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풍향계

아이는 부모의 거울인가

민들레
2020-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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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패턴을 찾아라

현명한 부모는 자녀의 패턴을 알고 있다. 현명한 교사는 아이의 패턴에 따라서 대응하며 지도한다. 모든 부모들은 아기를 키우면서 나름 아기의 패턴을 파악하고 패턴에 맞춰서 양육한다.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 가장 중요한 건 아이의 패턴을 찾아내는 것이다. 언제 잠을 자고 언제 깨는지, 젖은 언제 물려야 하는지, 이런 패턴을 파악하게 되는 것은 부모와 아기가 수없이 접촉했기 때문이다. 둘째아이가 쉬워지는 건 아이에게 패턴이라는 게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여유가 생긴 덕분이다. 어린아이일수록 패턴을 감출 수 없기에 파악하기가 쉽다. 패턴을 알고 있다는 것은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패턴을 알고 있으면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다. 또 패턴을 알고 있으면 사람과 사물 모든 현상에서 경이로움을 맛볼 수 있는 특별한 안목이 생긴다.

교사와 부모 사이의 상호 소통 혹은 상담이란 서로 파악한 패턴을 나누는 것이다. 교사는 학교에서 본 아이의 패턴을 나누고, 부모는 그때까지 가정에서 드러난 아이의 패턴을 나눈다.

1+2+3+4+……97+98+99+100 = ? 사뭇 복잡해 보이지만 패턴을 알면 어렵지 않다. 패턴을 모르면 열심히 더하면서도 중간에 틀릴까봐 전전긍긍하지만 패턴을 알고 있는 친구는 웃고 있다. 패턴을 알면 웃으면서 아이를 기르게 된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자녀를 바라보는 ‘판에 박힌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고,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얼마나 편협했는지 알 수 있다. 아이의 현상을 이해하는 방법이 꽤 있지만 우리는 대부분 겨우 한두 가지밖에 사용하지 않는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은 각자 ‘모자이크 퍼즐 맞추기’에 열중한다. 각자 파악한 패턴을 모아서 퍼즐을 맞추면 보다 더 완전한 그림으로 한 아이의 모자이크가 완성된다. 아이들의 패턴을 찾아낸 교사회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한 조각이 갖는 한계를 넘어서 조각과 조각 사이의 연관을 찾아서 전체 그림을 맞추는 것이다. 해석도 잘 해야 한다. 가끔 한 조각을 보고 전체인 양 단정 짓는 오류를 범하게 되고, 파악한 패턴을 잘못 해석해서 가능성을 놓치기도 한다. 아무리 애써도 패턴을 파악하지 못하거나 한 조각을 끝끝내 찾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때 교사나 부모는 엉뚱한 조각이나 패턴을 갖고 찾았다고 우기지 말고 정직해져야 한다. 찾지 못한 한 조각이 중요하고 많은 말을 할 수도 있다. 조각의 빈 자리를 보고 겸손한 부모와 교사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지침을 얻는다. 우리가 무엇을 모르는지 알고 있다면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

애들이 크면 나름대로 부모의 패턴을 찾아서 읽어버린다. 학교에서도 교사의 패턴을 알아챈 아이들이 교사의 히스테리에 적절하게 대비하기도 하고 때론 순진한 교사를 이용해먹기도 한다.

나는 매년 신입생들이 들어오면 내 나름대로 아이들 각각의 패턴을 부지런히 찾는다. 사뭇 혼란스럽고 의뭉스러워 보이는 아이들의 언행을 통해서 패턴을 찾는 작업은 쉽지 않지만, 뿌리칠 수 없는 호기심이 작용해서 오히려 즐기는 편이다. 패턴이 단순한 아이들도 있고 좀 복잡한 아이들도 있다. 패턴을 찾기 위해서는 관찰하고 함께 노는, 많은 접촉이 필요하다. 수업, 여행, 점심시간 등 모든 기회를 활용하는 것이 좋다. 아이와 많이 접한 만큼 많은 패턴을 알아낼 수 있다. 부모나 교사가 조급하게 서두르면 패턴이 보이지 않는다.

