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단상

오해 마시라! 우리는 종북이 아니라 종덴마크니!

민들레
2020-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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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누가 종북인가

종북을 두드리는 북소리가 요란하다. 만만한 게 ‘종북’이다. 동네북이 따로 없다. 통합진보당에 이어 정의구현사제단도, 이제는 하다못해 대안교육연대까지도 종북 단체가 되었다.*  내 편 네 편 나누기 좋아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행동을 하는 이는 모두 적으로 몬다. 강정마을을 가고 밀양을 찾고 촛불집회에 나가면 종북이 된다. 평화와 생태, 민주를 외치면 종북이 되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미국 물을 잘못 먹은 것일까. 들리는 소문으로는 일본 물을 먹다 미국 물로 바꾼 이들 중에 녹색을 적색으로 인식하는 이상한 색맹 증상을 보이는 경향이 종종 나타난다고 한다. 치료도 쉽지 않은 듯하다. 이 아름다운 녹색별에 살면서 녹색을 볼 줄 모르니 안타까운 일이다. 녹색성장이라는 이름으로 강을 무참히 망가뜨리는 행태를 봐도 저들은 녹색을 감지 못하는 시신경을 가진 게 분명하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이 녹색을 적색이라고 우긴다는 데 있다. 게다가 녹색을 사랑하는 이들을 반국가 사범으로 몰아 핍박하기까지 하니, 단순히 시신경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물 잘못 먹으면 뇌세포에도 문제가 생기는 듯하다.

이처럼 분별력이 부족하고 단세포적인 사고력을 가진 이들이 사회지도층 행세를 하는 대한민국의 앞날이 심히 걱정스럽다. 반미, 반정부의 낌새만 보여도 적과 한편으로 몰아세우는 행태는 사실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민주화가 되었다고 하지만,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면 반미가 되고, 정부의 전력 정책에 반대하면 반국가 사범으로 몰리는 사회가 민주사회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는 행태로 보아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저들이야말로 종북 세력으로 보아 마땅하지 않은가. 권력세습까지 따라 하니 영락없는 종북이다. 하지만 이미 저들이 언론까지 장악해 말의 뜻조차 제 맘대로 바꾸는 마당이니, 녹색을 적색이라 정의하면 교과서와 사전까지도 바꿔야 할 판이다.

후진 사회다. 목소리 큰 자가 이기는 사회는. 정부와 다른 목소리를 내는 시민단체를 적대시하는 것은 오히려 자충수를 두는 것이다. 정부가 하지 못하는 일을 대신 하고, 하기 어려운 말을 대신 해주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외교적으로 활용할 수도 있으련만 알아서 기는 행태를 보이는 것은 참 보기 딱한 노릇이다. 권력과 자본의 편에 서서 종 노릇을 하는 기득권 세력들은 자신들이 종박, 종미라는 사실을 모르는 걸까. 알고도 “그게 어때서?” 하는 건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다른 목소리를 막지 못해 안달하는 이들이 지도층 행세를 한다는 점에서도 남과 북은 많이 닮았다.

자신들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목소리를 내는 집단은 모조리 종북으로 몰아세우는 것이야말로 후진 행태다. 대안학교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그런 후진 학교가 아니다. 생활 속에서 실제로 민주주의를 익히는 교육 현장이다. 굳이 ‘종(從)’을 따지자면, 대안교육 진영은 종북이 아닌 ‘종덴마크’임을 알기 바란다. 시민이 주축이 된, 150년 역사를 가진 덴마크의 자유교육운동을 모델로 삼고 있음을.

