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민들레 139호 기획특집 ‘영끌투자 시대의 교육’에 실린 서부원 선생님의 글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아이들의 첫 질문
“그걸 하면 얼마나 벌어요?” 학교 밖 전문기관에 의뢰해 직업탐색교육을 할 때, 아이들이 강사에게 가장 먼저 던지는 질문이다. 정작 해당 직업에 어떤 재능과 성격이 부합하는지, 향후의 전망은 어떤지, 그 일을 하려면 대학에서 뭘 전공해야 좋은지 등에 관한 질문은 없다. 숫제 돈만 많이 벌 수 있다면, 자신의 흥미와 적성 따위가 무슨 상관이냐는 투다. 고1 공통과정을 마치고 고2로 올라가기 전 선택교과를 고르는 데도 자신의 흥미와 적성은 낄 자리가 없다. 입으로야 아직 자신의 재능과 끼를 미처 발견하지 못한 탓이라고 눙치지만, 설령 배우고 싶은 분야가 있다 해도 섣불리 선택하진 못한다. 대학 진학과 취업에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겨지면 그 어떤 과목도 살아남지 못한다.
현행 교육과정이 적용되면서 고등학교의 문과, 이과 구분은 흐릿해졌지만, 여전히 물리와 화학, 생명과학, 지구과학 등의 이과 계열 과목을 선호하는 이유 역시 대학 진학과 취업 때문이다. 어쭙잖게 인문사회 분야를 전공했다간 백수 신세를 못 면한다는 건 이미 상식이다. 문과 전공자라서 죄송하다는 뜻의 ‘문송합니다’를 모르는 아이는 없다. 고등학교 남학생의 경우 선택 과목을 기준으로 문과와 이과의 비율이 얼추 2대8에 이르고, 주로 문과를 선호해오던 여학생들도 최근 이과 계열 과목을 선택하는 경우가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다. 타고난 본성과 흥미, 적성 등이 설마 그럴 리 있겠는가.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취업률의 지표대로 부모와 교사, 아이들 모두 부화뇌동한 결과라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이태 전, 아이에게 헛바람을 넣지 말라며 한 학부모로부터 질타를 받은 적이 있다. 아이가 갑자기 진로를 바꾸겠다고 한 게 화근이었다. 여태 경영학과나 행정학과에 진학하겠다던 아이가 느닷없이 역사를 전공하겠다고 말했단다. 말이 진로상담이지, 역사교사인 내가 아이를 꼬드겼다고 여겨 항의하러 찾아온 것이다. 아이가 역사 공부를 무척 재미있어 한다고 했더니, 대뜸 그 학부모는 사학과를 졸업해서 뭐 해 먹고 살겠느냐 반문했다. 세상 물정을 모르는 아이가 역사 공부에 반짝 관심을 가진 것뿐이라며, 아이 앞에서 사학과 이야기는 가급적 삼가 달라고 부탁했다. 내색하진 못했지만, 교사로서 자존감에 생채기가 났다.
‘돈’이 곧 ‘행복’이라는 아이들
해마다 8월 말부터 9월 초까지 학교의 수능 원서 접수창구가 분주해진다. 이미 졸업한 아이들이 다시 수능을 치르겠다며 찾아오는 것이다. 재수생과 3수생이 태반이지만, 드물게는 다섯 차례 넘게 도전하는 이른바 ‘장수생’들도 있다. 대개는 현재 대학에 다니고 있는 아이들로, 상위권 대학으로 옮겨가기 위해 수능에 재응시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예전엔 보기 힘들었던 현상이 적잖이 눈에 띈다. 남부럽지 않을 명문대생이 자퇴를 하고 수능에 다시 도전하려는 경우다. 심지어 서울대 학벌을 스스로 포기한 아이도 여럿 봤다. 고등학교 3년 내내 거의 모든 과목에서 내신 성적 1등급이었던 자타공인 ‘공부의 달인’ 그들이 뭐가 아쉬워서 서울대를 제 발로 뛰쳐나왔을까.
