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풍향계

'문제풀이 달인'을 기르는 교육은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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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도 수능시험 결과가 발표되었다. 올해 수능은 불수능이어서 만점자가 1명밖에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물수능이었다는 2020년 수능 만점자는 15명이었다. 수능 수석 또는 만점자들은 대개 서울대 상대나 법대, 의과대를 진학한다. 역대 수능 만점자들의 진로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졸업생들 대부분은 평범한 법조인이나 의사가 된다. 드물게 과학자의 길을 걷는 이들도 있지만 창의적인 연구 성과를 냈다는 보도는 듣지 못했다.

시험 귀재가 창의적인 인재이기는 어렵다. 등수에 연연하게 되면 시험에 필요한 공부만 하게 된다. ‘밑줄 좍’ 그어진 부분만 보면 전체 맥락을 놓치게 되고, 깊이 파고들기가 힘들다. 수학에서 함수 개념은 집합 개념과 연결되어 있다. 수능시험에 집합의 비중이 높지 않다고 집합론을 소홀히 여긴다면 수학을 진짜 잘하기는 힘들다. 수학 문제를 잘 푸는 사람이 아니라 수학적 사고 실험을 즐기는 사람이 수학자가 된다.

대치동 학원가나 8학군에서 세계적인 수학자가 나오긴 힘들 것이다. 제2의 봉준호 감독을 기대하는 것도 나무에서 물고기를 찾는 격이다. 1982학년도 학력고사에서 제주제일고 원희룡은 전국 59만 명 수험생 중 수석을 차지했다. 그 인재가 법조인을 거쳐 고향의 행정 수장이 되었지만, 과연 지역사회와 우리나라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지금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 상당수도 명문대를 졸업한 검사 출신들이다.

대학입시에서 비중이 낮아졌지만 수능은 여전히 전 사회적 관심사가 되고 있다. 최근 수능 시험문제는  종합적인 사고력을 테스트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지만, 시험은 주어진 문제를 푸는 기술을 길러주지 문제를 설정하는 능력을 길러주진 않는다. 시험 문제 풀이에 이처럼 많은 에너지를 쏟는 것은 당사자들의 지적 능력을 낭비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낭비이기도 하다. 하버드대는 대학 수학능력 적성검사(SAT) 만점자를 불합격시키기도 한다. 대학은 스스로 질문을 던질 줄 아는 인재를 기르는 곳이지 문제풀이 기계를 양성하는 곳이 아니라는 말이다. 만점자에 대해 언론도 주목하지 않는다.

공교육은 국가 예산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분야다. 그 많은 예산을 쏟아부어 기껏 시험 귀재들을 길러낸다면 우리 사회의 미래는 어둡다. 대치동 학원가와 8학군으로 대표되는 입시교육의 메카는 우리 사회의 잠재력을 낭비하는 대표적인 집단이다. 기껏해야 판검사와 의사들을 양성할 뿐이다. 이들은 잘해야 사회의 현상 유지에 도움이 되는 존재들이며, 미래에는 AI로 대체될 수도 있는 직군이다.

대학입시와 내신제도를 재점검할 때다. 1등급부터 9등급까지 줄 세우는 상대평가제도가 아이들을 어려서부터 조기교육, 선행학습으로 내몬다. 많은 부모들은 자녀가 경쟁에서 이기기를 바라기보다 뒤처지지 않을까 불안해한다. 불안은 전염된다. 학원을 다니는 아이들은 대부분 불안감 때문에 다닌다고 말한다. 하지만 학원을 다닌다고 불안감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심지어 학원이 불안을 부추기기도 한다. “너네, 우리 학원 그만두면 밑바닥 된다” 그러면서. 일종의 영업 전략인 셈이다. 경쟁은 불안을 낳고, 불안은 또 경쟁을 부채질한다.

2025년부터 고교학점제가 시행될 예정이다. 시험성적 하나로 줄 세우는 평가방식을 개선하고, 모든 학생들이 자기 길을 찾을 수 있게 돕기 위한 제도다. 학생들이 진로에 따라 저마다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서 정해진 학점을 채우면 졸업하는 고교학점제는 자기만의 시간표와 다양한 평가 기준을 제공할 수 있다. 교사 부족과 도농 간 교육자원 격차, 입시에 유리하거나 이수가 쉬운 과목으로의 쏠림, 또 다른 형태의 학습격차 등 부작용의 우려도 크지만, 과감한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시행착오와 부작용을 줄이는 것이 국정의 기술이다.

말로는 시민을 기른다면서 실제로는 문제풀이의 달인을 기르는 구시대 교육은 이제 그만두자. 입시교육은 국가가 나서지 않아도 다들 알아서 할 테니, 공교육은 모든 학생들의 가능성을 꽃피우는 데 힘을 쏟는 것이 마땅하다. 소모적인 경쟁이 아닌 생산적인 경쟁이 될 수 있게 평가제도를 만들고, 학습결손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을 지원하는 것도 국가의 몫이다.문제풀이의 달인이 아닌 건강한 시민을 기르는 데 힘쓰자.

 

현병호(민들레』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