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04] 교사의 정치기본권 회복과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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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를 배제하는 현행 제도


대한민국 헌법은 국민 주권을 선언한다. 민주주의는 역사적으로 점점 더 많은 사람에게 주권을 부여해 주는 방식으로 발전하였다. 유럽 민주주의가 시원으로 삼는 고대 그리스의 극소수 유산자 시민에서, 민주주의 혁명기의 남성으로, 노예해방의 노예로, 서프러제트 운동의 여성으로 점차 참정권이 넓혀져 왔다. 대한민국은 일제 식민 통치, 미군정, 이승만 독재, 박정희 군사독재, 신군부 독재 등 억압 체제를 극복하고 민주주의 국가의 대열에 합류하였다. 

그러나 교원과 공무원 개인의 참정권을 봉쇄한 정치제도는 후진성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1963년 12월 박정희 정권의 국가재건최고회의는 공무원의 정치 참여를 전면 봉쇄한 국가공무원법을 내놓았다. 이후 여러 차례 국가공무원법이 개정되었으나 ‘공무원의 정치기본권 제한’이라는 조항은 60여 년 동안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 지금 교사의 정치기본권을 회복하는 일은 독재 유산을 청산하고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한 단계 발전시키는 일이다. 민주주의 지평을 더 넓히는 일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교육 공약이었던 교사의 정치기본권 보장이 실행되면, 앞으로는 교사가 정당 가입, 정치 후원, 개인의 의사 표현 등이 가능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일부 시민들은 여전히 교사의 정치기본권에 대한 막연한 불신감에 쌓여 있다. 이렇게 변하면 교사 단체와 교사 개인이 파당적이고 정파적으로 학생과 수업을 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시민들의 미신적인 담론을 하나씩 들추어 가며 오해를 불식시키고자 한다. 다음 여섯 가지는 흔히 시민들이 보이는 오해이며, 교사 정치기본권 논의에서 극복할 과제이기도 하다.

 

첫째, 정치에 물들지 않은 교사가 교실 수업에서 중립적으로 지도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생각과는 반대로 정치 중립이라 함은 사회 현안에 대한 대립 지점, 역사적 인식, 중심 가치를 이해하는 정치 문해력 등 정치 소양을 갖춘 것을 말한다. 학생에게 정치 혐오를 부추기는 교사는 진짜 좋은 교사가 아니다.

둘째, 교사 중립성을 제한한 법령이 없어지면 수업 중립성이 무너질 것이다? 교육기본법 제6조와 제14조는 수업 중립성을 엄격히 규정하고 있다. 즉, 학교 밖 교사 참정권을 주더라도 교실과 수업에서 중립적으로 지도해야 할 의무는 엄격하다. 또한, 여러 연구에서 대부분 교사는 중립적으로 설명하고 의견을 듣는 역할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셋째, 학교와 교실은 정치와 동떨어진 무풍지대가 되어야 한다? 공교육은 한 번도 정치적 영향권을 벗어나 본 적이 없다. 자사고 전환, 늘봄 정책, 디지털교과서 도입, 입시전형 등 교육정책이 첨예한 정도만큼 교사의 수업행위에 막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넷째, 학생은 정치적 시민성이 부족하여 쉽게 세뇌된다? 대한민국은 16세 정당 가입과 18세 투표 및 출마권이 부여할 만큼 학생 시민성도 성숙하였다. 현재, 학교와 교실 풍토는 과거 병영학교의 억압 체제를 거두어내고 인권과 의견을 존중하는 분위기로 발전하였다.

다섯째, 교원의 참정권을 배제한 까닭은 교원의 직업 안정성을 부여하기 위한 것이다? OECD 거의 모든 국가가 교사 정년제를 시행하지만, 교사의 참정권에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 교사에게서 참정권을 뺏지 않아도 공교육 제도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섯째, 1960년 4.19 헌법이 교사의 참정권을 막았다? 4.19 헌법은 교육의 정치 중립을 보장한다고 명시하였을 뿐이다. 실제 교사 참정권을 봉쇄한 법은 국가재건최고회의가 준비한 1963년 12월 17일 국가공무원법 개정안이다. 이 법안은 국회를 해산한 박정희 정권이 교사와 공무원을 정치권력의 노예로 만들기 위해 개정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진정한 정치 중립의 길

 

