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무안군 운남면 간척지 농토에 대규모 태양광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태양광발전의 이면
문재인 정부는 시민사회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나라 살림을 맡았다. 지난 5년 동안 잘한 일들도 많지만 잘못한 일들도 적지 않다. 잘한다고 한 일이 결과적으로 심각한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에너지 정책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환경을 위한 에너지 정책으로 환경파괴가 일어나고, 당장 생계에 타격을 받는 사람들이 생겨나기도 했다. 부작용과 시행착오를 줄이는 것이 국정 운영의 기술이다. 진보 진영이 입증해야 하는 것은 이념의 타당성이나 일관성이 아니라 복잡한 현실 문제를 풀 수 있는 실력이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 지지율이 떨어진 것은 여러 측면에서 실력 부족이 드러났기 때문이기도 하다.
산비탈에 나무들이 잘려나간 자리, 드넓은 들판의 논들이 태양광 패널로 덮이고 있다. 나무농사, 쌀농사를 짓는 것보다 전기농사를 짓는 것이 수지가 맞아서일 것이다. 쌀도 전기도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니 어떤 농사든 농사꾼과 나라 살림에 보탬이 되면 되는 것이겠지만 과연 이것이 친환경 정책인지는 짚어볼 일이다. 탄소중립을 선언하면서 온 국토를 뒤덮을 기세로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태양광발전 시설은 재생에너지 생산 실적을 위해 앞뒤 생각 없이 밀어붙이는 행정 당국과 수익에 목매는 태양광업체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서일 것이다. 패널로 뒤덮인 벌판을 보면 마치 이 나라엔 전기에 걸신들린 사람들이 사는 것 같기도 하다.
신재생에너지 확대라는 현 정부의 에너지 정책 기치 아래 농림부는 할당된 태양광발전 목표량 10GW를 달성하기 위해 간척지의 농토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는 중이다. 간척농지를 임대해 농사를 짓던 수많은 농민들을 농토에서 내쫒으면서. 180석의 민주당 의원들은 전기사업자가 간척지에 태양광 패널을 손쉽게 설치할 수 있도록 관련 농지법을 개정했다. 간척지의 태양광 설치 기간을 8년에서 20년으로 늘리고, 태양광 설비를 할 수 있는 염해 판정 기준을 완화하면서 전라남도 곳곳에 조성된 수십만 평의 간척지가 태양광 패널로 뒤덮였다.(절대농지인 간척지엔 태양광을 설치할 수 없지만, 간척지에 남아 있는 염분으로 인해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염해 피해지로 판정되면 태양광 설치가 가능하다.) 조만간 영산강 하구의 간척지 500만 평도 태양광으로 뒤덮일 판이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최병성은 산이나 논을 망가뜨리지 않고도 태양광 패널을 설치할 수 있는 곳이 얼마든지 있음을 전국을 다니며 찍은 사진들로 보여준다(최병성, ‘황금 들판 뒤덮은 검은 물결, 대체 무슨 짓 한 건가’,《오마이뉴스》 2021.10.08.) 고속도로변 경사면과 방음터널 지붕을 활용해 태양광 설비를 한 사례나 산업단지의 공장이나 대형 물류센터 같은 건물 지붕을 활용하면 환경을 해치지 않고도 설비를 할 수 있다. 정부의 정책과 의지만 있으면 전국으로 확대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자면 행정당국과 국회가 나서서 정책과 법안을 만들고 관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한다. 당장 실적을 올리는 데는 도움이 안 되겠지만 환경을 생각하고 국가의 에너지 정책을 고민한다면 당연히 우선순위가 되어야 마땅하다.
태양광 패널로 뒤덮인 벌판과 산야를 바라보면서 현 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지지하기란 쉽지 않다. 수백 년에 걸쳐 농민들이 일구어놓은 논과 밭의 가치는 당장의 생산성으로 따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무논이 하는 기후 조절 역할과 식량 자급 등을 고려하지 않고 태양광발전을 위해 논을 망가뜨리는 근시안적 정책의 후과는 후손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갈 것이다. 우리 후손들이 스마트폰을 닮아가 쌀 대신 전기를 먹고 살게 된다면 모를까.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옥답을 태양광발전소로 만들어 물려준 이 세대를 후손들은 과연 어떻게 평가할까?
