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풍향계

교육계에 파고드는 유사과학(2)


민족주의에 편승한 유사역사학


한국 사회에서 80년대는 민주화운동과 함께 민족주의 열풍이 몰아치던 시기다. 독재 정권이 의도적으로 ‘국풍’ 바람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운동권에서 일고 있던 민족주의가 뉴에이지 바람과 시너지 작용을 일으키면서 급격히 세를 확대했다. 택견, 국선도 등 전통 수련법이 보급되고 증산도, 대순진리회 같은 신흥종교가 대중 속으로 파고들었다. 단학선원, 마음수련 같은 신생 수련단체들이 세를 확대한 것도 이 무렵이다.

1985년 소설 『단』이 베스트셀러가 된 이듬해 『환단고기』 한글 번역본 『한단고기』가 출간되면서 ‘위대한 한민족 신화’가 역사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환단고기(桓檀古記)는 ‘환인, 환웅, 단군에 대한 오래된 기록’이라는 뜻이다. 이유립이 1979년에 처음 펴낸 한문본을 일본인 유사역사학자 가지마 노보루(鹿島昇)가 일역하고, 이를 임승국이 재번역해 펴낸 것이 『한단고기』다. 임승국은 “환인은 우리말 하느님을 한문으로 음차한 것이고, 환은 곧 하늘의 준말인 한”이라고 주장하는데, 국립국어원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환단고기』는 우리나라가 환국, 배달국, 단군조선으로 이어지는 1만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삼한은 만주, 중국, 한반도에 걸쳐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민족주의 계열의 종교나 단체에 쉽게 접목된다. 전통적 선도사상은 태생적으로 민족주의와 결합하기 쉬운 사상이다. 증산도 계열의 단체인 사단법인 ‘대한사랑’에서는 각급 학교를 찾아가 ‘참역사’를 강의하는데, 그 교재가 증산도 역주본 『환단고기』다(2011년에 증산도 교주 안경전이 『환단고기』 내용을 교리화한 이래, 증산도에서는 이를 경전처럼 받들면서 적극 홍보하고 있다). 단월드에서도 일찍이 국학원을 설립하여 학교에 단군상 건립 운동을 벌이고, 학생들과 교사들을 대상으로 유사역사학에 근거한 나라사랑교육을 해오고 있다. 보수 기독교계 단체에서 단군상을 훼손하면서 기독교계 쪽으로 사회적 비난이 돌아갔지만, 국수주의 역사학자나 근본주의 기독교인이나 편협한 세계관에 갇혀 있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환단고기』에 대해서는 일찍부터 학계에서 논란이 되면서 위서로 판명되었지만, 아직도 이를 인정하지 않는 이들이 적지 않다. 저자 이유립은 1911년 계연수라는 사람이 전해 내려오던 문헌 5권을 하나로 묶어 출간한 것을 자신이 재출간한다고 주장했지만, 학계는 이유립 자신이 저술한 것으로 보고 있다. 설령 계연수가 편집한 책이 맞다 하더라도 문헌의 사료적 가치가 거의 없어 유사 역사서로 분류된다. 역사학자 이이화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 당시 『환단고기』에 대해 이렇게 비판했다. “석기시대에 돌멩이 들고 싸우던 시절인데 어떻게 제국을 건설해요? 역사발전에서 그 시기는 부족국가 시대에요.”(‘역사의 판단에 맡겨? 역사가 쓰레기통이냐?’, 한겨레, 2015.11.21.)

하지만 민족주의에 기초한 유사역사학은 교육계뿐만 아니라 학계와 정관계에도 깊숙이 파고들었다. 박근혜 정부 당시 국사 교과서 국정화 작업에 유사역사학이 개입해 고대사를 늘리고 근현대사를 줄이는 방향으로 개편이 추진되다가 무산되었다. 유사역사학은 ‘제도권 역사학은 곧 식민사관 역사학’이라는 도식을 등에 업고 스스로를 재야사학으로 자리매김하면서 강단사학의 대척점에 자신을 위치시킨다(대표적인 인물이 이덕일이다. 하지만 재야 역사학자가 모두 유사역사학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마치 민간요법 수준의 대체의학이 현대의학의 대척점에 있는 듯이 자신을 포장하는 것과 비슷하다. 제도권 역사학계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환단고기』를 둘러싼 논쟁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근대국가를 형성하는 데 민족주의가 기여한 바가 적지 않다. 고대사를 자민족 중심으로 서술하는 유사역사학은 사실 세계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의 시오니즘은 유사역사학에 기초하고 있는 뿌리 깊은 정서다. 19세기 말 유럽 열강의 지배에 놓이게 된 터키에서 일어난 투라니즘 또한 터키가 인류 문명의 발원지며 아시아 전체를 지배했다고 주장한다. 『환단고기』의 터키 버전인 셈이다(사실은 『환단고기』가 투라니즘의 한민족 버전이다). 범게르만주의와 범슬라브주의에 대항하여 고대의 우랄 알타이 어족을 투란족으로 묶으려는 투라니즘은 20세기 초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도 들어왔다. 대동아공영권은 투라니즘의 일본 버전인 셈이다. 

