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원 처리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민원은 ‘사인(私人)이 행정기관에 행정처분 등 특정한 행위를 요구하는 것’이다. 국가가 민원 제도를 두고 있는 것은 공권력의 사각지대에서 피해를 입는 국민을 구제하기 위해서다. 모든 제도에 부작용이 따르듯이, 개인의 이익을 위해 민원 제도를 악용하는 이들이 있다. 민원 노이로제에 시달리는 공무원들은 민원인을 설득하기보다 그들의 청원을 들어주고 만다. 그리고 그 피해는 시민들에게 돌아간다.
간판이 가린다고 가로수 가지를 잘라 달라는 가게 주인들처럼 공공의 이익은 생각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은 시민이 아니다. 주민과 시민의 경계 지점이다. 시민의 관점에서 공공의 이익을 먼저 생각한다면 쉽사리 그런 민원을 넣기 어렵다. 민원제일주의를 타파하는 길은 사익을 앞세우는 민원인들에게 공무원들이 휘둘리지 않는 것도 필요하지만, 주민들의 시민의식을 높이는 것이 관건이다. 교육의 역할이다.
공교육의 역할은 시민을 기르는 것이다. 시민교육의 핵심은 교양을 기르는 데 있다. 교양은 자신과 사회의 관계를 읽고 소통할 줄 아는 능력이다. 부분을 전체와의 관계 속에서 볼 줄 아는 것, 다른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할 줄 아는 것이다. 시민은 가로수 한 그루가 어떤 사회적 맥락 속에 존재하는지 아는 사람이다. 가짜뉴스가 판치는 이유는 우리 사회 전반의 교양 수준이 낮기 때문이다. 교양 있는 시민은 자신 또는 그가 속한 작은 집단의 이해관계를 넘어서 전체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판단할 줄 안다.
민원 폭주 현상은 민주화의 부작용이기도 하다.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것이 궁극적인 해결책이겠지만 합리적인 시스템을 갖추는 것도 필요하다. 자본주의의 프로파간다가 ‘고객이 왕’이라고 해서 민주주의가 ‘민원인을 왕처럼’ 모셔야 하는 것은 아니다. 민원제일주의가 민주주의는 아니다. 유권자에게 약한 선출직 공무원들의 약점이 일선 공무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 민주주의의 약점이다. 이 약점을 악용하는 악성 민원인들을 제어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민주주의의 건강성을 지키는 길이다.
“결국 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 실수도 할 수 있고 좀 불편할 수도 있다. 이런 일에 매번 본인의 바닥을 확인해볼 필요가 있을까. 좀 다정한 세상에서 살고 싶다.”* 자신의 아이가 민원인처럼 되지 않도록 키우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한 민원 담당자의 고백이다. “존재의 의미를 민원에서 찾는 것 같은 민원인이 있다. 사실 존재에 무슨 큰 의미가 있겠나. 그냥 저 인간도 존재하기 위해 저러는가 보다 하고 이해를 시도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담당자의 고충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다행히 대부분의 공공기관은 공식적인 민원 처리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기업도 전화로 고객을 상대하는 감정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를 갖추기 위해 노력한다. 전화를 거는 이의 양식에 호소하는 멘트도 그런 노력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대표적인 공공기관인 학교에는 학부모와 학생들의 불만을 공식적으로 접수하고 응답하는 시스템이 없다. 그렇다 보니 다짜고짜 교무실로 들이닥쳐 교사의 멱살을 잡거나 머리채 잡는 학부모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학교폭력 사건의 가해자 학부모가 적반하장으로 민원을 제기하는 경우도 흔하다. 자녀를 잘못 키운 부모가 오히려 교사에게 화풀이하는 셈이다. 지역 교육청과 도교육청에까지 민원을 넣어 교사를 곤경에 빠트리기도 한다. 교사가 잘못 처리한 경우도 없진 않겠지만, 아이의 일방적인 말만 듣고 교사를 공격하는 부모들도 있다. 시스템이 없으니 감정이 앞서게 되고, 학부모 개인 대 교사 개인의 대결로 치닫게 된다.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병가를 내는 교사들도 적지 않다.
전교조 서울지부 교권상담실에서는 학교장을 마지막 중재자로 남겨두고 교감을 책임자로 한 민원 창구 개설을 제안한다. 학교 홈페이지에 전자정부 신문고 같은 민원 창구를 상시 개설해 누구나 문제를 제기할 수 있게 하고 제기된 민원에는 적어도 2주 내에 책임지고 답변하는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이다. 학교가 학생의 인권을 침해해온 오랜 흑역사의 반작용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공공 영역인 교육 현장이 악성 민원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장치를 하루빨리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 10년차 직장인이라는 기묘염 브런치 ‘어우, 안녕하십니까. 고객님_민원에도 정도가 있다면’ 가운데.
