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서울광장에서 열린 퀴어축제. 오세훈 시장 이후 광장을 개방하지 않아 도심지 거리에서 퍼레이드를 펼치고 있다.
동성애 유행 시대?
지난 주말, 퀴어영화제에 다녀왔다. 영화제 장소가 서울의 외곽, 서점에 딸린 소규모 극장인 것이 의아했는데 스테프에게 전해들었다. 작년 퀴어영화제를 열었던 아트하우스 모모(이화여대 안의 독립예술영화관)에서 대관을 거절했다고. 계약서까지 작성했던 극장 측은 다수의 민원이 접수됐다면서 “대학생들에게 동성애 문화를 확산시키는 것이 우려되며, 기독교 창립 이념에 반하는 영화는 상영할 수 없다”는 것이 학교의 입장이라고 돌연 태도를 바꾸었다.(학생들은 이에 반발해 7월 4~5일 ‘제1회 이화퀴어영화제’를 자체 기획하고 있다.)
찬밥 신세인 것은 퀴어영화제만이 아니다. 2000년 50여 명으로 시작한 퀴어문화축제는 올해 14만여 명이 참석할 만큼 규모가 커졌지만 해마다 장소 섭외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임명된 2년 전부터, 주요 행사장소였던 서울시청광장에서 쫓겨나다시피 해 곳곳을 전전하고 있다. 서울시는 그날 다른 행사가 있다는 이유를 댔지만 축제 기간에 필요한 토론회, 강연회 장소 대관도 연달아 거부했다. 장소를 내어주지 않는 것은 존재를 거부한다는 뜻이다. 어린이들이 카페에 들어갈 수 없고, 장애인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는 것은 모두 소외의 상징이다.
퀴어 영화가 대학생들의 동성애를 부추긴다는 이화여대의 주장은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의 과거 발언과도 맞닿아 있다. 그는 2023년 기독교계 단체 행사에서 “모든 인간이 동성애를 선택하면 인류가 지속되지 못한다”며 차별금지법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실존적 고민 때문에 동성애를 접하는 이들도 있지만, 최근의 현실을 보면 일종의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접하게 되거나 확산되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적어도 분위기에 휩쓸리는 성적 시도는 예방돼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그러나 김민석 후보의 말은 틀렸다. 사회 분위기 때문에 동성애가 확산된다는 주장은 동성애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편견이다. 동성애는 누군가가 찬성하거나 반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당사자 취향의 문제도 아니다. 세상에는 출생 시 부여받은 성별과 자신의 성정체성이 일치하는 시스젠더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트랜스젠더도 있고, 남성과 여성의 이분법적 성별 범주에 속하지 않는 논바이너리도 있다. 이성애자가 있는가 하면, 동성애자도 있고, 양성애자도 있다. 퀴어 영화를 본다고, 차별금지법이나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다고 부화뇌동 동성애자가 되진 않는다. 그럴 수도 없는 일이다. 그가 염려하듯 인류가 존속하지 못할 만큼 동성애가 확산되는 일은 죽었다 깨어나도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 동성애가 확산된다고 여겨지는 것은 그들이 늘어나서가 아니라 음지에 있던 성소수자들의 목소리가 세상에 들려오기 시작해서다. 한국의 성소수자는 5% 정도로 추정한다. 그들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었다. 다만, 보이지 않았을 뿐. 한국인이 유럽을 다녀오면 “거긴 왜 그렇게 장애인이 많아?” 하는 것과 같다. 유럽에 장애인이 많은 것이 아니라, 한국의 263만 장애인 중 다수가 이동의 권리, 교육의 권리, 취업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해 사회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눈에 띄지 않는 거다. 263만 명은 전체 인구의 5.1%에 달하는 숫자인데도, 일상에서 장애인을 마주치는 일은 드물다.
