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랙'은 '길'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 교육은 교사와 교과서 중심의 교육 관행과 학습자 중심의 삶의 교육이 충돌하면서 혼란을 겪고 있는 중이다. 공교육은 정체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지난 20여 년 동안 다양한 교육실험을 해온 대안교육운동에 자극을 받으면서 나름 꾸준히 변화를 시도해오고 있다. 2025년부터 시행될 고교학점제와 진로연계학기 같은 제도의 변화는 표준화 교육을 넘어 개별화 교육으로 나아가기 위한 것이다. 시행착오가 따르겠지만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지혜로운 정책 운용이 필요하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맞는 맞춤 교육을 구현하는 것이 공교육이 나아갈 방향임은 분명하다. 떨어지는 출산율을 걱정하기 전에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아이들이 자신의 가능성을 꽃피울 수 있게 돕는 것이 더 먼저다. 수많은 아이들을 좌절시키는 교육환경을 놔둔 채 출산율만 높여서 어쩌자는 말인가. 취업 경쟁이 심화되고 양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조기교육과 선행학습에 내몰리고 있다. 경쟁에서 뒤처진 아이들은 일찌감치 배움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운 좋게 대학에 들어간 청년들도 방황하는 경우가 흔하다. 휴학하고 어학연수를 떠나거나 다시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입시를 준비하는 대학생들이 적지 않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백수로 지내거나 조금이라도 스펙을 높이기 위해 대학원을 다니는 청년들도 부지기수다. 대학이 취업훈련소가 된 지는 오래지만 그마저도 제 기능을 못하는 실정이다. 정해진 트랙만 달려온 이들에게 길 찾기를 도와줄 수 있는 교육이 절실한 시대다. ‘트랙’은 길이 아니다. 경주마를 위한 트랙이 아니라 자신이 걷고 싶은 길을 걷게 하자.
진로교육을 우리는 흔히 ‘길 찾기’ 교육이라 한다. 진로교육의 ‘진로’는 대개 ‘직업’을 가리킨다. 하지만 십대 시절에 진로를 찾기란 쉽지 않다. 수많은 이십대들도 헤매고 있고, 취업을 하고서도 방황하는 이들이 부지기수인 것이 현실이다. 십대 시절에는 구체적인 직업이 아니라 큰 방향을 가늠할 수 있어야 한다. 무슨 일을 할지보다 어떻게 살 것인지를 먼저 생각할 시기다. 인생관 또는 가치관이 어느 정도 서기만 해도 나침반 하나는 갖춘 셈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정해진 트랙을 달리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일 수 있다.
인서울 대학에 줄서기 위해 정해진 트랙을 달리면서 자신을 돌아보기란 쉽지 않다. 갭이어 또는 전환기교육이 필요한 이유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사이에, 또는 고등학교 졸업 후 일 년 정도 갭이어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틈새를 여는 제도적 노력이 필요하다. 덴마크에서는 백 년 전부터 이런 제도를 시행하고 있고, 아일랜드를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비슷한 시도를 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최근 하버드를 비롯한 여러 대학이 갭이어 제도를 도입해 학생들을 지원하면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기도 하다.
우리나라에도 전환기교육을 시도하는 현장이 몇 곳 있지만 학생 모집이 쉽지 않은 실정이다. 대학에 목매지 않는 소수의 학생들과 부모들만 관심을 보일 뿐이다. 전환기교육이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하려면 대학 제도가 바뀌어야 할 것이다. 학력차별을 금지하는 사회제도도 필요하다. 그와 함께 개별화 교육으로 전환하는 교육개혁을 병행해나갈 때 십대와 이십대에게 숨통이 열리고, 공교육도 제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일자리는 줄어들고 평균수명은 점점 늘어나는 시대에 원하는 이들은 누구나 대학에 진학해 교양을 습득할 수 있게 대학 무상교육을 진지하게 검토해볼 시점이다. 이를 청년에게 주는 기본소득 개념으로 볼 수도 있다. 유럽의 많은 나라들은 이미 시행하고 있는 정책이다. 등록금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 월 100만 원 정도의 생활비까지 지원한다. 그럼에도 대학 진학률이 50%를 넘지 않는다. 굳이 대학을 가지 않고도 원하는 직업을 얻고 대졸자 수준의 보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과 일본에서도 대학 무상교육 논의가 시작되었다.
대선 정국에 희망을 갖게 하는 교육 공약이 보이지 않는다. ‘정시 확대’ 같은 구태의연한 공약은 교육철학도 국정운영의 철학도 없음을 말해줄 따름이다. ‘소확행’ 같은 공약이 아니라 국가의 앞날을 내다보는 공약이 필요하다. 대학 서열화 폐지와 무상교육은 이십대뿐만 아니라 십대들의 삶의 질을 바꿔놓을 것이다. 학력차별을 금지하고, 대학 서열화를 폐지하면서 대학 무상교육을 실시하는 획기적인 비전이 필요한 시대다.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면서 국민을 설득하는 지도자를 보고 싶다.
