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풍향계

서로에게 깃들고 물들기

민들레
2020-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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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율을 높이는 법

지난 12어수선한 시국에 어이없는 정책 하나가 끼어들어 많은 이들의 분노 게이지를 높였다전국 가임기 여성 분포도저출산을 해결하기 위한 행정자치부의 야심작이란다. 20~44세까지 가임기 여성 인구수에 따라 분홍색 선명도가 차등적으로 표시된 이 지도는 SNS에 공개되자마자 빈축을 샀고온라인 사이트 대한민국 출산지도는 쇄도하는 비난으로 하루 만에 폐쇄되었다국가 차원에서 출산을 장려하는 것이 고령화 사회를 걱정해서라지만어쩌면 한 가정 당 1.25명이라는 자녀수가 자식 낳아 기르기에 녹록지 않은 나라의 방증이란 걸 잘 알기 때문은 아닐까.

시대에 따라 출산정책에 대한 정부의 입장도 달라져왔다아이를 한 다스(연필도 아니고)씩 낳던 시대를 지나 1960년대까지만 해도 덮어놓고 낳다가 거지꼴 못 면한다더니, 70년대에는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고 외쳤더랬다. 90년대 들어서자 잘 키운 딸 하나열 아들 안 부럽다” 이런 구호들을 내걸었다(곧 한 집 건너 하나 낳자는 말이 나올 거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그렇게 산아제한 정책을 벌이던 정부가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출산율에 최근 내놓은 포스터 문구는 아빠혼자는 싫어요엄 마저도 동생을 갖고 싶어요.

국가가 나서서 남의 가족계획에 참견하지만 정작 낳고 나서 그 책임은 오롯이 부모에게 돌아오니많은 부부들이 이 나라에서 아이 가질 엄두를 내지 못한다낳으라고 권장은 하면서 아이를 함께 키울 만한 사회적 기반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굳이 장려하지 않아도 아이 키울 만하구나아이가 태어나 살 만한 세상이구나’ 싶으면 출산율은 저절로 높아진다결혼이 그렇듯 출산 또한 필수는 아닌 세상이지만외동을 둔 부부들 대부분은 키우기 힘들어서 그렇지 여건이 된다면 혼자보다 서로 의지도 되고형제자매가 함께 자라는 게 좋다고 입을 모은다.

아이 키우는 데 들어가는 교육비와 생활비도 문제지만, ‘이런 헬조선에 아이를 낳아서 어떻게 하나미세먼지는 어떡하고핵발전소는 어떡하고경쟁교육에 치이는 건 또 어떻고’ 같은 걱정들이 꼬리를 문다보육비 몇 푼 주다말다 할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그런 걱정을 해결 하는 것이 바로 저출산을 극복하는 길이다대대적인 출산장려금과 양육비 지원에도 출산율 증가에 실패한 사례는 일본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찾아볼 수 있다. 2008년 몇몇 학자들이 OECD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여러 나라의 공공지원이 출산율에 미치는 효과를 조사했는데각종 지원 중 가장 큰 효과를 보인 것은 무료 보육시설을 설립하는 사업이었다고 한다보육시설 설립에 국가가 GDP의 1퍼센트를 추가적으로 투자할 때마다 출산율은 0.13씩 증가했다전적으로 부모에게 쏠려 있는 양육 부담을 줄이고함께 키울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이다국공립 어린이집은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대기자 명단에 올려야 하고공동육아협동조합이든 품앗이육아든 숲놀이터든 대안적인 육아 방식을 고민하는 것도 온전히 부모의 몫으로 돌아오는 한국의 현실에선 더욱 그렇다.

국가 정책도 문제지만 맞벌이 부부가 늘었음에도 육아를 고려하지 않는 노동시장은 부모들에게 더 무거운 짐을 지우고 있다일하는 부부에게 필요한 탄력근무제재택근무 같은 제도에 대해 기업들은 우호적이지 않다육아휴직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퇴직 후 재취업이 어려운 것은 더 큰 부담이다왕년에 잘나가던 수많은 여성들이 경단녀(경력단절 여성)란 이름으로 출산과 육아 앞에 주저앉는다다른 이들이 성공과 자아실현의 탄탄대로를 달리는 중에 혼자만 도태되는 듯해 불안하다가도 엄마를 하늘처럼 믿고 쑥쑥 자라고 있는 아이를 보면힘들어하는 자신에게 죄책감을 느낀다.

