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풍향계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음식 상식(2)

민들레
2021-08-02
조회수 1370



소금을 둘러싼 오해와 진실

 

글루탐산나트륨은 없어도 사람이 살 수 있지만 나트륨은 반드시 섭취해야만 하는 물질이다. 저염식이 건강식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싱겁게 먹는 이들이 많지만 나트륨은 인체에 꼭 필요한 전해질로, 부족하면 여러 가지 이상 증세가 나타난다. 성인병 환자가 아닌 사람에게는 지나친 저염식이 오히려 더 위험하다고 말하는 의사들도 있다. 산양들은 암염을 햝아 먹기 위해 목숨을 걸고 깎아지른 벼랑을 타기도 한다. 생명체에 없어서는 안 되는 물질들은 다행히 지구상에 넉넉히 갖추어져 있다. 바닷물에 무한정 녹아 있는 소금이 옛날에는 화폐를 대신할 정도로 귀한 물건이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소금 제조법은 바닷물을 끓여서(煮) 만드는 것이다. 이를 자염(煮鹽) 또는 전오염(煎熬鹽)이라 하는데, 나트륨이 3% 정도 포함된 바닷물은 민물보다 끓는점이 높고 생산량도 얼마 되지 않아 제조단가가 상당히 높았다. 바닷물을 갯벌에서 자연 건조시켜 만드는 천일염은 대만식 제조법으로 일본을 거쳐 20세기 초에 국내에 들어왔는데, 자염에 비해 제조단가가 낮아 빠르게 확산되었다. 천일염이 자연식품으로 홍보되면서 정제염보다 더 좋은 소금으로 아는 이들이 많지만 사실은 다르다.

천일염이 정제염에 비해 미네랄 함량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불순물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천일염에 들어 있는 염화마그네슘이 쓴맛을 내기 때문에 오랜 기간 간수 빼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 과정에서 미네랄 성분도 거의 제거된다. 오래된 소금일수록 미네랄 함량이 낮고 3년 묵힌 천일염은 정제염과 별 차이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사실은 소금 자체가 염화나트륨이라는 미네랄이다). 우리 몸에 필요한 다양한 미네랄을 천일염을 통해 섭취하려면 하루에 소금을 1kg 이상 먹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천일염 한 숟가락에 들어있는 미네랄보다 방울토마토 하나에 들어 있는 미네랄이 훨씬 풍부하다. 온갖 다양한 먹거리를 먹고 있는 현대인들이 굳이 소금을 통해 다른 미네랄을 섭취할 필요는 없는 셈이다.

천일염이 식품으로 적절한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지만 진실을 덮기는 힘들다. 2007년 「염관리법」 개정 전까지 소금은 식품이 아니라 나트륨, 곧 광물로 취급되었는데, 사실상 공업용 재료 수준에서 관리되어온 셈이다. 식품으로 관리되는 지금도 소금의 불순물 허용치가 천일염의 경우 0.15% 미만으로 일본(0.01%)에 비해 거의 15배에 이른다. 음식 칼럼니스트 황교익이 천일염을 물에 녹여 개흙이 가라앉은 사진을 블로그에 올리면서 천일염 논쟁이 불붙었다.* 그는 천일염을 옹호하는 주장에 과학적 오류가 많다는 사실을 조목조목 짚는다.

우리나라 서해안은 대만이나 일본에 비해 천일염을 제조하기에 적절한 환경이 못 된다. 민물이 많이 유입되어 바닷물의 염도가 낮고 부족한 일조량 때문에 갯벌에 장판을 깔아 바닷물을 증발시키는 편법을 쓰기도 한다. 갯벌이 썩고 환경호르몬 문제가 제기되면서 장판 대신 타일로 대체되는 중이지만 안심할 수준은 아니다. 더욱이 한국과 중국의 공업화가 진행되면서 바닷물이 갈수록 오염되고 있는 상황이다. 정작 천일염 제조법의 원조인 대만에서는 위생 문제로 2001년부터 생산을 금지했는데, 한국의 경우는 이명박 정부 들어서 사양 산업이던 천일염 산업을 국고지원으로 되살렸다.

