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풍향계

청소년들에게 쉼과 전환의 시간을!


아이 문제를 상담할 때 걱정하는 부모들의 첫마디는 “학교를 안 가려고 해요”이다. 본디 아이들이란 ‘학교에 있어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학교 밖을 두려워하는 부모들을 탓할 수도 없는 것이, 여전히 사회는 학교를 가지 않는 아이에 대한 편견이 심하고, 학교 말고는 딱히 갈 곳이 없는 빈약한 현실마저 이 두려움을 무한 재생산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호기심 많고 궁금한 것투성이일 아이들이 가야 할 곳, 갈 수 있는 곳이 학교밖에 없다는 것은 참 슬픈 현실이다. 세상에는 신기하고 아름답고 재미난 곳이 얼마나 많은가. 인생의 꽃다운 시절을 답답한 공간에서 시들시들한 배춧잎처럼 보내고 있는 것이 가엾지도 않은지, 부모들은 수시로 “어디냐?”며 잠시도 한눈팔지 못하도록 아이의 동선을 추적한다. 잔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말 잘 듣는’ 것으로 부모를 안심시켜야 하는 아이들은 과연 어떤 꿈을 꾸면서 살고 있을까.

 

질주를 강요하는 촘촘한 교육 시스템에 균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공교육 안에서 중학교 자유학기(년)제나 방과후 교육, 마을학교처럼 기존 과정을 운영하면서 부분적으로 교육의 빈고리를 채우는 정책도 있지만, 좀 더 과감하게 ‘획일화된 교육으로부터의 탈주’를 선언한 것은 서울시교육청이 시행하고 있는 ‘오디세이학교’다. 1년 후엔 원적학교로 돌아가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어 기본교과를 이수해야 하고, 통학형이어서 급진적인 변화를 꾀하기 어려운 한계는 있지만, 일 년간의 교육 경험이 학력으로 인정되어 2학년으로 진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시 돌아갈 곳이 보장되어 있다는 점도 부모나 아이들 입장에서 안심할 수 있는 요소다.

 

비슷한 청소년 갭이어 모델로 덴마크 애프터스콜레처럼 일 년 과정의 자유학교가 비인가 형태로 생겨나고 있다. 서울의 ‘오디세이학교’, 강화도의 ‘꿈틀리인생학교’, 순천의 ‘사랑어린마을인생학교’, 함께여는교육연구소가 연 ‘열일곱인생학교’, 경남교육청이 만든 창원자유학교, 상주 시민들이 만든 ‘쉴래’ 같은 곳이 대표적인데, 청소년들에게 자기를 돌아보고 삶을 전환하는 계기를 만들어주고자  생겨난 새로운 배움터들이다. ‘방학이 일 년’이라는 개념으로, 딸아이의 휴학 경험을 사회적으로 확대한 ‘꽃다운친구들’ 같은 유연한 모델도 만들어졌다. 학교를 잠시 쉬면서 진로를 탐색하고 싶지만 혼자서는 막막한 청소년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아무리 오래 학교를 다녀도 정작 삶에서 중요한 것들은 알려주지 않는다는 한 청년의 목소리가 가슴에 오래 남는다. 어른이 된다고 저절로 알게 되지도 않는데, 어딜 향하는지도 모른 채 질주하면서도 멈추기를 두려워하는 한국의 교육 상황에서는 더욱 그 속도에 브레이크를 거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삶의 전환과 변태의 시간을 시스템으로 보장하는 것은 ‘천천히 가도 괜찮다’고 사회적으로 용인하는 것이고, ‘옆을 살피는 것’이 낙오나 도태가 아니라 새 길을 찾는 시도란 걸 인정하는 행위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 같은 말들이 청년들의 냉소를 산 것은 헬조선을 살아가는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값싼 위로의 말이 아니라 자신의 가능성을 탐색해볼 수 있는 안전한 시공간이기 때문이다.

 

더 많은 아이들이 천천히 자기를 들여다보며 사람을 이해하고, 세상을 궁금해하며 제 안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시간을 갖기를, 시들시들한 배춧잎이 아니라 새벽이슬 품은 토란잎처럼 생기 넘치기를, 성장기를 지났지만 성장이 필요한 어른들도 부디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


_장희숙(민들레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