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 3월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전국의 교사들이 모여 ‘국회 입법 촉구 추모 집회’를 열었다. 학교를 떠나는 교사들이 해마다 증가해 지난 5년간 중도 퇴직 교원이 33,705명으로 나타났다.
달라진 교직의 위상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 거주한 지도 3년이 넘었다. 한국에서 보낸 7년 교직 생활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나의 교육활동이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걸 확인하는 것은 참으로 의미 있었다. 하지만 교육활동을 감시받는 느낌이 들 때, 교육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진행하지 못할 때는 많이 좌절했다. 하지만 그 좌절감이 교단을 떠날 만큼 크진 않았다.
민들레처럼 굳건하게 버티려고 했건만, 남편의 직장 상황 때문에 미국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미국에 온 지 일 년 정도 지났을 때 서이초 교사 소식이 들려왔고,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담임 맡은 아이들을 교실에 두고 학교 밖으로 나온 것처럼 죄책감이 몰려왔다. 이따금 블로그에 글을 적으며 내 생각을 정리하곤 했는데, 그 글에서 나는 아주 건방진 예측을 했다. 교사를 보호하는 법안이 만들어진다 해도 현실이 별로 달라지진 않을 거라고.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예측이 들어맞은 것 같다. 2년이 지난 현재, 한국의 교사들은 여전히 학생지도의 어려움과 학부모 민원의 피로를 호소하고, 손발이 묶여 정당한 교육활동을 하기 어렵다고 외친다.
학부모의 악성 민원 관련 기사를 읽다보면 댓글에 눈이 간다. 학부모의 도를 넘는 민원에는 “(교사 개인이 아닌) 민원 상담 장치를 법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단골손님처럼 등장한다. 하지만 초등 교사인 동생에게 들은 바로는 담임들은 학부모와 꾸준히 연락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민원이 개인적 통로로 들어오는 걸 막을 수 없다고 한다. 정식으로 ‘민원’을 전담하는 팀이 생겨도 교사들의 피로도를 줄이진 못할 거라는 얘기다.
부모의 사랑과 관심이라는 자연스러운 감정을 바탕으로 한, 내 자식을 지키고자 하는 뿌리 깊은 불안을 어떤 법안으로 막을 수 있을까. 하지만 명백한 것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교사들의 직업 만족도를 훼손하고, 이는 교사의 전문성 손실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10년 전만 해도 교사라는 직업은 사회적 지위가 높아 지원자가 많았다. 그만큼 교대 입학이나 임용시험 통과도 힘들었고, 이로 인해 전문성이 검증된 이들이 교사가 되었다. 하지만 오늘날처럼 정상적인 교육활동도 아동학대로 신고될 수 있는 학교에서 감정노동을 견뎌가며 일하려고 하는 교사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특히 교직이 아니어도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미국의 교사 부족 현상
“가르치는 일은 정신적으로, 심적으로, 신체적으로 너무 힘들어졌습니다. 우리 교사들은 강하고 꿋꿋하고 창의적이지만, 도움이 필요합니다. 현재 우리는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더 많은 교사를 잃을 수 없습니다.”
이 문구를 읽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2024년 11월, 미국 코네티컷 주의 교사가 교사총회 기자회견에서 한 발언이었다. 2023년 서이초 사건 이후 열린 교사집회에서 들었던 시국 선언과 너무나도 비슷했다.
