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04] 고립·은둔 청소년이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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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NHK가 2006년에 방영한 히키코모리의 일상을 다룬 애니메이션 <NHK에 어서 오세요>의 한 장면 


최근 들어 ‘고립·은둔 청소년’ 혹은 청년이란 표현을 자주 볼 수 있다. 이보다 먼저 쓰이던 ‘은둔형 외톨이’는 일찍이 일본에서 사회문제로 대두된 ‘히키코모리(引き籠もり)’의 번역어다. 히키코모리는 ‘뒤로 물러나다’ ‘방에 틀어박히다’라는 뜻으로 6개월 이상, 길게는 3∼4년 심하면 10년 이상 다른 사람과 말도 안 하고 혼자 생활하는 젊은이를 가리킨다. 일본에는 그런 상태로 나이가 들어 40~50대에 이른 사람들이 늘고 있다. 

운둔과 고립이 유사하지만 엄밀히 구분하자면, 고립 청소년은 긴급한 상황에서 도움을 요청하거나 정서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경우를, 은둔 청소년은 집 안에만 있으면서 사회 활동을 하지 않는 경우를 가리킨다. 고립되었다고 반드시 은둔하는 것은 아니지만 은둔의 경우 고립은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현상이므로 이 둘을 묶어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고립·은둔은 가족 역할의 부재, 지속된 빈곤과 삶의 위기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지만, 부모와 가족이 있고 학교도 다니고 심지어 직장생활도 잘 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고립·은둔의 길로 들어서는 경우도 있다. 같은 고립·은둔이라도 그 안에 전혀 다른 문제들이 뒤섞여 있으므로 그 해법 또한 달라야 한다.

정부 차원에서 처음으로 전국 단위의 고립·은둔 청소년 실태를 파악해 지난 3월 발표한 ‘2024 고립·은둔 청소년 실태조사’(여성가족부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 따르면, 9~24세 응답자 19,160명 중 고립·은둔 청소년은 각 2,412명(12.6%), 2,972명(16.0%)로 전체 응답자의 28.1%에 이른다. 의외로 여성 청소년의 비율(70.1%)이 남성 청소년(29.9%)보다 2배 이상 높으며, 연령별로는 19~24세 50.4%, 13~18세 45.2%, 9~12세 4.5%로 나타났다. 외출은커녕 ‘자기 방에서도 안 나온다’고 응답한 초고위험군은 395명(2.1%)에 달했다. 지난 2주 동안 가족·친척 또는 친구·지인과 대화한 경험이 ‘0~2번 이내’라는 응답도 약 27%에 달했다. 

이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도움으로는 ‘눈치 보지 않고 들러서 머물 수 있는 공간(79.5%)’, ‘경제적 지원(77.7%)’, ‘혼자 하는 취미·문화·체육활동 지원(77.4%)’, ‘진로활동 지원(75.1%)’ 등이 있었다. 고립·은둔 상태가 시작된 이유로는(복수 응답) 친구 등 대인관계의 어려움(65.5%)이 가장 많았고 공부·학업 관련 어려움(48.1%), 진로·직업 관련 어려움(36.8%), 가족관계 어려움(34.3%) 순이었다. 따돌림 등 폭력 경험도 24.7%에 이른다. 

고립·은둔 청소년/청년을 위한 정책도 확대되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고립·은둔  청소년 원스톱 패키지’라는 이름으로 전국 각 지역마다 설립된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 꿈드림을 통해 이들을 발굴하고 상담과 치유를 병행한다. 필요에 따라 학업도 지원한다. 고립·은둔은 청소년만의 문제는 아니기에 부모교육도 병행한다. 고립·은둔 자녀에 대한 이해를 돕고 부모와 자녀 간의 소통을 통해 관계 회복을 지원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작년 4월부터 인천, 울산, 충북, 전북 4개 시도를 선정해 ‘고립·은둔 청년 전담 시범 사업’을 시작했다. 무료 자가진단을 통해 스스로 고립·은둔을 인식할 수 있게 하고 상담과 치유 프로그램을 통해 일상 회복을 지원한다. 청년들의 고립·은둔 문제는 실업 문제와도 연결되므로 고용노동부와 연계해 인턴 성격의 청년 ‘일 경험’ 사업 등도 진행 중이다. 2020년부터 고립·은둔 청년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던 서울시는 지난해 이들을 집중 지원하는 ‘서울 청년기지개센터’를 열었다. 50여 개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센터 내에는 이들을 위한 전용 공간인 ‘우리집’에서 공동생활을 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고립·은둔 생활을 하게 되는 청년들의 경우, 문제가 시작된 시기는 대부분 청소년기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앞선 설문의 응답자 중 72.3%가 18세 이전에 고립·은둔 생활을 시작했다고 답했다. 초등학생 때 시작된 경우도 17%였다. 이들 중 70.1%는 고립·은둔 상태를 벗어나고 싶다고 느낀 적이 있고 55.8%는 실제로 벗어나려 시도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잠시 빠져나왔을 뿐 다시 예전 생활로 돌아갔다는 응답도 39.7%에 달했다. 학교폭력이나 왕따 등의 문제로 청소년기부터 어려움을 겪다가 청년기에 들어서면서 사회와 단절하고 숨게 되는 것이다. 청소년들이 세상으로부터 단절되지 않도록, 조기에 문제를 발견하고 적절한 도움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함을 말해준다. 

고립·은둔 문제가 중장년층으로도 이어지면서 전남 고흥에서는 지난 5월, '고흥군 은둔형 외톨이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조례에 따라 고립·은둔 인구의 생활 실태 파악하고 심리·정서 상담, 교육 및 직업훈련, 자조 모임 등 사회참여 프로그램 연계를 통해 단계적 사회복귀를 지원하는 맞춤형 지원체계를 구축할 계획이다. 서울시는 고립·은둔 상태에 있는 가구가 복지관 출석이나 상담, 사회활동 등에 참여하면 적립금을 지급하는 ‘참여형 안부확인 적립금 시범사업’을 6월부터 시행한다. 현재의 돌봄·지원 서비스를 지속해서 거부하는 고립 가구, 기존의 안부 확인 서비스 접근이 어려운 청·중장년, 고립 상태로 인해 별도의 서비스 연계가 필요한 이들을 대상으로 선정할 계획이다. 


_편집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