4대강 사업으로 강변에서 농사를 짓다 쫓겨난 농민들보다 문재인 정부의 그린뉴딜로 말미암아 더 많은 농민들이 농토에서 내몰릴 위기에 있다. 우리나라 농민의 약 70%에 이르는 임차농들은 평당 약 1천 원의 임대료를 내고 농사를 지어왔는데 태양광 사업자들은 평당 6천 원을 주겠다며 지주들을 유혹하고 있다. 벼농사와 태양광발전을 겸하는 영농형 태양광발전소도 등장했지만 자영농들이나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다. 쌀 생산량이 20% 정도 줄어들지만 태양광발전으로 얻는 수익이 그보다 훨씬 많아 농민의 소득증대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신재생 에너지가 말 그대로 친환경 에너지가 되려면 정책 방향을 재점검해야 한다. 농토와 갯벌, 농어민들을 희생시키면서 생산하는 전기가 과연 누구를 위한 에너지인지 생각해볼 일이다. 햇볕과 바람은 공짜라며 숲을 베어내고 태양광 패널을 깔고 산꼭대기마다 풍력발전기를 설치하면, 후손들은 산에 가서도 황폐한 산림과 거대한 바람개비의 굉음만 듣게 될 것이다. 쿠이 보노(cui bono)?* 과연 누가 이득을 보는가? 도시와 산업단지에서 소비하는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도시와 산업단지 안에 태양광 시설을 늘리고, 인근에 소형 원자로를 건설하는 것이 환경 문제나 윤리 면에서도 올바른 방향이 아닐까?
원자력발전의 딜레마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자력발전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면서 원전 폐기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독일처럼 국가 차원에서 원전 폐기를 공식화한 나라도 있고, 문재인 정부도 노후 원전을 폐기하고 증설을 억제하면서 신재생에너지 쪽으로 방향을 틀었지만, 기후위기와 에너지 문제가 발등의 불로 떨어지면서 원자력발전을 둘러싼 논의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탈원전을 비판한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원전 정책의 일대 변화가 예고되고 있기도 하다. 탈원전을 내세운 문재인정부 5년간 원전 의존도가 오히려 높아진 것은 아이러니다. 석탄발전을 줄이고 LNG발전 비중을 늘이다가 2020년부터 가스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원전 이용률이 높아진 것이다.**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원전 의존도는 더 커질 전망이다.
탈원전 정책을 재검토하는 것은 최근 세계적인 흐름이기도 하다. 원전을 ‘재생 가능한 친환경 발전소’로 업그레이드하는 신기술 개발이 속도를 내면서 유럽연합(EU)은 2050년까지 원전 비중을 20%, 미국과 영국은 2~3배 늘리기로 결정했다. 올 2월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은 기존의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원전 르네상스'를 선언하면서 2050년까지 신규 원전 14기를 건설하고 소형 모듈형 원자로(SMR) 연구개발에 투자해 2030년까지 새로운 원전 모델을 선보이겠다고 밝혔다.
독일은 원전 정책을 폐지하면서 국가전력망을 EU 통합전력망과 연계시켜 유사시 전력 부족 사태에 대응할 수 있는 체제를 갖췄지만 우리는 지정학적으로 그럴 수도 없는 처지다. 에너지 자립체계인 미국 텍사스주의 경우 지난해 겨울 이상 한파로 대규모 정전 사태를 빚으면서 막대한 피해를 입기도 했다. 이상기후는 어디든 닥칠 수 있고, 비상시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우기가 길어지면 태양광발전이 힘들고, 풍력발전도 설비 대비 이용률이 20~30%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발전 용량의 4~5배 설비를 갖춰야 한다. 시설의 사용 연한도 짧아 과연 친환경 에너지인지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일본의 대표적인 진보 사상가인 요시모토 다카하키(吉本隆明)는 원자력발전의 필요성을 주장하여 환경단체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문명이 안고 가야 하는 본질적인 위험에 대한 그의 냉철한 인식은 주목할 만하다. 이른바 양식 있는 지식인들은 위험을 후세대에 떠넘겨서는 안 된다고 비판하나, 사실상 인류는 오늘날까지 그렇게 문제를 해결하면서 왔다. 지금 겪고 있는 코로나 팬데믹도 마찬가지다. 언제 극복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최선을 다해 감당하며 가는 수밖에 없다. 후세대가 전세대의 자산과 부채를 함께 떠안고 가는 것이 인류의 역사다. 자산만 상속하고 부채를 마다할 수는 없다.