패턴을 찾는 마음가짐에서 중요한 것은 선입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감 넘치는 교사의 함정은 바로 선입견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부모들이 자기 아이의 패턴을 찾기 위해서는 교사를 존중해야 한다. 아이를 학교에 보낸다는 것은 또래들과 어울리면서 함께 공부하고 생활하는 학교에서 아이의 패턴을 찾는 것이다. 학교에 안 보내고 집에서 아이를 키우고 가르친다면 아이를 다양한 상황에서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교사라는 존재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셈이다. 부모 혼자서는 아이의 패턴을 찾기가 쉽지 않다. 아이들은 겸손한 부모에게 자신의 패턴을 드러낸다. 잘 보면 보인다. 사람들은 아이들을 보지만 못 본다. 현명한 부모와 교사의 눈은 아이들을 안 보지만 본다. 현명한 교사의 눈은 이해하는 눈, 포용하는 눈, 공감하는 눈, 깊은 내면까지 뚫고 들어가는 눈이다.


 

모자이크 퍼즐 맞추기의 원리

아이들은 장면마다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건 당연한 현상인데, 대부분의 부모들은 잘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선입견으로 인해 잘 알아채지 못하는 것 같다. 하지만 대안교육 십 수 년 동안 분명히 내 눈으로 확인한 것이다. 아이들은 집에 있을 때와 학교에 있을 때 그리고 혼자일 때와 두 명일 때와 여럿이 있을 때 각각 다른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 아이의 어느 일면만 보고 그 아이를 다 알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 ‘장면마다 당연히 다르다’에 대한 인식이 없으면, 부모와 교사 사이에 오해가 쌓이고 서로 신뢰할 수 없게 된다. 이것은 특히 초등학교 1학년과 중학교 1학년 입학 초기에 학교와 가정 사이에서 해마다 반복되는 갈등과 불만의 주요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을 정도로 민감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부모는 주로 집에서 혼자 또는 형제랑 있는 아이를 보게 되고, 교사는 학교에서 여럿이 무리지어 있는 상태에서 아이를 보게 된다. 학기 초에 가정에서의 생활 모습과 학교에서의 생활 모습이 면담 등을 통해 순조롭게 교환되지 않으면 순식간에 발화점에 도달할 정도로 파괴력이 높아진다. 가정방문 갔다가 부모님 앞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아이를 보고 속으로 ‘쟤가 걔가 맞나?’ 하고 놀란 적이 많다. 반대로 어쩌다 학교에 들린 부모님이 아이 모습을 보고 혼란스러워 하기도 한다. 상담 기간 중에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부모와 교사가 각각 다른 아이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생소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아이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신화에 가려서 어른들은 가끔 오판할 때가 있다. 아이들은 가끔 자기도 모르게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그 이유는 아이들은 중요한 것과 지엽적인 것을 구분하기 힘들고, 또 시야가 좁기 때문에 현상을 객관적으로 분석할 수 없어서 결과적으로 부분을 전체로 인식하고 그대로 말하기 때문에 거짓말이 되는 것이다. 그 결과 어른은 종종 아이에게서 일차로 가공된 잘못된 정보를 듣게 되고, 부모 혹은 교사 각자 입장에서 이차적으로 정보를 다시 해석하기 때문에 엉뚱한 말이 오갈 수 있게 된다. 게다가 인간은 오해에 취약하다. 사정이 이럴진대, 부모와 교사 사이에 서로 다른 해석을 하게 되면 서로 의심하고 못 미더워하게 되기 십상이다. 가령 학교에서 아이들끼리 싸웠다든가 하는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교사가 학교에서 보고 파악한 아이의 행동과 그 아이가 집에서 하는 말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교사 부모 모두 염두에 두어야 한다. 우선 이 정도 인식만으로도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좀더 극적인 경험은 공교육 고등학교 교사 시절에 있었다. 부모 면담을 정성스레 준비해서 만나면 열이면 열 모두 ‘내 아이가 그럴 줄 몰랐다’는 반응을 보인다. 고등학생 정도 된 자녀를 잘 모를 수는 있지만, 문제는 놀라기만 하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번은 가출한 아이가 파출소에 있다는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달려가서 만났다가 황당한 말을 들어야 했다. “울 엄마가 나를 제발 좀 그만 사랑하게 해주세요.” 이건 뭐야 도대체. 자녀에 대한 믿음과 여유가 없는 사랑은 아이와 엄마를 모두 태워버린다. 아이들의 문제 행동 혹은 이상 행동은 부모에게 보내는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부모가 눈치를 채고 먼저 바뀌지 않으면 아이들의 문제 행동은 계속된다.

순수한 뜻으로 자식에게 사랑을 퍼주는 것은 좋은데, 아이의 상태를 고려하지 않거나 엄마 자신의 삶과 성장이 빠져 있다면 건강하다고 볼 수 없고 결국 중독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될 수도 있다. 솔직히 돈에 올인하는 사람이나 자식에 올인하는 사람이나 그 차이를 잘 모르겠다. 중년 이후 ‘헛살았다, 내 인생 돌려줘’라는 모습까지도 닮았다.