부실한 사회제도 말고도 넘어야 할 산이 또 하나 있으니 함께 아이를 키우는 파트너남편이다맞벌이일지라도 육아와 가사노동은 많은 부분 여성에게 기울어 있다전업주부의 경우잠만 자고 나가는 하숙생 같은 남편은 없는 셈치고 혼자서 출퇴근도 없는 24시간 육아를 도맡아야 한다친정이나 시댁 찬스도 요원한 상황에선 그야말로 고립에 독박육아다예전보다 가사 일을 많이 분담하는 편이라지만 청소빨래요리처럼 일상적으로 챙겨야 하는 일을 아내의 잔소리 없이 알아서 척척 하는 남편은 그리 흔치 않다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데 마을은커녕맘 편히 아이 잠깐 맡길 이웃집 하나 없다사람들은 어느덧 사라진정다운 마을을 그리워한다.



함께 살기 위해 준비할 것

단언컨대이 드라마를 보지 않고선 공동체를 말할 수 없어.” 공동체를 지향하는 자들의 필수 영상교재라는 친구의 말에 휴가를 틈타 거금 4,900원을 들여 <응답하라 1988> 전편을 섭렵했다드라마가 끝나고 나서 친구가 그렇게 얘기한 이유를 알았다골목문화가 살아 있는 옛 동네는 많은 이들의 향수를 자극했다그러나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소박한 이웃들의 이야기였음에도 드라마는 역시 드라마일 뿐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시종일관 훈훈함으로 가득한 그 골목은 내가 경험한 마을과 너무 달랐다복권에 당첨된 졸부 정환이네는 가난한 이웃들과 아낌없이 나누고그들의 행운을 시기하거나 질투하는 사람은 없다누구도 아빠 없이 사는 선우네를 업신여기지 않으며 선우 엄마가 일을 나가면 어린 진주를 마을 사람들이 돌아가며 돌봐준다홀아비 택이 아빠는 요리에 서투르지만 이웃들의 온정으로 풍성한 밥상을 마주하며반지 하에 세 들어 사는 덕선이네 아빠는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해 퇴근길마다 검은 봉지를 들고 돌아온다.

어린 시절 내가 기억하는 동네에도 따뜻한 구석들이 오롯하나사람 사는 일이 늘 그렇지만은 않았다때로 아저씨들은 술 먹고 멱살을 잡았고삿대질하며 싸우기도 했다친구네 엄마가 아랫동네 아저씨와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가자 동네 아이들은 그런 친구를 놀렸다빌려준 돈 때문에 이웃끼리 칼부림이 나기도 했고동업을 하다 틀어져서 한 마을에 사는 형제끼리 얼굴을 안 보고 사는 일도 있었다담장이 낮아 이웃의 삶을 들여다보며 서로 돌보기도 했지만그래서 감추고 싶은 치부가 고스란히 드러나기도 하는 것이 내가 경험한 마을이었다이웃이란 서로의 궁색한 살림살이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이에서 가 능한 관계란 걸 깨달았다.

근대사회를 지나며 마을의 해체와 분절된 도시화를 경험한 후 곳곳에서 마을재생마을공동체마을학교마을 만들기 사업이 일고 있다현대인들이 복원하길 바라는 마을이 제각기 다른 그림이긴 하겠으나 서로 도와가며 사이좋게 지내는 마을’ 정도는 누구나 가진 이상 일 것이다그런데 사람들이 그토록 그리워하는 마을의 본질은 (칸칸이 문을 잠그는 아파트라 하더라도기본적으로 개방성에 있다사생활에 민감해진 현대인들이지만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서로를 내어 보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예전에 시골에서 살 때였다이웃들의 한결같은 보살핌 속에 소박하고도 풍요로웠지만그래서 감내해야 할 것들도 많았다폐쇄된 동네 안에서 정처 없이 떠도는 말들꼬리를 무는 소문들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것은 예삿일이었다도시에서 찾아온 친구를 마중하러 버스정류장에 서 있으면 동네 사람들의 눈이 주르르 따라오는 것이 느껴졌고그 버스에서 낯선 남자라도 한 명 내릴라치면 다음 날 슈퍼 아저씨는 능글맞게 웃으며 선생님곧 국수 먹겠어요!” 했다그런 부담스러운 시선 정도는 관심과 애정이라 생각하고 어색한 웃음으로 상황을 무마해야 했다.

