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풍향계

누가 '놀이터 도둑'인가?

민들레
2021-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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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거인과 아이들'


며칠 전 인천의 한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서 아이들 다섯 명이 놀다가 입주자대표 회장이란 사람에게 걸려 관리사무소에 붙들려 있다가 풀려나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그 아파트에 살지 않는 아이들이 단지 내 놀이터에서 놀았다는 이유로 그는 아이들을 도둑이라 몰아붙이며 자라면 큰 도둑이 될 거라는 식의 막말을 쏟아냈다 한다. 주거침입죄로 경찰에 신고까지 하여 부모들이 관리사무소를 찾아가 아이들을 데려오는 과정에서 사건의 전말이 드러났다.

아이들의 부모는 협박 및 감금 혐의로 이 회장을 고소했다. 사실 이는 법으로 해결할 사안이 아니라 시민의식과 문화로 풀어야 할 사안이지만, 시민의식 수준이 낮다 보니 ‘법대로’를 외치게 된다. 이 일이 있기 전 입주자대표 회의에서 단지 내 놀이터를 외부 어린이가 이용할 경우 경찰에 신고한다는 내용의 ‘어린이 놀이시설 외부인 통제’ 안건이 의결됐다가 입주민들의 반대로 삭제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입주자대표보다 입주민들의 민도가 높아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아파트의 단지화는 공용공간을 사유화한다. 그 대표의 논리대로라면 사실은 그를 포함한 아파트 주민들이 도둑으로 몰려야 마땅하다.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에는 누구나 지나다닐 수 있었던 길을 아파트 주민들만을 위한 공간으로 사유화하고 담장까지 둘러쳐서는 지역주민들을 가로막고, 이제는 아이들까지 막고 있다. 우리 사회의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이전에는 마을의 공유공간이었던 길과 공터가 어떻게 단지화되었는지, 그 권리는 어디에 귀속되는지를 법적으로 밝히는 작업이 필요하다. 공유공간 무단 점유에 대한 판례가 나오면 거기에 준해 아파트 관련 법규를 손봐야 할 것이다. 담장을 두르거나 외부인의 출입을 막는 사적 행위를 규제할 수 있는 공적 제도가 필요하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전국에 77,557개의 놀이터가 있는데, 이 중 52%가 아파트 단지 안에 있다. 학교, 유치원, 어린이집에 있는 놀이터가 29%, 공공이 직접 관리하는 놀이터는 14%밖에 되지 않는다. 아파트 중심의 주거환경 개선사업의 결과다. 재개발이 이루어지면서 아파트 단지 안과 밖의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 격차사회의 모습이 아파트 단지 안팎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단지 바깥에는 공공 놀이터도 별로 없지만 시설이 낡아 아이들이 잘 찾지도 않는다. 사실상 지역아이들에게서 놀이터를 앗아간 놀이터 도둑은 아파트 단지이며, 정부는 도둑을 방치하고 있는 셈이다. 입주민들은 자신이 도둑이 된 줄도 모른 채 자신의 성 안에서 안전을 찾고 있다.

아파트 단지는 성, ‘캐슬’이다. 실제로 ‘캐슬’이란 이름이 붙은 아파트의 시공사는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의 본질을 꿰뚫어본 셈이다. 옛날의 성과 다른 점은 성 안의 집들도 또 하나의 성처럼 외부와 분리되어 있다는 점이다. 아파트 단지에는 복도와 보도만 있지 집과 집을 이어주는 길이 없다. 외딴 작은 성들이 모인 거대한 성이 한국식 아파트 단지다. 한때 항간의 관심을 끌었던 가상의 성 ‘스카이 캐슬’은 비록 드라마 속 공간이었지만 그 옛날 신분 상승을 위해 성 안에서 벌어지던 시기와 질투의 드라마를 재현해 보여주었다. 놀이터는 단지 장식일 뿐인 그 성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만들어갈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오래 전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던 '거인과 아이들'이라는 이야기가 떠오른다.('거인의 정원'이라는 제목으로 그림책이 나왔다.)  높은 담장을 두른 거인의 성 안에는 끝없는 겨울이 계속되는데, 어느날 마을 아이들이 정원에 숨어 들어와 놀기 시작하자 꽃이 피고 봄이 찾아온다는 이야기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진 성은 죽은 성이다. 재테크의 마법에 걸려 죽어 있는 성에 온기를 불어 넣어줄 아이들을 몰아낸 그 아파트 단지는 영원히 겨울왕국이 계속되지 않을까? 다행히 오늘 자 뉴스에 해당 아파트의 입주자들이 그 거인을 입주자대표에서 해임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래도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성에는 희망이 있다.


_현병호(민들레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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