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풍향계

먹거리보다 중요한 것



오늘날 젊은 부모들은 아이들의 먹거리에 각별히 신경을 쓴다. 아토피 같은 질환을 앓는 아이들의 경우 먹거리는 특히 중요하다. 맛 이전에 아이의 건강이 우선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을 어른은 별로 없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유기농 식품 아니면 먹이지 않는 부모들도 있지만, 아이들은 맛없는 음식을 몸에 좋다는 명분만으로 먹지는 않는다. 이념에 사로잡힌 어른들의 바람일 뿐이다.

유감스럽게도 유기농 음식은 대체로 맛이 없는 걸로 알려져 있다. 유기농 가공식품의 경우 설탕이나 식품첨가제를 거의 쓰지 않다 보니 자극적인 맛을 내기 어렵다. 하지만 제대로 기른 유기농 채소나 과일로 만든 음식이 맛이 없다면 조리 솜씨가 없어서가 아닐까. 아이들이 대체로 시금치를 싫어하는 까닭은 맛없는 시금치를 맛없게 조리하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한겨울 노지에서 자란 시금치와 하우스에서 사시사철 자라는 시금치는 맛이 아주 다르다. 뽀빠이가 우람한 팔을 치켜들어 통조림 시금치를 한입에 털어넣으며 유혹해도 아이들 입맛을 속일 수는 없는 일이다.

옛사람들이 들으면 배부른 소리라고 타박할 일이겠지만, 맛은 중요하다. 햇반이 인기를 끄는 것은 편리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밥맛이 좋기 때문이다. 웬만한 식당밥보다 맛있다. 쌀 품종과 도정에서 밥 짓는 공정까지 표준화되어 있어 일정한 맛을 보장한다. 아이들이 밥을 잘 안 먹는다고 걱정하기 전에 밥부터 잘 짓고 볼 일이다. 적어도 학교 급식 만큼은 햇반 수준의 밥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아이들이 밥맛을 알게 되면 밥을 더 좋아하게 될 것이다. 반찬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밥이 맛있어야 한다. 제대로 지은 오곡밥은 밥만 먹어도 만족스럽다. 

교육 방송에서 아이들의 건강과 먹거리를 주제로 한 프로그램에서 생태주의를 표방하는 어린이집을 소개한 뒤 그 어린이집을 다니는 아이와 엄마의 일상생활 한 장면을 보여주었다. 유기농 채소로 만든 나물 반찬을 아이에게 먹이기 위해 애쓰는 그 엄마는 “한 입만 먹어봐, 그거 사줄게” 하면서 어린 아들을 구슬렀다. 아이는 한 입 받아먹더니 뒤돌아서서 방을 한 바퀴 돌고는 음식을 방바닥에 퉤퉤 뱉었다. 엄마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방바닥을 훔치면서 이렇게 말했다. “참고 기다려야죠.”

밥이 귀하던 시절에는 상상할 수 없는 풍경이다. 먹을 것을 구하느라 애먹는 사회는 많아도 아이에게 밥을 먹이느라 애먹는 사회는 흔치 않다. 사실 밥투정하는 아이는 부모의 약점을 알고 권력을 행사하는 재미에 맛을 들인 것이다.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셈이다. 음식은 단순히 몸의 건강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무엇을 먹는가보다 더 중요한 가치들이 있다.

편식도 따지고 보면 무엇을 먹느냐 하는 문제다. 인간이 워낙 잡식성 동물이기에, 아주 편중되지만 않는다면 편식으로 인한 영양 불균형 문제는 그다지 걱정할 일이 아니다. 대나무만 먹고 사는 팬더처럼 대부분의 동물들은 편식을 한다. 잡식동물이 오히려 예외적인 종이다. 먹거리의 안전과 균형에 신경 쓰는 반만큼이라도 먹거리를 둘러싼 환경과 밥상 문화, 급식 문화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작고하신 권정생 선생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한번은 안동 시내에 가서 볼일을 보다가 한살림 매장에서 유기농 배추를 한 포기 사들고 집으로 오는데, 동네 가게 앞에 놓여 있는 배추를 보고서 당신 손이 부끄러워 어쩔 줄 몰랐다는 이야기다. 몸에 좋은 것보다 동네 채소가게 주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그 마음이 진정한 생태적 감수성이 아닐까. 선생을 평생 괴롭혔던 몸의 병이 그러한 감수성을 길러주었는지도 모른다.

문명 사회에 불고 있는 웰니스wellness 신드롬을 비판적으로 고찰한 《건강 신드롬》저자들은 현대인들이 올바르게 먹는 것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건강식품 중독이라는 새로운 장애를 갖기에 이르렀다면서, 오늘날에는 음식이 이데올로기가 되었다고 말한다.(3) 더 이상 종교인이나 정치인을 믿지 못하게 된 현대인들이 인생의 중요한 물음에 대한 해답을 스타 셰프와 영양학자에게서 찾게 되었다는 것이다.

“유기농 식품과 더 나은 다이어트 방법을 찾고, 의무감으로 운동을 하고, 자기계발을 위해 하루하루를 마치 게임하듯이 사는” 것이 곧 ‘좋은 삶’은 아닐 것이다. 이런 웰니스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 길은 무엇일까. “우리의 몸을 잠시 잊고, 행복 좇기를 멈추고, 우리의 인격이 건강하고 행복해질 잠재력으로만 규정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어떨까?” 가능성보다 오히려 ‘무력함’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든다는 저자의 통찰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우리는 어떤 면으로든 늘 부족함이 있기 마련이며, 인생에서 중요한 것들 대부분은 실패와 고통이 따르기 때문에 그만큼 가치가 있는 것이다. 아름다움은 슬픔에 젖어 있을 때가 허다하고, 진실은 종종 우리를 괴롭게 만든다. 사랑은 늘 우리 가슴을 찢어놓는다. 이렇듯 인생의 중요한 가치들은 고통을 수반하지만, 그 가치를 포기하고 싶을 만큼 큰 고통은 아니다.” _ 앙드레 스파이서, 칼 세데르스트룀, 《건강 신드롬》, 229쪽


 _현병호(민들레 발행인) 

* 이 글은 <스켑틱> 27호에 실린 '유기농 다시 보기'의 일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