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풍향계

혁신교육과 학력을 둘러싼 논란



이해찬 세대와 유토리 세대

 

“특기 하나만 있으면 대학 갈 수 있다.”

김대중 정부 초대 교육부장관이었던 이해찬이 대입제도를 개편하면서 내건 프로파간다다. 그리고 고등학교의 야간자율학습과 월말고사, 모의고사를 폐지하는 개혁을 단행했다. 이후 수능시험 난이도가 들쑥날쑥하면서 입시에 대혼란이 일어나고, 특출한 역량을 인정받은 소수의 특기생들만 혜택을 누리게 되면서, 대부분의 평범한 학생들에게는 ‘특기도 필요한’ 제도로 인식되어 스펙 경쟁이라는 새로운 부작용이 생겨났다.

부작용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강제적인 야간자율학습이 금지되고 체벌 가이드가 제시되면서 체벌이 만연하던 학교문화가 바뀌고 학생인권이 획기적으로 개선된 것은 이해찬 장관의 공이 크다. 야간자율학습이 사라지면서 특기적성교육이 강화되고, 학원만 다니던 아이들이 생활기록부에 적을 거리를 만들기 위해 봉사활동도 다니게 되었다. 그의 재직 기간이 2년이 안 됐고 대학입시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학생들은 3개 학년에 그쳤지만, 당시의 교육개혁이 지향한 방향은 이후로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자유학기제도를 신설한 박근혜 정부, 고교 평준화와 혁신학교를 확대한 문재인 정부의 교육정책도 그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지난 20여 년 동안 학교문화는 학생인권과 자율성을 존중하는 쪽으로 꾸준히 변화해왔다.

이해찬 세대와 비슷한 시기에 일본에서는 ‘유토리ゆとり 세대’가 등장했다.*  ‘여유 있는 교육’을 뜻하는 ‘유토리 교육’은 주입식 입시교육을 지양하고 자율성을 강조하며, 사고력과 표현력, 남을 위한 배려심을 기르는 것을 목표로 한 전인교육의 일본 버전이었다. 학습량을 줄이고자 교과 내용의 30%, 전체 수업 시간의 10%를 줄였다. 그 결과 학생들의 기초학력이 눈에 띄게 떨어지고, 자율성을 강조한 나머지 교사가 학생들을 적극적으로 지도하지 못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입시경쟁이 완화되고 사교육이 줄어들었지만, 다른 한편 학력 저하를 우려한 부모들이 공립학교를 기피하고 사립학교에 아이를 보내면서 교육 양극화가 심화되었다.

결국 일본 문부성은 10여 년 만에 유토리 교육의 실패를 인정하고 학력을 강화하는 교육으로 되돌아갔다.**  그 후 일본 사회에서 유토리 세대는 ‘교육을 제대로 못 받아 사회적응력이 떨어지는 세대’로 인식되면서, 기업들도 유토리 교육이 폐지된 2011년 이후 중등교육을 받은 세대나 사립학교 출신을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조직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신입사원들을 대상으로 ‘직장에서 혼나는 법’을 교육하는 곳들도 생겨났다. 한자를 잘 읽지 못하면 “유토리입니까?”라는 말을 듣게 되는 것이 다반사였다.

흔히 유토리 세대의 부정적인 면으로 꼽는 몇 가지가 있다. 힘든 일을 하지 않으려 한다, 권리에는 민감하지만 책임감은 약하다, 싫은 소리를 못 견딘다, 자기주장은 강한데 남의 말은 듣지 않는다, 문해력이 떨어진다 등이다. 한국의 ‘이해찬 세대’와 일본의 유토리 세대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상당히 달랐다. 이해찬 세대가 ‘성급한 교육개혁의 피해자’로 인식되는 데 반해 유토리 세대는 ‘공부 안 하고 놀다가 멍청해진 세대’로 인식되어 조롱의 대상이 되다시피 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단지 유토리 교육의 결과라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학교교육의 영향력이 그렇게 절대적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와 개인주의가 발달하면서 권리 의식이 높아지고, 형제자매 없이 부모의 과잉보호를 받으며 자란 ‘우쭈쭈’ 세대의 특징이 유토리 교육에 덧씌워진 측면도 없지 않다. 거기에다 학교에서 치열한 경쟁을 경험해본 적이 없고, 좋아하는 것만 하면서 힘든 과정을 극복해본 경험이 없다 보면 직장생활이 힘든 것은 당연하다. 『미움 받을 용기』 같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도 이런 사회적 배경 때문일 것이다.