** 서울시교육청은 악성 민원으로 인한 과도한 감정노동과 정서적 피해에 대응하고자 2018년 1월 '악성 민원 대응 매뉴얼'을 만들어 일선 초·중·고등학교와 산하기관에 배포했다.
_현병호(민들레 발행인)
「민원 처리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민원은 ‘사인(私人)이 행정기관에 행정처분 등 특정한 행위를 요구하는 것’이다. 국가가 민원 제도를 두고 있는 것은 공권력의 사각지대에서 피해를 입는 국민을 구제하기 위해서다. 모든 제도에 부작용이 따르듯이, 개인의 이익을 위해 민원 제도를 악용하는 이들이 있다. 민원 노이로제에 시달리는 공무원들은 민원인을 설득하기보다 그들의 청원을 들어주고 만다. 그리고 그 피해는 시민들에게 돌아간다.
간판이 가린다고 가로수 가지를 잘라 달라는 가게 주인들처럼 공공의 이익은 생각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은 시민이 아니다. 주민과 시민의 경계 지점이다. 시민의 관점에서 공공의 이익을 먼저 생각한다면 쉽사리 그런 민원을 넣기 어렵다. 민원제일주의를 타파하는 길은 사익을 앞세우는 민원인들에게 공무원들이 휘둘리지 않는 것도 필요하지만, 주민들의 시민의식을 높이는 것이 관건이다. 교육의 역할이다.
공교육의 역할은 시민을 기르는 것이다. 시민교육의 핵심은 교양을 기르는 데 있다. 교양은 자신과 사회의 관계를 읽고 소통할 줄 아는 능력이다. 부분을 전체와의 관계 속에서 볼 줄 아는 것, 다른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할 줄 아는 것이다. 시민은 가로수 한 그루가 어떤 사회적 맥락 속에 존재하는지 아는 사람이다. 가짜뉴스가 판치는 이유는 우리 사회 전반의 교양 수준이 낮기 때문이다. 교양 있는 시민은 자신 또는 그가 속한 작은 집단의 이해관계를 넘어서 전체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판단할 줄 안다.
민원 폭주 현상은 민주화의 부작용이기도 하다.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것이 궁극적인 해결책이겠지만 합리적인 시스템을 갖추는 것도 필요하다. 자본주의의 프로파간다가 ‘고객이 왕’이라고 해서 민주주의가 ‘민원인을 왕처럼’ 모셔야 하는 것은 아니다. 민원제일주의가 민주주의는 아니다. 유권자에게 약한 선출직 공무원들의 약점이 일선 공무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 민주주의의 약점이다. 이 약점을 악용하는 악성 민원인들을 제어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민주주의의 건강성을 지키는 길이다.
“결국 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 실수도 할 수 있고 좀 불편할 수도 있다. 이런 일에 매번 본인의 바닥을 확인해볼 필요가 있을까. 좀 다정한 세상에서 살고 싶다.”* 자신의 아이가 민원인처럼 되지 않도록 키우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한 민원 담당자의 고백이다. “존재의 의미를 민원에서 찾는 것 같은 민원인이 있다. 사실 존재에 무슨 큰 의미가 있겠나. 그냥 저 인간도 존재하기 위해 저러는가 보다 하고 이해를 시도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담당자의 고충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다행히 대부분의 공공기관은 공식적인 민원 처리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기업도 전화로 고객을 상대하는 감정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를 갖추기 위해 노력한다. 전화를 거는 이의 양식에 호소하는 멘트도 그런 노력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대표적인 공공기관인 학교에는 학부모와 학생들의 불만을 공식적으로 접수하고 응답하는 시스템이 없다. 그렇다 보니 다짜고짜 교무실로 들이닥쳐 교사의 멱살을 잡거나 머리채 잡는 학부모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학교폭력 사건의 가해자 학부모가 적반하장으로 민원을 제기하는 경우도 흔하다. 자녀를 잘못 키운 부모가 오히려 교사에게 화풀이하는 셈이다. 지역 교육청과 도교육청에까지 민원을 넣어 교사를 곤경에 빠트리기도 한다. 교사가 잘못 처리한 경우도 없진 않겠지만, 아이의 일방적인 말만 듣고 교사를 공격하는 부모들도 있다. 시스템이 없으니 감정이 앞서게 되고, 학부모 개인 대 교사 개인의 대결로 치닫게 된다.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병가를 내는 교사들도 적지 않다.
전교조 서울지부 교권상담실에서는 학교장을 마지막 중재자로 남겨두고 교감을 책임자로 한 민원 창구 개설을 제안한다. 학교 홈페이지에 전자정부 신문고 같은 민원 창구를 상시 개설해 누구나 문제를 제기할 수 있게 하고 제기된 민원에는 적어도 2주 내에 책임지고 답변하는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이다. 학교가 학생의 인권을 침해해온 오랜 흑역사의 반작용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공공 영역인 교육 현장이 악성 민원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장치를 하루빨리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 10년차 직장인이라는 기묘염 브런치 ‘어우, 안녕하십니까. 고객님_민원에도 정도가 있다면’ 가운데.
** 서울시교육청은 악성 민원으로 인한 과도한 감정노동과 정서적 피해에 대응하고자 2018년 1월 '악성 민원 대응 매뉴얼'을 만들어 일선 초·중·고등학교와 산하기관에 배포했다.
_현병호(민들레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