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한 편 읽기

우리가 몰랐던 MBTI

민들레
2021-12-15
조회수 8552

MBTI 유행 시대

MBTI 검사가 단순한 유행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제도와 문화를 만난 이제는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최근 일부 기업에서 채용공고를 내걸면서 필수 제출서류에 MBTI 검사 결과지를 명시해 논란이 된 바 있다. 어떤 기업에서는 MBTI 지표 중 하나인 외향성(E)에 해당하는 사람을 우대한다는 내용을 기재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MBTI 검사 형식을 빌려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라는 요구도 있다고 하니, 취업을 준비하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이제 MBTI 성향까지도 ‘준비’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MBTI 검사의 파급력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일찍부터 ‘심리테스트’를 고객의 흥미 유발 차원에서 써먹어왔던 마케팅 분야에서도 MBTI 검사를 활용한 이색 콘텐츠들을 내놓고 있다. 마치 성격유형 검사를 하듯 취향에 관한 질문을 한 후 답을 조합해 ‘유형’ 진단과 함께 과자, 치킨, 향수, 꽃, 숙박권 등 자사의 서비스와 상품을 소개하는 형식이다.

유명 연예인들의 MBTI 유형 고백(?)이 줄을 잇고 있으며, 팬들은 좋아하는 연예인과 자신의 MBTI가 어느 면에서 같고 다른지를 비교해보기도 한다. 흥미로운 것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양당에서 펼친 경선 토론에도 MBTI 검사가 등장했다는 점이다. 각 후보들이 MBTI 검사를 해본 경험을 이야기하고 자신의 유형을 소개하며 어필하는 모습은, MBTI 검사가 단순히 ‘흥미 있는 심리검사’ 차원을 넘어섰음을 방증한다.2

그야말로 MBTI 유행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심리학 연구를 업으로 삼고 있는 입장에서 작금의 MBTI 유행 현상은 무척 흥미롭게 다가온다. MBTI 검사가 한국 사회에서 이렇게 흥행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대로 지켜만 보고 있어도 괜찮을까? MBTI 유행을 바라보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만감이 교차하는 요즘이다.


나를 드러내는 네 자리 알파벳

나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다. 사회심리학에 더 관심이 있었지만, 사회심리학social psychology과 성격심리학personality psychology은 떼려야 뗄 수 없어서3 성격, 즉 개인차를 측정하는 심리검사에도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졸업을 앞둔 마지막 학기에 드디어 교내 학생상담센터에서 진행하는 ‘MBTI 검사를 활용한 집단상담’ 프로그램에 참여신청서를 냈다.

그렇게 생애 처음으로 MBTI 검사라는 것을 직접 해보았다. 검사지에는 응답해야 할 문항이 가득했고, 검사를 마치고 나면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네 자리 지표를 얻을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거짓 없는 마음으로 성실히 응답을 완료했더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결과는 내가 예상했던(?) 것과 조금 달랐다. 네 차원 모두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은 ‘가운데’ 지점에 좁쌀만 한 길이의 그래프가 옹기종기 모여 있었던 것이다. 외향적이지도 내향적이지도 않은, 감각적이지도 직관적이지도 않은, 사고에 의존하지도 감정에 의존하지도 않는, 판단을 중시하지도 인식을 중시하지도 않는 사람. MBTI 검사 결과가 말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었다.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이 ‘정상’인지 궁금해서 집단상담을 진행하던 선생님께 여쭤봤다. 내 결과지를 유심히 살펴보시던 선생님은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겠지만 정체성identity의 갈등, 미분화 등으로 인해 어느 한쪽으로 유형이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다만 이번 집단상담에 꾸준히 참여하다 보면 자신의 분명한 유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MBTI 검사가 끝난 후 비슷한 유형끼리 모여 앉아 조별 과제를 수행하는 집단상담 시간이 이어졌다. 나에게도 부여된 ‘유형’은 있었으니 집단상담에 참여할 수 있었지만, 어중간한 결과지에 적힌 그 유형을 과연 진정한 내 모습으로 받아들여도 될지 혼란스러웠다.