교사와 학교를 둘러싼 정치적 장과 영향력


정치적 주체를 정치세력과 학교 및 교사로 둔다면, 정치적 영향력을 위의 화살표처럼 표현해 볼 수 있다. 그동안 우리 헌법은 교육에 정치 외압이 작동하지 않으려면 ①번과 같이 교사들에게 정치세력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도록 주문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국가공무원법, 정당법, 정치자금법, 교원노조법, 공직선거법은 ②번 교사들의 정당, 언론, SNS 활동을 봉쇄하였다. 국회는 연목구어(緣木求魚) 하듯 전혀 맞지 않는 방식으로 교육의 정치 중립을 보장하겠다고 한다. 이런 결과, 윤석열 정권 하에서 ‘리박스쿨’이 양성한 늘봄 강사의 정치 파당성은 검증받지 못하였다. 따라서 교육의 정치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통제해야 할 것은 ①번 교사에 대한 정치세력의 영향과 ③번 학생에 대한 교사의 영향력이다.

그러려면 국회는 교육기본법과 초·중등교육법을 보강하여 외부 정치세력이 손쉽게 학교에 정치 외압을 부리지 않도록 보호 입법을 해야 한다. 예를 들면, 교육감이 정치단체와 언론이 학교 교육을 침해하는 상황이라면 의무적으로 고발하도록 할 수 있다. 

또한 국회는 현재 선언에 불과한 교육기본법과 초·중등교육법을 보강해야 한다. 국회는 정치 중립인 것과 아닌 것을 구분하는 명확한 규정을 마련하여야 한다. 모호한 법조문은 이를 따르는 교사에게 많은 부담을 주고 시민교육을 회피하는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이제, 입법의 시간 

 

어찌 보면 국가공무원법, 정당법, 공직선거법, 교원노조법 등은 교사라는 존재를 정치로부터 떼어놓으려고 만든 장벽이다. 그러나 교사 사회 안에서 근본 모순인 참정권 박탈 상황에 대하여 제2, 제3의 교원 참정권 운동과 투쟁이 나타나는 것을 모순투성이 장벽으로 막을 수 없다. 역사적으로 토론회, 성명, 시국선언, 시위, 위헌 심판, 국회 청원 등 끊임없이 나타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제 시민들도 민주주의 발전의 관점으로 교사의 정치기본권을 회복하는 운동을 이해하고, 이에 참여해주길 바란다. 민주주의 발전사에 깊게 배어 있는 철학을 이해하자. 노예와 여성 등 사회 약자에 대한 의심과 혐오를 극복하고 시민권을 부여했던 것처럼, 교사에게 씌운 모순적이고 불합리한 미신을 타파하고 합리성의 토대 위에 참정권을 부여해 주자.

정치기본권을 회복한 교사들의 변화는 결과적으로 공교육 발전에 기여할 것이다. 정치 혐오를 극복하고 교사는 전문성과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다. 현 제도는 정치적 중립성을 핑계로 ‘정치에 물들지 않은 교사’와 같은 교사 우민화 현상을 일으킨다. 정치기본권이 회복된 세계 안에서 올바른 시민성을 가진 교사는 학생에게 정치 참여의 건전한 태도를 가르치고, 성숙한 정치 문해력을 가지라고 말할 수 있다. 교사의 정치기본권은 헌법이 부여한 교육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실현하는 데 이바지할 것이다.

또한 제도 정치로부터 소외를 극복한 교사는 정당과 정치단체에 올바른 교육정책을 제안할 목소리를 갖게 될 것이다. 참정권의 주체로서 교사는 제도권 정당이 교육에 바른 입장을 갖게 하고, 정치 지형에 따라 교육이 휘둘리지 않도록 중심을 잡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학교 현장과 교육정책이 밀접하게 연결될 수 있다.

이제는 입법의 시간, 국회의 시간이다. 그동안 수많은 운동, 연구물, 위헌 소송, 국가인권위원회 권고, ILO 권고 등이 제도를 바꾸라고 요구하였다. 바로 지금, 국회가 입법으로 답해야 할 때이다. 반면, 출마와 같은 직접 참정권이나 공직 선거의 선거운동에 대해서는 국민 공감대를 넓혀야 할 과제 또한 여전히 남아 있다. 교육감 선거와 같이 공교육 경험이 반드시 요구되는 공직 선거에 대해서 교사의 출마와 선거운동을 전면 허용할 필요가 있다. 


_설진성(30년 차 초등학교 교사. 교사 참정권 금지 법률 헌법소원 운동, 교원 승진제도 개혁운동, 연임제도로 기초학력 보장 운동에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