현재 미국은 ‘교사 탈출 현상’이 큰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2024년 《월스트리트 저널》은 “왜 교사는 교실을 떠나는가”를 주제로 미국 10개 주의 데이터를 수집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그중 9개 주에서 코로나 팬데믹 이전인 2019년보다 높은 비율의 교사 이탈을 보이고 있었다. 버지니아의 경우, 팬데믹 이전에 12% 이하를 유지하던 이탈률이 14.1%까지 상승했다. 2024년 버지니아의 교사 공석률은 4.5%다. 교직 이탈률이 계속 높아지고 있는 것은,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일시적 요인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미국 교직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
미국에서 자주 어울리는 지인들 중엔 교사 출신이 많다. 그들은 모두 교직을 떠나 새로운 경력을 쌓고 있다. 코딩을 배워서 테크 회사에 취직한 친구도 있고 학습 자재와 교과서 만드는 회사에 취직한 친구도 있다. 물론 이들이 교사를 그만둔 이유는 하나로 콕 집을 수 없다. 많은 어려움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정이었다. 한 친구는 수업, 성적 처리, 학생 개별지도 등 업무가 많아져서 항상 야근을 하거나 집에 일을 가져가며 허덕이던 것을 기억했다. 다른 친구는 한 교실에 3분의2 정도의 학생이 다양한 이유로 개별지도안을 가지고 있어● ● 이 모두를 고려하며 혼자서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고 한다. 또한, 코로나 이후 급격하게 낮아진 학생들의 학력도 교사들을 어렵게 만드는 원인으로 꼽혔다. 다수의 아이들이 정규 수업 과정을 따라오지 못해 수업을 진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손꼽는 어려움이 있었다. 학생, 학부모가 학교에 거는 기대와 교사의 교육활동에 차이가 생길 때, 학생과 학부모를 설득하느라 애를 써야 했던 것. 교사가 내린 교육적 결정을 비판받거나 그 일을 그만두라는 지시를 받을 때였다. 한 친구는 다원적 문화교육을 위해 학교에서 ‘국제 문화 써클’ 활동을 지도했다고 한다. 다양한 인종의 학생들이 각자의 음식, 관습 등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학생들은 큰 흥미를 보이며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하지만 몇몇 학생의 부모들은 다른 문화를 소개하는 이 교육 프로그램이 자신의 가정환경에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게 한다며 학교에 써클 폐지를 요구했다. 부모들은 교육청에도 민원을 넣었고, 교사는 정당한 교육활동이었음에도 써클 활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
● 2025년 6월 기준, 미국 31개 주에 4만5천여 명의 교원이 부족한 상태이며 학교당 평균 공석 수는 2~3개 수준이다. 교사들의 퇴직 사유로는 강도 높은 스트레스 외에 낮은 급여가 손꼽힌다. 교사 급여는 유사한 학력의 다른 전문직 대비 23.5% 낮으며, 40% 가까운 교사가 부업을 하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
●● 미국의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신체적, 심리적, 정신적인 요구를 분석해 개별지도안을 만들고, 교사들은 이 지도안을 실행해야 한다.
교실 속 이데올로기 갈등
이처럼 다양한 인종, 문화의 학생들이 만나는 미국 교실에서는 이데올로기 논쟁이 갈등의 큰 요인이 되고 있다. 2023년, 보수 학부모 집단을 중심으로 비판적 인종 이론을 포함한 텍스트는 다루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이 거셌다. ‘비판적 인종 이론’은 인종차별이 단지 개인 편견이나 차별적 행동의 결과가 아니라 그 원인이 사회구조 속에 깊이 뿌리 내려 있다고 보는 이론으로, 미국 사회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학문의 틀이다. 교실에서는 종종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 같이 인종차별을 문제 삼는 텍스트를 읽고 토론하는 수업을 하는데, 이는 노예제와 인종차별로 얼룩진 역사를 지닌 미국에서 아주 일반적으로 하는 수업이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인종 관련 교육이 백인 아이들에게 죄책감을 주고 역차별을 경험하게 한다며 이러한 일반 사회교육 활동까지 ‘비판적 인종 이론’에 포함시켜 폐지를 요구했다. 미성숙한 학생들에게 진보 이데올로기를 주입하지 말아야 한다며 ‘CRT 금지’라는 정치적 운동을 만들어냈다. 이 학부모들의 주장은 보수 지지층을 견고하게 모아 보수 정치인들을 당선시켰다. 대표적으로 버지니아 주지사는 당선 후, ‘CRT 금지 핫라인’을 설치하여 학부모가 이러한 교육활동을 하는 교사를 신고할 수 있게 하는 정책을 현실화했다. 교실에 학부모를 위한 교사 감시 카메라를 만들어놓은 셈이다.