천일염의 대안으로 제시되는 정제염은 순수한 염화나트륨으로, 자염처럼 바닷물을 끓여서 증발시키는 제조 과정상 에너지가 많이 드는 단점이 있지만 가장 안전한 소금이다. 천연가스를 쓰는 중국산 정제염에 비해 국내의 경우 울산석유화학단지의 폐열을 활용하는 한주소금이 그나마 가격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편이다. 자염은 천일염보다 불순물이 적고 단맛의 여운이 있어 고급 요리에 쓰이나 그 맛은 실상 맛소금과 그리 다르지 않다(맛소금은 정제염에 MSG를 섞은 것이다). 최근 태안지역에서 전통적인 방법으로 자염을 생산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지만 상당히 비싼 점이 흠이다.

죽염은 『신약』의 저자 인산 김일훈 선생이 소개하면서 대중에게 알려진 소금인데, 아홉 번 구운 죽염은 민간요법에 관심이 많은 자연주의자들에게 만병통치약처럼 인식되기도 했다. 하지만 화학성분으로 보자면 염화나트륨에 약간의 미네랄과 대나무 잿가루가 조금 섞인 물질일 따름이다. 죽염에 미네랄 성분이 55가지나 들어 있다고 홍보하지만 천일염과 마찬가지로 미네랄을 굳이 죽염을 통해 섭취할 필요는 없는 일이다. 제조과정에 정성이 들어간 만큼 비싼 값을 받을 만도 하지만 효능을 과학적으로 검증하기는 힘들다.

죽염이 유행하기 시작한 1980년대 무렵은 우리 사회에서도 뉴에이지 바람이 한창 불 때였다. 1989년 한살림운동이 시작되면서 건강식 바람을 타고 죽염의 유명세도 덩달아 높아져 한동안 정제염 쓰는 사람들은 MSG나 백설탕을 쓰는 사람처럼 무식한 사람으로 비칠 정도였다.  건강 신드롬이 일면서 가히 ‘백색 공포증’이라 할 만큼 정제 식품에 대한 거부감이 팽배해졌지만, 백설탕과 함께 도매금으로 매도되곤 하는 정제염이 사실은 가장 안전하고 값싼 소금인 셈이다.

 

 GMO라는 뜨거운 감자

 

유전공학은 우리 삶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농산물만이 아니라 의약품에도 GMO 기술은 폭넓게 이용된다. 당뇨병 환자들에게 생명줄과 같은 인슐린은 현재 거의 유전자조작 미생물을 통해 생산된다. 돼지나 소의 췌장에서 추출한 인슐린에 비해 알레르기 같은 부작용도 없을 뿐더러 생산 단가가 낮아 많은 환자들을 살리는 데 기여하고 있다. GMO 의약품은 류머티즘, 백혈병 등에도 사용되며 B형 간염, 자궁경부암 등의 백신 제조에도 이용되고 있다.

GMO 농산물은 우회적으로 이미 우리 식탁을 점령하다시피 했다. 식량자급률이 10%에도 못 미치는 콩의 경우 수입 콩의 80%가 GMO 콩이다. 아직은 식용유나 간장처럼 한 단계 가공을 거쳐서 식탁에 오르고 있지만 손두부 같은 식품에도 중국산 GMO 콩이 쓰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동물 사료로 쓰이는 콩과 옥수수 대부분이 GMO 농산물인 만큼 우리 식탁은 GMO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

‘유전자가 조작된 유기체’를 뜻하는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에 거부감을 갖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자연스럽다. ‘조작’이라는 자연스럽지 못한 부정적인 뉘앙스가 담겨 있어 더욱 그럴 것이다. ‘유전자 변형’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지만, 조작이나 변형이나 어감이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유전자 변형은 자연에서도 끊임없이 일어나는 일이지만, 벌이나 나비가 하면 괜찮고 사람이 하면 왠지 자연스럽지 않은 일로 여겨진다.

자연에서 일어나는 유전자 변형에 비해 인간이 인위적으로 하는 변형은 단기간에 이루어지고 그 변형의 범위가 훨씬 넓은 점이 다르다면 다르다. 자연계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변형도 가능한 것이 유전공학의 힘이고, 이 힘이 언제나 긍정적인 결과만 낳지는 않을 것이다. GMO식품에 대한 우려는 이런 불안감에 근거하여 쉽게 대중 속으로 파고든다. 과학자들에 대한 신뢰가 깊지 못한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프랑켄슈타인을 만들어내듯이 과학자들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경계감이 대중들에게 있다.

하지만 오늘날 전 세계 과학자들은 네트워크를 이루고 복잡한 검증 시스템 안에서 서로의 성과를 점검한다. GMO식품에 대해 무작정 반대하고 의혹을 갖기보다 안전성을 과학적으로 검증하는 과정을 거치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이 합리적이다. 유전공학은 인류가 당면한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해가는 한 방편으로서 유력한 학문이자 기술이다. 그 부작용이 없지 않겠지만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인류가 진보하는 길일 것이다.

