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 비정상의 경계가 사라진 교실
김명희_초등교사로 일하다 뒤늦게 특수교육을 전공하고 지금은 모든 아이들을 위한 신경다양성 교실을 연구, 실천하고 있다. 함께 쓴 책으로 『교사 통합교육을 말하다』가 있다.
특수교육과의 만남
평범한 초등교사였던 내가 특수교육을 만나게 된 것은 둘째아이 덕분이다. 아이는 우리나라에 30여 명 밖에 안 되는 난치 질환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로 인한 뇌손상으로 발달장애를 가지게 되었다. 아이를 키우며 나는 끝없이 절망하였고,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와 삶을 포기하고도 싶었다. 하지만 희귀난치질환 아이들을 헌신적으로 치료해주시는 의사선생님을 만나면서 삶이 조금씩 안정되기 시작했다. 아이가 여섯 살쯤 되었을 때 선생님은 아이의 면역력이 많이 좋아졌으니 교육기관에 다녀도 좋겠다고 하셨다. 집 근처에 마침 장애 전담 어린이집이 있어서 그곳에 아이를 보내면서도 걱정이 되었다. 눈맞춤도 의사소통도 되지 않고 엄마와 떨어지는 것도 힘들어 하는 아이가 과연 선생님들과 친구들과 지낼 수 있을지 불안하기만 했다. 그런데 어린이집 선생님들은 늘 따뜻한 눈빛으로 아이가 적응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아이를 이해해주었다. 선생님들은 아이 하나하나의 특성을 고려해 수업을 계획했고 아이와 일대일로 만나며 하루를 보냈다. 세상에 이런 선생님들도 있다니… 너무나 고마웠다. 그 기다림 끝에 아이는 어린이집에 잘 적응할 수 있었다.
어린이집 원장님은 일반유치원을 운영하다가 장애유아들이 갈 곳이 없는 것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 뒤늦게 특수교육을 공부하고 장애아를 위한 어린이집을 열었다고 했다. 어느 날 원장님이 내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아이를 내가 키울 수 밖에 없어 휴직기간이 끝나면 사직을 생각한다고 말씀드렸다. 원장님은 사직하지 말고 특수교육을 공부하고 난 후에 복직을 하면 어떻겠느냐고 권하셨다. 그 말씀에 갑자기 이 길이 내 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 아이가 많이 아팠을 때 나는 종교가 없지만 본능적으로 간절히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아이만 아프지 않고 잘 클 수 있다면, 남은 인생은 우리 의사선생님처럼 내 아이와 같은 아이들을 위해 살겠다고…. 원장님의 권유는 그때의 다짐을 일깨웠다. 그렇게 나는 늦은 나이에 대학원에서 특수교육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특수교육 공부를 하며 느꼈던 특수교육과 일반교육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개별 학생에 대한 관심’이었다. 일반교육은 집단교육을 하기 때문에 평균 수준의 아이들에 맞추어 수업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특수교육은 개별 학생에 대해 관찰하고 그에 따른 교육적 처방을 내려 아이에게 맞는 수업을 계획하고 실천한다. 이것을 ‘수업의 임상적 접근’이라고 한다. 임상은 원래 의사나 상담가가 환자나 내담자의 치료와 상담을 목적으로 병상에 임하는 일을 말한다. 의사가 병상에서 임상을 하듯 교사는 교실에서 개별 학생에 대한 사례를 연구한 후 교육활동을 한다. 나는 ‘수업의 임상적 접근’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일반교육에서는 이러한 접근을 쉽게 찾아볼 수없었기 때문이다.
대학원을 마치고 8년 만에 청주의 한 시골학교로 복직했다. 가슴이 벅찼다. 누구보다 정성을 다해 아이들을 가르치리라 마음먹었다. 전교생 50여 명의 작은 시골학교에는 장애학생이 일곱 명이나 되었다. 나는 장애학생이 있는 통합학급을 맡으며 대학원에서 공부한 것을 적용해보았다.