열이면 열, 의대와 치대 혹은 한의대에 진학하기 위해서다. 수능을 몇 번 더 치르는 한이 있어도 기필코 의대에 가고 말겠다는 한 아이는 왜 학창 시절 서울대라는 간판에 그토록 연연했는지 후회막급이라는 푸념까지 늘어놓았다. 당시 자신의 성적이면, 그들이 ‘지잡대’라고 조롱하는 지방 사립대의 의치대 정도는 너끈히 합격할 수 있었다며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이젠 중학생 정도만 되어도 안다. 앞으로는 ‘서연고’로 대표되는 명문대 학벌로도 취업이 녹록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명문대생이 되었다는 감격과 기쁨의 유효기간은 기껏해야 합격 후 1~2년 정도라는 것을 눈치채버렸다.
요즘 공부깨나 한다는 아이들의 공통된 지상 목표는 의치대 진학이다. 생명공학이나 화학을 전공하던 아이가 의대로 진로를 바꾸겠다는 건 그나마 낫다. 영문학도가 느닷없이 한의대로 진로를 바꾸고, 사회학도가 치대에 가겠다며 수능 기출문제에 애면글면할 때면 과연 그들을 응원하고 격려하는 게 맞나 싶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의 적성이 죄다 의사일 리는 없잖은가. 천신만고 끝에 진학한 의대의 속사정도 요지경인 건 마찬가지다. 듣자니까, 의대마다 전공 선택의 편중 현상이 극심한 모양이다. 하나같이 안과, 피부과, 정신과 등을 선호하는 반면, 노동강도가 높은 응급의학과나 외과 등은 기피한다는 거다. 수술을 담당하는 외과 안에서도 생명과 직결되는 흉부외과는 꺼리는 데 반해 성형외과는 지원자가 대거 몰린다고 한다.
진로교육 시간에 흥미·적성 검사와 성격 검사 등을 하지만 사실상 무용지물이다. 교사가 그 결과를 기준으로 상담하려 해도,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못해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런 검사들이 여태껏 아이가 매진해온 ‘목표 의식’을 흐리게 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각자의 흥미와 적성은 이젠 참고사항조차 못 되는, 하등 쓸데없는 지표로 전락해버렸다. 아이들이 이구동성 말하는 ‘영원한 행복’의 유일한 조건은 ‘돈’이다. “영원한 행복을 위해서인데, 그깟 3수와 4수가 문제겠어요. 누구는 검사 되려고 사법시험을 9수까지 했다는데, 저라고 못할 건 없다고 봐요.”
“돈벌이 안 되는 걸 왜 배우나요?”
“배우고 싶은 과목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고교학점제를 시행한다고 하니, 우리 학교에 비트코인이나 주식 투자 관련 과목이 개설되었으면 좋겠어요. 솔직히 말해서, 지금 배우는 것들은 대학입시 말고는 아무런 쓸모가 없잖아요.”
아이들은 대입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국영수’가 살아가는 데 전혀 보탬이 되지 않는 과목이라고 잘라 말했다. 덧셈, 뺄셈만 할 줄 알면 되지, 살면서 미적분을 써먹을 일이 있겠느냐는 식이다. 지난 23년 동안 내가 가르쳐온 한국사 과목도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 도발에 맞대응하기 위해 강화된 것이지, 살아가는 데에 딱히 필요한 건 아니잖냐고 되묻기도 했다. 국영수도 역사도, 비트코인이나 주식 관련 상식만도 못한 과목으로 여겨지는 셈이다.
한 아이의 SNS 소개 메시지에 ‘돈은 언제나 옳다’고 적혀 있었다. 학창 시절 내내 ‘수능 대박’을 꿈꾸고, ‘인생은 한 방’이라는 말을 전혀 민망해하지 않는 세대다. 그들은 소유한 재산이 얼마인가에 관심을 둘 뿐, 어떻게 재산을 축적했는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그들은 재리에 밝고 영악하다는 말을 더없는 칭찬으로 받아들인다.