2016년에 노벨상 수상자 전체 생존자 중 1/3이 넘는 108명의 과학자들이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에 GMO 반대를 중단하도록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해 화제가 되었다. “지금까지 GMO가 인간이나 동물의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례는 한 번도 확인되지 않았다”고 하면서, 특히 “그린피스가 반대하는 ‘황금쌀’이 비타민A 결핍증으로 고통 받는 아프리카와 동남아 어린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황금쌀은 GMO벼 품종으로, 야맹증과 피부질환 예방에 좋은 비타민A 생성 물질인 베타카로틴을 많이 함유하고 있다.

GMO식품의 안전성에 대한 과학자들의 신뢰는 다른 조사에서도 드러난다. 2015년 퓨리서치센터가 《사이언스》지를 발간하는 미국과학진흥협회(AAAS) 회원들을 대상으로 여러 가지 과학적 질문을 했는데, 그 중 하나가 ‘GMO식품을 먹어도 안전한가’였다. 모든 분야의 과학자를 대상으로 했을 때 88%가 안전하다고 답했고, 관련 전공자인 생명과학자들은 91%가 안전하다는 데 동의했다. 위의 설문과 비슷한 응답 비율을 보인 질문이 ‘기후변화가 인간에 의해 일어났다고 보는가’와 ‘인간의 진화는 자연적으로 진행되었다고 보는가’인 것을 감안한다면 GMO의 안전성에 대한 과학계의 신뢰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과학자 일개인은 실수할 수도 있고 나쁜 의도를 갖고 있을 수도 있지만 전체 과학계는 현재 인류가 가장 신뢰할 만한 집단이다. 《랜싯》, 《사이언스》, 《네이처》 같은 세계적인 과학지들의 논문 검증 시스템은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때로 논문 조작 사건이 불거지기도 하지만 조작이 드러나는 데 그리 오랜 시일이 걸리지 않는 것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GMO의 유해성이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고 해서 안전하다고 확신하는 것은 섣부를 수 있다. 과학자들은 기본적으로 과학을 신뢰하고 낙관하는 경향이 있지만, GMO의 장기적 영향과 안전성에 대한 과학적 합의는 아직 없는 상태다. 장기적 안전성 실험은 개인이 하기엔 너무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고, 정부나 공공기관은 호의적이지 않으며, 제조 회사는 입증의 의무가 없기 때문에 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그린피스는 사전예방적 차원에서 실험실 밖에서의 GMO 사용을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GMO는 자연생태계에 한 번 노출되면 자동차를 리콜하듯 원상태로 되돌릴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 그린피스가 GMO를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다.

낮은 확률일지라도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재앙의 가능성을 막고자 하는 노력은 가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종교화한 생태주의에 경도되어 GMO 농산물을 덮어놓고 거부하는 것도 과학적인 태도는 아니다. GMO는 아직 뜨거운 감자다. 안심하고 먹기에는 이른 감이 있고, 신포도로 치부하고 포기하기엔 너무 탐스러운 포도인 셈이다. 반대론자는 굳이 GMO를 통하지 않고도 식량 문제나 건강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미 옥수수나 대두는 GMO의 영향력 속에 있다. 앞으로 나올 새로운 GMO 농산물들로 인류의 식량 문제나 건강 문제가 개선될 가능성 또한 열려 있다. 그 가능성과 위험성 사이에서 유연하고 지혜로운 대처가 필요할 것이다.


.......................................................

*  2015년 7월 23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서 황교익 인터뷰 이후 천일염 위생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어 그해 9월 4일 <SBS 스페셜> 주최로 소금 토론회가 열렸는데, 천일염 옹호론자들이 불참하는 바람에 싱겁게 끝나버렸다.

**  그린피스는 비타민A 결핍증은 다른 방법으로도 해결할 수 있고 필리핀에서는 실제로 많이 개선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이 주장을 반박한다.


_현병호(민들레 발행인)

0 0

서울시 성북구 동소문로 47-15, 1층

민들레출판사 T. 02-322-1603  F. 02-6008-4399

E. mindle1603@gmail.com

공간민들레 T, 02-322-1318  F. 02-6442-1318

E. mindle00@gmail.com

Copyright 1998 민들레 all rights reserved

이용약관             개인정보처리방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