김민석 후보는 누구보다 빨리 윤 전 대통령의 계엄 계획을 알아챈 사람이다. 다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지만, 그는 충암고 라인을 중심으로 한 국방부 장관 임명, 군 요직 배치를 보며 이것은 분명 계엄의 징후라고 확신했다. 덕분에 민주당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시뮬레이션을 준비했고, 이것이 계엄을 해제하는 실제 상황에 큰 도움이 되었다 한다. 이렇게 논리적이고 영민한 그가 동성애에 대해 이런 발언을 한 것은 몰라서이기도 하고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 ‘동성애를 죄악시하는’ 보수 기독교적 관점을 벗어나지 못해서이기도 할 것이다.
이틀에 걸친 국무총리 인사청문회에서 이 사안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인사청문특위 의원들이 언론에도 보도된 이 논란을 몰랐을 리 없다. 전배우자에 장모까지 끌어다 과거를 탈탈 털어대는 자리에서 여야 한마음으로 ‘모르쇠’한 것은 의도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민주당 입장에선 후보에게 불리한 이슈라 판단했을 거고, 그간 차별금지법에 반대해온 국민의힘 의원들은 그 이슈를 내세울 명분이 없었을 것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퀴어축제 옆에선 맞불집회가 함께 열렸다. ‘퀴어축제 척결’ ‘동성애 박멸’ ‘더러운 동성애자, 추방’ 같은 피켓을 들고서, 당사자들 앞에서 그것이 혐오인 줄도 모르고 혐오하는 이들, 차별인 줄도 모르고 차별하는 이들. 어쩌면 그들이 악해서가 아니라 무지해서일 것이다. 모르는 게 죄는 아니라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죽음으로 내몰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 ‘아이히만’처럼 무지는 우리를 죄인으로 만든다.
그들의 존재 이유
_『커밍아웃 스토리』, 성소수자 부모모임, 한티재, 2018
김민석 후보가 동성애에 대해 조금만 공부했더라면 차별금지법 제정과 동성애 확산이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아챘을 것이다. 퀴어에 관한 여러 책들이 있지만 그에게 성소수자 부모모임이 펴낸 『커밍아웃 스토리』를 권하고 싶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성소수자를 만났는데 그게 내 자식이라니. 충격을 받은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녀의 커밍아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아이를 ‘정상으로’ 돌려놓아야 한다는 생각에 설득하고, 야단치고, 모진 말로 상처를 주다가 결국 세상 어디에도 발 딛지 못하고 숨죽어 우는 자녀를 보며 ‘아이를 살리기 위해’ 부모들은 생각을 고쳐먹게 된다. 아이에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는 것, 사람의 힘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수용한 후에 “나는 내 아이의 있는 그대로를 사랑합니다”라고 말하게 되기까지 그들은 기나긴 고통의 시간을 지나왔다.
책 속에는 부모들 입을 통해 성소수자 자녀들의 삶이 생생히 그려진다. 너무도 당연하게 남자 혹은 여자라고 믿어왔던 자신이 무언가 다르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겪는 혼란, 자신과의 불화, 현실에 대한 부정을 거치며 그들은 오랜 시간 괴로워한다. 용기 내어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지만 어디에서도 환대받지 못하고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한다. 심지어 부모에게도.
성소수자 중에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많은 것은 자신을 거부당한 이런 경험 때문이다. 미국에는 2002년 시작한 ‘가족 수용 프로젝트’라는 연구기관이 있다. 어떻게 해야 가족들이 보다 따뜻하게 성소수자 청소년을 받아들이고 지지해줄 수 있을지 연구하는 기관이다. 이 기관의 연구에 따르면 ‘가족 거절’ 점수가 높을수록 우울증 발생 위험이 5.9배, 자살 시도 가능성이 8.4배 증가한다고 한다. 가족에게까지 부정당하는 성소수자들은 이렇게 삶의 절벽에 몰려 있다.(152쪽) 김민석 후보가 일생에 걸쳐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들과 그 가족의 서사를 알았더라면 ‘사회 분위기에 휩쓸려 동성애를 선택한다’는 말을 그리 쉽게 할 순 없었을 것이다.
기독교계에서는 심지어 퀴어축제에 참여한 목회자들을 징계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기독교인이라면 이 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귀하게 얻은 딸이 이름을 바꾸고, 성전환 수술을 하고, 법원에 가서 성별 정정 신청을 하기까지의 과정을 함께한 성소수자의 아버지는 이렇게 얘기한다.