이 흐름은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 금지’라는 트럼프의 행정명령으로까지 이어졌으며, 교육계뿐만 아니라 모든 연방기관에서 기관 내 인종 및 문화 다양성을 지향하는 규정 또는 프로그램을 삭제 또는 중단하게 되었다. 버지니아의 핫라인과 비슷하게, 미국의 교육부는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 교육을 하는 교사들을 신고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들었다. 교사가 다양한 인종과 역사를 포괄하는 내용을 수업에서 다룰 시, 학부모는 물론 학생도 교사를 신고할 수 있고, 해당 교사는 정직 및 해고 조치를 당하게 된다.
더 나아가 트럼프 정부는 2024년 2월, 연방정부에서 예산을 받는 학교들이 DEI 교육 프로그램을 중단하지 않으면 예산 삭감 및 제재에 들어갈 거라 경고해 학교의 교육과정에 어마어마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교사들은 역사교육 및 문학 교과서 선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문화 다양성 관련 활동을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개설하기 힘들어졌다. 미국 교육단체들은 이러한 정책이 결국엔 교사의 전문성을 떨어뜨리고 교직 이탈률을 더욱 높일 거라 예측하고 있다. 이 정책은 교육활동 제재로 교사의 두려움과 무력감을 높이고, 의미 있는 교육활동을 하고자 하는 열정적인 교사들이 교실을 떠나게 만들 것이다.
불평등을 심화하는 공교육
교사가 부족해진 미국 오하이오 주는 2020년부터 교원 자격증이 없어도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이라면 범죄경력 조회 통과 후 학교에서 수업을 할 수 있게 규정을 바꾸었다. 이는 교사 부족을 임시로 해결하기 위한 방편이었으나 문제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현재도 교육 관할 지역의 요구에 따라 고등학교 졸업장만으로 교사 임용이 가능하다. 오하이오의 초등학교에는 요즘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교단에 서는 (18세) 어린 선생님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플로리다 주는 교사 부족 문제가 너무 심각해서 학부모, 경찰, 군인까지 나서서 수업을 메우고 있다. 교사인 친구의 말로는 이 사람들을 ‘따뜻한 시체’라 부른다고 한다. 이 표현은, 그들이 수업의 질을 높이거나 학생들과 의미 있는 교육적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몸만 있는 존재’로 여겨진다는 뜻으로, 교직 현장의 위기 의식과 체념이 뒤섞인 냉소적인 현실을 드러내는 말이다.
교사 부족에 따른 대체 인력 투입은 이미 학교 현장에 여러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수업 연속성이 깨져 수학이나 읽기 같은 과목에서 학업 성취도가 떨어지고, 학생들과의 관계 형성이 어려워 수업 참여도도 낮아지고 있다. 또한 기존 교사들에게 추가적인 부담을 주어 번아웃을 유발하고, 학교 전체의 조직 문화를 약화시키기도 한다. 특히 저소득층 지역의 학교에서 교사 부족 문제가 더 심각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과도한 대체 인력의 도입은 교육 격차를 더욱 확대하는 요인이 된다. 안정적인 교사 인력 확보는 모든 아이의 평등한 교육권을 지원하기 위한 사회적 과제인 것이다.