2년 동안 청주에서 교사 생활을 마치고 서울로 복귀 발령을 받았다. 전교생 50여 명의 시골학교에서 전교생 1700여 명의 거대한 도시학교로 오게 된 것이다. 과연 이곳에서도 모든 학생을 위한 통합교육을 잘 펼쳐나갈 수 있을까, 걱정과 기대가 동시에 되었다.
통합교육은 교사의 숙명
도시에서도 통합학급을 맡고 싶었지만 우리 반에는 장애학생이 없었다. 통합교육 연구를 이어갈 수 없을 것 같아 아쉬웠다. 그런데 나는 곧 통합교육이 교사의 숙명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일반교육에서도 수업의 임상적 접근이 꼭 필요하다는 걸 절감했다. 겉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는 아이들 같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우리 반에는 틱이 있는 아이가 세 명 있었고, 말을 더듬는 아이, 선택적 함묵증이 있는 아이, 분노조절에 문제가 있는 아이, ADHD가 있는 아이, 학습부진이 있는 아이도 한 명씩 있었다. 이 아이들은 장애학생으로 분류되지 않아 돌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이 아이들도 배움의 테두리 안에 들어올 수 있으려면 임상적 접근을 통한 개별화 교육은 필수다. 집단교육을 하면서도 그 안에서 개별화 교육을 하는 것, 이것이 바로 통합교육인 것이다. 이러한 아이들이 비단 우리 반에만 있는 건 아니었다. 같은 학년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다른 반도 비슷한 분포를 보이고 있었다. 이제는 어느 학교에 가든 어느 학급을 맡든 통합교육은 결국 교사의 숙명이라 할 수 있다.
통합교육이 교사의 숙명이라면 교사들은 ‘다양성’이 있는 아이들을 과연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그 관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관점을 가다듬는 것만으로도 교사와 부모, 아이들의 삶이 훨씬 더 행복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교사들이 아이들을 신경다양성의 관점에서 바라보았으면 좋겠다.
신경다양성이라는 개념은 10여 년 전에 등장했는데, 우리나라에는 토마스 암스트롱의 『증상이 아니라 독특함입니다』라는 책이 번역 출간되면서 조금씩 알려지고 있다. 신경다양성에서는 인간의 두뇌 역량이 연속선상에 존재한다고 본다. 즉, 인간의 차이를 정상・비정상으로 나누지 않고 하나의 넓은 스펙트럼 안에 존재한다고 보는 관점이다. 사회성을 예로 들면 가장 왼쪽 끝에는 자폐적 성향이 강한 사람이 있을 것이며, 그다음은 아스퍼거 증후군, 그다음은 자폐증은 아니지만 공동체에 잘 섞이지 않으려는 사람, 내성적인 사람,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사람, 보통의 사교성을 가진 사람 순이며 오른쪽 끝으로 갈수록 대단히 사교적인 사람, 지나치게 사교적인 사람까지 모든
사람들이 하나의 연속선상에 존재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 반에 자폐 아동이 있다면 이 아이도 사회성의 연속선상에 있는 다양한 학생 중 한 명이라고 할 수 있다. 정상・비정상의 구분을 거부하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혁신적인 관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신경다양성 관점에서는 더 나아가 특별한 아이들의 결핍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강점을 활용한 교육을 강조한다.1 아이가 세상에 잘 적응하고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소위 ‘비정상’ 범주에 있는 아이들의 결함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을 교정하고 개선하는 데에만 집중하는 이른바 ‘결함 기반 교육’을 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결함을 중심으로 접근하는 것은 잠재 능력과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낮을 수밖에 없으며, 의학적 진단에 매몰되어 낙인효과를 가져오는 등의 부작용이 있었다. 그러나 신경다양성 기반 교육은 강점 중심 접근이므로 학생의 가능성에 대한 높은 기대감으로 적소구축을 통해 더 높은 성취와 성장을 이끌어낼 수 있다.
