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7] 자기를 안다는 것

2026-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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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 입구에 새겨진 경구 '너 자신을 알라'


너 자신을 알라(γνῶθι σεαυτόν). 고대 그리스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 입구 기둥에 새겨진 글귀로, 소크라테스가 즐겨 인용해 현자의 격언으로 널리 알려졌다. 2500년이 지나도록 빛이 바래지 않는 걸로 볼 때, 제 주제를 모르고 나대는 인간이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많은 걸까. 그만큼 자기를 아는 것이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우리 옛말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말이다. 자신과 관련된 일은 객관적으로 판단하기가 힘들다 보니 자기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데서 생겨난 말이다. 

그런데 요즘은 면도기의 성능이 좋아져서인지 제 손으로 머리를 미는 일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닌 듯하다. 목욕탕에서 일회용 면도기로 손수 머리를 미는 스님을 가끔 보는데, 면도보다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얼굴에 칼을 대는 게 아니니 면도 아닌 ‘두도’라고 해야 할까.) 기술이 발달하면서 옛말이 무색해진 셈이다. 그렇다면 자기를 아는 일도 옛날보다 더 쉬워졌을까. 2500년 동안 인간이 제자리 걸음을 하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성격 5요인론을 비롯해 다양한 심리검사 기법이 개발되어 사람들이 자신의 성향을 파악하기가 수월해지기도 했다.

 

불교 연기론이 말하듯이 나의 실체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인드라망 세계 속 하나의 그물코로 존재한다. 그물코를 이루는 끈들이 변하면 주변 그물코들도 미세하게나마 변하기 마련이다. 내가 인연 맺고 있는 모든 사람과 생명체, 사물들 그리고 사상과의 관계는 시시때때로 변화하므로 자신에 대한 앎도 끊임없이 변한다. 때문에 자기를 알기가 더 어렵다. 자기를 아는 좀 더 쉬운 길 중 하나는 음식과의 관계를 통해 자기를 알아가는 것이다. 먹는 일은 누구나 날마다 끊임없이 하는 일이고 오감이 관여하는 일이어서 관찰하기가 비교적 수월하다. 

자기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양을 아는 것은 자신에 대한 앎의 중요한 부분이다. 뷔페식 음식을 남기지 않을 만큼 덜어 먹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나이 든 이들 중에도 양을 가늠하지 못하고 번번이 음식을 남기는 이들이 있다. 자신의 식사량을 아는 앎은 고정불변의 앎이 아니라 그날의 컨디션과 음식 종류에 따라 달라지므로 그때그때 미묘한 조정 작업이 필요하다. 특히 좋아하는 음식이 있으면 식욕이 앞서기 쉽고, 배가 고플 때도 그러하다. 자기가 먹을 수 있는 양을 아는 것은 지금 자신이 어느 정도 허기진 상태인지를 아는 것이자 자신과 음식의 관계를 아는 것이기도 하다. 

싫은 음식을 굳이 좋아하려 애쓸 필요는 없을 것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음식이 있고,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며 살아도 된다. 영양의 균형을 잃을 정도가 아니라면. 오이를 싫어한다면 다른 채소로 필요한 영양분을 섭취할 수도 있다. 오이를 좋아하는 이들이 많지만 싫어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7번 염색체의 ‘TAS2R38’라는 유전자는 쓴맛에 민감한 타입과 둔감한 타입이 있는데, 민감한 타입은 쓴맛을 수백 배 더 강하게 느낀다고 한다. 오이의 쓴맛과 독특한 향에 더 민감한 사람은 오이를 싫어할 수도 있다. 

음식을 골고루 먹어야 한다는 것은 하나의 이념이다. 돼지 같은 잡식성 동물 외에 대부분의 동물은 편식을 한다. 팬더는 거의 대나무 잎만 먹고 산다. 동물들이 저마다 다른 동물이 잘 먹지 않는 것을 주식으로 삼음으로써 생태계의 균형이 이루어지듯이, 편식은 개체를 위해서나 전체를 위해서나 결코 나쁜 일이 아니다. 쌀농사 지역에서 태어난 사람은 밥을 주식으로 삼고, 밀농사 지역 사람들은 빵과 면이 주식이다. 생명은 적응력이 뛰어나 밀이 주식인 지역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은 대부분 불용성 단백질인 글루텐을 소화하는 효소를 갖고 태어나지만 운이 나쁘게 글루텐 불내증을 갖고 태어나는 사람도 있다.


음식에 대한 호오(好惡)는 어렸을 때 자주 먹어본 음식의 영향이 결정적이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은 물심양면에 다 해당하는 말이다. 자주 접하다 보면 익숙해지고 몸에 붙는다. 습관이 성격을 만드는 만큼 좋은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은 사람이 되는 길이다. 사기꾼은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한다. 사기를 잘 당하는 사람은 습관적으로 사람을 믿는다.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신호가 잡혀도 이를 무시한다. 자기 안의 ‘신념 체계’가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지를 아는 것은 자신에 대한 중요한 앎이다. 신념도 사고의 습관이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런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음을 아는 것 또한 자신에 대한 앎이다. 싫은 음식이 있듯이 싫은 사람이 있을 수 있고, 그와의 만남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 관계를 어떻게 맺어야 할지를 아는 것은 중요한 삶의 기술이다. 음식 고유의 풍미가 있듯이 사람의 기질은 잘 변하지 않는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 있는 이유다. 하지만 음식에 대한 호오는 변하기도 한다. 나이를 먹다 보면 입맛도 변하고, 어려서 싫어하던 음식을 어른이 되어 좋아하게 되기도 한다. 내가 아는 어제의 나와 내일의 내가 다를 수 있다. 자신에 대한 앎은 계속 업데이트되어야 한다. 


_현병호(민들레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