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지나,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 돌베개, 2023
가난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자본의 위세가 등등한 시대에 돈이 얼마나 없어야 가난한 걸까. 국가가 매겨놓은 소득 기준이란 게 있지만, 삶에서 체감하는 가난은 그 수치와 상관 없는 경우도 많다. “세상에는 빈곤 계측 모델로는 잡히지 않는 일인칭의 쟁쟁한 목소리들이” (안온,『일인칭 가난』, 10쪽) 있다. 성실하기만 하면 빈곤을 벗어날 수 있었던 70년대, 성실만으론 그 굴레를 벗기 쉽지 않던 2000년대를 거쳐 오늘날의 가난은 “오장육부에 착 달라붙은 채” 대를 이어 세습된다. 뿐만 아니라 이들 삶에 새겨진 가난의 무늬는 시간, 문화, 주거, 정서의 결핍까지 다양한 불평등으로 무한 확장된다. 교육비와 양육비 부담 때문에 아이를 낳지 않는 나라, 돈의 파급력이 매서운 세상에서 아이 키우는 일은 더욱 어려워졌다.
그래서 강지나의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를 펼치기 망설였다. 흔히 가난을 생각하면 떠올릴 수 있는 비극을 전시하고 있으면 어쩌나. 가난이 아이들의 성장을 얼마나 방해하는지, 인간의 삶을 얼마나 비루하게 만드는지 여실히 고발하고 있다면 나는 그 현실을 직면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저자는 “빈곤층의 삶을 팔아 이용하려는 것 아닌가 하는(9쪽)” 스스로의 의구심을 딛고 이 책을 썼다. 어려운 환경에 처한 다른 청(소)년을 위해 자신의 이야기를 기꺼이 들려준 가난한 아이들을 생각하며. 학교에서 만나는 힘든 아이들을 돕고자 사회복지학을 공부한 교사 강지나는 ‘빈곤 대물림’을 연구하며 알게 된 지역아동센터 아이들 중 여덟 명을 3, 4년마다 만나 심층 인터뷰 한다. 가난한 청소년기를 지난 아이들이 10년 후 성인이 되기까지, 그들의 삶은 이렇게 기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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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 되어 경제력을 가진 후에도 그들은 여전히 가난했다. 악착 같이 알바를 하거나 취업을 해서 번 돈은 고스란히 가난한 가족에게 들어갔다. 이대로라면 그들에게 가난은 과도기적인 게 아니라 일생으로 이어질 듯했다. 또한 없는 것은 돈뿐 아니라 사람이었다. 성장의 과정을 지켜보며 지원해줄 사람. 어쩌면 정서적 울타리의 부재가 물질적 결핍보다 더 큰 것도 같았다. 불안정한 가족관계 속에서 자란 아이들의 인터뷰에는 ‘돈이 없어서’라는 말만큼이나 ‘사랑받지 못하고 자라서’ ‘기댈 곳이 없어서’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장애, 알코올 의존증, 가정폭력, 이혼 같은 말들이 뒤섞여 있는 그들 부모의 삶도 만만치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자식을 건사하기 어려운 부모 대신 아이들을 살뜰히 챙긴 어른은 사회복지사, 교회 관계자, 지역아동센터 교사 같은 이들이었다. 아이들은 그 어른들에게 의지해 어두운 10대 시절을 힘겹게 통과했다.
가난할지언정 부모 역할을 놓지 않는 어른도 있었다. 남편의 폭력에서 벗어나 홀로 두 아이를 키운 지현의 어머니는 알코올 의존증과 정신장애가 있었지만, 아이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치료와 아이들의 학습, 교우 관계에 도움이 되는 온갖 사회제도를 ‘영리하게’ 찾아다녔다. 비굴하지 않게 도움을 청할 줄 아는, 강인함과 유머를 지닌 엄마의 성격을 꼭 닮은 지현은 무한한 사랑과 믿음을 준 엄마에게 고마워했다.
기초생활수급자를 유지하기 위해 대학에 가야 했던 (취업해서 소득이 생기면 기초수급이 끊어지므로) 그는 장학금 신청서에 어려운 사정 이야기를 반복해 쓰다 보니 글쓰기 실력이 늘었다며 웃는 여유를 보인다. 밝은 지현에게서 저자는 타고난 성격 외에도 ‘성찰하는 힘’이 있음을 발견한다. 이 능력은 어떤 환경에서든 인간이 사회적, 정신적으로 성숙해지고 독립된 인간이 되기 위해 필요한 중요한 덕목이다.
