교장은 교무실에 ‘학부모 소비자 헌장’을 붙여놓고서 교사들을 교육하기도 했다. “학생과 학부모는 소비자이고 학교와 교사는 서비스 제공자로서 소비자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담론이 퍼지면서 학부모와 학교의 관계가 변하기 시작했다. 권위적인 학교문화를 바꾸자는 취지였겠지만 교사와 학부모의 관계를 서비스 제공자와 소비자의 관계로 풀어간 것은 교육의 토대를 허무는 일이었다.
학교폭력이 사회적 문제가 되면서 학폭 관련 기록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기 시작하면서부터 학폭을 처리하는 과정과 결과에 학부모들이 더 예민해지고 학교에 민원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멀쩡하던 부모도 자녀가 학폭에 연루되는 순간 이성을 잃고 교사에게 온갖 악다구니를 쏟아붓는 사례를 너무 많이 봤다. 가해자로 한번 낙인찍히면 끝까지 꼬리표가 달리는 학폭 생기부 기재가 시작된 뒤부터 나타난 현상이다.” 한 교사의 고백이다. 학폭 문제를 교육적으로 풀기보다 대학입시에 기댄 손쉬운 해결책을 택한 결과다.
학교폭력 사건의 가해자 학부모가 적반하장으로 민원을 제기하는 경우도 흔하다. 지역 교육청과 도교육청에까지 민원을 넣어 교사를 곤경에 빠트리기도 한다. 교사가 잘못 처리한 경우도 없진 않겠지만, 아이의 일방적인 말만 듣고 교사를 공격하는 부모들이 적지 않다. 시스템이 없으니 감정이 앞서게 되고, 학부모 개인 대 교사 개인의 대결로 치닫게 된다.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병가를 내는 교사들도 적지 않다. 공공영역인 교육 현장이 악성 민원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장치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민원 처리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민원은 ‘사인(私人)이 행정기관에 행정처분 등 특정한 행위를 요구하는 것’이다. 국가가 민원 제도를 두고 있는 것은 공권력의 사각지대에서 피해를 입는 국민을 구제하기 위해서다. 왕조시대의 신문고처럼 힘없고 억울한 백성을 구제하기 위한 제도다. 모든 제도에 부작용이 따르듯이, 개인의 이익을 위해 민원 제도를 악용하는 이들이 있다. 어떤 가게 주인은 가게 간판을 가린다고 가로수 가지를 잘라 달라고 민원을 넣는다. 민원 노이로제에 시달리는 공무원들은 민원인을 설득하기보다 그들의 청원을 들어주고 만다. 그리고 그 피해는 시민들에게 돌아간다.
“결국 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 실수도 할 수 있고 좀 불편할 수도 있다. 이런 일에 매번 본인의 바닥을 확인해볼 필요가 있을까. 좀 다정한 세상에서 살고 싶다.”* 자신의 아이가 민원인처럼 되지 않도록 키우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한 민원 담당자의 고백이다. “존재의 의미를 민원에서 찾는 것 같은 민원인이 있다. 사실 존재에 무슨 큰 의미가 있겠나. 그냥 저 인간도 존재하기 위해 저러는가보다 하고 이해를 시도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공무원의 고충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공공의 이익보다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을 시민이라 할 수 없다. 사익을 앞세우는 민원인들에게 공무원들이 휘둘리지 않을 수 있게 제도를 설계해야 하지만, 유권자의 표에 민감한 민선 자치단체장들은 민원에 취약하다. 민원제일주의가 민주주의는 아니다. 유권자에게 약한 선출직 공무원들의 약점이 일선 공무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 민주주의의 약점이다. 이 약점을 악용하는 악성 민원인들을 제어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민주주의의 건강성을 지키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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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 차 직장인이라는 기묘염 브런치 ‘어우, 안녕하십니까. 고객님_민원에도 정도가 있다면’ 가운데.
_현병호(민들레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