신경다양성 교실
도시학교에서 나는 26명의 아이들이 있는 4학년 학급을 맡았다. 우리 반에는 ADHD 성향이 있는 철민이라는 아이가 있었다. 철민이에게 의미 있는 수업이라면 우리 반의 모든 아이들에게도 배움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철민이의 특성에 맞는 신경다양성 교실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철민이는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을 가장 힘들어했다. 수업 시간 쉬는 시간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며, 여기저기 참견하면서 돌아다녔다. 참견을 하다 보면 아이들과 이내 싸움이 붙고 철민이의 공격적인 행동으로 아이들은 울음을 터뜨리며 내게 달려왔다. 철민이는 부주의, 과잉행동, 주의력 결핍, 공격성, 충동성까지 전형적인 ADHD 증상을 보이고 있었다. DSM-5(정신장애 진단 통계 편람)의 ADHD 진단 항목들에 거의 다 들어맞는 특성이었다. 철민이에게 그런 특성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의학적 관점으로 철민이를 바라보는 것은 거기까지였다. 이제부터 교사로서 내가 할 일은 철민이의 결핍이 아닌 강점에 초점을 맞추는 일이었다.
나는 수업시간에 철민이에게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말할 때면 죄책감이 밀려왔다. 철민이가 괴로워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묵인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하루에 적어도 한 시간 정도는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서 하는 활동적인 수업을 계획했다. 예를 들어 수학시간에 연습문제를 풀 때 아이들의 손등에 각자 다른 숫자 스티커를 붙여주고 교실을 돌아다니다 친구를 만나면 그 친구의 손등에 붙어 있는 숫자로 함께 곱셈과 나눗셈을 하는 식이었다. 사회시간에 경제교류에 대해 배울 때는 모둠별로 상점을 차리고 다른 모둠을 방문해 필요한 물건들을 사고팔도록 했다. 국어시간에는 친구들과 만나 상황과 장소에 맞는 대화를 주고받으며 서로 사인을 보내는 활동을 하기도 했다. 모두가 일어나서 수업을 하니 움직임이 큰 철민이가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철민이는 아주 신이 나서 수업에 끝까지 참여했다.
철민이의 움직임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도구도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첫 번째 도구는 짐볼이었다. 아이들 의자 높이의 짐볼 네 개를 한 모둠에 주고 한 시간씩 모둠별로 돌아가며 앉게 했다. 짐볼에 균형을 잡고 앉아 있으려면 몸을 미세하게 움직여야 하는데, 철민이는 짐볼에 앉아서 균형 잡는 것을 아주 재미있어 했고 불필요하게 돌아다니는 일이 거의 사라졌다.
두 번째로 활용한 도구는 스탠딩 책상과 밸런스 패드다. 스탠딩 책상 네 개를 한 세트로 놓고, 모둠별로 돌아가며 한 시간씩 스탠딩 책상에서 수업을 하게 했다. 스탠딩 책상을 쓸 때는 밸런스 패드 위에 올라가서 균형을 잡으며 서 있게 했다. 짐볼보다 더 움직임이 큰 밸런스 패드와 스탠딩 책상의 사용은 철민이의 움직임 욕구를 충분히 충족시켜줄 수 있었다.
