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아가는 데 중요한 기술 중 하나는 피아(彼我) 구분을 하는 것이다. 말을 배우는 과정에서 ‘너’와 ‘나’를 구분하게 되는 시기가 있다. 가끔 그게 헷갈리는 아이는 친구가 갖고 노는 자기 장난감을 뺏으면서 “니 거야!” 하기도 하지만, 상대방과 자기가 다른 편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셈이다. 자라면서 내 편과 남의 편을 구분할 줄 알게 되고, 점점 자기 편을 늘여가게 된다. 갓난아기 때는 엄마가 유일한 자기 편인 줄 알다가, 밤중에 들어와 가끔씩 까칠한 얼굴을 부벼대는 남자도 내 편이구나, 머리칼이 하얀 할머니, 할아버지도 내 편이구나 알게 된다.
학교에 가면 친구들을 사귀면서 자기 편을 늘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배운다. 공식적인 교육과정은 아니지만 학교의 중요한 ‘히든 커리큘럼’이다. 학교는 사회화 기관으로 기능하도록 세팅되어 있고, 공식 교육과정과 비공식 교육과정을 통해 그 일을 해낸다. 토론 수업이나 프로젝트 학습, 체육 활동은 공통의 교육 목표를 가진, 곧 협업 능력을 기르는 교육과정이다. 대화를 주고받고 패스를 주고받으면서 자기 편과 협력하는 기술을 익히고, 상대 편과 밀고 당기는 과정 속에서 협상과 타협의 기술을 익힌다.
또래들 사이에서 복잡하게 전개되는 인간관계는 비공식 교육과정으로 관계 맺기 기술을 익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학교는 거기에 적을 두기만 하면 친구와 선후배, 사제 관계 등 다양한 인간관계가 만들어지는 상당히 효율적인 시스템이다. 학연은 같은 학교를 다녔다는 인연 하나만으로 서로를 묶어주는 끈이다. 튼튼한 끈을 더 많이 맺을수록 사회생활에 유리하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다. 혈연과 지연은 태어나면서 정해지는 것이지만 학연은 살아가면서 취득하는 것이어서 더 좋은 연을 맺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누가 자기 편인지 알고, 자기 편을 늘여가는 것이 사회화 과정의 핵심이다. 사회를 적으로 돌리지 않고 사회 속에서 자기 역할을 찾을 수 있게 되면 그 과정은 일단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조폭이나 일베의 경우 자기가 속한 작은 집단만 자기 편으로 인식하고 더 큰 공동체를 적으로 삼는 점에서 사회화 과정을 잘못 거친 것이다. 사이비 종교 집단의 경우도 비슷하다. 어떤 신념 체계에 의해 자기 편 설정이 좁게 고착되면 거기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사이비일수록 확실한 소속감과 자기효능감을 불어넣어주기 때문에 자기 편이 없는 소외 계층은 더 쉽게 빠져든다.
감정의 동요가 심해지고 충동적이 되는 시기인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많은 아이들이 피아 구분에 어려움을 겪는다. 아이의 충동적인 언행이 되풀이되면 부모는 잔소리를 하게 되고, 부모의 잔소리가 듣기 싫은 아이는 점점 엇나가기 시작한다. 원초적인 자기편이었던 엄마에게마저 적대감을 느끼기도 한다. 집이 안식처가 아니라 감옥처럼 여겨지면 탈출하고 싶어지기 마련이다. 부모가 자신을 적대시하는 느낌을 받게 되면 아이는 자기를 받아주는 다른 곳을 찾게 된다. 부모가 아이를 거부할수록 그 반작용으로 더 빠르게 다른 쪽으로 빨려 들어간다.
학습과학연구소의 박재원 소장은 청소년 시기의 아이들에게 소속감, 유능감, 자율감이 필요하다면서 이를 ‘마음의 3대 영양소’라 부른다. 이 영양소가 결핍된 아이들은 그것을 충족할 수 있는 다른 길을 찾게 된다. 게임 속이든 현실 속이든 자기 존재감을 느끼고 인정받을 수 있는 집단에 끌리게 된다. 일진이 되는 아이들은 그 속에서 이런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진에 속하면 확실한 자기 편이 생기면서 피아 구분이 선명해진다. 폭력에 기반한 힘은 유능감을 불어넣어준다. 다른 아이들이 두려워하는 존재가 되는 짜릿한 경험을 하게 되면 그 맛에 중독된다.
일진은 중2병을 심하게 앓는 아이들이다. 조폭 집단은 어떤 면에서 중2병이 만성질환이 된 남자들의 세계다. 반항적이고 무리지어 다니기 좋아하는 사춘기에 고착된 것이다. 요즘은 사춘기를 일찍 겪는 아이들이 늘면서 ‘초4병’이라는 말도 생겨나고 있지만, ‘병’이라는 표현은 문제의 본질을 왜곡한다. 자기 편을 찾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거기에 있다. 동화처럼 단순하던 세계가 복잡한 소설로 다가오는 사춘기 시절을 잘 보내야 건강한 사회인이 될 수 있다. 중학교 시기는 초등학교 때보다 부모의 관심이 줄어들고, 고등학교처럼 입시 때문에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는 시기여서 자칫 소홀하기 쉽다. 아이들의 성장에서 중요한 변곡점에 해당하는 중학생들에 대한 관심이 더 필요한 이유다.
