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풍향계

천연주의보


문명이 발달할수록 자연주의에 끌리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문명이 주는 피로가 있고 위험 요소도 늘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자연’이나 ‘천연’이라고 다 안전한 것은 아니다. 모든 식물은 벌레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살충제 성분을 만들어낸다. 우리가 먹는 대부분의 과일과 채소에는 극소량이나마 천연 발암 물질이 들어 있다.1 아린 맛이 나는 새순은 독성이 더 강하다. 예로부터 싹이 난 감자 눈을 먹지 않는 이유다.

천연 물질 역시 화학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기는 마찬가지다. 인체 검증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은 경우,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하기도 한다. 최근 천연 염색약의 부작용으로 얼굴까지 검게 염색된 사람들이 업체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몸에 좋다는 천연 물질을 도포한 침대 매트리스가 알고 보니 방사선을 방출하는 침구였다. 단순히 ‘몸에 좋다’는 속설을 믿다가는 오히려 몸을 해치기 십상이다.

1990년대 초, 벨기에에서 한 자연주의 다이어트 클리닉이 조제한 체중 조절약을 복용한 100여 명의 젊은 여성이 급성 신부전증에 걸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역학 조사 결과, 아리스토로크산을 함유한 광방기라는 중국산 한약재 때문임이 밝혀졌다.(약재 수입업자가 한약재 방기와 광방기를 구분하지 못한 데서 일어난 사고로 판명되었다.)투석과 신장이식 수술을 받은 환자들 중에는 10여 년 뒤 신장암 진단을 받은 이들이 속출했다. 한약재의 독성으로 인한 사고는 우리 주변에서도 종종 일어난다. 자연산이라고 안전한 것은 결코 아니다. 독버섯도 자연산이고, 라돈도 천연 물질이다. 

나무를 태울 때 나오는 연기를 액화시킨 목초액은 민간요법 치료제나 천연 농약 등으로 흔히 쓰이지만, 나무가 탈 때 나오는 벤조피렌이나 타르 같은 발암 물질이 포함되어 있기 십상이다. 이 화학 성분은 정제해도 잘 제거되지 않는다. 대체 농약으로 쓸 경우, 일반 농약보다 잔류 독성이 더 강할 수도 있다. 시중에 유통되는 목초액은 화목 보일러나 숯가마에서 나오는 부산물 그대로인 경우가 많아 안전성을 보장하기 힘들다. 육류를 훈제할 때 식용으로 정제된 목초액을 쓰기도 하고, 무좀이나 아토피 등에 효과가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민간요법으로 많이 쓰이지만, 사실상 독성 물질을 바르는 격이다.

농약과 화학 비료를 쓰지 않고 기른 유기농 먹거리도 알고 보면 그다지 안전하지 않다. 2017년 유럽에서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계란 파동이 일어나면서 국내에도 불똥이 튀었다. 살충제가 검출된 달걀 생산 농가의 상당수가 ‘친환경 인증’을 받은 곳이어서 더욱 논란이 되었다.• 친환경 인증을 부여하는 민간 업체만 해도 37곳이나 되어 허술한 인증 절차가 도마에 오르면서 정부가 인증 제도를 허술하게 관리해왔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2011년 독일에서는 수천 명이 장출혈성 대장균에 감염되어 44명 이상의 사람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했다. 스페인산 유기농 오이가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외교 문제로까지 비화되었다. 최종적으로는 독일의 한 유기농 기업이 재배한 새싹 채소가 원인으로 밝혀졌다. 2018년 미국에서는 유기농으로 기른 로메인 상추를 먹고 200여 명이 감염되어 5명이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유기농 식품 소비가 늘면서 유기농도 점점 기업화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1970년대부터 유기농 바람이 불기 시작해 1990년대에 어스바운드팜Earthbound Farm 같은 대규모 유기농 기업이 자리를 잡았다. 2000년대 들어 서유럽에서도 수요가 급격히 늘면서 유기농 기업이 생산한 채소가 국경을 넘어 유통되고 있다. 식품의 산업화로 표준화된 식품이 광범위한 지역에 유통되면서 유통 과정 중 변질될 위험이 높아지고 사고가 일어날 경우 피해 지역이 훨씬 광범위해졌다. 과거에는 감염 범위가 마을 단위였다면, 지금은 국가 단위, 지구촌 단위로 확장되었다.

미국에서 실시한 식품 원인 질병에 관한 조사에 따르면, 오염원의 90퍼센트가 세균이고, 6퍼센트가 바이러스, 3퍼센트가 화학 물질로 밝혀졌다. 잔류 농약으로 인한 화학적 위험보다 생물학적 위험이 훨씬 큰 셈이다. 유기농에 쓰이는 유기질 비료는 원료인 가축 분뇨에 들어 있는 항생제 성분으로 인해 발효가 제대로 되지 않아 병원균의 온상이 되기 쉽다. 또한 작물에 질소 과잉을 유발할 수도 있다. 흔히 벌레 먹은 채소가 안전하다고 알고 있지만, 잎에 초산성 질소가 많을수록 벌레가 많이 꾄다. 초산성 질소는 체내에서 단백질과 결합해 니트로소아민이라는 발암 물질을 생성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식품 전문가들은 아기에게는 유기농 채소보다 오히려 일반 채소를 먹이라고 권한다. 유기농 채소에 있는 세균으로 인해 면역 체계가 약한 아기가 복통이나 설사를 일으키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통념과 달리 유기농 채소일수록 더 잘 씻고 조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 또한 잎이 유난히 짙은 녹색을 띠는 채소는 초산성 질소가 많기 때문에 끓는 물에 데쳐서 질소 성분을 우려내고 요리하는 것이 좋다. 유기농으로 재배한 작물이 맛있고 싱싱하지만 더 안전한 것은 아니니 주의가 필요하다. 세상에 좋기만 한 것은 없는 법이다.

 

*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의 친환경 농산물 인증 마크는 ‘유기농’과 ‘무농약’ 두 가지뿐이다. ‘유기농’ 인증은 최소 3년간 화학 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고 농사를 지은 땅에서 재배한 작물에, ‘무농약’ 인증은 농약을 치지 않고 화학 비료를 적정량의 3분의 1 이하만 써서 재배한 작물에 부여된다.


_현병호(민들레 발행인. 이 글은 <스켑틱> 27호에 실린 글의 일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