 

* 지난 11월 25일 열린 국회 본회의 대정부질문에서 김재경 새누리당 의원은 ‘대안교육연대’를 종북 성향으로 규정하면서, 비인가 대안학교들의 경우 “설립자나 교사 대부분이 강성 전교조나 종북 좌익단체 출신으로, 수학여행을 간다면서 제주 강정마을 집회 현장을 찾아가고, 베트남에 가서 한국군 민간인 살해 현장을 구경하고 있다"며 서남수 교육부장관에게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필요한 것 아니냐고 물었다. 서장관은 이에 대해 "문제가 많이 있다. 지금 교육기본법에 보면 ‘교육은 정치적으로 중립이어야 되고 어떤 파당적 이해를 위해서도 사용되어선 안 된다’는 명문이 규정돼 있고, 이는 대안학교에도 마땅히 적용되어야 한다”고 답변했다.

 

 

 

덴마크에서 배운다

덴마크 사회는 소수자의 목소리를 묵살하지 않는다. 공교육 수준도 세계 어느 나라보다 높지만, 자유학교를 비롯한 독립학교가 인구 대비로 가장 많은 나라이기도 하다. ** 150년 전에 이미 민중이 주축이 된 자유학교운동이 일어나, 의무취학이 아닌 의무교육이 세계에서 가장 먼저 제도화되었다. 지난 150년 동안 공교육과 나란히 대안적인 교육의 흐름이 이어지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모습은 세계사적으로도 매우 독특하다.

덴마크 사회를 관통하는 정신은 무엇보다 ‘소수자의 권리 존중’이다. 미국이나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는 말하자면 ‘다수를 위한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선거에서 진 소수자들은 다음에 자신들이 다수가 되기만을 기다린다. 반면, 덴마크는 최초의 민주 헌법이 제정된 1849년 이후 ‘소수자를 위한 민주주의’ 정신을 헌법에 우선으로 반영했다. 그룬트비를 비롯한 근대 덴마크의 정신적 지도자들은 이 헌법을 위해 치열하게 투쟁했다. 이들은 소수자가 다수자와 달리 생각하고 행동할 권리가 있을 뿐만 아니라, 다수자(국가)로 하여금 소수자의 권리 구현을 위해 재정을 지원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소수자 민주주의 전통이 덴마크의 독특한 교육 환경의 토대가 되고 있다.

덴마크에서 소수자는 스스로 원하는 학교를 세우고 국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1년차에 학생 14명만 모집할 수 있으면 어떤 학교든 국가에서 지원한다. 2년차에는 24명, 3년차는 32명의 학생이 있으면 지원이 계속된다. 현재 9만7천여 명의 학생들이 프리스쿨을 비롯한 5백여 개의 독립학교에 재학 중인데, 이 비율은 전체 학생의 13퍼센트에 이른다. 사회구성원 열 명 중 한 명 정도는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선택을 할 수 있게 숨통을 틔워 놓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다. UN이 발표한 세계행복지수에서 덴마크가 2년 연속 1위를 한 데는 이런 배경이 깔려 있다.

자유학교는 교육 분야뿐만 아니라 덴마크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쳐왔다. 1970년에 문을 연 트빈스쿨은 70년대 초반에 불어닥친 오일쇼크로 원전 건설 붐이 일기 시작하자 “에너지를 우리 손으로”를 외치며 반핵운동을 벌이면서, 학교에 필요한 전기를 자체 생산할 풍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전문가들도 회의적이었던 상황에서 교사와 학생들이 머리를 맞대고 힘을 모아 하나하나 난관을 헤쳐나갔다. 그 소식이 알려지면서 몇 년 동안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달려와 힘을 보태면서 1978년 마침내 높이 53미터에 이르는, 당시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큰 풍력발전소가 완성되었다. 트빈스쿨의 풍차가 성공하면서 다른 학교들과 작은 기업들도 참여해 수많은 풍력발전소들이 만들어져 자가발전한 전기를 전력회사에 팔 수도 있게 되면서 1985년, 마침내 덴마크 정부는 ‘어떤 형태의 원전 건설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삶과 동떨어지지 않은 교육을 추구하는 대안교육운동은 대안적인 사회를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다. 트빈스쿨 경우처럼 사회운동과 접점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베트남에 가서 한국군에게 살해된 민간인의 넋을 위로하고 사죄하는 것은 양심을 지닌 한국 국민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정부가 하지 못하는 일을 민간이 하고 있는 것이다. 양심적인 일본인들이 한국에 와서 잘못을 사죄하는 것은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면서 우리의 행동을 ‘현장을 구경한다’는 식으로 매도하는 것은 기본 양식을 갖춘 사람이라면 취할 바가 아니다. 평화와 생태, 민주주의는 시대가 요청하는 가치이고 교육이 마땅히 추구해야 할 바다. 이를 종북으로 몰아세우는 것은 스스로가 시대에 역행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 덴마크는 총 인구가 6백만 명 정도인데, 500여 개의 작은 독립학교가 있다. 1886년에 결성된 프리스쿨연합에는 현재 260개의 프리스쿨이 가입되어 있는데, 학생 수는 32000여 명, 교사 수는 3,600명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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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탈핵 운동의 중심이 되었던 트빈스쿨의 풍차

