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풍향계

우리는 저마다 고유한 별이다

민들레
2020-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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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화된 국민 인생

『꽃들에게 희망을』줄무늬 애벌레 한 마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7080세대라면 다들 한 번쯤 봤을 법한 그림책이다대입 준비에 여념이 없던 수험생 시절 우연히 맞닥뜨린 이 책을 통해 애벌레의 삶과 다른 삶이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닫게 되면서 꼭대기를 향해 기어오르던 동력을 잃고 말았다.

하지만 봉우리를 향해 무작정 기어오르는 무리를 거슬러 내려갈 만큼 허탈함과 깨우침이 뚜렷했던 것이 아니어서회의 속에서 오르던 길을 계속 기어올라가 결국 이십대를 헤매게 되었다. ‘이 길이 아닌가’ 싶었을 때 잠시 멈춰 서서 주위를 돌아보고 자신을 성찰할 수 있었더라면 이십대를 덜 헤맸을 것이다하지만 죽어라 기어올라가는 친구들을 보면서 혼자 여유를 갖기란 어려운 노릇이었다.

이십대 후반뒤늦게 지난 삶을 복기해보기 시작했다어디서 길을 잘못 들어섰을까희미한 기억의 끄나풀을 붙들고서 무의식 속에 잠겨 있던 기억들을 하나둘 끄집어내어 햇볕에 비춰보았다국민학교 2학년 산수 시간선생님에게 처음으로 손바닥을 맞고서 시험 점수에 연연하기 시작했었다. 3학년 때는 받아쓰기 시험을 보고 실수로 틀린 한 문제를 짝꿍 몰래 답을 고쳤다근데 몇 해가 지난 뒤에도 그 친구네 집 앞을 지나칠 때면 늘 찜찜했었던 기억친구들이 경쟁 상대로 보였던 어느 날의 교실 풍경도 선명하게 떠올랐다.

표준말을 배우면서 적지 않게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것도 새삼 깨달았다. <표준전과>와 <표준수련장>으로 사투리를 구별하는 수련을 하면서번번이 다음 중 표준말이 아닌 것은을 묻는 시험문제를 풀면서 은연중에 자신이 쓰는 경상도 사투리를 부끄러워하게 되었다. 3학년 즈음부터 이미 모범생이 되어 있어 더욱 그랬을 것이다부모가 쓰는 말자기 할매 할배가 쓰는 말을 부끄러워하는 것은 사실상 자기 존재의 기반을 부정하는 일이다.

자신이 쓰고 있는 모국어가 사실은 모어(母語)가 아닌 국어(國語)’라는 걸 깨닫고서 나의 뿌리가 얼마나 부실한가를 통감하게 되었다근대 학교교육이 해온 일이 이처럼 뿌리 뽑힌 모범시민을 기르는 일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말과 자신이 겉도는 느낌의 뿌리를 보게 된 것은 큰 깨달음이었다글이 말보다 편한 이상증세의 원인도 거기에 있음을 눈치 챌 수 있었다글은 처음부터 표준말로 익혔던 것이다. ‘모어를 부정하지 않아도 되었던 셈이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던가언어의 자존감을 잃은 아이는 존재의 자존감을 지키기도 어려웠다그나마 범생이들은 시골뜨기의 무너지는 자존감을 성적으로나마 지탱할 수 있었지만시험공부가 힘든 아이들은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자기 자신을 부정하면서 자란 아이가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하기란 힘든 일이다아이들이 자기답게 자랄 수 있도록 돕는 일이 교육의 본래 모습이라면표준화는 그와 정반대로 가는 길인 셈이다조국 근대화를 위해 표준화된 국민으로 양성된 시골뜨기 모범생이 자기를 찾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침은 집에서 묵고’ 점심은 학교에서 먹으면서’ 십 년이 넘도록 하루도 빠짐없이 학교를 다니며 마침내 표준말을 자유롭게 구사하는 국민이 된 끝에 길을 잃었으니누구를 원망할 것인가박정희국민교육헌장 맨 아래 박혀 있던 그 이름 석 자는헌장을 외우지 못해 손바닥을 맞아야 했던 아이들에게는 원망의 대상이었을지 모르지만 좌뇌가 발달한 모범생들에게는 성웅 이순신과 맞먹는 이름이었다뒤늦게 사회과학 물을 맛보면서 이 모든 것이 적어도 내 탓이 아님을 위안으로 삼을 수 있었지만그 위안이 길을 찾아주는 것은 아니었다경쟁에 유리한 조건 덕분에 줄기찬 노력으로 새 역사를 창조하기에 이르렀지만 결국 대학 졸업장도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다.


 

신호등 안 지키기 훈련을 하자?