움직이는 방식으로 구성된 수업과 짐볼, 스탠딩 책상, 밸런스패드의 활용은 철민이를 위해 시작했지만 우리 반 모든 아이들이 너무 좋아했다. 아이들은 짐볼과 스탠딩 책상이 자기 차례가 되기를 늘 기다렸다. 초등 단계의 아이들은 대부분 움직임의 욕구가 크다. 그중에서 철민이가 유독 움직임 욕구가 컸을 뿐이다. 그러니 신경다양성 교실이 모든 아이들에게 잘 맞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해서 철민이의 움직임 문제는 많이 해결되었으나 친구들에게 보이는 공격적인 성향은 여전히 큰 문제였다. 아이들은 철민이와 모둠활동을 잘해보려 애썼고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싶어 했다. 하지만 철민이가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면 협동적 배움이 일어나기 어려웠다. 친구에게 상처 주는 말을 서슴없이 하고 욕도 했다. 때로는 때리기도 했다. 나는 철민이를 따로 불러 타일러도 보고 다짐을 받기도 했지만, 내 앞에서만 대답을 잘할 뿐 금세 잊어버리고 똑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나는 철민이의 행동을 안건으로 학급회의를 열기로 했다. 자신의 행동으로 친구들이 얼마만큼 힘들어 하는지 먼저 느껴야 문제를 고쳐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학급회의가 형식적으로 흘러가지 않게 하기 위해 둥그렇게 앉아 모두 평등하게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아이들은 한 명씩 돌아가며 철민이에게 받았던 상처나 속상함을 말했다. 내가 아무리 타일러도 꿈쩍 않던 철민이가 친구들의 이야기를 다 듣더니 엉엉 울어버렸다. 철민이가 자신의 행동에 책임감을 느낀 것이다.
이 일이 있고 나서 철민이의 공격적인 행동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모둠활동을 할 때도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수학문제를 끝까지 풀었고 때로는 어려움을 겪는 친구를 도와주기도 하며 협동적 배움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변한 철민이를 칭찬하기 위해 나는 또다시 학급회의를 열었고, 학급의 모든 친구들이 한 명씩 돌아가며 철민이의 변한 모습을 칭찬하고 격려했다. 그 얘기를 듣던 철민이가 또 울었다. 철민이가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반성하고 책임감을 느끼고 나니 변하는 것은 일순간이었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던 철민이는 우리 반 봉사왕이 되었다. 당번이 아니어도 분리수거는 늘 자기가 하겠다고 나섰다. 다른 반에 전할 물건이나 가정통신문이 있으면 그것도 자기가 하겠다고 제일 먼저 손을 번쩍 들었다. 철민이는 우리 반 응급구조대원이 되었다. 누군가가 다쳤다는 소리를 들으면 아주 멀찍이 있다가도 번개처럼 달려와 아픈 친구를 데리고 보건실로 갔다.
움직임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수록 철민이가 얌전히 앉아서 활동하는 횟수는 점점 늘어났다. 역설적으로 내가 자리에 앉으라는 말을 하지 않을수록 아이는 더 잘 앉아 있게 된 것이다. 강점에 집중하다 보니 아이의 결함이 조금씩 사라져버렸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관점 바꾸기
교사 중에 힘든 학생 때문에 병가를 내거나 휴직했다는 분들을 종종 보곤 한다. 그 지경에 이르는 동안 교사는 번아웃을 겪고, 아이와 부모는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다른 특성을 가진 아이들을 힘든 아이가 아닌 신경다양성 아이로 바라보고, 결핍보다 긍정적인 면과 강점을 계속 찾다보면 아이의 결함이 더 이상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러면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들을 더 많이 생각해낼 수 있고, 그것을 이용해 수업을 풍성하게 할 수 있다. 신경다양성 관점은 교사뿐 아니라 부모에게도 긍정적인 에너지를 줄 수 있고, 높은 기대를 통해 아이들의 성장과 발달을 촉진하도록 도울 수 있다.
올해 새로 맡은 학급에는 난독증이 있는 아이, 청각장애가 있는 아이, 지적장애가 있는 아이, 언어유창성에 문제가 있는 아이가 있다. 올해 이 아이들과 또 어떤 빛깔의 신경다양성 교실을 만들어나갈지 무척 기대가 된다.
1. 이것을 적소구축이라고 하는데 뇌의 긍정적인 면을 최대화하고 부정적인 면을 최소화하여 아이의 특성에 맞게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을 말한다.
* 이 글은 격월간 <민들레> 통권 134호 '모두를 위한 교육, 통합교육'에 실린 글입니다.