 

초록은 동색이 아니다

몇 해 전부터 다문화나 다양성에 대한 담론이 활발해지고 있다. 그 와중에 종북 논란이 이렇게 불거진 것은 우리 사회가 아직 말로만 다양성을 추구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문화는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다름을 서로 용인하지 못하면 서로 헤어질 수밖에 없다. 남과 북처럼. 더 나아가 상대방이 틀렸다고 믿으면 바로잡아야 한다는 사명의식까지 가세해 갈등의 골은 더 깊어지게 된다. 상대방을 분쇄하려는 과잉 열정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서로를 견제하느라 에너지를 소모하다 보면 성장은 점점 요원한 일이 된다. 성장하지 못하면 정체되고, 정체되면 부패하기 쉽다. 정치판의 앞날이 걱정스럽다. 이쯤에서 새누리당 김재경 의원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토크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미녀들의 수다’에 나왔던 핀란드 여성이 한 팟캐스트 방송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의 진보 정당은 핀란드에서는 보수예요.” 그러자 사회자가 물었다. “그럼 새누리당은 어떤가요?” 그 여성이 대답했다. “그런 당은 없어요!”

하지만 보수적인 정치꾼들의 행태만 탓할 일이 아니다. 정치판 수준은 우리 사회의 성숙도를 반영한다. 핀란드에는 가스통 들고 나오는 늙은 해병대 아저씨들도 없고, 광장에서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사람도 없다. 저들과 대척점에 서 있는 진보 진영의 행태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미워하며 닮는 것일까, 닮아서 미운 것일까? ‘종박천국 종북지옥’을 소망하는 이들만 나무랄 수도 없다. 진보 진영의 자기중심적 성향도 만만찮고, 내부의 반목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초록은 동색’이라는 말이 있다. 비슷한 색깔들끼리는 모두 한 색깔, 한 편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녹색에도 수백 수천 가지 빛깔이 있고, 느낌이 서로 아주 다른 녹색들도 있다. 봄에 돋아나는 연두빛 잎사귀와 가을에 바래가는 초록 잎사귀의 빛깔은 어찌 보면 빨간색과 녹색의 차이보다 더 클 수도 있다. 세대 담론에서 세대 내의 차이가 세대 간의 차이보다 더 클 수 있다는 얘기와도 통한다. 어떤 지점에서는 보수와 진보 간의 차이보다 진보 진영 내부의 차이가 더 클 수도 있다. 서로가 어떻게 다른지, 그 다른 이들이 어떻게 함께 어울릴 수 있을지 길을 찾아야 한다.