“저는 하느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아들과 같은 성소수자들의 존재는 하느님이 창조한 이 세상의 놀라운 다양함의 귀한 일부라고 믿습니다. 풍성한 피조물들의 꽃밭의 한 부분에는 아이와 같은 트랜스젠더들도 당당하게 자신의 색깔과 향기를 발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의 삶은 하나하나가 다 아름답고 신비로운 것입니다. 누구도, 어떤 제도나 힘도, 그 삶의 신비로운 빛을 함부로 가리거나 꺼뜨려서는 안 됩니다.”(72쪽)
자신과 세상을 넓히는 공부
차별금지법에 관한 글을 싣고 나서 민들레 편집실에도 항의 전화가 걸려온 적이 있다. 차별금지법에 찬성하는 입장을 실었으면 반대하는 입장도 실어야 공평한 것 아니냐고 항의하던 독자는 “너무 불편해요. 그거만 빼면 다 좋은데… 왜 자꾸 그런 얘기를 해서 구독을 망설이게 하세요”라며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대화 중에 그분이 기독교 홈스쿨링을 한다는 걸 알게 됐다. 민들레를 애정하는 마음이 읽혀서 나도 안타까운 심정으로 답했다. “그런데 어쩌죠?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입장을 싣는 일은 없을 거예요. 이건 찬반으로 토론할 문제가 아니거든요. 남자가 있고 여자가 있듯, 그냥 그런 존재가 있는 거죠. 세상에 이렇게 많은 성소수자들이 있다면, 하느님이 이들을 만드신 데도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긴 통화 끝에 그분은 한풀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편집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참고 조금 더 읽어보겠다고. 참으면서 읽어보겠다는 말이 고마웠다. 새로운 정보를 접하겠다는 그분에게는 아직 새로운 세계를 만날 기회가 남아 있다. 공부란 그런 것이다. 나를 확장하고 세계를 넓혀가는 것. 그로써 우리는 조금 더 진리에 가까워지고 자유로워진다. 전화를 끊으며 생각했다. 그 한 사람의 세계를 넓히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고. 독자를 불편하게 하는 이 잡지를 계속 만들어야겠다고.
_장희숙(편집장)
동성애 유행 시대?
지난 주말, 퀴어영화제에 다녀왔다. 영화제 장소가 서울의 외곽, 서점에 딸린 소규모 극장인 것이 의아했는데 스테프에게 전해들었다. 작년 퀴어영화제를 열었던 아트하우스 모모(이화여대 안의 독립예술영화관)에서 대관을 거절했다고. 계약서까지 작성했던 극장 측은 다수의 민원이 접수됐다면서 “대학생들에게 동성애 문화를 확산시키는 것이 우려되며, 기독교 창립 이념에 반하는 영화는 상영할 수 없다”는 것이 학교의 입장이라고 돌연 태도를 바꾸었다.(학생들은 이에 반발해 7월 4~5일 ‘제1회 이화퀴어영화제’를 자체 기획하고 있다.)
찬밥 신세인 것은 퀴어영화제만이 아니다. 2000년 50여 명으로 시작한 퀴어문화축제는 올해 14만여 명이 참석할 만큼 규모가 커졌지만 해마다 장소 섭외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임명된 2년 전부터, 주요 행사장소였던 서울시청광장에서 쫓겨나다시피 해 곳곳을 전전하고 있다. 서울시는 그날 다른 행사가 있다는 이유를 댔지만 축제 기간에 필요한 토론회, 강연회 장소 대관도 연달아 거부했다. 장소를 내어주지 않는 것은 존재를 거부한다는 뜻이다. 어린이들이 카페에 들어갈 수 없고, 장애인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는 것은 모두 소외의 상징이다.