*  유토리 세대를 구분하는 명확한 정의는 없다. 1970년대 후반부터 시범적으로 시행해오던 유토리 교육을 전국의 소학교와 중학교에 확대 시행한 것이 2002년이어서(고등학교는 2003년부터) 대체로 1987~1999년생을 일컫는 말로 쓰인다. 

**  탈 유토리 교육으로 전환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2003, 2006년도 PISA 순위가 연속 급락하여 한국보다 낮아지면서다. 일본에서는 이를 ‘PISA 쇼크’라 부른다. 2007년부터 탈 유토리 교육으로 방향을 바꿔, 초등학교는 2009년, 중등학교는 2010년부터 유토리 교육이 전면 폐지되었다. 


혁신교육이 성공하려면

 

한때 유토리 세대를 이해찬 세대와 비교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적절치 않다. 오히려 혁신교육 세대와 비교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2009년 김상곤 교육감이 쏘아올린 혁신학교 정책을 2010년 지방선거에서 대거 당선된 진보 교육감들이 전국으로 확대했다. 박근혜 정부 들어 자유학기제가 제도화되고 ‘꿈과 끼’를 강조하면서 대안학교의 전매특허품 같던 꿈이 공교육 현장으로도 널리 퍼져갔다. ‘경기꿈의학교’ 같은 장밋빛 프로젝트들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지난 10년 동안 펼쳐진 혁신교육이 유토리 교육처럼 중도 폐기되는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전인교육을 지향한 일본의 유토리 교육이 본격적으로 시행된 지 10여 년 만에 폐기된 반면, 비슷한 교육철학을 견지하고 있는 서구에서는 어떻게 지속될 수 있었을까? 국토에 비해 인구가 적고 개개인의 특성을 배려하는 문화적 토양이 있는 서구에 비해 인구가 밀집되고 집단주의 문화가 강한 일본의 현실에서 개인의 자율성에 기반한 비경쟁적인 교육을 전면적으로 시도한 것이 무리였다는 분석이 있다. 또한 서구에는 엘리트 교육의 전통이 있어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의 학습 강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어서 전반적인 학력 저하 현상이 나타나지 않아 학력을 둘러싼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는 점도 큰 차이다.

한국의 경우 이해찬 세대의 혼란이 짧게 끝나고, 자사고나 특목고 같은 학교들이 전반적인 학력 저하 현상을 막는 역할을 하면서 한동안 학력 논란을 비켜갈 수 있었다. 하지만 혁신학교가 늘어나면서 비슷한 논쟁이 불거지고 있다. 유토리 교육을 피해 사립학교로 아이를 보냈던 일본의 부모들처럼 혁신학교를 기피하는 학부모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초기에 혁신학교로 지정된 학교들은 저소득층이 많이 사는 지역의 학교여서 학습에 흥미를 잃은 아이들을 위한 혁신적인 교육이 효과를 발휘한 반면, 중산층 지역으로 확대되면서 학력 저하 논쟁이 불거지는 것은 예상되는 일이었다.

우리나라는 교육열이 높기로 유명하다. 인구밀도가 높으면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동아시아 국가들의 공통적인 현상이다. 싱가포르나 홍콩의 경우는 경쟁교육의 부작용을 감수하는 전략을 택했다고 볼 수 있다. 경쟁에서 밀려난 경우도 일자리를 얻는 데 어려움이 없어 청년실업 문제가 없다시피 했기에 가능한 전략이기도 했을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경우 수도권의 인구밀도가 싱가포르 못지않음에도 경쟁교육의 폐해를 줄이는 쪽으로 방향 전환을 한 것은 교육민주화에 대한 요구가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이해찬 장관의 교육개혁과 진보 교육감들의 혁신교육 정책은 전교조 교사들과 이른바 386세대 학부모 중심으로 일어난 교육민주화운동에 부응하는 정책이기도 했다.

