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풍향계

돌봄과 자람의 순환 고리

민들레
2020-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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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돌보는 일

자잘하고 훈훈한 일보다는 큼직하고 자극적인 사건을 보도하는 뉴스의 특성 때문에 그렇겠지만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소식 중에는 초등학생들이 친구를 잔인한 수법으로 왕따시켰다거나길고양이를 20층 아파트에서 떨어뜨렸다거나 하는 이야기들이 있다비단 초등학생들만의 문제는 아닐진대 반사회적인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사람들은 인성교육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몇 해 전부터 공감능력을 키우기 위한 생태교육이 새삼 부각되고 있다혁신학교를 비롯한 공교육에서도 텃밭을 가꾸는 농사교육이 확대되고 있고텃밭을 갖추기 어려운 학교에서는 자기 이름을 적은 화분이라도 하나씩 두고 식물을 심어보게 하고 있다대부분의 대안학교에서도 설립 초기부터 농사를 무척 중요한 교육철학으로 여기고 있어서 여러 형태의 농사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대안학교에서는 생명교육에서 한발 더 나아가 스스로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자립의 의미도 커서풀무농업기술고등학교나 변산공동체학교처럼 아예 농사를 교육과정의 중심에 놓는 학교도 있고농사 교과를 전담하는 교사를 따로 두고 있는 학교도 여러 곳이다.

위험한 먹거리가 많고모든 것이 상품화 되는 시대에 스스로 먹을 것을 길러본다는 측면에서도 농사교육은 의미가 있다딸기가 커다란 나무에서 열리는 줄 아는 요즘 아이들만이 아니라크고 화려하고 매끈한 농산물을 고급상품으로 취급하는 어른들 또한 그 과정이 생략된분절적 사고를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생태 감수성이나 자립의 의미가 아니어도 꾸준한 농사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은 아주 많다돈만 지불하면 필요한 물건이 하루 만에 총알배송되어 눈앞에 나타나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기다림이란 낯선 경험이다다그친다고 서둘러 올라오지 않는 당근 싹을 보며때가 되어야 고개를 숙이는 벼를 보며 아이들은 지난한 과정을 기다리고 견디는 연습을 할 것이다이 일련의 과정들이 차곡차곡 쌓여 삶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적어도 요행이나 일확천금을 바라는 한탕주의’ 어른으로 자라지는 않을 듯싶다.

그런데 가만 보면 농사가 (공교육이든 대안교육이든교육과정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은 어쩐지 영 자연스럽지 못한 일이다생명을 돌보는 일이란 정해진 시간대로 움직일 수가 없기에 더욱 그렇다언제든 대상이 나를 필요로 할 때 곁을 지키는 그것이 돌봄이다퇴근 시간이 되었다고 어린이집 교사가 우는 아이를 딱 내려놓고 냉정히 돌아설 수는 없는 일이며내일이면 장마가 시작되는데 농사 수업 시간이 끝났다고 감자 캐던 호미를 집어던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의도는 좋지만 분절적인 교육과정 속에 책임지지 못하는 생태교육의 사례가 너무 많다방학이 되면 돌볼 사람 없는 교실의 화분들이 죽어나가기 일쑤고학교 텃밭에는 버림받은 농작물들이 울창한 잡초에 가려진 채 슬피 울고 있는 걸 자주 볼 수 있다심지어 우리에 가둬 키우던 동물이 굶어죽기도 한다생명을 돌보는 일은 일주일에 한 번하루에 몇 시간 이렇게 딱딱 정해진 시간으로는 어렵다대상이 나를 필요로 할 때 즉시 달려가며 아이들은 자신을 내려놓는 경험을 하고그로 인해 상대가 살아나는 경험을 할 것이다그리고 그렇게 열과 성을 다했어도 긴 기다림의 시간 끝에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결과도 있다는 걸 온몸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이런 것은 시간을 정해놓은 제도화된 프로그램으로는 도저히 배울 수 없는 깊은 깨달음이기도 하다.

 


공감능력과 거울뉴런

학교 없이도 풍요로웠던 과거 민중의 삶을 주목했던 이반 일리치는 학습의 제도화 기구로서의 학교를 부정한 대표적 인물이다. 1967미국과 남미 개발도상국들의 교육을 면밀히 비교연구해 교육제도가 비대해질수록 사회 전체는 지적으로 퇴보한다는 결론에 이른 일리치는 학교를 안 다니면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는 고정관념을 넘어서길 촉구하며 탈학교 사회(deschooling society)를 선언했는데, ‘돌봄에 대한 개념도 이 같은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돌봄이 인간에게 소중한 가치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제도적 복지’ 시스템이 되는 순간 본질이 달라진다는 것이다오가는 자 누구에게나 문을 열어주고잠자리를 내어주던 초기 기독교인들의 자발적 돌봄 문화가 교회의 자선 사업으로 제도화 되면서 그 의미가 퇴색된 것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자선 제도가 확대될수록 개인의 품성은 모든 이들이 일상에서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기를 원했던 예수의 가르침과 점점 멀어지는 현상이 일어나고 만 것이다.