이산화탄소 포집 저장 기술이 개발되어 화력발전소의 환경오염을 줄일 수 있게 되었듯이, 미래에는 핵연료 폐기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이 개발될 것이다. 최근 폐연료봉을 4세대 원전의 핵연료로 재활용하는 기술이 한미 연구진에 의해 개발된 것은 그 가능성을 말해준다.*** 차세대 원전으로 개발되고 있는 소형 원전은 대규모 원전에 비해 건설 비용과 출력 용량이 1/5, 사고 발생률은 1/1000로 알려져 있다. 대도시 인근에 지을 수도 있다.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은 2021년 6월 ‘미래 에너지산업의 게임 체인저’로 차세대 소형 모듈 원자로(SMR)인 소듐 냉각 원자로(SFR) 공동 개발을 발표했다.
탄소중립을 이루기 위해서는 탈원전 정책을 이념적으로 고수하기보다 좀 더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 원자력발전이 원전마피아 같은 이익집단에 좌우되지 않고 보다 투명하게 관리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이 더 급선무다. 태양광발전 등을 통한 분산형 에너지 생산 시스템이 개인과 지역공동체의 에너지 자립을 위한 대안이 될 수 있지만, 대도시와 대규모 산업단지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보다 안정적인 발전시설이 요구된다. 신재생에너지의 수급 불안정을 보완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폐연료봉을 안전하게 처리하기 위해서도 4세대 원전 기술을 서둘러 개발할 필요가 있다.
원자력발전의 궁극적인 대안은 핵융합발전일 것이다. 아직은 연구 단계이지만 20~30년 안에는 상용화될 가능성이 있다. 인공지능과 양자컴퓨터 기술 덕분에 시기가 앞당겨질지도 모른다. 20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인류 차원의 프로젝트로, 전 세계의 과학기술자들이 달려들고 있는 분야인 만큼 기대해볼 만한 일이다. 일부 환경단체에서는 실현 가능성이 낮은 핵융합 기술에 한 해 2천억 원의 예산을 쓰는 것이 적절한가 비판하지만, 향후 20년 동안 5조의 예산을 들여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투자해볼 만한 일이다.
기후위기나 원전 문제는 이념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관념적인 환경운동이어서는 곤란하다. 중국인과 인도인들이 미국인이나 한국인들처럼 에너지를 펑펑 쓰지 못하게 막을 명분도 방법도 없다. 할 수 있으면 하는 게 인간이다. 인류의 에너지 소비는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고 이는 에너지 절약 운동으로 해결할 수 있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지구호에서 누군가를 떠밀어내지 않고 함께 살아가고자 한다면 현실적인 대안을 추구해야 한다.
* 쿠이 보노(cui bono). ‘누가 이득인가’라는 뜻의 라틴어로, 키케로가 변론 중에 곧잘 던진 질문이었다고 한다.
** 국내 원전의 전체 설비용량 대비 발전량 비율을 나타내는 이용률도 증가했다. 문재인정부 출범 첫해인 2017년 원전 이용률은 71.2%였지만 2018년 65.9%로 하락한 뒤 2019년 70.6%, 2020년 75.3%, 2021년도는 74.5%를 기록했다.