정상, 비정상의 경계가 사라진 교실
김명희_초등교사로 일하다 뒤늦게 특수교육을 전공하고 지금은 모든 아이들을 위한 신경다양성 교실을 연구, 실천하고 있다. 함께 쓴 책으로 『교사 통합교육을 말하다』가 있다.
특수교육과의 만남
평범한 초등교사였던 내가 특수교육을 만나게 된 것은 둘째아이 덕분이다. 아이는 우리나라에 30여 명 밖에 안 되는 난치 질환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로 인한 뇌손상으로 발달장애를 가지게 되었다. 아이를 키우며 나는 끝없이 절망하였고,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와 삶을 포기하고도 싶었다. 하지만 희귀난치질환 아이들을 헌신적으로 치료해주시는 의사선생님을 만나면서 삶이 조금씩 안정되기 시작했다. 아이가 여섯 살쯤 되었을 때 선생님은 아이의 면역력이 많이 좋아졌으니 교육기관에 다녀도 좋겠다고 하셨다. 집 근처에 마침 장애 전담 어린이집이 있어서 그곳에 아이를 보내면서도 걱정이 되었다. 눈맞춤도 의사소통도 되지 않고 엄마와 떨어지는 것도 힘들어 하는 아이가 과연 선생님들과 친구들과 지낼 수 있을지 불안하기만 했다. 그런데 어린이집 선생님들은 늘 따뜻한 눈빛으로 아이가 적응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아이를 이해해주었다. 선생님들은 아이 하나하나의 특성을 고려해 수업을 계획했고 아이와 일대일로 만나며 하루를 보냈다. 세상에 이런 선생님들도 있다니… 너무나 고마웠다. 그 기다림 끝에 아이는 어린이집에 잘 적응할 수 있었다.
어린이집 원장님은 일반유치원을 운영하다가 장애유아들이 갈 곳이 없는 것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 뒤늦게 특수교육을 공부하고 장애아를 위한 어린이집을 열었다고 했다. 어느 날 원장님이 내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아이를 내가 키울 수 밖에 없어 휴직기간이 끝나면 사직을 생각한다고 말씀드렸다. 원장님은 사직하지 말고 특수교육을 공부하고 난 후에 복직을 하면 어떻겠느냐고 권하셨다. 그 말씀에 갑자기 이 길이 내 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 아이가 많이 아팠을 때 나는 종교가 없지만 본능적으로 간절히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아이만 아프지 않고 잘 클 수 있다면, 남은 인생은 우리 의사선생님처럼 내 아이와 같은 아이들을 위해 살겠다고…. 원장님의 권유는 그때의 다짐을 일깨웠다. 그렇게 나는 늦은 나이에 대학원에서 특수교육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특수교육 공부를 하며 느꼈던 특수교육과 일반교육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개별 학생에 대한 관심’이었다. 일반교육은 집단교육을 하기 때문에 평균 수준의 아이들에 맞추어 수업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특수교육은 개별 학생에 대해 관찰하고 그에 따른 교육적 처방을 내려 아이에게 맞는 수업을 계획하고 실천한다. 이것을 ‘수업의 임상적 접근’이라고 한다. 임상은 원래 의사나 상담가가 환자나 내담자의 치료와 상담을 목적으로 병상에 임하는 일을 말한다. 의사가 병상에서 임상을 하듯 교사는 교실에서 개별 학생에 대한 사례를 연구한 후 교육활동을 한다. 나는 ‘수업의 임상적 접근’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일반교육에서는 이러한 접근을 쉽게 찾아볼 수없었기 때문이다.
대학원을 마치고 8년 만에 청주의 한 시골학교로 복직했다. 가슴이 벅찼다. 누구보다 정성을 다해 아이들을 가르치리라 마음먹었다. 전교생 50여 명의 작은 시골학교에는 장애학생이 일곱 명이나 되었다. 나는 장애학생이 있는 통합학급을 맡으며 대학원에서 공부한 것을 적용해보았다.