한번은 ‘집과 토지 등 부동산을 재산 증식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게 온당한가’를 수업의 주제로 삼았다가 봉변을 당한 적도 있다. 아이들은 답변이나 토론 대신 질문 자체가 잘못됐다고 눈을 흘겼다. 한 아이는 “그렇다면 공산주의를 하자는 말이냐”며 모두의 말문을 닫게 만들어버렸다. 토론은커녕 애꿎은 공산주의의 개념과 역사를 설명하다 시간을 다 보냈다.
언젠가 학벌구조를 혁파하고 사회적 양극화를 완화하기 위한 대안으로 대학의 평준화와 이른바 ‘살찐 고양이 법’을 제시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건 공산주의 아니냐며 따지듯 되물었다. 아이들이 남북 분단의 현실을 직시해서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게 아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는 물론, 보수와 진보, 좌파와 우파 등의 구분 기준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할뿐더러 별 관심도 없다. 그들은 공산주의를 개인의 능력에 따른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이념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대학의 평준화도, ‘살찐 고양이 법’도 같은 맥락에서 극구 반대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능력의 차이에 따라 다르게 대우하는 게 공정하다고 믿는다. 세계적인 축구선수 리오넬 메시와 국내 프로축구 2부 리그의 무명 선수 사이의 수천 배 연봉 격차를 두고 대체 뭐가 문제냐고 반문한다. 그들은 능력 차이를 반영하지 않는 대우와 ‘부모 찬스’로 일컬어지는 불공정한 경쟁에 발끈할 뿐, 극단적인 경제적 양극화는 전혀 문제라고 느끼지 않는다. 이처럼 공정에 대한 인식이 편협하고 강퍅해질수록 돈의 위력은 배가된다. 그들은 정작 공정한 경쟁의 출발선이 어디인지 묻지 않는다. 그저 출발신호에 맞춰 뛰기 시작하면 공정한 것으로 친다. 말하자면, ‘과정의 공정’이 전부인 양 여기는 것이다. 종국에 경쟁에서 이기려면 애당초 돈이 뒷받침되어야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걸 아이들도 모르진 않을 텐데 말이다.
(계속)
이 글은 민들레 139호 기획특집 ‘영끌투자 시대의 교육’에 실린 서부원 선생님의 글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아이들의 첫 질문
“그걸 하면 얼마나 벌어요?” 학교 밖 전문기관에 의뢰해 직업탐색교육을 할 때, 아이들이 강사에게 가장 먼저 던지는 질문이다. 정작 해당 직업에 어떤 재능과 성격이 부합하는지, 향후의 전망은 어떤지, 그 일을 하려면 대학에서 뭘 전공해야 좋은지 등에 관한 질문은 없다. 숫제 돈만 많이 벌 수 있다면, 자신의 흥미와 적성 따위가 무슨 상관이냐는 투다. 고1 공통과정을 마치고 고2로 올라가기 전 선택교과를 고르는 데도 자신의 흥미와 적성은 낄 자리가 없다. 입으로야 아직 자신의 재능과 끼를 미처 발견하지 못한 탓이라고 눙치지만, 설령 배우고 싶은 분야가 있다 해도 섣불리 선택하진 못한다. 대학 진학과 취업에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겨지면 그 어떤 과목도 살아남지 못한다.
