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07] 인지발달 이론의 두 갈래 _ 피아제와 비고츠키를 중심으로

2025-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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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제(1896-1980)와 비고츠키(1896-1934)는 같은 해에 태어났다. 피아제가 85세까지 장수한 반면 

비고츠키는 소련의 격변기에 정치적 희생양이 되어 38세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심리학의 여명기

경험과 이성은 인간의 인식 작용에서 두 가지 주요 원천이다. 배움에는 경험과 이성이 함께 작용한다. 아기가 말을 배우는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의 말을 들으며 옹알이를 하다(경험의 단계), 말의 원리를 깨치면(이성의 단계) 하나를 배우고 열을 알게 된다. 갑자기 말이 유창해지는 이 단계는 경험에 기반한 귀납적 학습에서 이성에 기반한 연역적 학습으로 도약이 일어나는 지점이다.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인간의 정신(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대한 고찰은 철학자들의 몫이었다. 칸트(1724~1804)는 이성 중심의 대륙의 합리론과 영국의 경험론을 통합하여 독자적인 인식론을 전개했다. 이성의 구조와 한계를 고찰하고(순수이성비판) 윤리의 근거를 밝힘으로써(실천이성비판) 독일 관념철학의 토대를 놓은 칸트는 전통적인 인식론을 넘어서고자 했지만 사변적인 인식론에서 벗어나진 못했다.

19세기 자연과학의 눈부신 성장은 인간에 대한 이해를 근본에서 흔들어놓았다. 다윈의 『종의 기원』, 페흐너의 『정신물리학』, 세체노프의 『뇌의 반사작용』 같은 자연과학 연구물들이 1860년에 쏟아져 나왔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르지 않다’는 자연과학적 발견은 인간의 정신 작용에 대한 과학적 탐구로 이어져 심리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낳았다. 인간의 정신에 관한 연구가 철학에서 심리학의 영역으로 넘어온 것이다.

최초의 심리학은 자기 내면의 생각이나 감정을 스스로 관찰함으로써 심리를 이해하고자 하는 내관주의였다. 분트의 내관주의가 안고 있는 비과학적인 면을 비판하면서 관찰 가능한 행동을 통해 심리를 연구하고자 하는 새로운 흐름이 생겨났다. 뇌의 반사작용에 대한 세체노프의 연구를 기반으로 한 파블로프의 조건반사 이론을 필두로 행동주의 심리학 시대가 열렸다. 스키너를 비롯한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은 사고나 감정 같은 것도 행동의 일종으로 보고 인간의 모든 행동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보았다.

스키너에 따르면 인간 정신의 자율성이나 자유는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환상을 포기하고 행동을 적절히 조건화함으로써 행복한 삶이 가능하다고 보는 행동주의 심리학은 기계적 유물론과 통한다. 비고츠키 또한 유물론자였지만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아이들이 스스로 지식을 구성한다고 보는 피아제의 발달적 구성주의 이론에 동조하여 행동주의 심리학과는 거리를 두었다.1) 그는 또한 아이들이 독자적으로 지식을 구성해간다고 본 피아제와 달리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이 미치는 영향에 더 주목했다.

1896년 같은 해에 태어난 피아제(1896-1980)와 비고츠키(1896-1934)는 각각 서유럽과 동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한 심리학자다. 비고츠키가 38세에 요절한 반면 피아제는 85세까지 살면서 인지과학의 토대를 확립했지만 비고츠키 이론은 피아제를 비롯해 심리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매개자로서의 교사 역할의 중요성에 대한 비고츠키의 관점은 오늘날 교육계에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피아제의 발생적 인식론

인간은 어떻게 앎에 이르는 걸까. 소나무와 버드나무를 나무라는 하나의 범주로 분류하는 인지 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걸까. 피아제의 평생에 걸친 과업은 인식의 문제를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것이었다. 사변적인 철학만으로는 인식의 문제를 제대로 규명할 수 없다고 생각해 과학적 방법을 접목시킨 것이다. 피아제는 경험론과 합리론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철학적 인식론에 생물학과 심리학 등을 적용하여 인간이 지식을 습득하는 능력이 생물학적 구조가 ‘발생하듯’ 발달한다고 보고, 이를 ‘발생적 인식론(Genetic Epistemology)’이라 이름 붙였다.

스위스 태생의 피아제는 제네바의 몬테소리학교 교장을 역임하기도 했는데, 아동의 인지능력이 발달하는 과정을 탐구함으로써 아동이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이나 언어 사용법이 성인과 어떻게 다른지 밝혀냈다. 아동이 어른의 축소판이 아니라 나름의 독특한 정신적 구조를 가진 존재임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어린이의 인지발달과정은 감각운동기(0~2세), 전조작기(2~7세), 구체적 조작기(7~11세), 형식적 조작기(11세~ )로 나뉘며2), 각 단계는 다음 발달단계의 발생적 원인이 된다.3) 문화나 학습의 차이와 상관없이 발달과정은 동일한 단계를 거치며, 각 단계는 건너뛰거나 역행할 수 없다고 보았다.

