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01] 응원봉 불빛, 그 너머 _청년 여성들이 왜 더 우울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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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계간 민들레 최근호에 실린 글을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 전문은 민들레 155호(2025년 봄) '청년 여성들이 왜 더 우울한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쌤, 주변에 우울증 앓고 있는 애들 엄청 많아요.” 

언젠가 졸업생들과의 만남에서 한 여학생이 전해준 이야기였다. 대안학교 교사를 그만두고 대학원에서 상담심리를 공부하며 논문을 써야 할 시기가 다가왔을 때, 문득 그 말이 떠올랐다. 사회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는데, 특히 여학생들은 사회에서 겪은 성차별, 여성혐오에 대한 이야기를 속풀이하듯 털어놓았다. 청년 여성들의 우울증에 대해 구체적인 데이터들을 살펴보기 시작하면서 깜짝 놀랐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2년 우리나라 우울증 환자는 100만 명을 넘어섰는데, 2018년에 비해 32.9% 급증한 수치다.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갈 무렵이라고는 하지만 2022년은 독감환자(85만 명)보다 우울증 환자가 더 많았다. 특히 20대와 30대 여성 우울증 환자는 2018년에 비해 각각 110%, 84%로 증가해 전 세대, 전 연령 중 가장 높은 비율을 보였다. 어떤 질병이 특정 성별과 세대에서 갑자기 100%씩 증가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감을 잡기 어려웠다. 

우울증과 관련 깊은 자살률 역시 20~30대 여성에게서 심각했는데 한 연구에 따르면, 현재 20~30대 청년 여성의 경우 이들 어머니 세대에 비해 자살을 선택하게 만드는 삶의 조건이 5~7배 증가했고 이 세대는 앞으로도 높은 자살률을 보일 것으로 예측했다. 이는 유럽의 전쟁 세대나 구소련에서 체제 붕괴를 겪었던 세대와 비슷한 양상이라고도 했다.1) 대체 청년 여성들은 어떤 심리적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일까? 청년 여성들에게 우울증이 급증한 이유는 무엇일까? 


_건강보험심사평가원, ‘생활 속 질병 진료 행위 통계’(2023)

 

우울 경험이 있는 청년 여성 다섯 명을 만나 심층 인터뷰를 했다. 여러 차례 인터뷰를 하면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참여자 모두 우울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고 있다는 점이었다. 정신과에서 조울증 혹은 우울증이라고 진단을 받은 경우에는 진단명 자체가 우울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내가 우울증이 있어서 우울하다는 것이다. 현대의학이나 상담심리학에서도 우울증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건만 이들은 상담과 정신과 치료를 통해 우울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고 여기게 된 것이다. 

철학자 한병철은 신자유주의는 “개선해야 하는 것은 사회가 아니라 영혼의 상태”2)라고 하면서 사회가 책임져야 할 고통을 개인의 심리적인 문제로 만든다고 지적한다. 상담이나 심리치 료 등 인간 심리를 대상으로 하는 임상 기법들이 중심이 되어 나타난 치료요법 문화Theraphy Culture에 대해 연구한 사회학자 프랭크 푸레디Frank Furedi는 우리가 감정, 정확히는 ‘감정적 결함’에 주목하는 문화 속에서 살고 있다고 말한다.3) 이를테면 1993년부터 2000년까지 영국 언론에서는 자존감, 트라우마, 스트레스, 신드롬, 카운슬링이라는 단어가 급격히 증가했다. 그는 국가가 심리학자들과 함께 교육과 보건 영역에서 치료요법이 전 생애에 걸쳐 필요한 것으로 여기게 만듦으로써 감정 문제는 스스로 대처하면 안 되는 것이라는 믿음을 전파하고 있다고 보았다. 

치료요법 문화가 한국에서도 서서히 자리잡기 시작했다는 증거를 찾아볼 수 있다. 2004년 제정된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2008년 이명박 정부는 학교폭력, 학업중단 등 학교에서 발생하는 각종 위기에 대처하겠다며 ‘학교안전 통합시스템(위Wee프로젝트)’을 시행한다. 이에 따라 전국에 교육청이 운영하는 상담실이 빠르게 확산되었고, 2023년에는 전국 각 학교별로 위클래스가 73.2%나 구축되었다. 상담심리 분야의 가장 큰 학회인 한국상담심리학회 회원 수는 2010년부터 매해 2천여 명씩 증가해 2022년에는 40,390명에 이르게 된다. 2010년보다 4배가 증가한 것이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재난 대응에 미흡했던 박근혜 정부가 유일하게 발 빠르게 대처한 건 유가족에 대한 심리지원이었다. 참사 직후 나흘 만에 안산시에는 통합재난심리지원단이 구성되었고, 보름 뒤에 안산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가 문을 열었다. 사회역학자 김승섭은 사고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고 그 의미를 이해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의학적 치료로 ‘마인드 컨트롤’을 받은 세월호 유가족 사례를 소개하며, 사회의 모순들이 집약된 구조적 폭력에 기인한 트라우마를 개인적 수준의 ‘치료’만으로 충분하다고 여기는 분위기를 비판한다.4) 푸레디가 미국에서는 2001년 9.11 세계무역센터 테러, 영국에서는 1997년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죽음으로 치료요법 문화가 강력한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고 지적한 대로, 우리나라 역시 사회적 참사가 치료요법 문화가 자리 잡는 계기가 되었을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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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회 문제를 개인의 심리 문제로 치환하는 분위기에서 성장한 청년 여성들이 우울 문제를 ‘개인화’하는 데는 취업, 연애, 결혼, 사회생활이나 일상에서 겪는 문제들을 ‘내 탓’으로 돌리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연구에 참여한 청년 여성은 온갖 사회문제에 적극적으로 연대하고 참여하면서도 집에 돌아오면 우울증 약을 삼키며 스스로를 자책하는 자신이 이상하다고 했다. 그들 모두 ‘감정을 온전히 다룰 줄 알았더라면’, ‘그때 그 감정의 원인을 알았더라면’ 하며 후회하거나 감정에 적절한 이름을 붙여 이를 분석하려고 애썼다. 