2년 동안 청주에서 교사 생활을 마치고 서울로 복귀 발령을 받았다. 전교생 50여 명의 시골학교에서 전교생 1700여 명의 거대한 도시학교로 오게 된 것이다. 과연 이곳에서도 모든 학생을 위한 통합교육을 잘 펼쳐나갈 수 있을까, 걱정과 기대가 동시에 되었다.
통합교육은 교사의 숙명
도시에서도 통합학급을 맡고 싶었지만 우리 반에는 장애학생이 없었다. 통합교육 연구를 이어갈 수 없을 것 같아 아쉬웠다. 그런데 나는 곧 통합교육이 교사의 숙명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일반교육에서도 수업의 임상적 접근이 꼭 필요하다는 걸 절감했다. 겉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는 아이들 같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우리 반에는 틱이 있는 아이가 세 명 있었고, 말을 더듬는 아이, 선택적 함묵증이 있는 아이, 분노조절에 문제가 있는 아이, ADHD가 있는 아이, 학습부진이 있는 아이도 한 명씩 있었다. 이 아이들은 장애학생으로 분류되지 않아 돌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이 아이들도 배움의 테두리 안에 들어올 수 있으려면 임상적 접근을 통한 개별화 교육은 필수다. 집단교육을 하면서도 그 안에서 개별화 교육을 하는 것, 이것이 바로 통합교육인 것이다. 이러한 아이들이 비단 우리 반에만 있는 건 아니었다. 같은 학년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다른 반도 비슷한 분포를 보이고 있었다. 이제는 어느 학교에 가든 어느 학급을 맡든 통합교육은 결국 교사의 숙명이라 할 수 있다.
통합교육이 교사의 숙명이라면 교사들은 ‘다양성’이 있는 아이들을 과연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그 관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관점을 가다듬는 것만으로도 교사와 부모, 아이들의 삶이 훨씬 더 행복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교사들이 아이들을 신경다양성의 관점에서 바라보았으면 좋겠다.
신경다양성이라는 개념은 10여 년 전에 등장했는데, 우리나라에는 토마스 암스트롱의 『증상이 아니라 독특함입니다』라는 책이 번역 출간되면서 조금씩 알려지고 있다. 신경다양성에서는 인간의 두뇌 역량이 연속선상에 존재한다고 본다. 즉, 인간의 차이를 정상・비정상으로 나누지 않고 하나의 넓은 스펙트럼 안에 존재한다고 보는 관점이다. 사회성을 예로 들면 가장 왼쪽 끝에는 자폐적 성향이 강한 사람이 있을 것이며, 그다음은 아스퍼거 증후군, 그다음은 자폐증은 아니지만 공동체에 잘 섞이지 않으려는 사람, 내성적인 사람,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사람, 보통의 사교성을 가진 사람 순이며 오른쪽 끝으로 갈수록 대단히 사교적인 사람, 지나치게 사교적인 사람까지 모든
사람들이 하나의 연속선상에 존재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 반에 자폐 아동이 있다면 이 아이도 사회성의 연속선상에 있는 다양한 학생 중 한 명이라고 할 수 있다. 정상・비정상의 구분을 거부하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혁신적인 관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신경다양성 관점에서는 더 나아가 특별한 아이들의 결핍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강점을 활용한 교육을 강조한다.1 아이가 세상에 잘 적응하고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소위 ‘비정상’ 범주에 있는 아이들의 결함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을 교정하고 개선하는 데에만 집중하는 이른바 ‘결함 기반 교육’을 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결함을 중심으로 접근하는 것은 잠재 능력과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낮을 수밖에 없으며, 의학적 진단에 매몰되어 낙인효과를 가져오는 등의 부작용이 있었다. 그러나 신경다양성 기반 교육은 강점 중심 접근이므로 학생의 가능성에 대한 높은 기대감으로 적소구축을 통해 더 높은 성취와 성장을 이끌어낼 수 있다.