이러한 피아제 이론은 비고츠키 이론과 대비되어 ‘인지적(발달적) 구성주의’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이후 다양한 문화권에서 다양한 계층의 아동들의 인지발달에 관한 연구가 이루어지면서 아동이 처한 환경에 따라 개인 차가 상당히 크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많은 연구에서 전조작기에 구체적 조작이나 형식적 조작 능력을 보이는 아동도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피아제가 아동의 인지능력을 과소평가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피아제도 후기에는 인지발달이 반드시 단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주변 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변화한다고 보았다.

인지발달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밝히는 데 주력한 피아제는 인지발달을 도울 수 있는 교육방법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피아제 스스로는 교육자가 아니라고 했지만 그의 발달 이론은 교육에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 20세기 동안 교육, 그중에서도 유아교육 분야는 특히 심리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심리학이 발달하면서 아동의 ‘발달’에 대한 믿음도 굳어졌지만 20세기 후반에 이에 회의를 품는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발달심리학이 자칫 아이들을 발달 수준 또는 단계라는 일반적 도식으로 분류함으로써 아동을 발달단계의 최하위에 위치한 결함 있는 존재로 가정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의식이다.

 

비고츠키의 문화역사적 인식론

피아제가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아동 스스로 인지구조를 발달시킨다고 본 반면 비고츠키는 주변 사람들의 사회적, 언어적 지원을 통해 인지구조가 발달한다고 보았다. 아동 혼자서는 상위 발달단계에 이를 능력이 없더라도 적절한 도움이 주어지면 가능하다고 본 점에서 피아제보다 교육과 교사의 역할을 강조한 셈이다. 아동이 독자적으로 지식을 구성해간다고 본 피아제의 (초기) 이론을 ‘개인적(발달적) 구성주의’, 비고츠키 이론을 ‘사회적 구성주의’로 분류하는 이유다.

러시아의 중산층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레프 비고츠키는 1917년 혁명이 일어나자 마르크스 사상에 심취해 ‘심리학에서의 자본론’ 집필을 필생의 과업으로 삼았다. 그의 대표작이자 유작인 『생각과 말Thinking And Speech』4)이 그 결과물인 셈이다. 마르크스주의자로서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데 기여하고자 한 비고츠키는 아이러니하게도 (피아제를 비롯한 서방 학자들과 교류하며) 사회주의 사상을 타락시켰다는 이유로 스탈린 독재 정권에 의해 재판에 회부되었다가 변론 과정에서 결핵이 악화되어 38세라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인지능력 등 학습자 개인의 인적 특성을 중시하는 피아제와 달리 학습자 주변의 인적·물적 환경 요인을 더 중시한 비고츠키 이론은 행동주의 이론에 기반해 구성주의 이론을 접목했다고 볼 수 있다. 아동이 독자적으로 지식을 구성한다고 본 피아제에 따르면 교사의 역할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반면 비고츠키 이론은 교사의 역할을 강조한다. 그의 책이 시종일관 피아제의 관점을 반박하는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는 점에서 비고츠키 이론을 구성주의의 한 흐름으로 보는 것은 무리라는 비판도 있다.

학습 기제와 관련해 심리학은 20세기 전반기까지 학습자가 지식을 습득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면 후반기에는 ‘매개’ 역할을 강조하는 쪽으로 변해왔다. ‘습득 모형’에서 ‘매개 모형’으로 변화한 데는 비고츠키 이론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아이들이 주어진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독자적으로 또는 상호작용을 통해 적극적으로 지식을 구성해간다고 본 것이다. 피아제 또한 후기에는 비고츠키처럼 사회적 상호작용과 문화적 맥락이 아동의 인지발달에 미치는 영향을 강조하게 되었다.

비고츠키에 따르면 가르치는 일은 학생에게 근접발달영역에 적합한 정신도구를 제공해주고 그 이용 방법을 매개해주는 것이다. 삽 같은 기술도구가 인간의 육체노동을 확장시키듯이 문자와 같은 정신도구가 정신활동을 확장시킨다고 본 것이다. 문화(공간)의 씨줄과 역사(시간)의 날줄로 직조된 정신도구라는 매개체를 통해 학습이 이루어진다고 보는 비고츠키의 이론을 후학들은 ‘문화역사 심리학’이라 이름지었다. 때문에 그의 이론을 ‘문화역사주의’로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비고츠키는 인간의 정신기능을 하위 정신기능과 고등 정신기능으로 나누었는데, 가장 고등한 정신기능에는 ‘사고에 대한 사고’로서 메타인지 능력에 의한 자기조절적 사고가 있다. 반응적 주의집중을 보이는 (주의가 산만한) 아이들이 고등 정신기능인 자발적 주의집중에 이를 수 있도록 돕는 방법으로 비고츠키는 타인조절과 자기조절 개념을 제시했다. 이는 자기 눈의 들보는 못 봐도 남의 눈에 티끌은 잘 보는 인간의 심리를 이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타인조절을 징검다리 삼아 자기조절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감정이나 행동을 조절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에서 자신의 감정과 행동을 알아챌 수 있게 된다.