MBTI 검사가 고정관념을 만든다

MBTI 검사는 유형론이다. 그러므로 제3의 옵션은 없다. E가 아니면 I다. S가 아니면 N이다. T가 아니면 F다. J가 아니면 P다. 수십 명이든 수천 수만 명이든 결국 16가지 유형 중 한 가지에 반드시 포함된다. 만약 79억 명의 인류 모두가 MBTI 검사를 한다고 가정하자. 16개 유형별로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단순히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전체 인구의 16분의1인 약 5억 명이 나와 같은 유형으로 분류될 것이다. 하지만 ‘같은 MBTI 유형인 그 집단’은 과연 얼마나 동질적일까? 지역, 문화, 성별, 나이 등의 무수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이면서 공통적인 성향이 숨어 있을 거라고 믿어도 될까?

‘유형’으로 결과가 나타나는 검사는 ‘수치’로 나타나는 검사보다 대체로 정확하지 못하다. 유형을 정의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맹점이 생기기 때문이다. 첫째, 같은 유형 집단 내에서의 이질성을 설명할 수 없다. 같은 MBTI 유형에 해당하는 두 사람만 해도 자세히 살펴보면 반드시 다른 지점이 있게 마련인데 하물며 많은 사람들의 미세한 개인차를 설명하기에 MBTI 검사는 적합한 도구라 보기 어렵다.

둘째, MBTI 검사는 나처럼 ‘애매모호’한 사람들도 억지로 분류시키려 든다. 회색지대가 없다. 아주 조금이라도 ‘E’에 기울면 ‘외향적’인 사람으로, 반대로 아주 조금이라도 ‘I’에 기울면 ‘내향적’인 사람으로 분류된다. 결과적으로는 같은 유형에 속한 사람 A와 B 사이의 차이가 서로 다른 유형인 B와 C의 차이보다 오히려 더 벌어질 가능성이 생기고 만다. 

셋째, ‘분류’라는 행위 자체가 일종의 고정관념을 만든다. 진화심리학, 인지심리학 분야에서는 인간을 일명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라 부른다.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볼 때, 적응과 생존의 중요 전략 중 하나는 되도록 신체적・정신적 에너지를 아끼는 일이다. 에너지가 고갈되면 위기나 기회 상황에 적절히 대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은 본능적으로 에너지를 아껴 쓰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이미 만들어진 생각의 틀’인 고정관념과 편견 등에 의존하고자 한다는 것이 여러 심리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MBTI 유형은 일종의 고정관념으로 기능한다. 검사를 개발한 이들이 사전에 만들어둔 틀frame이다. 그래서 받아들이기 편하다. 어떤 측면에서 외향적이거나 내향적인지, 얼마나 더 외향적이며 덜 내향적인지 알 필요는 없다. 단지 다음 질문만 던지면 된다. “너, 무슨 유형이야? E야, I야?” 상대방의 대답을 듣고 나면 그 사람의 성격을 알게 되었다고 ‘착각’한다. 그 다음은 증거를 찾을 시간이다. 상대방이 그 유형임을 지지해줄 수 있는 단서들에 왠지 더 관심이 간다. 이렇게 확증편향이 이어지고, MBTI 유형이라는 고정관념은 더 공고해진다.


MBTI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이유

대중적 인기의 이면에 MBTI 검사의 신빙성을 둘러싼 논쟁이 무척 치열하다. MBTI 검사를 옹호하는 이들은 비교적 쉽고 간편하여 접근성이 좋다, 심리 분야를 넘어 마케팅・경영・산업 등 여러 분야에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유형을 분류하고 비교하는 재미가 심리학의 대중화에 기여하는 부분이 있다, MBTI 검사의 타당성을 통계적으로 입증한 연구들이 존재한다 등의 근거를 든다. 

반면 MBTI 검사를 비판하는 이들은 자기보고식self-report 검사이므로 자문자답에 불과하다, 프로이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융의 경험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이론을 근거로 만들어졌다, 유형론이어서 단순하다, 통계적으로 타당성이 충분히 확인되지 않았다 등의 이유를 들며 확산을 경계한다.

대학원 재학 당시, 연구를 위해 가설을 세우고 적절한 측정 도구(심리검사, 척도)를 선택할 때 중요한 기준은 해당 도구가 어떤 이론적 배경 아래 어떤 과학적 절차를 거쳐 만들어졌는가였다. 타당도 및 신뢰도가 지속적으로 입증되어왔는지, 저명한 심리학자들로부터 줄곧 선택을 받아왔는지도 중요한 기준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MBTI 검사는 심리학자들 사이에서 비교적 찬밥 신세였고, ‘정석적인’ 성격심리학 연구를 수행하려면 피해야 할 대상이었다. MBTI 검사에 대해 가장 빈번하게 제기되는 비판은 아마 타당성에 대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검사 결과가 얼마나 사람의 성격을 정확히 설명하는지, 검사에서 나타난 유형이 실제 의도나 행동, 성과를 얼마나 잘 예측하는지 등등의 문제다. 