현행 교육과정이 적용되면서 고등학교의 문과, 이과 구분은 흐릿해졌지만, 여전히 물리와 화학, 생명과학, 지구과학 등의 이과 계열 과목을 선호하는 이유 역시 대학 진학과 취업 때문이다. 어쭙잖게 인문사회 분야를 전공했다간 백수 신세를 못 면한다는 건 이미 상식이다. 문과 전공자라서 죄송하다는 뜻의 ‘문송합니다’를 모르는 아이는 없다. 고등학교 남학생의 경우 선택 과목을 기준으로 문과와 이과의 비율이 얼추 2대8에 이르고, 주로 문과를 선호해오던 여학생들도 최근 이과 계열 과목을 선택하는 경우가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다. 타고난 본성과 흥미, 적성 등이 설마 그럴 리 있겠는가.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취업률의 지표대로 부모와 교사, 아이들 모두 부화뇌동한 결과라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이태 전, 아이에게 헛바람을 넣지 말라며 한 학부모로부터 질타를 받은 적이 있다. 아이가 갑자기 진로를 바꾸겠다고 한 게 화근이었다. 여태 경영학과나 행정학과에 진학하겠다던 아이가 느닷없이 역사를 전공하겠다고 말했단다. 말이 진로상담이지, 역사교사인 내가 아이를 꼬드겼다고 여겨 항의하러 찾아온 것이다. 아이가 역사 공부를 무척 재미있어 한다고 했더니, 대뜸 그 학부모는 사학과를 졸업해서 뭐 해 먹고 살겠느냐 반문했다. 세상 물정을 모르는 아이가 역사 공부에 반짝 관심을 가진 것뿐이라며, 아이 앞에서 사학과 이야기는 가급적 삼가 달라고 부탁했다. 내색하진 못했지만, 교사로서 자존감에 생채기가 났다.
‘돈’이 곧 ‘행복’이라는 아이들
해마다 8월 말부터 9월 초까지 학교의 수능 원서 접수창구가 분주해진다. 이미 졸업한 아이들이 다시 수능을 치르겠다며 찾아오는 것이다. 재수생과 3수생이 태반이지만, 드물게는 다섯 차례 넘게 도전하는 이른바 ‘장수생’들도 있다. 대개는 현재 대학에 다니고 있는 아이들로, 상위권 대학으로 옮겨가기 위해 수능에 재응시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예전엔 보기 힘들었던 현상이 적잖이 눈에 띈다. 남부럽지 않을 명문대생이 자퇴를 하고 수능에 다시 도전하려는 경우다. 심지어 서울대 학벌을 스스로 포기한 아이도 여럿 봤다. 고등학교 3년 내내 거의 모든 과목에서 내신 성적 1등급이었던 자타공인 ‘공부의 달인’ 그들이 뭐가 아쉬워서 서울대를 제 발로 뛰쳐나왔을까.
열이면 열, 의대와 치대 혹은 한의대에 진학하기 위해서다. 수능을 몇 번 더 치르는 한이 있어도 기필코 의대에 가고 말겠다는 한 아이는 왜 학창 시절 서울대라는 간판에 그토록 연연했는지 후회막급이라는 푸념까지 늘어놓았다. 당시 자신의 성적이면, 그들이 ‘지잡대’라고 조롱하는 지방 사립대의 의치대 정도는 너끈히 합격할 수 있었다며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이젠 중학생 정도만 되어도 안다. 앞으로는 ‘서연고’로 대표되는 명문대 학벌로도 취업이 녹록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명문대생이 되었다는 감격과 기쁨의 유효기간은 기껏해야 합격 후 1~2년 정도라는 것을 눈치채버렸다.
요즘 공부깨나 한다는 아이들의 공통된 지상 목표는 의치대 진학이다. 생명공학이나 화학을 전공하던 아이가 의대로 진로를 바꾸겠다는 건 그나마 낫다. 영문학도가 느닷없이 한의대로 진로를 바꾸고, 사회학도가 치대에 가겠다며 수능 기출문제에 애면글면할 때면 과연 그들을 응원하고 격려하는 게 맞나 싶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의 적성이 죄다 의사일 리는 없잖은가. 천신만고 끝에 진학한 의대의 속사정도 요지경인 건 마찬가지다. 듣자니까, 의대마다 전공 선택의 편중 현상이 극심한 모양이다. 하나같이 안과, 피부과, 정신과 등을 선호하는 반면, 노동강도가 높은 응급의학과나 외과 등은 기피한다는 거다. 수술을 담당하는 외과 안에서도 생명과 직결되는 흉부외과는 꺼리는 데 반해 성형외과는 지원자가 대거 몰린다고 한다.