투라니즘은 일본과 중국으로 전파되어 오늘날 일본의 교과서 왜곡이나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주변국의 이런 흐름이 우리의 민족 정서를 건드리면서 유사역사학이 세를 넓히는 토양을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1980년대 국풍 바람이 불면서 역사탐방 하는 이들이 만주 지역을 답사하며 태극기를 꽂고 우리 땅이라 선언하곤 한 것이 중국의 동북공정에 빌미를 제공한 측면이 있다. 사실상 각국의 유사역사학이 서로를 부양하고 있는 셈이다. 동북공정을 주도한 중국 역사학자 유자민은 대한민국 역사학계의 고조선 관련 내용이 비학술적이라는 논거로 『환단고기』를 든다. 학계에서 이미 위서로 판정해 사료로 인정하지 않음에도 이를 인용함으로써 국제적으로 대한민국 역사학계의 신뢰도를 떨어트리려는 의도로 분석된다.『환단고기』가 동북공정에 맞설 수 있는 기록이라는 유사역사학자들의 주장과 달리 오히려 동북공정에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다.

『환단고기』가 세상에 나오기 이전부터 한민족의 고대사를 부풀리는 유사역사학이 존재했다. 이문영은 『유사역사학 비판』에서 ‘최동-문정창-안호상-이유립-임승국’으로 이어지는 유사역사학자들의 계보를 추적하고 있다. 일제 부역자였던 문정창은 해방 후 역사학자로 변신해 ‘한민족의 위대한 고대사’ 토대를 닦은 인물이다. 초대 문교부장관을 지낸 안호상은 문정창과 함께 국사찾기협의회라는 유사역사학 단체를 결성해 1978년에 국사 교과서 정정을 청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이유립과 임승국도 이 단체 회원이다.)  안호상은 나치의 유겐트를 본따 학도호국단을 만든 인물로 한국고대사학회 회장을 지냈고 대종교 신도이기도 했다.

역사학계는 식민사관을 비판하는 유사역사학이 실은 일제의 식민사관에서 주어만 바꾸었을 뿐이라고 비판한다. 민족적 자긍심을 북돋고자 우리 역사가 반도의 역사가 아닌 대륙의 역사라고 주장하는 것은 반도의 역사는 열등하다는 식민주의 사관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유사역사학자들이 대부분 일제와 독재 정권에 부역했던 사람들이라는 사실이 유사역사학의 정신적 뿌리를 가늠하게 한다. 임승국은 전두환 정권 당시 “공산주의를 막기 위해 국수주의 독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역사학계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유사역사학은 90년대 이후 대중 속으로 파고드는 데 성공했다. 월드컵 응원단 붉은악마의 엠블럼으로 치우천왕이 등장하고, 소설과 드라마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에도 유사 역사학의 내용이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신흥종교인 증산도에서는 『환단고기』를 경전처럼 떠받든다. 유사역사학이 표면적으로는 반식민사학 기조를 띠고 있어 보수 우파뿐 아니라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에게도 거부감 없이 수용되는 실정이다. 2017년 당시 문화체육부 장관 후보자로 내정된 도종환 전 장관이 유사역사학에 경도되어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유사과학은 사실상 과학이라 할 수 없을 만치 논리적인 허점이 많다. 과학과 유사한 것이 아니라 비과학적이거나 반과학적이기까지 하다. 과학계가 유사과학의 주장을 조목조목 비판하지 않는 까닭은 사실상 논박할 만한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지구 나이가 6천 년이고 인간과 공룡이 같이 살았다는 창조과학의 주장을 물리학자나 지구과학자, 진화생물학자가 진지하게 다룰 수는 없는 노릇이다. 유사역사학의 경우 역사학의 특성상 과학적 검증이 쉽지 않고 민족주의 정서와 깊이 연계되어 일반인들과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쉽게 받아들여지다 보니 학계에서도 논란이 되는 편이다.

위기에 처한 민족이 민족적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꾸며낸 이야기를 빌어 민족의 자긍심을 높이는 것은 역사적으로 되풀이되어온 일이다. 하지만 어느 선에서 멈추지 않고 폭주하게 되면 쇼비니즘으로 치닫게 된다. 독일 제3제국과 대일본제국이 걸었던 길이다. 폭주의 가능성은 언제나 어디나 있다. 오늘날 그 가능성이 가장 높은 국가는 아마도 중국일 것이다. 백여 년 전에 당한 굴욕의 역사를 씻어내려는 몸부림이 폭주로 이어질 조짐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동북공정 같은 중국식 유사역사학에 『환단고기』 식의 유사역사학으로 대처하는 것은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참고문헌

한스 울리히 베르너, 이용일 옮김, 허구의 민족주의, 푸른역사, 2007.

기경량, ‘사이비 역사학과 역사 파시즘’, 역사비평, 2016년 2월.

이문영, 유사역사학 비판, 역사비평사, 2018.


_현병호(민들레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