표준 신장에 미달한 적이 없었던 신체 조건과 비교적 발달한 좌뇌 덕분에 학교생활이 그다지 힘들지는 않았지만여러 가지 정서적인 결함들이 생겨났다어느 샌가공부 못하는 친구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밥맛없는’ 범생이가 되어 있었다공감 능력은 자라지 못하고우월감과 열등감이 서로 경쟁하듯 자라났다줄이 삐딱하면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운동장에서 조례 때마다 훈련한 앞으로 나란히에 그 뿌리가 닿아 있음을 자각하게 되었다자신이 있을 자리를 스스로 찾지 못하고앞사람의 앞사람 뒤꼭지가 보이지 않는 곳에 서야만 마음이 편해지는 모범생의 슬픈 자화상이 거기 있었다.

5학년 때 반장이 되어서는 교사의 꼬봉’ 노릇을 했던 것도 슬픈 경험이었다교실에서는 책상 줄을 맞추느라운동장에서는 친구들을 똑바르게 줄 세우느라 노심초사했던 범생이 반장은 어느덧 줄 노이로제에 걸려 있었다. ‘줄 잘 서는’ 것이 처세술의 으뜸임을 가르치려 한 것일까불행히도 그 처세술은 배우지 못하고 강박증만 생겼으니이 또한 슬픈 일이다.

모범생이 자라면 모범시민이 될까아마도 그럴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하지만 모범시민이 곧 민주시민은 아니다공동체의 정의와 행복을 위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줄 아는 시민을 민주시민이라 정의한다면학교에서 정답과 매뉴얼대로 따르는 데 익숙해진 모범생이 민주시민이 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살아가면서 맞닥뜨리게 되는 수많은 난관들은 유감스럽게도 한결같이 정답이 없거나 여러 개인 문제들이다정답이 두 개만 되어도 난리가 나는 시험 공부에 익숙한 범생이들이 이런 삶의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매뉴얼이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현명하게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성숙한 시민의 자질일 것이다.

신호등 안 지키기를 훈련할 필요가 있다는 흥미로운 주장을 하는 인류학자가 있다국가의 통제와 관리에 맞서 자신들의 삶을 지켜온 동남아 농민들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제임스 스콧은 『우리는 모두 아나키스트다』라는 책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힘을 일상에서 기르자고 말한다.

독일에서 차도 다니지 않고 지켜보는 이도 없는 곳에서 꿋꿋이 신호등을 지키는 모범시민들을 보면서합리적이지 않은 법규에 순응하지 말고 스스로 판단하는 훈련을 일상에서 할 필요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규칙을 내면화하여 바깥에서 주어진 규칙에 아무 생각 없이 순응하는 모범시민들이 나치즘이 횡행할 수 있는 토양이 되었다는 본 회퍼의 분석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중소도시나 시골에서는 불필요한 곳에 세워진 신호등을 종종 보게 된다노란색 점멸등만으로도 충분한 한적한 사거리에 신호등이 서 있는 경우도 많다업자와의 유착이 의심되기도 한다합리적이지 않은 규칙에 아무 생각 없이 따르기보다 스스로 적절히 판단해서 행동하는 훈련그 책임 또한 스스로 감당할 마음의 준비를 하면서 불합리한 규칙을 어기는 훈련을 일상에서 하는 것이 오히려 사회의 건강성을 지키는 민주시민의 자질을 키우는 길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언젠가 정의의 이름으로 중요한 법을 어기라는 요청을 받게 될 때를 대비해 아나키스트식 유연체조를 날마다 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공동체 법규를 위반하는 훈련을 날마다 하는 것도 어떤 면에서는 위험한 일이다법규를 위반하지 않으면서 그때그때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훈련을 할 수 있는신호등 없는 거리를 만드는 것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신호등이 없으면 사람들은 스스로 더 주의하게 되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면서 적절하게 처신하는 법을 터득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서구에서는 그런 실험을 하는 도시들이 점점 늘고 있기도 하다.(『민들레』 통권 50, ‘자유와 교육’ 참조)

학교는 어떤 면에서 그런 훈련을 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적어도 중등과정의 교육 현장은 신호등이 늘어선 도로가 아니라 신호등 없는 도로’ 같은 곳이어야 하지 않을까시시콜콜한 규칙들과 신호등에 맞춰 처신하기만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환경은 아이들의 성장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온갖 규칙과 금지로 가득한 학교한 가지만 어겨도 범칙금 스티커가 날아오는 학교에서 과연 아이들이 자율적인 어른으로 자라날 수 있을까파란불이 아니면 결코 길을 건너지 않는정답과 매뉴얼에 익숙한 모범생을 길러내는 것이 교육의 본래 역할은 아니라고 믿는다.