***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주도하는 세계 최고 권위 기관인 미국 아이다호국립연구소와 아르곤국립연구소가 2021년 4월 ‘파이로 프로세싱’이라 불리는 기술의 경제적 타당성을 인정하면서 차세대 원전 개발이 속도를 내고 있다. 1978년 고리 1호기 첫 가동 이후 40여 년간 쌓인 폐연료봉 17,500여 톤을 처리할 길이 열린 셈이다.(《한국경제》 2021.9.2)
_현병호(민들레 발행인)
전남 무안군 운남면 간척지 농토에 대규모 태양광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태양광발전의 이면
문재인 정부는 시민사회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나라 살림을 맡았다. 지난 5년 동안 잘한 일들도 많지만 잘못한 일들도 적지 않다. 잘한다고 한 일이 결과적으로 심각한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에너지 정책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환경을 위한 에너지 정책으로 환경파괴가 일어나고, 당장 생계에 타격을 받는 사람들이 생겨나기도 했다. 부작용과 시행착오를 줄이는 것이 국정 운영의 기술이다. 진보 진영이 입증해야 하는 것은 이념의 타당성이나 일관성이 아니라 복잡한 현실 문제를 풀 수 있는 실력이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 지지율이 떨어진 것은 여러 측면에서 실력 부족이 드러났기 때문이기도 하다.
산비탈에 나무들이 잘려나간 자리, 드넓은 들판의 논들이 태양광 패널로 덮이고 있다. 나무농사, 쌀농사를 짓는 것보다 전기농사를 짓는 것이 수지가 맞아서일 것이다. 쌀도 전기도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니 어떤 농사든 농사꾼과 나라 살림에 보탬이 되면 되는 것이겠지만 과연 이것이 친환경 정책인지는 짚어볼 일이다. 탄소중립을 선언하면서 온 국토를 뒤덮을 기세로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태양광발전 시설은 재생에너지 생산 실적을 위해 앞뒤 생각 없이 밀어붙이는 행정 당국과 수익에 목매는 태양광업체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서일 것이다. 패널로 뒤덮인 벌판을 보면 마치 이 나라엔 전기에 걸신들린 사람들이 사는 것 같기도 하다.
신재생에너지 확대라는 현 정부의 에너지 정책 기치 아래 농림부는 할당된 태양광발전 목표량 10GW를 달성하기 위해 간척지의 농토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는 중이다. 간척농지를 임대해 농사를 짓던 수많은 농민들을 농토에서 내쫒으면서. 180석의 민주당 의원들은 전기사업자가 간척지에 태양광 패널을 손쉽게 설치할 수 있도록 관련 농지법을 개정했다. 간척지의 태양광 설치 기간을 8년에서 20년으로 늘리고, 태양광 설비를 할 수 있는 염해 판정 기준을 완화하면서 전라남도 곳곳에 조성된 수십만 평의 간척지가 태양광 패널로 뒤덮였다.(절대농지인 간척지엔 태양광을 설치할 수 없지만, 간척지에 남아 있는 염분으로 인해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염해 피해지로 판정되면 태양광 설치가 가능하다.) 조만간 영산강 하구의 간척지 500만 평도 태양광으로 뒤덮일 판이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최병성은 산이나 논을 망가뜨리지 않고도 태양광 패널을 설치할 수 있는 곳이 얼마든지 있음을 전국을 다니며 찍은 사진들로 보여준다(최병성, ‘황금 들판 뒤덮은 검은 물결, 대체 무슨 짓 한 건가’,《오마이뉴스》 2021.10.08.) 고속도로변 경사면과 방음터널 지붕을 활용해 태양광 설비를 한 사례나 산업단지의 공장이나 대형 물류센터 같은 건물 지붕을 활용하면 환경을 해치지 않고도 설비를 할 수 있다. 정부의 정책과 의지만 있으면 전국으로 확대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자면 행정당국과 국회가 나서서 정책과 법안을 만들고 관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한다. 당장 실적을 올리는 데는 도움이 안 되겠지만 환경을 생각하고 국가의 에너지 정책을 고민한다면 당연히 우선순위가 되어야 마땅하다.
태양광 패널로 뒤덮인 벌판과 산야를 바라보면서 현 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지지하기란 쉽지 않다. 수백 년에 걸쳐 농민들이 일구어놓은 논과 밭의 가치는 당장의 생산성으로 따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무논이 하는 기후 조절 역할과 식량 자급 등을 고려하지 않고 태양광발전을 위해 논을 망가뜨리는 근시안적 정책의 후과는 후손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갈 것이다. 우리 후손들이 스마트폰을 닮아가 쌀 대신 전기를 먹고 살게 된다면 모를까.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옥답을 태양광발전소로 만들어 물려준 이 세대를 후손들은 과연 어떻게 평가할까?