하지만 MBTI 검사에 관한 논쟁의 본질은 ‘정확성’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MBTI 검사가 충분히 과학적이며 이론적으로 반복 검증되었다 하더라도, 성격연구를 수행하는 입장에서 ‘굳이’ MBTI 검사에 주목할 필요는 없었다. 심리학계에는 이미 MBTI 검사보다 더 정교하고 다양한 성격 특성을 포괄할 수 있는 도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상위 호환’이 존재하는데 굳이 리스크를 짊어지며 ‘하위 호환’인 MBTI 검사에 눈을 돌릴 이유가 없었다고 해야 할까. 다시 말해 ‘MBTI 검사는 타당성이 있는가’가 아니라 ‘MBTI 검사보다 더 타당한 검사가 존재하는가’가 중요했다. 타당성을 통계적으로 입증하는 자료가 제기되더라도, 이는 여전히 MBTI 검사가 안고 갈 한계일 것이다.


적당함의 묘미

MBTI 검사는 둥글둥글하다. 적당히 재미있고, 적당히 간편하고, 적당히 유용하며, 적당히 성격을 설명한다. 적당하고 무난한 검사도구. MBTI 검사에 대한 평가는 그 정도가 아닐까. MBTI 검사를 둘러싼 논쟁이 지속되는 이유는 아마 그 특유의 ‘적당함’을 견딜 수 없는 이들의 미련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MBTI 검사의 과학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려 드는 입장과 MBTI 검사를 그저 재미, 흥미만 유발하는 가짜 도구로 취급하려 드는 입장이 서로를 자극하다 보니, 소모적인 논쟁이 지속된다. 그래서 심리학을 공부한 입장에서는 MBTI 검사만큼 난처한 도구도 없다. 호의적인 태도를 취하자니 MBTI 검사를 비판하는 이들이 “당신 심리학 제대로 공부한 것 맞냐”며 날을 세우고,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자니 MBTI 검사를 즐기고 사랑하는 이들이 “나한테는 신기하게 잘 맞던데 당신은 왜 그러냐”며 날을 세운다.

적당히 활용하고, 적당히 즐기고, 적당히 잊자. 그것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MBTI 검사를 대하는 성숙한 태도다. MMPI4 같은 검사가 너무 길고 지루하다면 그보다 덜 딱딱한 MBTI 검사에 먼저 흥미를 붙여보자. 반대로 MBTI 검사를 먼저 해보고 재미와 호기심을 느꼈다면, 거기서 그치지 말고 전문가가 추천하는 검증된 심리검사들도 한번 만나보자.

결국 모든 심리검사의 궁극적 지향점은 ‘자기 이해’일 것인데, 그러자면 어떤 검사든 한 번의 시도로는 부족하다. 사람들에겐 자신을 탐색할 수 있는 더 많은 기회가 있어야 하고, 더 많은 자료가 수집되어야 한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검사 결과에 맹목적으로 휘둘리지 않으리라’는 결심이다. 검사 결과 그 자체가 우리 삶을 나아지게 만들 수는 없다. 받아든 결과의 의미를 고민해보고, 비판해보고, 탐구해보고, 고찰해볼 마음의 준비가 되었을 때 비로소 MBTI 검사든 여타 심리검사든 자신의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다. 


1. ‘“E로 시작하는 분 우대”…취업 스펙이 된 MBTI’, 《스냅타임》, 2021년 11월 2일자.
2. “내가 대통령 될 MBTI인가”…野 후보 4人4色 성격유형’, 《국민일보》, 2021년 10월 23일자.
3. 행동의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환경적 요인, 성격적 요인 모두 고려되어야 한다.
4. 미네소타 다면적 인성검사(Minnesota Multiphasic Personality Inventory). 심리학자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갈리지 않고 검사가 쉬워 정신과 병원이나 상담센터에서 널리 실시되고 있다.


글쓴이_허용회 (심리학 작가이자 연구원. 『당신은 심리학에 속았다』『자존감 높이려다 행복해지는 법을 잊은 당신에게』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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