 

어른스러움의 본질

어른스러움이란 무엇일까. ‘-스러움은 어떤 존재 상태를 규정하는 것처럼 여겨지지만그 상태는 순간순간 변한다자연은 흐르는 강물처럼 끊임없이 변화하지만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그 자연스러움의 본질을 잃지 않는다그러나 인간은 다르다언제든 인간다움을 잃어버릴 수 있다인간의 역사는 인간다움을 잃은 사람과 잃지 않기 위해 애쓰는 사람의 갈등의 역사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이 갈등은 인류 차원에서도 일어나지만 한 개인 차원에서도 일어난다우리는 언제나 시험대에 올라 있는 존재다인간다움과 마찬가지로 어른스러움이란 것 또한 고정된 자질이 아니라 순간순간 획득해야 하는 어떤 것이다어른스럽지 못한 행태로 뉴스거리가 되는 어르신들을 보면 어른다운 어른이 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두 집만 나면 완생(完生)이 보장되는 바둑판과 달리 세상살이에서 완생이 보장된 돌은 없다강남에 아파트를 두 채 넘게 가진 사람일지라도 미생(未生처지이긴 마찬가지다세상살이에서 조금 더 안정을 보장받을 수는 있겠지만실족의 위험은 한 걸음 한 걸음마다 발밑에 놓여 있다부와 권력을 다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다르지 않다요즘 우리는 그들이 날마다 실족하는 모습을 지켜보느라 지치고 있지 않은가부와 권세라는 두 칸 집을 차지하고서 이제는 안전하다고 마음을 놓을 때가 실족의 가능성이 가장 높은지도 모른다.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난감한 상황에서 적절하게 행동할 줄 아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라는 우치다의 말에 공감한다물론 성숙한 사람이라 해서 늘 적절하게 처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다만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이 좀더 높을 따름이다성인(聖人)은 그 가능성이 거의 현실성에 이른 사람을 일컫는 말일 것이다매 순간 갈림길에 서서 인간다움을 잃지 않을 수 있다면 된 인간이라 할 수 있겠다물론 다 된 인간은 아니다그 또한 언제 덜 된 인간이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인간의 길은 그래서 어렵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인간에게는 자유의 가능성이 열린다갈등 상황에서 자신의 입장을 정하는 경험을 하면서그리고 그 결과를 스스로 책임지는 경험을 하면서 아이는 조금씩 어른으로 자란다몇 해 전 공간민들레 아이들이 일본의 산촌유학센터 초청을 받아 바닷가의 한 청소년수련원에서 묵을 때 있었던 일이다아침이 되자 수련원에 든 모든 청소년들이 운동장에 모여 국민의례를 했는데민들레 아이들은 참여하지 않고 실내에 있었다우리를 초청한 단체 대표가 난감한 표정으로 찾아와 수련원 측에서 태극기도 같이 계양하니까 국민의례에 참여했으면 한다면서 의논을 해왔다길잡이 교사들과 아이들은 회의를 열어 어떻게 할지 토론했다군국주의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었고 자신들을 초청해준 단체 사람들을 배려하자는 의견도 있었다토론 결과각자가 알아서 자기 입장을 정하기로 했다이튿날 아침어떤 아이들은 운동장에 나가고어떤 아이들은 실내에 그냥 있었다여행을 마치고 평가하는 자리에서 한 아이가 말했다그렇게 자기 입장을 스스로 정해본 경험을 한 것이 가장 좋았다고흔들리지 않고 꿋꿋이 자리를 지킬지누군가를 배려해 한 걸음 뒤로 물러날지 스스로 결정해야 했던 그 상황이 아이들에게는 커다란 배움의 기회였을 것이다.

교사나 어른들은 아이들 앞에서 흔히 교통경찰 노릇을 하려 든다신호등만으로는 안심이 안 되는지 사거리에 서서 쉴 새 없이 수신호를 보낸다아이들은 보지도 않는데때로는 범칙금 스티커라는 비장의 카드를 꺼내들기도 하지만그게 아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한다신호등도 교통경찰도 없는 거리에서 스스로 판단해서 자기 길을 정해보는 경험을 허용해야 한다. (정치)교육의 핵심도 여기 있을 것이다아이들이 진정 성숙한 시민으로어른으로 자라기를 바란다면 좌회전 신호등만 있다거나 우회전 신호등만 있는 거리를 문제 삼을 것이 아니라신호등 자체를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길 없는 길을 걷는 것이 삶이다누구나 스스로 길을 찾아가야 한다뻥 뚫린 탄탄대로를 가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내면의 세계에서는 길 없는 들판을 걷고 있는 게 아닐까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별이라도 밤하늘에서 발견할 수 있으면 운이 좋은 게다여기저기서 깜박거리는 신호등이 아니라 밤하늘의 별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 아이들을 만나는 어른들의 역할일 것이다어떤 별을 보고 어떻게 방향을 잡을지 결정하는 것은 아이들의 몫이다그리하여 그들 또한 자라서 별이 된다별들의 세계에는 표준이 없다모든 별들은 고유한 별들이다.     


현병호 발행인 mindle160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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