그래서 저자는 단순히 교복을 사주고, 학비를 대주고, 문제집 값을 깎아주는 교육자본만으로는 빈곤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고 말한다. 빈곤은 인간의 존엄을 침해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취약한 가족구조를 해소하고, 그들이 성장하면서 훼손당한 사회적 자아를 복구하고, 건강한 사회적 관계를 맺어야 빈곤에서 탈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2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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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아이들의 지난한 성장기를 들여다보며, 동시에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부유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풍족하면 선택과 경험의 기회가 넓어진다. 하지만 그 기회가 반드시 행복을 담보하진 않는다. 외려 행복을 망치는 경우도 흔하다. 서울 강남에는 고급 승용차를 타고 정신과를 드나드는 아이들이 가장 많이 산다. 한쪽은 부족해서, 다른 한쪽은 너무 과해서 이 시대 아이들은 아프다.
그래서 이 책은 가난한, 부유한 같은 수식을 빼고 그저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를 되묻게도 한다. 아이들이 자라는 데는 돈이 필요하지만, 그게 절대적인 조건은 아니라는 사실이 선명해진다. 저자는 “성장하고 싶은 어린 생명이 가난이란 굴레와 가족으로 인해 어떤 영향을 받고 굴절되고 다시 일어서는지 기록하고 싶었다(7쪽)”고 말한다. 가난에 대한 일반적 인식과는 다른, 그들의 삶에서 발견한 통찰과 지혜를 말하고 싶었다고. 애쓰는 자신이 가여울 만큼, 애쓰면서 자라는 책 속의 아이들을 보며 나는 탄복했다. 인간이란 얼마나 끈질기게, 행복하고자 하는 존재인가. 책의 제목을 나름 이렇게 풀어본다. 어린 생명이 온전한 어른으로 자라기 위해서는, 정말 무엇이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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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장희숙 _ 민들레 편집장
강지나,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 돌베개, 2023
가난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자본의 위세가 등등한 시대에 돈이 얼마나 없어야 가난한 걸까. 국가가 매겨놓은 소득 기준이란 게 있지만, 삶에서 체감하는 가난은 그 수치와 상관 없는 경우도 많다. “세상에는 빈곤 계측 모델로는 잡히지 않는 일인칭의 쟁쟁한 목소리들이” (안온,『일인칭 가난』, 10쪽) 있다. 성실하기만 하면 빈곤을 벗어날 수 있었던 70년대, 성실만으론 그 굴레를 벗기 쉽지 않던 2000년대를 거쳐 오늘날의 가난은 “오장육부에 착 달라붙은 채” 대를 이어 세습된다. 뿐만 아니라 이들 삶에 새겨진 가난의 무늬는 시간, 문화, 주거, 정서의 결핍까지 다양한 불평등으로 무한 확장된다. 교육비와 양육비 부담 때문에 아이를 낳지 않는 나라, 돈의 파급력이 매서운 세상에서 아이 키우는 일은 더욱 어려워졌다.