미국의 연방 교육부는 취약 계층 학생들을 위한 차별금지법 집행을 담당하고, 저소득층 지역의 학교와 장애 학생 교육을 위한 예산을 제공하는 등 모두가 평등한 교육의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공교육의 근간이 되는 정부기관이다. 그런데 트럼프는 2025년 3월, ‘교육부 해체’라는 행정명령을 내리고, 그 후 4개월 동안 교육부장관은 거의 절반에 가까운 1,300여 명의 교육부 공무원을 해고했다. 교육부 해체는 현재 헌법에 따라 국회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지만, 정부 권한 확대를 위한 연방 정부 축소라는 트럼프의 야심을 이루기 위한 예산 삭감은 이미 진행 중이며 현재 미국의 각급 학교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많은 학교들이 예산 삭감에 따라 교사 인력 예산을 감축하면서 교사들이 해고되거나 정교사 수가 줄어드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이 현상은 미국 정부가 공교육에 대해 갖고 있는 신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공교육은 민주주의와 평등, 인재 양성을 위한 투자가 아니라 경제성장에 도움되지 않는 국가적 손실이니 최소화하는 것이 마땅하고, 원한다면 각자의 자본을 활용해 다른 형태의 교육을 받으라는 메시지다. 이 방향은 결국 ‘교육의 사유화’를 강화하고 공교육 시스템을 약화시키는 흐름과 일맥상통한다. 이로 인해 자본에 따른 구조적 불평등은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다. 교육 재정이 풍부한 지역은 자체적으로 높은 교육 수준을 유지할 수 있겠으나, 연방 자금에 의존해왔던 저소득층 지역은 교육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교육의 내용, 권한, 불평등, 교사 이탈을 둘러싼 논란을 증폭시키는 이 움직임은 정치 양극화로 이어져, 현재보다 더 불평등한 미국 사회가 형성될 것이라 예상한다.
더는 선생님을 잃을 수 없다
정치적 상황은 다르지만 요즘 들어 한국의 온라인 사이트에서 자주 눈에 띄는 ‘교사 의원면직 후기’ ‘교사 그만두고 회계사 시험 준비’ 등 다양한 교사 퇴직 경험담을 보면서 미국의 교사 부족 상황이 자꾸만 떠오른다. 미국 교사들의 직업 만족도 추락, 그리고 이와 연결된 교사 전문성 하락 및 교사 부족 문제를 한국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눈을 마주치며 아이들과 소통하는 교사의 역할은 교육과정만큼이나 중요하다. 만족도가 추락하다 못해 영혼이 사라진 교사들이 아이들 곁에 머무르는 일을 막으려면, 교직 사회를 다시 세우는 게 급선무다. 더는 선생님을 잃을 수 없다.
글쓴이 김예진 _ 7년 동안 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다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옮겨온 지 3년째다. 낯선 환경 속에서 도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하루하루를 글로 담고 있다. ( 이 글은 계간 <민들레> 2025년 가을호에 실린 글입니다.)
올 3월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전국의 교사들이 모여 ‘국회 입법 촉구 추모 집회’를 열었다. 학교를 떠나는 교사들이 해마다 증가해 지난 5년간 중도 퇴직 교원이 33,705명으로 나타났다.
달라진 교직의 위상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 거주한 지도 3년이 넘었다. 한국에서 보낸 7년 교직 생활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나의 교육활동이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걸 확인하는 것은 참으로 의미 있었다. 하지만 교육활동을 감시받는 느낌이 들 때, 교육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진행하지 못할 때는 많이 좌절했다. 하지만 그 좌절감이 교단을 떠날 만큼 크진 않았다.
민들레처럼 굳건하게 버티려고 했건만, 남편의 직장 상황 때문에 미국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미국에 온 지 일 년 정도 지났을 때 서이초 교사 소식이 들려왔고,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담임 맡은 아이들을 교실에 두고 학교 밖으로 나온 것처럼 죄책감이 몰려왔다. 이따금 블로그에 글을 적으며 내 생각을 정리하곤 했는데, 그 글에서 나는 아주 건방진 예측을 했다. 교사를 보호하는 법안이 만들어진다 해도 현실이 별로 달라지진 않을 거라고.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예측이 들어맞은 것 같다. 2년이 지난 현재, 한국의 교사들은 여전히 학생지도의 어려움과 학부모 민원의 피로를 호소하고, 손발이 묶여 정당한 교육활동을 하기 어렵다고 외친다.