신경다양성 교실
도시학교에서 나는 26명의 아이들이 있는 4학년 학급을 맡았다. 우리 반에는 ADHD 성향이 있는 철민이라는 아이가 있었다. 철민이에게 의미 있는 수업이라면 우리 반의 모든 아이들에게도 배움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철민이의 특성에 맞는 신경다양성 교실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철민이는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을 가장 힘들어했다. 수업 시간 쉬는 시간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며, 여기저기 참견하면서 돌아다녔다. 참견을 하다 보면 아이들과 이내 싸움이 붙고 철민이의 공격적인 행동으로 아이들은 울음을 터뜨리며 내게 달려왔다. 철민이는 부주의, 과잉행동, 주의력 결핍, 공격성, 충동성까지 전형적인 ADHD 증상을 보이고 있었다. DSM-5(정신장애 진단 통계 편람)의 ADHD 진단 항목들에 거의 다 들어맞는 특성이었다. 철민이에게 그런 특성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의학적 관점으로 철민이를 바라보는 것은 거기까지였다. 이제부터 교사로서 내가 할 일은 철민이의 결핍이 아닌 강점에 초점을 맞추는 일이었다.
나는 수업시간에 철민이에게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말할 때면 죄책감이 밀려왔다. 철민이가 괴로워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묵인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하루에 적어도 한 시간 정도는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서 하는 활동적인 수업을 계획했다. 예를 들어 수학시간에 연습문제를 풀 때 아이들의 손등에 각자 다른 숫자 스티커를 붙여주고 교실을 돌아다니다 친구를 만나면 그 친구의 손등에 붙어 있는 숫자로 함께 곱셈과 나눗셈을 하는 식이었다. 사회시간에 경제교류에 대해 배울 때는 모둠별로 상점을 차리고 다른 모둠을 방문해 필요한 물건들을 사고팔도록 했다. 국어시간에는 친구들과 만나 상황과 장소에 맞는 대화를 주고받으며 서로 사인을 보내는 활동을 하기도 했다. 모두가 일어나서 수업을 하니 움직임이 큰 철민이가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철민이는 아주 신이 나서 수업에 끝까지 참여했다.
철민이의 움직임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도구도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첫 번째 도구는 짐볼이었다. 아이들 의자 높이의 짐볼 네 개를 한 모둠에 주고 한 시간씩 모둠별로 돌아가며 앉게 했다. 짐볼에 균형을 잡고 앉아 있으려면 몸을 미세하게 움직여야 하는데, 철민이는 짐볼에 앉아서 균형 잡는 것을 아주 재미있어 했고 불필요하게 돌아다니는 일이 거의 사라졌다.
두 번째로 활용한 도구는 스탠딩 책상과 밸런스 패드다. 스탠딩 책상 네 개를 한 세트로 놓고, 모둠별로 돌아가며 한 시간씩 스탠딩 책상에서 수업을 하게 했다. 스탠딩 책상을 쓸 때는 밸런스 패드 위에 올라가서 균형을 잡으며 서 있게 했다. 짐볼보다 더 움직임이 큰 밸런스 패드와 스탠딩 책상의 사용은 철민이의 움직임 욕구를 충분히 충족시켜줄 수 있었다.