일본사회가 학력 저하 문제를 달리 해결하면서 유토리 교육을 계속 밀어붙였더라면 더 민주적으로 발전했을까? 정보화 사회로 접어들어 산업 환경이 급격히 변하면서 일본사회에서도 유토리 세대에 대한 평가가 바뀌는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IT산업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분야에서는 장인 중심의 기업문화가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함을 깨닫게 되면서 유토리 세대에 대한 평가가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다. IT기업에서는 장인정신이나 상명하복과는 거리가 먼 유토리 세대의 자유분방함이 장점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2012년 이후 PISA 순위가 다시 높아지기 시작한 것이 유토리 교육의 효과가 서서히 나타난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학력 격차'의 원인  


학력 문제는 단기적인 결과만으로는 판단하기 힘들다. 또 환경이 바뀌면 학력의 의미도 달라진다. 혁신교육에 대한 평가 또한 신중할 필요가 있다. 편향된 이념을 가르치는 일부 교사로 인해 논란이 일어나고 학력이 떨어진다는 소문이 돌면서 혁신학교 지정을 반대하는 학부모 시위가 벌어지기도 하지만,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2018년에 발표한 「혁신학교 성과 분석」 보고서는 학력에 대한 다른 데이터를 보여준다. 초기에는 혁신학교 학생들의 성적이 일반학교 학생들보다 낮았으나 학년이 올라가면서 성장률이 더 높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연구 결과를 혁신학교 전반으로 일반화하기는 힘들며, 확산되고 있는 혁신학교 학력저하론을 방어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관점도 있다.*

삶과 교육을 연결하고자 하는 노력은 혁신교육과 더불어 오늘날 마을공동체교육으로 이어지고 있지만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삶의 교육’을 지향한다고 해서 학교가 아닌 마을에서 더 잘 배울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마을교육'을 하지 않으면 반쪽짜리 교육인 것처럼  여겨지는 풍조에 대해 전주 완산고등학교 교사 박제원은 이렇게 비판한다. 

“마을과 연계하지 않으면 학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근거 없는 미신이 교육과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미화되는 현실은 누구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 혁신학교든 아니든 학교는 학습의 중심지이며, 학교의 역량 역시 학습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그러지도 못하면서 주위를 자꾸 기웃거리게 되면 이도저도 아닌 것이 되고 만다.” **

몇 년 전부터 학력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기초학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학교가 문을 닫으면서 학력 격차가 더 커지고 있다는 보도도 심심찮게 나온다. 하지만 과연 지금의 학력 격차가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것인지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박제원의 주장은 새겨들을 만하다. 

"물이 가열하는 즉시 수증기가 되지는 않듯이 한국 교육에서 학력 격차가 폭발적으로 나타나기 수년 전부터 사전 징후와 경고가 이어졌었다. 그런데도 교육청을 중심으로 이를 무시하고 교육정책을 펼쳐왔고, 갑자기 코로나19 탓을 하는 것은 책임회피이지 진정한 반성이 아니다. 이를테면 학습은 기억인데 기억을 담순 암기로 몰아갔던 지난 수년 동안의 교육정책, 교사들이 사실적 지식을 비판적 사고와 대립하는 것처럼 이해했던 통념적 미신, 비판적 사고를 논리적 사고를 제외한 창의적 사고로만 받아들이는 편향적 해석, 학습에서 선결 과제인 학생들의 관심과 동기 유발을 재미로 해석한 교수학습의 오류 등 무수하게 많다. 무엇보다도 그동안 교육계 안팎에서 교사와 시민들이 교육청에 ‘학력 미달자 비율’이 심각하게 늘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하면 꼼꼼하게 사안을 들여다보고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경쟁교육을 하자는 거냐'고 몰아붙였던 의도적인 왜곡 등이 있었다." ***

지난 지방선거에서 국힘당 후보가 압도적으로 당선되었지만 교육감은 진보적 인사가 더 많이 당선되었다. 아직은 진보적 교육에 대한 학부모들의 기대가 높음을 말해준다. 하지만 혁신학교를 비롯해 진보적 교육 정책에 대한 논란이 확대될 가능성은 여전하다. 혁신교육이 진보 정치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학력'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  ‘혁신학교 성과 분석 보고서, 혁신학교 전체를 대변하나?’, 박제원, 에듀인뉴스, 2019.1.4.

**  '혁신학교가 혁신교육의 메카가 되려면', 박제원,《교육, 제4의 길》, 교육을바꾸는사람들, 2021.01.06.

***  '학력 격차는 코로나 팬데믹 탓이 아니다', 박제원,《교육, 제4의 길》, 교육을바꾸는사람들, 2020.10.07. 


_현병호(민들레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