학부모의 악성 민원 관련 기사를 읽다보면 댓글에 눈이 간다. 학부모의 도를 넘는 민원에는 “(교사 개인이 아닌) 민원 상담 장치를 법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단골손님처럼 등장한다. 하지만 초등 교사인 동생에게 들은 바로는 담임들은 학부모와 꾸준히 연락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민원이 개인적 통로로 들어오는 걸 막을 수 없다고 한다. 정식으로 ‘민원’을 전담하는 팀이 생겨도 교사들의 피로도를 줄이진 못할 거라는 얘기다.
부모의 사랑과 관심이라는 자연스러운 감정을 바탕으로 한, 내 자식을 지키고자 하는 뿌리 깊은 불안을 어떤 법안으로 막을 수 있을까. 하지만 명백한 것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교사들의 직업 만족도를 훼손하고, 이는 교사의 전문성 손실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10년 전만 해도 교사라는 직업은 사회적 지위가 높아 지원자가 많았다. 그만큼 교대 입학이나 임용시험 통과도 힘들었고, 이로 인해 전문성이 검증된 이들이 교사가 되었다. 하지만 오늘날처럼 정상적인 교육활동도 아동학대로 신고될 수 있는 학교에서 감정노동을 견뎌가며 일하려고 하는 교사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특히 교직이 아니어도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미국의 교사 부족 현상
“가르치는 일은 정신적으로, 심적으로, 신체적으로 너무 힘들어졌습니다. 우리 교사들은 강하고 꿋꿋하고 창의적이지만, 도움이 필요합니다. 현재 우리는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더 많은 교사를 잃을 수 없습니다.”
이 문구를 읽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2024년 11월, 미국 코네티컷 주의 교사가 교사총회 기자회견에서 한 발언이었다. 2023년 서이초 사건 이후 열린 교사집회에서 들었던 시국 선언과 너무나도 비슷했다.
현재 미국은 ‘교사 탈출 현상’이 큰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2024년 《월스트리트 저널》은 “왜 교사는 교실을 떠나는가”를 주제로 미국 10개 주의 데이터를 수집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그중 9개 주에서 코로나 팬데믹 이전인 2019년보다 높은 비율의 교사 이탈을 보이고 있었다. 버지니아의 경우, 팬데믹 이전에 12% 이하를 유지하던 이탈률이 14.1%까지 상승했다. 2024년 버지니아의 교사 공석률은 4.5%다. 교직 이탈률이 계속 높아지고 있는 것은,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일시적 요인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미국 교직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
미국에서 자주 어울리는 지인들 중엔 교사 출신이 많다. 그들은 모두 교직을 떠나 새로운 경력을 쌓고 있다. 코딩을 배워서 테크 회사에 취직한 친구도 있고 학습 자재와 교과서 만드는 회사에 취직한 친구도 있다. 물론 이들이 교사를 그만둔 이유는 하나로 콕 집을 수 없다. 많은 어려움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정이었다. 한 친구는 수업, 성적 처리, 학생 개별지도 등 업무가 많아져서 항상 야근을 하거나 집에 일을 가져가며 허덕이던 것을 기억했다. 다른 친구는 한 교실에 3분의2 정도의 학생이 다양한 이유로 개별지도안을 가지고 있어● ● 이 모두를 고려하며 혼자서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고 한다. 또한, 코로나 이후 급격하게 낮아진 학생들의 학력도 교사들을 어렵게 만드는 원인으로 꼽혔다. 다수의 아이들이 정규 수업 과정을 따라오지 못해 수업을 진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손꼽는 어려움이 있었다. 학생, 학부모가 학교에 거는 기대와 교사의 교육활동에 차이가 생길 때, 학생과 학부모를 설득하느라 애를 써야 했던 것. 교사가 내린 교육적 결정을 비판받거나 그 일을 그만두라는 지시를 받을 때였다. 한 친구는 다원적 문화교육을 위해 학교에서 ‘국제 문화 써클’ 활동을 지도했다고 한다. 다양한 인종의 학생들이 각자의 음식, 관습 등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학생들은 큰 흥미를 보이며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하지만 몇몇 학생의 부모들은 다른 문화를 소개하는 이 교육 프로그램이 자신의 가정환경에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게 한다며 학교에 써클 폐지를 요구했다. 부모들은 교육청에도 민원을 넣었고, 교사는 정당한 교육활동이었음에도 써클 활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
● 2025년 6월 기준, 미국 31개 주에 4만5천여 명의 교원이 부족한 상태이며 학교당 평균 공석 수는 2~3개 수준이다. 교사들의 퇴직 사유로는 강도 높은 스트레스 외에 낮은 급여가 손꼽힌다. 교사 급여는 유사한 학력의 다른 전문직 대비 23.5% 낮으며, 40% 가까운 교사가 부업을 하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
●● 미국의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신체적, 심리적, 정신적인 요구를 분석해 개별지도안을 만들고, 교사들은 이 지도안을 실행해야 한다.