최근 들어 대안학교에서는 선후배 교사들, 학부모들 사이에 문화적 차이가 두드러지면서 소통이 힘들어지는 현상도 나타난다. 가치를 추구하는 집단일수록 사소한 차이에 예민하게 반응하여 비판을 하게 되는 것은 저마다 잣대가 다르기 때문이다. 대안학교 교사는 검소해야 한다는 가치관에 동의한다 해도, 검소함의 기준은 저마다 다를 수 있다. 환경을 생각해서 자동차를 타지 않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교사가 기백만 원짜리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 어떻게 볼 것인가. 어려운 문제다.

자신의 가치관에 좀 안 맞더라도 상대방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민주주의다. 민주시민을 기르는 교육이 대안교육이라면 교사문화도 민주적이어야 한다. 교장 없이 순환제 대표교사 체제를 택한다고 해서 민주적인 학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일상 속에서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가 “수구”라 매도하는 저들과 오십보 백보에 머물게 된다. 대안교육 1세대들은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의 무게에 짓눌려 있지는 않은지,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그 짐을 떠안기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자. 대안교육은 좀더 경쾌해질 필요가 있다. 경박하지 않게, 경쾌하게 운동을 할 수도 있는 일이다.

 


 

사회적 실천과 교육의 접점 찾기

종북 논란은 박근혜 정부에서 한동안 계속될 것이다. 진보 진영의 성숙한 대응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논란의 빌미가 되고 있는 사안들***을 대안교육 진영에서도 공론화하여 토론을 해볼 필요가 있다. 저들의 주장에 일희일비하며 변론하거나 항의하는 차원이 아니라 우리가 해온 실천이 과연 교육적으로 얼마나 타당하고 의미 있는 것인지 제대로 검토하고 성찰해야 할 시점이다. 우리 사회가 당면한 여러 과제를 교육과정의 한 축으로 삼는 것에 대해 그리고 그 방식에 대해 대안학교 내부에서도 논의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좀더 깊이 있는 토론이 필요하다고 본다. 대안교육의 종북성 논란이 더욱 왜곡되어 공론의 도마에 오르기 전에 교육적인 관점에서 점검하고 치열한 토론 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다. 민주시민을 기르는 교육은 그 과정 자체가 민주적이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이 있지만 태아 시절 이야기라고 봐야 한다. 피를 먹어야 했던 시절은 이제 지났다.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다시 엄마 뱃속으로 돌아가 양수를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편협한 사회에서 영양실조로 성장이 더딜 수는 있지만 성장은 계속된다. 깨어 있는 시민이 있는 한 아사할 일은 없을 것이다. 지금 자라나는 아이들이 건강한 민주시민으로 성장하는 만큼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도 성장할 것이다. 민주주의에 가장 큰 자양분은 상호 존중과 배려임을 잊지 말자.

힘 없는 이들의 작은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사회가 성숙한 사회다. 국민소득 2만불이 넘었다고 으쓱대는 것은 패스트푸드 먹고 몸집만 커진 아이가 어른 흉내를 내는 꼴이나 진배없다. 미숙한 것이다. 문제는 미숙할수록 자신의 미숙함을 모른다는 게다. 그래서 성숙의 과정은 험난하다. 애벌레가 몇 번의 변태 과정을 거쳐 성충이 되듯이 위험한 고비를 넘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지금 또 한 번의 변태기를 거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제발 성숙한 사회로 환골탈태해서 “안으로 자주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공영에 이바지” 좀 해봤으면 좋겠다. 그것이 진정 새 역사를 창조하는 길이 아니겠는가!


*** 김재경 의원 주장에 따르면 비인가 대안학교들은 “진로탐방을 한다면서 기륭전자 파업현장에 가고, KBS 계약직 투쟁 선포식에 참여한다. 문성근 씨가 명예이사로 있는 늦봄문익환학교는 청계광장 광우병 촛불집회에 학생을 동원한다. 졸업식에서는 북한에서 온 축전을 그대로 읽어준다. 현장학습을 한다면서 통합진보당 관계자들과 함께 밀양송전탑 반대농성에 가고, 대선 개입 규탄 시국선언 발표장에 간다.”


현병호(민들레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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