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풍향계

부모 노릇, 교사 노릇이 점점 힘들어지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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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화와 함께 학생인권 의식이 강화되면서 고소·고발에 시달리는 교사들이 늘고 있다. 한 중학교 교사는 “조금만 목소리를 높여도 학생인권침해로 교육청에 민원을 넣겠다며 협박하는 학생들이 있다”고 하소연한다. 페이스북에 담임 욕설을 올린 한 고등학생은 교사의 훈계를 듣고 “인격적 모멸감을 받았다”는 이유로 담임을 아동학대로 고소했다. 수업 시간에 떠드는 학생을 나무랐다가 아동복지법 위반으로 고소당하기도 한다.

요즘 중고등학교 교사들은 소송에 휘말릴까봐 담임을 맡지 않으려 한다. 학생주임도 기피 대상이다. 학교폭력을 방관한 교사는 형사입건 될 수 있는 데다 피해학생 측이 교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하는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교사들의 학생지도에 대해 학생이나 학부모가 ‘정서적 아동학대’로 고소·고발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교사들은 학생지도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려고 한다. 소송에 대비해 보험을 드는 교사들도 꾸준히 늘고 있다.(동부화재가 1999년에 내놓은 ‘참스승배상책임보험’의 계약 건수는 꾸준히 늘고 있다. 한국교직원공제회에서 만든 THE-K손해보험도 2016년에 ‘교직원법률비용보험’ 상품을 내놓았다.)

훈육과 학대의 경계는 애매하다. 약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선진 사회일수록 아동학대에 대한 경각심이 높고, 당국과 시민이 합심하여 아동학대를 감시하다 보니 사소한 일에서도 학대 요소를 찾게 되면서 육아나 교육 자체가 위험한 일처럼 여겨지기에 이르렀다. 부모 역할에 자신감을 잃고 아이에게 상처를 줄까 봐 훈육을 망설이는 부모들이 적지 않다. 교사들은 학생지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한다. 지난 십여 년 사이에 교사들의 직업 만족도는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문명사회일수록 각종 위험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하다 보니 오히려 사소한 위험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다. 옛날 같으면 대수롭지 않게 여길 상처에도 병원을 찾는다. 개인의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일수록 사소한 일에서도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느끼는 이들이 늘어나는 것도 비슷한 원리다. 교육환경이 개선되었음에도 학교생활을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늘어난다. 군대도 옛날에 비해 병영 여건과 인권이 눈에 띄게 개선되었지만 군 생활을 힘들어하는 젊은이들은 점점 많아진다.

역사적으로 현대 문명국가처럼 약자에 대한 선의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제도가 존재한 적이 없다. 이는 생산력이 받쳐주기에 가능한 일이다. 아동중심주의는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에서 채택 가능한 이데올로기다. 한국 사회처럼 국민소득이 높으면서 입시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는 이중적인 양상이 나타난다. 아이가 어릴 때는 아동중심이었다가 입시경쟁이 시작되는 시기에 접어들면 아이를 다잡기 시작하는 것이다. 학대에 가깝게 학습노동을 강요하지만 공부만 잘하면 다른 모든 것을 눈감아주는 분위기에서 아이들은 제대로 성숙하지 못한다. 아이의 작은 신호에도 귀를 기울이고 변덕을 다 받아주다 보면 자기중심적인 아이가 되기 십상이다. 많은 부모들이 아동중심과 입시중심 사이에서 헤매면서 양육과 교육에 어려움을 겪는다.

아이를 잘 키우려 애쓰는 일은 좋은 일이지만 좋은 의도가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낳지는 않는다. 인류학적 관점에서 다양한 문화권의 육아 문화를 연구하는 러바인 교수는 좋은 부모가 못 될까봐 전전긍긍하는 미국의 부모들에게 너무 긴장하거나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고 충고한다. 부모의 말과 행동이 아이의 정신건강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지 않을뿐더러 아이들에게는 회복탄력성이 있다면서. 호된 꾸지람을 듣는다고 해서 아이들이 쉽게 좌절하거나 트라우마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애정에 근거한 훈육은 아이들에게 쓴 약이 될 때가 많다. 아이에게 상처를 줄까 봐 강박증에 시달리는 부모들에게 러바인은 너무 ‘쫄지’ 말라고, 릴랙스 하라고 권한다.(로버트 러바인 · 세라 러바인, 안준희 옮김, 『부모는 중요하지 않다』, 눌민, 2022년.)

미국을 비롯한 서구의 부모들은 매사에 아이들에게 선택권을 줌으로써 아이들과 협상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한국 사회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아이들에게 군림하지도 휘둘리지도 않는 부모가 되기란 쉽지 않다. 아동중심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과 아이들을 존중하는 것은 다르다. 아동중심이 아니라 아동을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하는 양육 문화, 교육 문화를 만들어가야 할 시점이다. 방정환의 호 ‘소파(小波)’에는 ‘잔잔한 물결처럼 천천히 어린이에 대한 인식을 바꾸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어린이들에게도 존댓말을 했던 그가 백여 년 전에 뿌린 씨앗을 가꾸고 돌봐야 할 때다.


*  2022년 스승의날을 앞두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교원 843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교직생활에 만족한다는 응답은 33.5%에 그쳤다. 2006년 67.8%에 비해 절반 이상 떨어진 셈이다.


_현병호(민들레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