적대관계에 있던죽어가는 유대인을 조건 없이 살려낸 사마리아인의 정신은 교육과 복지뿐 아니라 중요한 모든 가치들을 제도화하려는 이 사회에 중요한 메시지를 던져준다그가 유대인을 치료하고 보살펴준 동기는 오직아픔에 떨고 있는 생명을 보며 자기의 마음도 편치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타인의 불행 앞에선 자신의 행복이 완전해질 수 없음을 알아차리는 것고통 받는 생명체를 보면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저릿해지는 그게 생명에 대한 감수성 아닐까원수일지라도 일단 살리고’ 보는 사마리아인의 그 마음은 인간이 인간다움을 되찾는 순간이다인간성을 상실한 이 사회에는 각종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한 게 아니라 전적으로 자유에 맡겨진 서로의 돌봄이 필요한 건 아닐까 싶다그런 돌봄의 마음은 어떻게 생겨나는 걸까.

인간의 공감 능력이 어떻게 생겨나는지 알아낸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한다. 1996이탈리아 신경심리학자 리촐라티 교수는 공감능력의 핵심이라는 거울뉴런을 발견했다원숭이의 동작과 뇌의 활동을 연구하던 중 한 원숭이가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는데도 움직임과 관련된 뇌세 포즉 뉴런들이 활발히 활동하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다른 원숭이들의 행동을 지켜보고만 있어도 마치 자신이 그 행동을 하거나 느끼고 있는 것처럼 동일한 활동을 하는 그 뉴런이 바로 공감능력을 좌우한다는 거울 뉴런이다. “DNA 발견 이후 최고의 발견이라고까지 말하는 거울뉴런 덕분에 인간은 드라마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고어려운 이를 보면 당장에 달려가’ 돕고 싶은 마음을 가지며또한 간접 경험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는 것이다.

특히인간의 뇌에 있는 거울뉴런들은 타인의 의도가 반영되어 있는 행동을 볼 때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다고 한다그러니 어린아이들은 가까이 있는 어른들의 의도 섞인 행동들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모방을 통해 순식간에 많은 것을 배운다아이들이 타인의 말이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할 때는뇌 안에서 거울뉴런들이 열심히 활동하는 중이다그런 맥락에서 보면 일상적으로 주변의 사람사물자연을 자세히 살피는 것은 공감능력을 기르는 거울뉴런을 작동시키기에 아주 좋은 방법이다.

 


생존경쟁이 아니라 상호부조

도시화 속에 자연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아이들을 시골로자연으로 데리고 나가는 변화는 반가운 일이지만일상에서도 생명 감수성을 기르는 일은 가능하다가장 쉽게는 아이와 함께 천천히’ 골목길을 걷는 것이다.

윤석중의 동시에 그림을 붙인 『넉 점 반』이라는 그림책에는 집집마다 시계가 없던 시절점방에 가서 몇 시인지 보고 오라는 엄마의 심부름에 혼자 집을 나서는 단발머리 계집아이가 등장한다점방 할아버지에게 넉 점 반(네 시 반)이란다” 하는 말을 듣고는 잊지 않으려고 넉 점 반넉 점 반 되뇌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물 먹는 닭을 지켜보다가줄지어 가는 개미떼를 들여다보다가잠자리를 따라가고 분꽃을 따서 입에 물고 놀다가해가 꼴딱 져서야 집에 들어서며 엄마에게 시방 넉 점 반이래!” 하고 외치는 사랑스러운 장면으로 끝나는 이 그림책은 긴 여운을 남긴다.

부모는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온갖 좋은 데를 데리고 (끌고다니지만 사실 아이들은 어디서든 놀잇거리를 스스로 찾아낼 줄 아는 힘이 있어서 그곳이 어디든충분히 주변을 살피고 관찰할 시간을 주면 마냥 즐겁다제주도에 가족여행을 갔던 친구가 털어놓은 이야기다아이에게 새로운 걸 보여주고 싶어서 돌고래쇼 관람권을 끊어놨는데주차장에서 개미를 들여다보는 데 정신이 팔린 세 살배기 아들은 입장시간 이되어서도 들어가길 거부하더란다살살 달래다가 마음이 급해진 친구는 결국 여기까지 와서 개미야!” 하고 소리를 지르고남편은 여기까지 와서 애한테 큰소리야!” 하면서 결국 부부싸움으로 치닫고야 말았다는 새드 엔딩 스토리는좋은 것을 보여주고 싶은 어른의 욕심과 좋아하는 것을 스스로 찾아내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특성이 충돌하는 예를 잘 보여준다.