_현병호(민들레 발행인)
'트랙'은 '길'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 교육은 교사와 교과서 중심의 교육 관행과 학습자 중심의 삶의 교육이 충돌하면서 혼란을 겪고 있는 중이다. 공교육은 정체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지난 20여 년 동안 다양한 교육실험을 해온 대안교육운동에 자극을 받으면서 나름 꾸준히 변화를 시도해오고 있다. 2025년부터 시행될 고교학점제와 진로연계학기 같은 제도의 변화는 표준화 교육을 넘어 개별화 교육으로 나아가기 위한 것이다. 시행착오가 따르겠지만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지혜로운 정책 운용이 필요하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맞는 맞춤 교육을 구현하는 것이 공교육이 나아갈 방향임은 분명하다. 떨어지는 출산율을 걱정하기 전에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아이들이 자신의 가능성을 꽃피울 수 있게 돕는 것이 더 먼저다. 수많은 아이들을 좌절시키는 교육환경을 놔둔 채 출산율만 높여서 어쩌자는 말인가. 취업 경쟁이 심화되고 양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조기교육과 선행학습에 내몰리고 있다. 경쟁에서 뒤처진 아이들은 일찌감치 배움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운 좋게 대학에 들어간 청년들도 방황하는 경우가 흔하다. 휴학하고 어학연수를 떠나거나 다시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입시를 준비하는 대학생들이 적지 않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백수로 지내거나 조금이라도 스펙을 높이기 위해 대학원을 다니는 청년들도 부지기수다. 대학이 취업훈련소가 된 지는 오래지만 그마저도 제 기능을 못하는 실정이다. 정해진 트랙만 달려온 이들에게 길 찾기를 도와줄 수 있는 교육이 절실한 시대다. ‘트랙’은 길이 아니다. 경주마를 위한 트랙이 아니라 자신이 걷고 싶은 길을 걷게 하자.
진로교육을 우리는 흔히 ‘길 찾기’ 교육이라 한다. 진로교육의 ‘진로’는 대개 ‘직업’을 가리킨다. 하지만 십대 시절에 진로를 찾기란 쉽지 않다. 수많은 이십대들도 헤매고 있고, 취업을 하고서도 방황하는 이들이 부지기수인 것이 현실이다. 십대 시절에는 구체적인 직업이 아니라 큰 방향을 가늠할 수 있어야 한다. 무슨 일을 할지보다 어떻게 살 것인지를 먼저 생각할 시기다. 인생관 또는 가치관이 어느 정도 서기만 해도 나침반 하나는 갖춘 셈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정해진 트랙을 달리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일 수 있다.
인서울 대학에 줄서기 위해 정해진 트랙을 달리면서 자신을 돌아보기란 쉽지 않다. 갭이어 또는 전환기교육이 필요한 이유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사이에, 또는 고등학교 졸업 후 일 년 정도 갭이어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틈새를 여는 제도적 노력이 필요하다. 덴마크에서는 백 년 전부터 이런 제도를 시행하고 있고, 아일랜드를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비슷한 시도를 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최근 하버드를 비롯한 여러 대학이 갭이어 제도를 도입해 학생들을 지원하면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기도 하다.
우리나라에도 전환기교육을 시도하는 현장이 몇 곳 있지만 학생 모집이 쉽지 않은 실정이다. 대학에 목매지 않는 소수의 학생들과 부모들만 관심을 보일 뿐이다. 전환기교육이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하려면 대학 제도가 바뀌어야 할 것이다. 학력차별을 금지하는 사회제도도 필요하다. 그와 함께 개별화 교육으로 전환하는 교육개혁을 병행해나갈 때 십대와 이십대에게 숨통이 열리고, 공교육도 제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일자리는 줄어들고 평균수명은 점점 늘어나는 시대에 원하는 이들은 누구나 대학에 진학해 교양을 습득할 수 있게 대학 무상교육을 진지하게 검토해볼 시점이다. 이를 청년에게 주는 기본소득 개념으로 볼 수도 있다. 유럽의 많은 나라들은 이미 시행하고 있는 정책이다. 등록금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 월 100만 원 정도의 생활비까지 지원한다. 그럼에도 대학 진학률이 50%를 넘지 않는다. 굳이 대학을 가지 않고도 원하는 직업을 얻고 대졸자 수준의 보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과 일본에서도 대학 무상교육 논의가 시작되었다.
대선 정국에 희망을 갖게 하는 교육 공약이 보이지 않는다. ‘정시 확대’ 같은 구태의연한 공약은 교육철학도 국정운영의 철학도 없음을 말해줄 따름이다. ‘소확행’ 같은 공약이 아니라 국가의 앞날을 내다보는 공약이 필요하다. 대학 서열화 폐지와 무상교육은 이십대뿐만 아니라 십대들의 삶의 질을 바꿔놓을 것이다. 학력차별을 금지하고, 대학 서열화를 폐지하면서 대학 무상교육을 실시하는 획기적인 비전이 필요한 시대다.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면서 국민을 설득하는 지도자를 보고 싶다.
_현병호(민들레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