진로교육 시간에 흥미·적성 검사와 성격 검사 등을 하지만 사실상 무용지물이다. 교사가 그 결과를 기준으로 상담하려 해도,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못해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런 검사들이 여태껏 아이가 매진해온 ‘목표 의식’을 흐리게 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각자의 흥미와 적성은 이젠 참고사항조차 못 되는, 하등 쓸데없는 지표로 전락해버렸다. 아이들이 이구동성 말하는 ‘영원한 행복’의 유일한 조건은 ‘돈’이다. “영원한 행복을 위해서인데, 그깟 3수와 4수가 문제겠어요. 누구는 검사 되려고 사법시험을 9수까지 했다는데, 저라고 못할 건 없다고 봐요.”
“돈벌이 안 되는 걸 왜 배우나요?”
“배우고 싶은 과목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고교학점제를 시행한다고 하니, 우리 학교에 비트코인이나 주식 투자 관련 과목이 개설되었으면 좋겠어요. 솔직히 말해서, 지금 배우는 것들은 대학입시 말고는 아무런 쓸모가 없잖아요.”
아이들은 대입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국영수’가 살아가는 데 전혀 보탬이 되지 않는 과목이라고 잘라 말했다. 덧셈, 뺄셈만 할 줄 알면 되지, 살면서 미적분을 써먹을 일이 있겠느냐는 식이다. 지난 23년 동안 내가 가르쳐온 한국사 과목도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 도발에 맞대응하기 위해 강화된 것이지, 살아가는 데에 딱히 필요한 건 아니잖냐고 되묻기도 했다. 국영수도 역사도, 비트코인이나 주식 관련 상식만도 못한 과목으로 여겨지는 셈이다.
한 아이의 SNS 소개 메시지에 ‘돈은 언제나 옳다’고 적혀 있었다. 학창 시절 내내 ‘수능 대박’을 꿈꾸고, ‘인생은 한 방’이라는 말을 전혀 민망해하지 않는 세대다. 그들은 소유한 재산이 얼마인가에 관심을 둘 뿐, 어떻게 재산을 축적했는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그들은 재리에 밝고 영악하다는 말을 더없는 칭찬으로 받아들인다.
한번은 ‘집과 토지 등 부동산을 재산 증식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게 온당한가’를 수업의 주제로 삼았다가 봉변을 당한 적도 있다. 아이들은 답변이나 토론 대신 질문 자체가 잘못됐다고 눈을 흘겼다. 한 아이는 “그렇다면 공산주의를 하자는 말이냐”며 모두의 말문을 닫게 만들어버렸다. 토론은커녕 애꿎은 공산주의의 개념과 역사를 설명하다 시간을 다 보냈다.
언젠가 학벌구조를 혁파하고 사회적 양극화를 완화하기 위한 대안으로 대학의 평준화와 이른바 ‘살찐 고양이 법’을 제시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건 공산주의 아니냐며 따지듯 되물었다. 아이들이 남북 분단의 현실을 직시해서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게 아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는 물론, 보수와 진보, 좌파와 우파 등의 구분 기준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할뿐더러 별 관심도 없다. 그들은 공산주의를 개인의 능력에 따른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이념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대학의 평준화도, ‘살찐 고양이 법’도 같은 맥락에서 극구 반대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능력의 차이에 따라 다르게 대우하는 게 공정하다고 믿는다. 세계적인 축구선수 리오넬 메시와 국내 프로축구 2부 리그의 무명 선수 사이의 수천 배 연봉 격차를 두고 대체 뭐가 문제냐고 반문한다. 그들은 능력 차이를 반영하지 않는 대우와 ‘부모 찬스’로 일컬어지는 불공정한 경쟁에 발끈할 뿐, 극단적인 경제적 양극화는 전혀 문제라고 느끼지 않는다. 이처럼 공정에 대한 인식이 편협하고 강퍅해질수록 돈의 위력은 배가된다. 그들은 정작 공정한 경쟁의 출발선이 어디인지 묻지 않는다. 그저 출발신호에 맞춰 뛰기 시작하면 공정한 것으로 친다. 말하자면, ‘과정의 공정’이 전부인 양 여기는 것이다. 종국에 경쟁에서 이기려면 애당초 돈이 뒷받침되어야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걸 아이들도 모르진 않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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