퀴어 영화가 대학생들의 동성애를 부추긴다는 이화여대의 주장은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의 과거 발언과도 맞닿아 있다. 그는 2023년 기독교계 단체 행사에서 “모든 인간이 동성애를 선택하면 인류가 지속되지 못한다”며 차별금지법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실존적 고민 때문에 동성애를 접하는 이들도 있지만, 최근의 현실을 보면 일종의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접하게 되거나 확산되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적어도 분위기에 휩쓸리는 성적 시도는 예방돼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그러나 김민석 후보의 말은 틀렸다. 사회 분위기 때문에 동성애가 확산된다는 주장은 동성애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편견이다. 동성애는 누군가가 찬성하거나 반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당사자 취향의 문제도 아니다. 세상에는 출생 시 부여받은 성별과 자신의 성정체성이 일치하는 시스젠더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트랜스젠더도 있고, 남성과 여성의 이분법적 성별 범주에 속하지 않는 논바이너리도 있다. 이성애자가 있는가 하면, 동성애자도 있고, 양성애자도 있다. 퀴어 영화를 본다고, 차별금지법이나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다고 부화뇌동 동성애자가 되진 않는다. 그럴 수도 없는 일이다. 그가 염려하듯 인류가 존속하지 못할 만큼 동성애가 확산되는 일은 죽었다 깨어나도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 동성애가 확산된다고 여겨지는 것은 그들이 늘어나서가 아니라 음지에 있던 성소수자들의 목소리가 세상에 들려오기 시작해서다. 한국의 성소수자는 5% 정도로 추정한다. 그들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었다. 다만, 보이지 않았을 뿐. 한국인이 유럽을 다녀오면 “거긴 왜 그렇게 장애인이 많아?” 하는 것과 같다. 유럽에 장애인이 많은 것이 아니라, 한국의 263만 장애인 중 다수가 이동의 권리, 교육의 권리, 취업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해 사회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눈에 띄지 않는 거다. 263만 명은 전체 인구의 5.1%에 달하는 숫자인데도, 일상에서 장애인을 마주치는 일은 드물다.
김민석 후보는 누구보다 빨리 윤 전 대통령의 계엄 계획을 알아챈 사람이다. 다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지만, 그는 충암고 라인을 중심으로 한 국방부 장관 임명, 군 요직 배치를 보며 이것은 분명 계엄의 징후라고 확신했다. 덕분에 민주당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시뮬레이션을 준비했고, 이것이 계엄을 해제하는 실제 상황에 큰 도움이 되었다 한다. 이렇게 논리적이고 영민한 그가 동성애에 대해 이런 발언을 한 것은 몰라서이기도 하고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 ‘동성애를 죄악시하는’ 보수 기독교적 관점을 벗어나지 못해서이기도 할 것이다.
이틀에 걸친 국무총리 인사청문회에서 이 사안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인사청문특위 의원들이 언론에도 보도된 이 논란을 몰랐을 리 없다. 전배우자에 장모까지 끌어다 과거를 탈탈 털어대는 자리에서 여야 한마음으로 ‘모르쇠’한 것은 의도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민주당 입장에선 후보에게 불리한 이슈라 판단했을 거고, 그간 차별금지법에 반대해온 국민의힘 의원들은 그 이슈를 내세울 명분이 없었을 것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퀴어축제 옆에선 맞불집회가 함께 열렸다. ‘퀴어축제 척결’ ‘동성애 박멸’ ‘더러운 동성애자, 추방’ 같은 피켓을 들고서, 당사자들 앞에서 그것이 혐오인 줄도 모르고 혐오하는 이들, 차별인 줄도 모르고 차별하는 이들. 어쩌면 그들이 악해서가 아니라 무지해서일 것이다. 모르는 게 죄는 아니라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죽음으로 내몰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 ‘아이히만’처럼 무지는 우리를 죄인으로 만든다.
그들의 존재 이유
김민석 후보가 동성애에 대해 조금만 공부했더라면 차별금지법 제정과 동성애 확산이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아챘을 것이다. 퀴어에 관한 여러 책들이 있지만 그에게 성소수자 부모모임이 펴낸 『커밍아웃 스토리』를 권하고 싶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성소수자를 만났는데 그게 내 자식이라니. 충격을 받은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녀의 커밍아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아이를 ‘정상으로’ 돌려놓아야 한다는 생각에 설득하고, 야단치고, 모진 말로 상처를 주다가 결국 세상 어디에도 발 딛지 못하고 숨죽어 우는 자녀를 보며 ‘아이를 살리기 위해’ 부모들은 생각을 고쳐먹게 된다. 아이에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는 것, 사람의 힘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수용한 후에 “나는 내 아이의 있는 그대로를 사랑합니다”라고 말하게 되기까지 그들은 기나긴 고통의 시간을 지나왔다.