4대강 사업으로 강변에서 농사를 짓다 쫓겨난 농민들보다 문재인 정부의 그린뉴딜로 말미암아 더 많은 농민들이 농토에서 내몰릴 위기에 있다. 우리나라 농민의 약 70%에 이르는 임차농들은 평당 약 1천 원의 임대료를 내고 농사를 지어왔는데 태양광 사업자들은 평당 6천 원을 주겠다며 지주들을 유혹하고 있다. 벼농사와 태양광발전을 겸하는 영농형 태양광발전소도 등장했지만 자영농들이나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다. 쌀 생산량이 20% 정도 줄어들지만 태양광발전으로 얻는 수익이 그보다 훨씬 많아 농민의 소득증대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신재생 에너지가 말 그대로 친환경 에너지가 되려면 정책 방향을 재점검해야 한다. 농토와 갯벌, 농어민들을 희생시키면서 생산하는 전기가 과연 누구를 위한 에너지인지 생각해볼 일이다. 햇볕과 바람은 공짜라며 숲을 베어내고 태양광 패널을 깔고 산꼭대기마다 풍력발전기를 설치하면, 후손들은 산에 가서도 황폐한 산림과 거대한 바람개비의 굉음만 듣게 될 것이다. 쿠이 보노(cui bono)?* 과연 누가 이득을 보는가? 도시와 산업단지에서 소비하는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도시와 산업단지 안에 태양광 시설을 늘리고, 인근에 소형 원자로를 건설하는 것이 환경 문제나 윤리 면에서도 올바른 방향이 아닐까?
원자력발전의 딜레마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자력발전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면서 원전 폐기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독일처럼 국가 차원에서 원전 폐기를 공식화한 나라도 있고, 문재인 정부도 노후 원전을 폐기하고 증설을 억제하면서 신재생에너지 쪽으로 방향을 틀었지만, 기후위기와 에너지 문제가 발등의 불로 떨어지면서 원자력발전을 둘러싼 논의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탈원전을 비판한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원전 정책의 일대 변화가 예고되고 있기도 하다. 탈원전을 내세운 문재인정부 5년간 원전 의존도가 오히려 높아진 것은 아이러니다. 석탄발전을 줄이고 LNG발전 비중을 늘이다가 2020년부터 가스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원전 이용률이 높아진 것이다.**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원전 의존도는 더 커질 전망이다.
탈원전 정책을 재검토하는 것은 최근 세계적인 흐름이기도 하다. 원전을 ‘재생 가능한 친환경 발전소’로 업그레이드하는 신기술 개발이 속도를 내면서 유럽연합(EU)은 2050년까지 원전 비중을 20%, 미국과 영국은 2~3배 늘리기로 결정했다. 올 2월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은 기존의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원전 르네상스'를 선언하면서 2050년까지 신규 원전 14기를 건설하고 소형 모듈형 원자로(SMR) 연구개발에 투자해 2030년까지 새로운 원전 모델을 선보이겠다고 밝혔다.
독일은 원전 정책을 폐지하면서 국가전력망을 EU 통합전력망과 연계시켜 유사시 전력 부족 사태에 대응할 수 있는 체제를 갖췄지만 우리는 지정학적으로 그럴 수도 없는 처지다. 에너지 자립체계인 미국 텍사스주의 경우 지난해 겨울 이상 한파로 대규모 정전 사태를 빚으면서 막대한 피해를 입기도 했다. 이상기후는 어디든 닥칠 수 있고, 비상시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우기가 길어지면 태양광발전이 힘들고, 풍력발전도 설비 대비 이용률이 20~30%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발전 용량의 4~5배 설비를 갖춰야 한다. 시설의 사용 연한도 짧아 과연 친환경 에너지인지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일본의 대표적인 진보 사상가인 요시모토 다카하키(吉本隆明)는 원자력발전의 필요성을 주장하여 환경단체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문명이 안고 가야 하는 본질적인 위험에 대한 그의 냉철한 인식은 주목할 만하다. 이른바 양식 있는 지식인들은 위험을 후세대에 떠넘겨서는 안 된다고 비판하나, 사실상 인류는 오늘날까지 그렇게 문제를 해결하면서 왔다. 지금 겪고 있는 코로나 팬데믹도 마찬가지다. 언제 극복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최선을 다해 감당하며 가는 수밖에 없다. 후세대가 전세대의 자산과 부채를 함께 떠안고 가는 것이 인류의 역사다. 자산만 상속하고 부채를 마다할 수는 없다.