태양의 위치에 부모를, 지구엔 교사를, 달엔 아이를 두는, 교육의 3주체를 천체의 행성으로 시각화해서 볼 때, 세 행성이 엇갈리지 않고 잘 공전하려면 조화가 가장 중요한 관건이 된다. 뉴턴도 풀기 어려워했던 3개의 천체 공전 방정식을 우리는 풀어야 한다. 조화가 어긋나면 충돌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각자의 입장에서만 정보를 해석하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부모 교사 모두 어른으로서 오해와 충돌이 생기지 않도록 서로 상대방 말을 경청하고 또 아이들의 말을 잘 새겨서 들어야 한다.

그러면 부모와 교사 중에 누가 더 아이를 잘 이해할 수 있을까? 교사가 유리한 이유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인류의 성현들조차 자기 자식을 자기가 잘 가르칠 수 없다는 고백을 할 정도로 부모는 제 자식 앞에서 냉정한 일관성을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자식을 서로 바꾸어서 가르쳤다고(易子而敎之) 했을까. 이건 공교육에서 아무리 노련한 교사라도 자기 자식 문제 앞에서는 맥을 못 추는 것을 보면 쉽게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는 교사회라는 집단 속에서 여러 선생님들이 각자 다른 위치에서 아이들을 보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볼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을 모자이크 효과라고 부르고 있는데, 선생님들이 각자 본 아이의 모습을 함께 모아서 합하면 모자이크 조각이 완성되듯이 거의 정확한 아이의 상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아이들에 대해서 교사가 아는 것이 항상 옳다고 생각하는 순간 또 다른 함정이 기다리고 있다는 점도 유의해야 할 것이다. ‘저 아이는 이럴 것이다 혹은 저럴 것이다’라고 단정짓는 일은 되도록 삼가야 한다. 마찬가지로 ‘저 아이는 커서 무엇이 될 것이다, 혹은 무엇이 되는 것이 좋겠다’라는 예측도 자제해야 한다. 아무리 안 그러려고 해도 인간인 이상 교사의 선입견이 개입하게 되고, 또 아이들은 아직 완성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구상에 있는 모든 아이들에게는 길게는 137억 년 간의 우주 진화의 역사가, 짧게는 38억년 생명 진화의 역사가 고스란히 아로새겨져 있다. 아이에 대해서만큼은 다른 시각을(가능하면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항상 열려 있어야 한다. 이렇게도 볼 수 있고 저렇게도 볼 수 있을 때는 무조건 긍정적으로 보면 좋다.

선생님들은 모이면 주로 아이들 얘기를 한다. 오늘은 놀기만 하고 아이들 얘기는 하지 말자고 아무리 다짐해도 어느새 보면 아이들 얘기에 열중해 있다. 일종의 직업병이다. 선생님들도 인간인지라 때로는 집단적 편견에 사로잡혀서 교사회 대다수 교사들이 간주하는 대로 아이를 이해했다고 단정짓는 실수를 범할 수 있다.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에 대해서 내가 먼저 편견과 선입견에서 멀어질수록 아이들이 가깝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소수의 다른 견해도 참고하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라는 여지를 남겨놓아야 한다. 한 아이를 놓고 집단적 편견에 빠질 위험이 있는 집단 중에 교사만큼 가능성이 큰 집단도 없지 않은가.

 

 