마을에 살고 싶다며 시골로 이사를 간 후에도 이웃들과 고립되어 살아가는 이들을 종종 본다공간의 이동이나 재구성만으로 마을이 형성되기 어려운 것을 보면, ‘마을살이란 열려 있을 때 가능한 듯싶다공간의 개방이기도 하고 시간의 개방이기도 하다내 영역에 누군가가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고내가 그의 영역으로 들어가기를 망설이지 않는 것시간과 공간이 드나드는 과정을 거치며 사람들은 마음까지 열리고 서로 이웃이 된다민들레출판사에도 이따금 예고 없이 불쑥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지만늘 반갑다종종거리는 마감 때도 그들을 환대하는 시간이 아깝지 않은 이유는 성큼 찾아와준 것에 대한 고마움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기쁨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요즘 젊은 부모들 중에는 다른 사람이 아이에게 다가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신체적 접촉에 예민해서 낯선 이가 아이의 볼을 쓰다듬거나 손을 잡는 것도 그리 탐탁해하지 않는다그러나 고립육아를 넘어 아이를 누군가와 함께 돌보길 원한다면먼저 아이를 다른 이들과 공유할 준비가 되었는지 스스로 물어야 한다아이를 친정엄마에게 맡기고 직장에 다니는 친구는육아 방식에 차이가 있어 걱정이라면서도일절 엄마에게 그런 내색을 하지 않는단다. “그러려면 내가 혼자 키워야지” 했다엄마에게 믿고 맡겼으니 그 방식 또한 존중하겠다는 것이다. ‘관용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을 열린 마음은 마을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은 부모들이 꼭 갖추어야 할 요소일 것이다마을에 대한 환상을 걷어내고 그 번잡스러움까지 감내할 준비가 되어 있을 때 우리는 함께 살아갈 수 있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생활권이 넓어진 현대사회에서 마을이라는 공간적 개념을 새롭게 조명해볼 필요가 있다. ‘자연출산가족모임(자출가모)’이란 온라인 카페에서 만난 2015년 청양띠 아기 엄마들은 스스로를 자출면 청양리’ 주민이라 부른다전국에 흩어진 회원들이 일 년 에 백 번이 넘는 번개모임을 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다. ‘청양리는 독박육아에 시들어가던 엄마들이 스스로 뚫어낸 숨통으로새로운 마을을 상상케 한다두어 살 아기들을 데리고 어떻게 빈번히 전국구 모임을 하나 싶지만며칠을 기차에서 먹고 자며 달려야 하는 큰 나라를 여행하고 돌아와 보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오가는 일은 아주 쉽다그만큼 우리는 작은 나라에 살고 있고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만날 수 있는 거리에 있다열린 마음으로 관계망을 넓히면 물리적 공간을 넘어 다양한 네트워크로 훨씬 많은 이웃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작은 육아 모임이라 할지라도 민간의 힘으로 꾸려가기가 만만치 않으니(혼자 아이 키우는 것보다 더 힘들어지는 경우도 있다이럴 땐 지역의 기관이나 단체가 나서서 큰 얼개 역할만 해줘도 큰 힘이 된다청소년 교육시설인 하자센터에서 도시 속 육아를 위해 엄마 밥상을 만들거나 한살림에서 육아 사랑방을 운영하는 것도 믿을 만한 기관이 나서 서 육아 모임이 더 공신력 있게그리고 수월하게 만들어진 경우다최근 민들레 읽기 모임도 육아를 고민하는 엄마들이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데민들레가 비슷한 교육관을 가진 친구를 만나게 하는 매개가 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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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오프라인 전국 단위 육아 커뮤니티를 만들어가는 청양띠 엄마들의 소풍)


모두에게 좋은 마을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을 위해 특별한 마을을 만들어야 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아이가 살기 좋은 사회는 모두가 살기 좋은 사회다보호가 필요한 어린아이들은 다른 사회적 약자들도 포괄하기 때문이다유모차가 다니기 좋은 길은 휠체어가 다니기에도 좋고계단이 없는 저상 버스는 어린아이뿐만 아니라 노인들도 오르내리기 쉽다건강한 먹을거리가 있는 가게산책하기 좋은 공원안전한 골목길걸어서 갈 수 있는 도서관… 아이들이 살기에 좋은 마을은 누구에게든 좋은 삶의 공간이다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안전한 관계망도 그렇다좋은 이웃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필요한 법이니까좋은 이웃을 만나길 원한다면내가 먼저 누군가에게 믿을 만한 이웃이 되면 된다.

마하트마 간디가 내세운 마을의 세 가지 핵심 중 하나는 내가 서 있는 그 자리부터 시작하는 것이다모든 살아 있는 존재는 어딘가의 구성원이기에한 사람의 행동 하나가 전 세계에 이롭거나 해로운 영향을 미친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지만마을에서 살기 위해 먼저 필요한 것은 기꺼이 서로에게 깃들고 물들기를 바라는열린 마음이 아닐까.

 

장희숙 편집장 mindle160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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