그래서 강지나의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를 펼치기 망설였다. 흔히 가난을 생각하면 떠올릴 수 있는 비극을 전시하고 있으면 어쩌나. 가난이 아이들의 성장을 얼마나 방해하는지, 인간의 삶을 얼마나 비루하게 만드는지 여실히 고발하고 있다면 나는 그 현실을 직면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저자는 “빈곤층의 삶을 팔아 이용하려는 것 아닌가 하는(9쪽)” 스스로의 의구심을 딛고 이 책을 썼다. 어려운 환경에 처한 다른 청(소)년을 위해 자신의 이야기를 기꺼이 들려준 가난한 아이들을 생각하며. 학교에서 만나는 힘든 아이들을 돕고자 사회복지학을 공부한 교사 강지나는 ‘빈곤 대물림’을 연구하며 알게 된 지역아동센터 아이들 중 여덟 명을 3, 4년마다 만나 심층 인터뷰 한다. 가난한 청소년기를 지난 아이들이 10년 후 성인이 되기까지, 그들의 삶은 이렇게 기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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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 되어 경제력을 가진 후에도 그들은 여전히 가난했다. 악착 같이 알바를 하거나 취업을 해서 번 돈은 고스란히 가난한 가족에게 들어갔다. 이대로라면 그들에게 가난은 과도기적인 게 아니라 일생으로 이어질 듯했다. 또한 없는 것은 돈뿐 아니라 사람이었다. 성장의 과정을 지켜보며 지원해줄 사람. 어쩌면 정서적 울타리의 부재가 물질적 결핍보다 더 큰 것도 같았다. 불안정한 가족관계 속에서 자란 아이들의 인터뷰에는 ‘돈이 없어서’라는 말만큼이나 ‘사랑받지 못하고 자라서’ ‘기댈 곳이 없어서’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장애, 알코올 의존증, 가정폭력, 이혼 같은 말들이 뒤섞여 있는 그들 부모의 삶도 만만치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자식을 건사하기 어려운 부모 대신 아이들을 살뜰히 챙긴 어른은 사회복지사, 교회 관계자, 지역아동센터 교사 같은 이들이었다. 아이들은 그 어른들에게 의지해 어두운 10대 시절을 힘겹게 통과했다.
가난할지언정 부모 역할을 놓지 않는 어른도 있었다. 남편의 폭력에서 벗어나 홀로 두 아이를 키운 지현의 어머니는 알코올 의존증과 정신장애가 있었지만, 아이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치료와 아이들의 학습, 교우 관계에 도움이 되는 온갖 사회제도를 ‘영리하게’ 찾아다녔다. 비굴하지 않게 도움을 청할 줄 아는, 강인함과 유머를 지닌 엄마의 성격을 꼭 닮은 지현은 무한한 사랑과 믿음을 준 엄마에게 고마워했다.
기초생활수급자를 유지하기 위해 대학에 가야 했던 (취업해서 소득이 생기면 기초수급이 끊어지므로) 그는 장학금 신청서에 어려운 사정 이야기를 반복해 쓰다 보니 글쓰기 실력이 늘었다며 웃는 여유를 보인다. 밝은 지현에게서 저자는 타고난 성격 외에도 ‘성찰하는 힘’이 있음을 발견한다. 이 능력은 어떤 환경에서든 인간이 사회적, 정신적으로 성숙해지고 독립된 인간이 되기 위해 필요한 중요한 덕목이다.
그래서 저자는 단순히 교복을 사주고, 학비를 대주고, 문제집 값을 깎아주는 교육자본만으로는 빈곤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고 말한다. 빈곤은 인간의 존엄을 침해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취약한 가족구조를 해소하고, 그들이 성장하면서 훼손당한 사회적 자아를 복구하고, 건강한 사회적 관계를 맺어야 빈곤에서 탈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2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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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아이들의 지난한 성장기를 들여다보며, 동시에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부유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풍족하면 선택과 경험의 기회가 넓어진다. 하지만 그 기회가 반드시 행복을 담보하진 않는다. 외려 행복을 망치는 경우도 흔하다. 서울 강남에는 고급 승용차를 타고 정신과를 드나드는 아이들이 가장 많이 산다. 한쪽은 부족해서, 다른 한쪽은 너무 과해서 이 시대 아이들은 아프다.
그래서 이 책은 가난한, 부유한 같은 수식을 빼고 그저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를 되묻게도 한다. 아이들이 자라는 데는 돈이 필요하지만, 그게 절대적인 조건은 아니라는 사실이 선명해진다. 저자는 “성장하고 싶은 어린 생명이 가난이란 굴레와 가족으로 인해 어떤 영향을 받고 굴절되고 다시 일어서는지 기록하고 싶었다(7쪽)”고 말한다. 가난에 대한 일반적 인식과는 다른, 그들의 삶에서 발견한 통찰과 지혜를 말하고 싶었다고. 애쓰는 자신이 가여울 만큼, 애쓰면서 자라는 책 속의 아이들을 보며 나는 탄복했다. 인간이란 얼마나 끈질기게, 행복하고자 하는 존재인가. 책의 제목을 나름 이렇게 풀어본다. 어린 생명이 온전한 어른으로 자라기 위해서는, 정말 무엇이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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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장희숙 _ 민들레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