아이는 자기 리듬대로 자란다

나는 대안교육에 발을 들여 놓은 이래 한동안은 아이를 보고 부모를 판단하려고 했고, 부모를 보고 아이를 판단하려고 했다. 그러다가 언제부턴가는 아이를 보고 부모를 판단하지 않으려고 했고, 부모를 보고 아이를 판단하지 않으려고 했다. 전자에서 후자로의 변신은 대안학교 교사 생활 중 가장 잘한 변화로 생각하고 있다. 아이를 보고 부모를 판단하려고 한다거나 부모를 보고 아이를 판단하고픈 엄청난 유혹이 있었지만 결국 뿌리칠 수 있었다. 아이와 부모를 분리해서 생각할 만큼 성숙했다고 자부할 만하다. 교사는 궁극적인 하나됨을 위해서 일정 기간 동안 부모와 자녀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 통념상 엄마 아빠 모두 훌륭하신데 아이는 세속적인 표현으로 비뚤어지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엄마 아빠는 음~ 그런데 아이는 훌륭한 경우도 있다. 무슨 말을 하려고 하냐면, 아이들은 엄마 아빠를 닮기도 하지만 닮지 않기도 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대부분 형제자매가 닮지 않은 것만 봐도 쉽게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얼떨결에 30년 이상 교직에 있으면서 아이들과 부모를 무수히 많이 보아왔고 인간에 관한 여러 가지 비밀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수십 년에 걸친 관찰과 경험, 그리고 약간의 생물학 지식을 결합해보면 아이나 새끼, 알은 제 3의 새로운 생명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 과학은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나 ‘그 어머니에 그 딸’이라는 말이 정확한 표현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유전은 부모의 장점만 쏙쏙 뽑아 아이에게 전해주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진화의 신비라고 할 만한데, 이 세상에 완전한 부모는 없으니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없다. 완전한 부모한테서 정말로 똑똑한 아이가 자랄까? 슬프지만, 자신의 성장과 세상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자식에게 올인하는 부모에게서 어떤 자식이 나오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배우고 일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즐겁게 사는지 보고 배운다. 불행한 엄마보다 차라리 불완전한 엄마가 낫다. 또 아이는 아이대로 엄마 유전자, 아빠 유전자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고 자신만의 고유한 운명을 개척해나갈 책임과 권리가 있다. 아이를 키우고 교육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해주면서도 미안해하는 부모들이 많다. 그러나 이 세상에 완벽한 부모는 없다. 완벽한 부모가 되지 못했다고 미안해하지 말자.

부모와 교사는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자기 시간을 줘야 한다. 진정으로 줄 것은 이것밖에 없다. 많은 물질을 준다고 하더라고 시간을 주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안 준 것과 마찬가지다. 기러기 아빠란 자녀에게 시간은 안 주고 돈만 주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일 것이다. 자기 시간을 기꺼이 내주는 교사야말로 좋은 교사다. 때론 늦은 시간까지, 때론 주말에도, 때론 산꼭대기와 길바닥에서 아이들에게 바쳐진 시간에 대해 아이들은 자신의 비밀을 드러내는 보답을 한다. 우리는 이때 아이들을 알 수 있게 되고, 언제 어떤 도움을 줘야 하는지를 비로소 알게 된다. 그래서 나는 아이와 관련된 문제에서만큼은 나의 경험도 중요하지만 일차적으로는 아이와 오랜 시간을 함께한 담당교사의 의견을 더 중시한다.

선생이라면 일반학교 대안학교 할 것 없이 이런 아이들을 많이 보아왔을 것이다. 공부는 잘하는데 실생활에서 서투른 아이가 있는가 하면, 일상생활에서는 활기차고 똑똑한데 학교 성적은 영 신통치 않은 그런 아이가 있다. 앞의 아이에 대해서는 좀 답답한 느낌이, 뒤의 아이에 대해서는 좀 안타까운 느낌이 들 것이다. 사실 이런 아이들의 경우 대안학교에서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데, 공교육에서는 문제가 되는 것이 문제다. 이 때문에 대안학교를 찾는 가정이 꽤 있다. 이는 대개 아이들마다 타고난 기질이나 성격의 차이로 인한 것인데, 전자는 뭔가를 기호로 익히는 걸 선호하는 아이고 후자는 몸으로 익히는 걸 좋아하는 아이다. 공교육에서 전자는 별로 문제 삼지 않지만 후자는 문제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자칫하면 문제아로 낙인찍히기도 한다. 대안교육은 그렇지 않다. 단지 배우고 성장하는 방식이 아이들마다 다를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성장은 저마다 다른 리듬으로 이루어지며, 모든 아이들의 성장은 그 나름의 리듬을 보장받아야 한다.

성격이나 친구 사귀는 방법, 공부하는 방식의 차이 등 다양한 차이를 인정하고 그 차이를 넘어서 모든 아이들이 존중받을 수 있는 문화가 절실하다. 대안학교에서도 숨은 재능을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는 있겠지만 알고도 외면하는 일은 없다. 건강한 교육이라면 잘못하는 걸 추궁하기보다는 잘하는 것을 살리는 쪽으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가장 도움이 필요한 아이에게 가장 많은 도움을 줘야 한다. 물론 영재를 키우기도 해야 하지만, 뒤처지는 아이들을 함께 이끌고 가는 것이 교육의 대원칙이다. 아이들과 산에 올라갈 때 혼자서 잘 올라가는 아이들이 있고 뒤처지는 아이들이 있다. 이때 교사는 누구와 함께 가는가.

 

이철국

불이학교 교장. 강아지똥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오늘도 호기심에 넘쳐서 이 세상을 탐험하고 모색하며 살고 있다. 12345ddo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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