책 속에는 부모들 입을 통해 성소수자 자녀들의 삶이 생생히 그려진다. 너무도 당연하게 남자 혹은 여자라고 믿어왔던 자신이 무언가 다르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겪는 혼란, 자신과의 불화, 현실에 대한 부정을 거치며 그들은 오랜 시간 괴로워한다. 용기 내어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지만 어디에서도 환대받지 못하고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한다. 심지어 부모에게도.
성소수자 중에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많은 것은 자신을 거부당한 이런 경험 때문이다. 미국에는 2002년 시작한 ‘가족 수용 프로젝트’라는 연구기관이 있다. 어떻게 해야 가족들이 보다 따뜻하게 성소수자 청소년을 받아들이고 지지해줄 수 있을지 연구하는 기관이다. 이 기관의 연구에 따르면 ‘가족 거절’ 점수가 높을수록 우울증 발생 위험이 5.9배, 자살 시도 가능성이 8.4배 증가한다고 한다. 가족에게까지 부정당하는 성소수자들은 이렇게 삶의 절벽에 몰려 있다.(152쪽) 김민석 후보가 일생에 걸쳐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들과 그 가족의 서사를 알았더라면 ‘사회 분위기에 휩쓸려 동성애를 선택한다’는 말을 그리 쉽게 할 순 없었을 것이다.
기독교계에서는 심지어 퀴어축제에 참여한 목회자들을 징계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기독교인이라면 이 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귀하게 얻은 딸이 이름을 바꾸고, 성전환 수술을 하고, 법원에 가서 성별 정정 신청을 하기까지의 과정을 함께한 성소수자의 아버지는 이렇게 얘기한다.
“저는 하느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아들과 같은 성소수자들의 존재는 하느님이 창조한 이 세상의 놀라운 다양함의 귀한 일부라고 믿습니다. 풍성한 피조물들의 꽃밭의 한 부분에는 아이와 같은 트랜스젠더들도 당당하게 자신의 색깔과 향기를 발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의 삶은 하나하나가 다 아름답고 신비로운 것입니다. 누구도, 어떤 제도나 힘도, 그 삶의 신비로운 빛을 함부로 가리거나 꺼뜨려서는 안 됩니다.”(72쪽)
자신과 세상을 넓히는 공부
차별금지법에 관한 글을 싣고 나서 민들레 편집실에도 항의 전화가 걸려온 적이 있다. 차별금지법에 찬성하는 입장을 실었으면 반대하는 입장도 실어야 공평한 것 아니냐고 항의하던 독자는 “너무 불편해요. 그거만 빼면 다 좋은데… 왜 자꾸 그런 얘기를 해서 구독을 망설이게 하세요”라며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대화 중에 그분이 기독교 홈스쿨링을 한다는 걸 알게 됐다. 민들레를 애정하는 마음이 읽혀서 나도 안타까운 심정으로 답했다. “그런데 어쩌죠?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입장을 싣는 일은 없을 거예요. 이건 찬반으로 토론할 문제가 아니거든요. 남자가 있고 여자가 있듯, 그냥 그런 존재가 있는 거죠. 세상에 이렇게 많은 성소수자들이 있다면, 하느님이 이들을 만드신 데도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긴 통화 끝에 그분은 한풀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편집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참고 조금 더 읽어보겠다고. 참으면서 읽어보겠다는 말이 고마웠다. 새로운 정보를 접하겠다는 그분에게는 아직 새로운 세계를 만날 기회가 남아 있다. 공부란 그런 것이다. 나를 확장하고 세계를 넓혀가는 것. 그로써 우리는 조금 더 진리에 가까워지고 자유로워진다. 전화를 끊으며 생각했다. 그 한 사람의 세계를 넓히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고. 독자를 불편하게 하는 이 잡지를 계속 만들어야겠다고.
_장희숙(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