움직이는 방식으로 구성된 수업과 짐볼, 스탠딩 책상, 밸런스패드의 활용은 철민이를 위해 시작했지만 우리 반 모든 아이들이 너무 좋아했다. 아이들은 짐볼과 스탠딩 책상이 자기 차례가 되기를 늘 기다렸다. 초등 단계의 아이들은 대부분 움직임의 욕구가 크다. 그중에서 철민이가 유독 움직임 욕구가 컸을 뿐이다. 그러니 신경다양성 교실이 모든 아이들에게 잘 맞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해서 철민이의 움직임 문제는 많이 해결되었으나 친구들에게 보이는 공격적인 성향은 여전히 큰 문제였다. 아이들은 철민이와 모둠활동을 잘해보려 애썼고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싶어 했다. 하지만 철민이가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면 협동적 배움이 일어나기 어려웠다. 친구에게 상처 주는 말을 서슴없이 하고 욕도 했다. 때로는 때리기도 했다. 나는 철민이를 따로 불러 타일러도 보고 다짐을 받기도 했지만, 내 앞에서만 대답을 잘할 뿐 금세 잊어버리고 똑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나는 철민이의 행동을 안건으로 학급회의를 열기로 했다. 자신의 행동으로 친구들이 얼마만큼 힘들어 하는지 먼저 느껴야 문제를 고쳐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학급회의가 형식적으로 흘러가지 않게 하기 위해 둥그렇게 앉아 모두 평등하게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아이들은 한 명씩 돌아가며 철민이에게 받았던 상처나 속상함을 말했다. 내가 아무리 타일러도 꿈쩍 않던 철민이가 친구들의 이야기를 다 듣더니 엉엉 울어버렸다. 철민이가 자신의 행동에 책임감을 느낀 것이다.
이 일이 있고 나서 철민이의 공격적인 행동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모둠활동을 할 때도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수학문제를 끝까지 풀었고 때로는 어려움을 겪는 친구를 도와주기도 하며 협동적 배움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변한 철민이를 칭찬하기 위해 나는 또다시 학급회의를 열었고, 학급의 모든 친구들이 한 명씩 돌아가며 철민이의 변한 모습을 칭찬하고 격려했다. 그 얘기를 듣던 철민이가 또 울었다. 철민이가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반성하고 책임감을 느끼고 나니 변하는 것은 일순간이었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던 철민이는 우리 반 봉사왕이 되었다. 당번이 아니어도 분리수거는 늘 자기가 하겠다고 나섰다. 다른 반에 전할 물건이나 가정통신문이 있으면 그것도 자기가 하겠다고 제일 먼저 손을 번쩍 들었다. 철민이는 우리 반 응급구조대원이 되었다. 누군가가 다쳤다는 소리를 들으면 아주 멀찍이 있다가도 번개처럼 달려와 아픈 친구를 데리고 보건실로 갔다.
움직임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수록 철민이가 얌전히 앉아서 활동하는 횟수는 점점 늘어났다. 역설적으로 내가 자리에 앉으라는 말을 하지 않을수록 아이는 더 잘 앉아 있게 된 것이다. 강점에 집중하다 보니 아이의 결함이 조금씩 사라져버렸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관점 바꾸기
교사 중에 힘든 학생 때문에 병가를 내거나 휴직했다는 분들을 종종 보곤 한다. 그 지경에 이르는 동안 교사는 번아웃을 겪고, 아이와 부모는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다른 특성을 가진 아이들을 힘든 아이가 아닌 신경다양성 아이로 바라보고, 결핍보다 긍정적인 면과 강점을 계속 찾다보면 아이의 결함이 더 이상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러면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들을 더 많이 생각해낼 수 있고, 그것을 이용해 수업을 풍성하게 할 수 있다. 신경다양성 관점은 교사뿐 아니라 부모에게도 긍정적인 에너지를 줄 수 있고, 높은 기대를 통해 아이들의 성장과 발달을 촉진하도록 도울 수 있다.
올해 새로 맡은 학급에는 난독증이 있는 아이, 청각장애가 있는 아이, 지적장애가 있는 아이, 언어유창성에 문제가 있는 아이가 있다. 올해 이 아이들과 또 어떤 빛깔의 신경다양성 교실을 만들어나갈지 무척 기대가 된다.
1. 이것을 적소구축이라고 하는데 뇌의 긍정적인 면을 최대화하고 부정적인 면을 최소화하여 아이의 특성에 맞게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을 말한다.
* 이 글은 격월간 <민들레> 통권 134호 '모두를 위한 교육, 통합교육'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