한 참여자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에게 외모 관리를 하라는 압박을 받았으며, 대학에서는 남학생들에 의해 ‘외모 순위’가 매겨졌다. 여러 사회 활동을 하면서 ‘예민한 애’, ‘감정 관리 못하는 애’가 되지 않으려 애썼다. 페미니스트로서 ‘꼴페미’로 비춰지고 싶지 않았고, 동년배 남성들이 사용하는 ‘개념녀’에도 들어가기 싫었다. 우울증 진단을 받기 전에는 ‘나약한 사람’으로 비칠까봐 걱정됐고, 진단을 받은 후에는 ‘아픈 애라 예민하다’라는 말을 듣기 싫었다. 청년 여성들에게 ‘감정’은 계발해야 할 많은 능력 중에 하나였다.

성차별적인 문화로 인해 여성 특히 청년 여성들은 자신의 감정을 성찰하고 관리하는 데 매달리게 된다. ‘여성은 감정적’이라는 편견은 분노나 짜증 같은 자연스러운 감정도 ‘히스테리’한 것으로 비춰지거나, 신체적인 고통조차 ‘심리적’인 고통으로 해석되기 쉽게 만든다. 여기에 ‘반페미니즘’이나 ‘미묘한 성차별’, ‘여성 혐오’와 같이 청년 여성들이 노출되기 쉬운 폭력적인 사회 분위기가 더해지며 그들은 일상적인 ‘감정 생활’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청년 여성들은 많은 상황에서 안전하기 위해, 페미니스트나 예민한 여성, ‘아가씨답지 않게’ 우울한 여성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적절한 반응을 연출하며, 감정을 곱씹고 후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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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내란 정국에서 응원봉을 들고 나온 청년 여성들이 주목받았다. 일각에서는 이에 대해 ‘민주화된 시기를 산 첫 세대’, ‘세월호,‧이태원 참사를 경험한 세대’라는 분석과 ‘선한 영향력 이라는 독특한 세계관을 가진 케이팝 세대’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하지만 응원봉이 꺼지고 난 뒤 그들이 사회에서 어떤 일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청년 여성들이 일상을 살아내기 위해 우울증 약을 삼키고 상담실을 찾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이들이 앞선 사회, 혹은 사회운동의 성과나 결과물만은 아닐 것이다. 모든 세대는 앞선 세대의 성과뿐만 아니라 과제 역시 물려받는다. 울리히 벡에 따르면 서구 사회는 근대의 시민혁명, 현대의 68혁명 같은 정치・사회적 격변기를 거치며 세대 간 문화변동, 성역할 변화를 통해 서서히 개인화되었다. 반면 한국은 군부 정권에 의해 ‘개인화 없는 산업화’가 진행되었고, 민주화 이후 뒤늦게 개인화 과정이 압축적으로 진행되었지만 이 과정은 IMF 위기와 신자유주의 경쟁 프레임에 묻혔다. 청년 남성들은 집단적이고 병영 같은 조직 문화가 남아 있는 가부장적 노동시장 구조 속에서 타협하기 쉬웠던 반면 청년 여성들은 ‘페미니즘 리부트’ 같은 이슈를 겪으며 한국 사회의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부상했다. 개인화 과정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성역할 변화 같은 문화변동의 과제를 동시에 짊어진 주체가 된 것이다.5)

이들은 개인주의를 ‘이기주의’라고 손가락질하는 부모와 직장 상사의 영향력 아래에 놓여 있고, 같은 세대와는 페미니즘을 중심으로 한 ‘젠더 전쟁’에 처해 있으며, ‘기후재난’ 같은 전 세계 시민들의 공통된 위험에도 대응하며 살고 있다. 청년 여성들에게 우울이라는 감정은 세대 갈등과 젠더 갈등, 기후재난의 갈등을 마주하며 전쟁 같은 일상을 살아내고 있다는 흔적, 혹은 그 고단한 일상을 서로 나눌 수 있는 채널 같은 것이 아닐까. 

고통이야말로 사회를 이해하는 열쇠이자 암호라는 한병철의 말처럼 이들의 고통은 숨겨진 우리 사회의 암호일 수 있다. 다시 말해 청년 여성들의 우울에는 ‘우리’가 반영되어 있다. 청년 여성들이 ‘한국 사회의 일상’을 지켜내기 위해 거리로 나온 것에 대한 관심만큼, 그들의 일상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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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숙랑・백경흔, 「청년 여성의 자살 문제」, 사회건강연구소, 2019.

2) 한병철, 『고통 없는 사회_왜 우리는 삶에서 고통을 추방하는가』, 김영사, 2021.

3) 프랭크 푸레디, 『치료요법 문화』, 박형신・박형진 옮김, 한울아카데미, 2016.

4) 김승섭, 『아픔이 길이 되려면』, 동아시아, 2017.

5) 홍찬숙, 『한국 사회의 압축적 개인화와 문화변동』, 세창출판사,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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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김정환 _ 인천에서 상담사로 일하고 있다. 석사 학위 논문으로 청년 여성들의 우울 경험에 대해 연구하며 이 글을 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