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풍향계

대학 무상교육을 둘러싼 논란


'대학'이라는 뜨거운 감자

 

21세기 들어 정부가 논문 편수로 대학의 역량을 평가하면서 대학의 연구 역량이 질적으로 현저히 떨어졌다. 이태 전 ‘대학을 떠나며’라는 칼럼으로 우리 사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 조형근 전 교수는 황폐해진 대학 문화와 지식 생산 체계에 회의를 느끼고 자신이 사는 동네에 연구소를 열고 동네서점을 근거지로 삼아 시민의 교양을 높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세상이 급격히 변하면서 대학의 사회적 기능을 대신하는 다양한 움직임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대학 바깥에 다양한 학습공동체들이 생겨나고 있고 대안 대학이라 자처하는 배움터도 있지만 대학의 위상을 흔들기에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턱없이 부족하다. 대학을 통하지 않고도 지성을 연마할 수 있는 길은 앞으로 점점 넓어지겠지만 그럼에도 학문의 세계에 진입하려면 현재로서는 대학을 통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대학을 정점으로 한 학교체제는 21세기에도 쉽게 허물어지지 않을 것이다. 세계적 규모의 집단지성을 통한 지식생산은 미래에도 대학의 고유한 기능일 것이다.

대학 졸업장을 우려먹는 사회는 빠르게 저물고 있으나 학벌사회의 꼬리는 생각보다 길게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인맥이나 인간관계라는 것이 그렇게 간단히 정리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학벌로 구축된 기성세대가 은퇴하면서 서서히 그 연결고리들이 약화되어갈 것이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사회에 대한 신념과 실력으로 무장한 게릴라들이 학벌의 균열을 가속시키겠지만, 또 끊임없이 등장하는 기회주의자들이 그 균열을 땜질할 것이다.

고단한 인생살이에 기댈 만한 학벌이라도 있으면 살기가 훨씬 수월해질 거라는 믿음의 뿌리는 깊다. 우리 사회에서 이는 단순히 ‘믿습니다!’ 하는 믿음이 아니라 현실에서 검증된 신념이다. 전쟁도 앗아 가지 못하는 재산이 학력과 학벌이라는 것을 기성세대는 경험했다. 그리하여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옛말은 대학을 위해 십대의 삶을 포기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해석으로 통하기에 이르렀다. 대한민국의 독실한 기독교인들은 재물을 하늘나라에 쌓기보다 하늘나라(SKY) 대학에 쌓는 것이 백 번 낫다고 믿는다. 검증 안 된 천국보다 검증된 지상천국이 더 낫다는 믿음을 누가 탓할 수 있으랴.

그런데 언제부턴가 지상천국의 삶이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다는 풍문이 들린다. 그동안 입장권이 남발되기도 했지만, 세상 돌아가는 모양새가 천국 입장권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게 되었다. 멋모르고 머리 싸매고 밤샘하며 비싼 입장권을 구매했건만 들어와 보니 썰렁해서 당황하는 관객들에게 관리인은 저쪽 문을 가리키며 말한다. 저 문을 들어가면 진짜 천국이 펼쳐질 거라고.(문 위에는 ‘TOEIC’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왠지 과대광고에 속았다는 느낌이 드는 관객들, 드디어 입장권 반환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지만, 다음 문을 향한 군중들의 도도한 흐름에 묻혀버리고 만다.


 대학 무상교육, 이제 진지하게 검토해볼 때다


선진국 중에서 대학진학률이 높지 않은 독일의 경우 진로교육이 일찍부터 이루어져 고등학교 진학 때 진로의 큰 방향이 정해진다.**  대학 진학을 하지 않을 아이들은 일찌감치 실업계 고등학교로 진학해 졸업 후 바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대졸과 고졸의 임금 차가 크지 않고 직업의 귀천을 따지지 않는 문화가 보편화되어 있어 가능한 일이다. 한국의 경우 대학진학률이 80%에 이른 것은 학력이 미치는 유형무형의 영향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대학졸업장이 취업을 보장해주지 않게 되면서 진학률이 떨어지고 있지만, 학력인플레 현상은 점점 심해지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학벌의 생산자이자 수혜자인 명문대들은 힘을 더 키우고자 앞 다퉈 입학 정원을 늘리고 최고지도자 과정을 개설하는 식의 다양한 편법을 동원해 자기증식을 해왔다. 미국의 상위 10개 대학 한 해 졸업생이 약 1만 명인데 견줘 한국의 SKY 3개 대학 한 해 졸업생이 1만5천 명에 이른다. 그 결과 동문 수가 너무 늘어나면서 오히려 학벌의 연결고리가 약화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명품 전략을 잘못 구사해 희소가치가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현재 우리 사회의 많은 대학들은 앵벌이 조직과 다름없다. 학생들이 알바로 힘들게 번 돈을 학비라는 명목으로 갈취한다. 그 대가로 주어지는 졸업장이 그만한 가치가 없다는 사실을 앵벌이들이 알기 시작했기에 조직이 흔들리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출생률이 떨어지고 대학진학률도 함께 떨어지면서 대학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현실이다. 대학 서열화를 폐지하고 학력차별을 금지하는 입법 조치를 단행하면서 사회변화를 추진해야 할 시점이다.

더 이상 교육 문제를 땜질식 처방으로 일관할 수는 없다. 일자리가 줄어들고 평균수명은 점점 늘어나는 시대에 원하는 이들은 누구나 대학에 진학해 교양을 습득할 수 있게 대학 무상교육을 진지하게 검토해볼 때다. 이를 청년에게 주는 기본소득 개념으로 접근할 수도 있다. 유럽의 많은 나라들은 이미 시행하고 있는 정책이다. 등록금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 월 100만 원 정도의 생활비까지 지원한다. 그럼에도 대학 진학률이 50%를 넘지 않는다. 굳이 대학을 가지 않고도 원하는 직업을 얻고 대졸자 수준의 보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OECD 국가 중 고등교육 무상을 실시하고 있는 나라는 프랑스, 독일, 핀란드, 노르웨이 등 16개 국가다. 무상교육에 들어가는 예산은 OECD 평균 GDP 1% 수준이다. 2020년도 국내 사립대학총장협의회가 추산한 사립대 및 국·공립대의 무상교육에 필요한 예산(2025년 기준)은 10~11조 원으로, 이는 2020년도 실질 GDP 1,813조 원의 0.6%에 해당한다. 국가 경제 규모상 무상교육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얘기다.

대학 무상교육에 대한 논의가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다. 신입생이 줄어들면서 위기감을 느끼는 사립대학들도 촉각을 곤두세운다. 세금으로 부실한 사립대학들을 구제해주는 정책이 되지 않게 개혁의 방향을 잘 잡아야 할 것이다. 단계별 시행, 수도권 대학 정원 감축 등 현실적인 로드맵에 대한 연구와 논의가 필요하다. 학력차별금지법을 제정하고 학력에 따른 임금 격차를 줄여나가는 노력을 병행해야 할 것이다. 아이들의 미래와 국가의 장래를 우선순위에 놓고 과감하면서도 주도면밀한 개혁의 청사진을 그릴 때다.


*  수유너머와 문탁네트워크, 박자세(박문호의 자연과학 세상) 같은 학습공동체가 대학 바깥에서 활성화되고 있다.

**  독일의 진로 중심 교육이 너무 이른 시기에 아이들의 미래를 결정함으로써 자신을 새롭게 발견할 기회를 빼앗는다는 비판에서 생겨난 학교가 게잠트슐레다.


_현병호(민들레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