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풍향계

대안학교는 왜 지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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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중등 대안학교들이 지각을 밥 먹듯 하는 학생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다가 사실상 포기 상태에 이른다. 초등 시기에는 지각을 않던 아이들도 청소년 시기에 접어들면서 지각을 하게 된다. 아침잠이 늘어나는 생체리듬의 변화 탓도 있고 밤늦도록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거나 게임을 하다 늦잠을 자기 때문이다. 십대에 들어서 부모의 통제력이 약해지고 친구들의 영향력이 더 커지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기숙형 학교들도 습관적으로 지각하는 학생들을 어쩌지 못하는 실정이다.

자율과 자발성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대안학교에서 일반학교처럼 지각생을 벌주거나 내신에 반영할 수도 없다 보니 잘해야 공동체 규약으로 막을 수밖에 없다. 스스로 루틴을 만들어내는 일은 어른인 교사도 힘든 일이므로 구속력이 약한 규약이 아이들의 생활을 바꾸기는 힘들다. 반면 일반학교는 획일적인 시간표에 따라 학생들의 일과를 규율함으로써 루틴을 강제적으로 만들어낸다. 정해진 루틴을 따르지 않는 학생들에게는 다양한 벌칙을 가함으로써 학생들을 루틴 속으로 밀어넣는다. 부작용이 적지 않지만 정해진 일과에 적응한 학생들은 그럭저럭 학교생활을 해나는 데 어려움이 없는 편이다.

지각과 결석을 바라보는 학교의 시각에는 표준화와 산업화 시대의 가치가 깔려 있다. 학교가 표준화 교육기관으로서 산업 일꾼 양성을 목표로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지각과 결석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교사들이 흔히 ‘개근상이 우등상보다 더 가치 있다’는 입에 발린 거짓말을 했던 까닭이기도 하다. 그런데 세상이 달라지면서 최근에는 ‘개근거지’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부모와 함께 여행을 가거나 현장체험학습 같은 걸 하지 못해 학교를 빠지지 않고 나오는 아이들을 놀리는 말이다. 세태가 몰라보게 달라졌다. 탈근대 시대에 접어들면서 근면의 가치가 폄하되고 있다. 하지만 뭔가를 제대로 해내기 위해서는 여전히 근면성실함이 필요하다. 

성장 과정에서 루틴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대부분 알고 있다. 정해진 시간에 어떤 과업을 꾸준히 반복하는 동안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진일보’는 루틴이 만들어준다. 날마다 조금씩 훈련과 학습을 반복하는 동안 미세 근육이 단련되고 뇌의 뉴런이 재조직된다. 신체 리듬이 루틴에 맞춰지면서 그 시간이 되면 몸이 깨어나는 효과도 있다. 정해진 일과를 거르게 되면 밥을 거른 것처럼 허전해진다. 운동이나 악기 연주처럼 기예를 닦는 일이나 공부나 성장은 대개 사선형이 아닌 계단형으로 일어난다. 한동안 제자리걸음을 하다 어느 순간 막혔던 지점을 돌파하면서 레벨업이 된다. 

대안학교의 가장 큰 패착은 성장기 아이들에게 루틴을 만들어주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다양한 활동을 하다 보니 수업시간도 들쑥날쑥하고, 정해진 교과서도 진도표도 없다 보니 교육과정도 느슨하다. 시험도 없고 경쟁도 없다. 교사들은 친구 같다. 아이들을 긴장시키는 장치가 없는 셈이다. 뭔가를 배우기 위해서는 적당한 긴장, 기분 좋은 긴장이 필요하다. 배움에는 그만한 에너지가 요구된다. 교육 환경은 그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장치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장치가 없으면 대부분의 인간은 할 수 있는 일을 하던 대로 하게 된다. 그게 쉽기 때문이다.

몇 해 전 공간민들레를 다닌 학생 중에 밤낮을 바꿔 생활하며 지각을 밥 먹듯 하던 학생이 있었다. 졸업 후 한동안 뒹굴거리며 놀다 게임회사에 일러스트레이터로 취업하더니 정해진 출퇴근 시간에 맞춰 생활하느라 애를 먹었지만 두어 달 만에 몸이 적응되자 큰 어려움 없이 회사생활을 해나갔다. 몸의 바이오리듬이 바뀌는 데는 두 달 정도면 된다. 회사에서 잘리지 않기 위해 몸이 적응한 셈이다. 학생들도 대안학교는 학생을 자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지각해도 잠시 미안한 마음만 누르면 된다. 너도나도 지각을 하면 미안한 마음도 들지 않게 된다. 소도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다.

10여 년 전 ‘대안교육 정명하기’ 바람이 한동안 불었지만 별 성과 없이 끝나버렸다. 이념을 확인하는 선에서 끝낼 것이 아니라 그 이념이 교육과정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어떻게 어긋나고 있는지를 짚었어야 했다. 자유와 자율의 가치가 학생들의 생활 습관에 실제로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살피고 문제점을 파악해 개선 방향을 제시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구호만 외치다 만 셈이다. 아동중심, 학생중심, 학습자 주도성 등등 대안교육 또는 진보교육이 지향하는 가치가 과연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제도교육처럼 규율을 강제하지 않고도 루틴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대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_현병호(민들레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