_현병호(민들레 발행인)
살아가는 데 중요한 기술 중 하나는 피아(彼我) 구분을 하는 것이다. 말을 배우는 과정에서 ‘너’와 ‘나’를 구분하게 되는 시기가 있다. 가끔 그게 헷갈리는 아이는 친구가 갖고 노는 자기 장난감을 뺏으면서 “니 거야!” 하기도 하지만, 상대방과 자기가 다른 편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셈이다. 자라면서 내 편과 남의 편을 구분할 줄 알게 되고, 점점 자기 편을 늘여가게 된다. 갓난아기 때는 엄마가 유일한 자기 편인 줄 알다가, 밤중에 들어와 가끔씩 까칠한 얼굴을 부벼대는 남자도 내 편이구나, 머리칼이 하얀 할머니, 할아버지도 내 편이구나 알게 된다.
학교에 가면 친구들을 사귀면서 자기 편을 늘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배운다. 공식적인 교육과정은 아니지만 학교의 중요한 ‘히든 커리큘럼’이다. 학교는 사회화 기관으로 기능하도록 세팅되어 있고, 공식 교육과정과 비공식 교육과정을 통해 그 일을 해낸다. 토론 수업이나 프로젝트 학습, 체육 활동은 공통의 교육 목표를 가진, 곧 협업 능력을 기르는 교육과정이다. 대화를 주고받고 패스를 주고받으면서 자기 편과 협력하는 기술을 익히고, 상대 편과 밀고 당기는 과정 속에서 협상과 타협의 기술을 익힌다.
또래들 사이에서 복잡하게 전개되는 인간관계는 비공식 교육과정으로 관계 맺기 기술을 익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학교는 거기에 적을 두기만 하면 친구와 선후배, 사제 관계 등 다양한 인간관계가 만들어지는 상당히 효율적인 시스템이다. 학연은 같은 학교를 다녔다는 인연 하나만으로 서로를 묶어주는 끈이다. 튼튼한 끈을 더 많이 맺을수록 사회생활에 유리하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다. 혈연과 지연은 태어나면서 정해지는 것이지만 학연은 살아가면서 취득하는 것이어서 더 좋은 연을 맺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누가 자기 편인지 알고, 자기 편을 늘여가는 것이 사회화 과정의 핵심이다. 사회를 적으로 돌리지 않고 사회 속에서 자기 역할을 찾을 수 있게 되면 그 과정은 일단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조폭이나 일베의 경우 자기가 속한 작은 집단만 자기 편으로 인식하고 더 큰 공동체를 적으로 삼는 점에서 사회화 과정을 잘못 거친 것이다. 사이비 종교 집단의 경우도 비슷하다. 어떤 신념 체계에 의해 자기 편 설정이 좁게 고착되면 거기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사이비일수록 확실한 소속감과 자기효능감을 불어넣어주기 때문에 자기 편이 없는 소외 계층은 더 쉽게 빠져든다.
감정의 동요가 심해지고 충동적이 되는 시기인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많은 아이들이 피아 구분에 어려움을 겪는다. 아이의 충동적인 언행이 되풀이되면 부모는 잔소리를 하게 되고, 부모의 잔소리가 듣기 싫은 아이는 점점 엇나가기 시작한다. 원초적인 자기편이었던 엄마에게마저 적대감을 느끼기도 한다. 집이 안식처가 아니라 감옥처럼 여겨지면 탈출하고 싶어지기 마련이다. 부모가 자신을 적대시하는 느낌을 받게 되면 아이는 자기를 받아주는 다른 곳을 찾게 된다. 부모가 아이를 거부할수록 그 반작용으로 더 빠르게 다른 쪽으로 빨려 들어간다.
학습과학연구소의 박재원 소장은 청소년 시기의 아이들에게 소속감, 유능감, 자율감이 필요하다면서 이를 ‘마음의 3대 영양소’라 부른다. 이 영양소가 결핍된 아이들은 그것을 충족할 수 있는 다른 길을 찾게 된다. 게임 속이든 현실 속이든 자기 존재감을 느끼고 인정받을 수 있는 집단에 끌리게 된다. 일진이 되는 아이들은 그 속에서 이런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진에 속하면 확실한 자기 편이 생기면서 피아 구분이 선명해진다. 폭력에 기반한 힘은 유능감을 불어넣어준다. 다른 아이들이 두려워하는 존재가 되는 짜릿한 경험을 하게 되면 그 맛에 중독된다.
일진은 중2병을 심하게 앓는 아이들이다. 조폭 집단은 어떤 면에서 중2병이 만성질환이 된 남자들의 세계다. 반항적이고 무리지어 다니기 좋아하는 사춘기에 고착된 것이다. 요즘은 사춘기를 일찍 겪는 아이들이 늘면서 ‘초4병’이라는 말도 생겨나고 있지만, ‘병’이라는 표현은 문제의 본질을 왜곡한다. 자기 편을 찾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거기에 있다. 동화처럼 단순하던 세계가 복잡한 소설로 다가오는 사춘기 시절을 잘 보내야 건강한 사회인이 될 수 있다. 중학교 시기는 초등학교 때보다 부모의 관심이 줄어들고, 고등학교처럼 입시 때문에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는 시기여서 자칫 소홀하기 쉽다. 아이들의 성장에서 중요한 변곡점에 해당하는 중학생들에 대한 관심이 더 필요한 이유다.
_현병호(민들레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