이산화탄소 포집 저장 기술이 개발되어 화력발전소의 환경오염을 줄일 수 있게 되었듯이, 미래에는 핵연료 폐기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이 개발될 것이다. 최근 폐연료봉을 4세대 원전의 핵연료로 재활용하는 기술이 한미 연구진에 의해 개발된 것은 그 가능성을 말해준다.*** 차세대 원전으로 개발되고 있는 소형 원전은 대규모 원전에 비해 건설 비용과 출력 용량이 1/5, 사고 발생률은 1/1000로 알려져 있다. 대도시 인근에 지을 수도 있다.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은 2021년 6월 ‘미래 에너지산업의 게임 체인저’로 차세대 소형 모듈 원자로(SMR)인 소듐 냉각 원자로(SFR) 공동 개발을 발표했다.
탄소중립을 이루기 위해서는 탈원전 정책을 이념적으로 고수하기보다 좀 더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 원자력발전이 원전마피아 같은 이익집단에 좌우되지 않고 보다 투명하게 관리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이 더 급선무다. 태양광발전 등을 통한 분산형 에너지 생산 시스템이 개인과 지역공동체의 에너지 자립을 위한 대안이 될 수 있지만, 대도시와 대규모 산업단지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보다 안정적인 발전시설이 요구된다. 신재생에너지의 수급 불안정을 보완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폐연료봉을 안전하게 처리하기 위해서도 4세대 원전 기술을 서둘러 개발할 필요가 있다.
원자력발전의 궁극적인 대안은 핵융합발전일 것이다. 아직은 연구 단계이지만 20~30년 안에는 상용화될 가능성이 있다. 인공지능과 양자컴퓨터 기술 덕분에 시기가 앞당겨질지도 모른다. 20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인류 차원의 프로젝트로, 전 세계의 과학기술자들이 달려들고 있는 분야인 만큼 기대해볼 만한 일이다. 일부 환경단체에서는 실현 가능성이 낮은 핵융합 기술에 한 해 2천억 원의 예산을 쓰는 것이 적절한가 비판하지만, 향후 20년 동안 5조의 예산을 들여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투자해볼 만한 일이다.
기후위기나 원전 문제는 이념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관념적인 환경운동이어서는 곤란하다. 중국인과 인도인들이 미국인이나 한국인들처럼 에너지를 펑펑 쓰지 못하게 막을 명분도 방법도 없다. 할 수 있으면 하는 게 인간이다. 인류의 에너지 소비는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고 이는 에너지 절약 운동으로 해결할 수 있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지구호에서 누군가를 떠밀어내지 않고 함께 살아가고자 한다면 현실적인 대안을 추구해야 한다.
* 쿠이 보노(cui bono). ‘누가 이득인가’라는 뜻의 라틴어로, 키케로가 변론 중에 곧잘 던진 질문이었다고 한다.
** 국내 원전의 전체 설비용량 대비 발전량 비율을 나타내는 이용률도 증가했다. 문재인정부 출범 첫해인 2017년 원전 이용률은 71.2%였지만 2018년 65.9%로 하락한 뒤 2019년 70.6%, 2020년 75.3%, 2021년도는 74.5%를 기록했다.
***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주도하는 세계 최고 권위 기관인 미국 아이다호국립연구소와 아르곤국립연구소가 2021년 4월 ‘파이로 프로세싱’이라 불리는 기술의 경제적 타당성을 인정하면서 차세대 원전 개발이 속도를 내고 있다. 1978년 고리 1호기 첫 가동 이후 40여 년간 쌓인 폐연료봉 17,500여 톤을 처리할 길이 열린 셈이다.(《한국경제》 2021.9.2)
_현병호(민들레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