다행히도 아이들 안에는 생명에 대한 감수성이 포슬포슬하게 살아 있어서삭막한 도시 환경에서도 어른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곧잘 찾아낸다한 톨의 흙도 남기지 않으려는 듯 시멘트로 덮어버린 빌딩 숲아스팔트 속에서도 발밑의 개미전깃줄에 앉아 있는 까치쓰레기통 뒤로 슬금슬금 숨어다니는 길고양이를 용케 알아보고는 반가워한다아파트 화단에 쪼그리고 앉아 죽은 사마귀를 개미들이 끌고 가는 걸 지켜보느라 학원 버스를 놓치기도 하고똥냄새가 난다며 코를 움켜쥐고서도 인도에 떨어진 가로수 은행알을 나뭇가지로 굴러본다.

어찌 보면생명과 교감하기 위해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장소가 아니라 시간이다빨리 따라오라고 손을 낚아채지 않고 그 속도대로 기다려주기만 해도 아이들은 골목에서공원에서놀이터에서 스스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며 거울뉴런을 작동해 공감능력을 기를 것이다집에서 강아지나 고양이햄스터를 기르고 싶다고 졸라대는 아이들의 심성에는 어린 것들을 애틋하게 여기는 돌봄의 본능이 숨어 있는 것일 텐데그런 아이들이 왜 중학생만 되어도 귀여운 동물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고컴퓨터나 스마트폰 같은 기계에 목을 맬까봄날 새싹같은 그 여린 감수성은 다 어디로 간 걸까.

모든 생물은 생존을 위해 서로 경쟁한다는 다윈의 이론과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러시아의 아나키스트 크로포트킨은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시베리아와 만주 일대를 탐험하며 자료를 수집했는데미지의 땅에서 동물의 세계를 탐험하며 그가 눈으로 확인한 것은 치열하고 냉정한 생존경쟁이 아니라 서로 돕고 의지하는 상호부조였다고 한다그는 곤충과 조류포유류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명체는 종의 경계까지 넘어 서로 도우며 혹독한 시련을 극복해왔다는 사실을 증명해냈다체온을 지켜주기 위해 서로의 목에 꼬리를 감는 티티원숭이처럼동료는 물론 목이 마르거나 배고픈 적군 개미에게까지 자신이 먹은 것을 게워주는 개미처럼눈먼 새를 위해 48킬로 떨어진 곳에서 먹이를 물어다 나르는 사다새처럼생명이란 것은 인드라의 구슬처럼 다 연결되어 있어서 함께 공명을 느끼며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안학교 교사로 있을 때초등학교에서 왕따를 당해 입학할 때부터 모자를 푹 눌러쓰고 사람 눈을 피하던 아이가 있었다세상에 대한 불신을 상징하는 저 모자를 벗는 것이 과제구나 싶어서 특별히 마음을 쓰며 이런저런 시도를 했지만 쉽지 않았다그런데 그 아이가 처음으로 먼저 말을 걸어온 것은 입학 후 첫여름텃밭에서 기른 방울토마토 몇 개를 수확했을 때다멀리서 달려와 양손에 담긴 빨간 토마토를 들이밀며 이것 보세요!” 할 때아이는 눈을 마주치며 웃었다우와좋겠네 하며 머리를 쓰다듬는 내 손길도 피하지 않았다환한 아이의 표정에 저 아래서부터 기쁨이 물결치면서 선생인 나도 못한 일을 토마토네가 해냈구나’ 하고 속으로 감탄을 했다토마토가 언제 익을까 날마다 밭으로 향하며 아이는 그동안의 외로웠던 시간을 위로받았을 것이다밭에서 토마토를 보살피며토마토도 아이를 돌본 셈이다.

돌봄은 그렇게 서로 일어난다일 년 동안 정성껏 가꾸었는데 왜 과실을 적게 맺었느냐고 사과나무에 눈을 흘기는 농부는 없다그런데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하면서 원망을 늘어놓는 이유는 뭘까부모인 내가 아이를 키웠다고’ 대단한 착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생명은 누군가가 키우는 게 아니라서로 돌보고 보살피며 스스로 자라는 것일 텐데 말이다


장희숙 『민들레』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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