 

기술이 인간의 인지작용에 미치는 영향

자연과학의 발달과 함께 인간을 ‘생물의 한 종’으로서 바라보게 되면서 인간 자신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인지능력이 아무리 탁월하다 해도 인간 또한 동물의 속성을 갖고 있으며, 어쩌면 원생동물의 모습도 인간 속에 있을지 모른다. 심리학은 인간 심리도 자연과학적 관점으로 바라보면서 자연을 조작하듯 심리도 조작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기게 만들었다. 계몽주의 시대 끝자락이었던 19세기 말의 광고는 소비자를 설득하는 합리적인 광고문구로 가득했는데 비해 20세기 말에는 이성 대신 직관에 호소하는 광고가 대세가 된 것도 심리학의영향일 것이다.

오늘날 뇌과학이 인지과학 및 교육에 미치는 영향이 점점 커지고 있다. MRI 기술은 뇌의 특정 영역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 뇌의 다양한 영역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암묵적 학습이 뇌의 주의집중 네트워크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밝혀냄으로써 수면 등 휴식과 망각이 학습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있다. 이는 인지과정이 단순히 의식적 노력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만은 아님을 말해준다. 덕분에 아동의 발달과정과 학습이 이루어지는 원리에 대한 이해도 깊어지고 있다.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변화는 인간의 인지능력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쳐왔다. 16세기 초 인쇄술이 등장하고 독서가 대중화되면서 좌뇌에 기반한 문화가 활성화된 반면 20세기에 등장한 라디오와 텔레비전, 21세기에 등장한 스마트폰으로 인해 문자의 시대가 저물고 말과 이미지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인쇄술이 보급되면서 마녀사냥이 일어났다면 반복되는 말과 이미지를 통한 대중선동은 파시즘을 낳고 전쟁을 불러왔다.5) 신기술이 대중의 편견과 증오를 증폭시킴으로써 일어난 비극이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기술은 인류문명에 어떤 작용 또는 부작용을 가져올까?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틱톡 등이 책을 압도하기에 이른 오늘날 좌뇌 중심에서 우뇌 중심의 문명으로 대전환이 일어날까, 아니면 좌뇌와 우뇌가 균형 잡힌 새로운 문명이 탄생할 까? 아이들에게 미치는 스마트폰의 압도적 영향력은 아이들의 성장과 발달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인간의 인지능력이 갖는 한계와 고유성을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는 아이들에게 어떤 능력을 길러주어야 할까?

피아제의 개인적(발달적) 구성주의 이론은 1995년 김영삼 정부 때 이루어진 5.31교육개혁에 따른 7차 교육과정의 철학적 토대가 되었다. 아동이 지식을 독자적으로 구성한다는 이론에 따라 아동의 흥미와 자기주도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학교교육이 변화해왔다. 학습자(수요자) 중심주의 또한 그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사회적 구성주의에 기반한 비고츠키 이론이 주목받는 것도 학습자 중심주의의 한계를 자각하기 시작한 때문일 것이다. 지난 30년 동안 우리 교육을 지배해온 패러다임을 이제는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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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인의 특성보다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한 점에서 비고츠키 심리학은 구성주의보다 행동주의 심리학에 가깝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이성우, ‘레프 비고츠키’, 『교육사상가의 삶과 사상_서양편2』, 304p)

2) 피아제는 연령은 발달단계를 이해하는 보조수단일 뿐이라고 보았다.

3) 피아제가 말하는 조작(operation)은 정신적 활동을 말한다. 형식적 조작기에는 추상적, 논리적 사고와 전체를 조감하는 메타인지 능력이 발달한다.

4) 비고츠키가 세상을 떠난 1934년에 출간된 이 책은 마르크스주의자가 쓴 책이라는 이유로 서방세계에서 외면당하다 1962년 『사고와 언어Thought And Language』라는 제목으로 영문판이 나온 뒤 본격적으로 연구되어 1987년에 다시 『생각과 말Thinking And Speech』이라는 제목으로 재번역되어 나왔다. 한국어판도 다른 역자에 의해 각각 따로 출간되었다.

5) 레너드 쉴레인, 『알파벳과 여신』, 윤영삼 조윤정 옮김, 콘체르토. 673쪽.


_현병호(교육매체 《민들레》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