교실 속 이데올로기 갈등
이처럼 다양한 인종, 문화의 학생들이 만나는 미국 교실에서는 이데올로기 논쟁이 갈등의 큰 요인이 되고 있다. 2023년, 보수 학부모 집단을 중심으로 비판적 인종 이론을 포함한 텍스트는 다루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이 거셌다. ‘비판적 인종 이론’은 인종차별이 단지 개인 편견이나 차별적 행동의 결과가 아니라 그 원인이 사회구조 속에 깊이 뿌리 내려 있다고 보는 이론으로, 미국 사회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학문의 틀이다. 교실에서는 종종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 같이 인종차별을 문제 삼는 텍스트를 읽고 토론하는 수업을 하는데, 이는 노예제와 인종차별로 얼룩진 역사를 지닌 미국에서 아주 일반적으로 하는 수업이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인종 관련 교육이 백인 아이들에게 죄책감을 주고 역차별을 경험하게 한다며 이러한 일반 사회교육 활동까지 ‘비판적 인종 이론’에 포함시켜 폐지를 요구했다. 미성숙한 학생들에게 진보 이데올로기를 주입하지 말아야 한다며 ‘CRT 금지’라는 정치적 운동을 만들어냈다. 이 학부모들의 주장은 보수 지지층을 견고하게 모아 보수 정치인들을 당선시켰다. 대표적으로 버지니아 주지사는 당선 후, ‘CRT 금지 핫라인’을 설치하여 학부모가 이러한 교육활동을 하는 교사를 신고할 수 있게 하는 정책을 현실화했다. 교실에 학부모를 위한 교사 감시 카메라를 만들어놓은 셈이다.
이 흐름은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 금지’라는 트럼프의 행정명령으로까지 이어졌으며, 교육계뿐만 아니라 모든 연방기관에서 기관 내 인종 및 문화 다양성을 지향하는 규정 또는 프로그램을 삭제 또는 중단하게 되었다. 버지니아의 핫라인과 비슷하게, 미국의 교육부는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 교육을 하는 교사들을 신고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들었다. 교사가 다양한 인종과 역사를 포괄하는 내용을 수업에서 다룰 시, 학부모는 물론 학생도 교사를 신고할 수 있고, 해당 교사는 정직 및 해고 조치를 당하게 된다.
더 나아가 트럼프 정부는 2024년 2월, 연방정부에서 예산을 받는 학교들이 DEI 교육 프로그램을 중단하지 않으면 예산 삭감 및 제재에 들어갈 거라 경고해 학교의 교육과정에 어마어마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교사들은 역사교육 및 문학 교과서 선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문화 다양성 관련 활동을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개설하기 힘들어졌다. 미국 교육단체들은 이러한 정책이 결국엔 교사의 전문성을 떨어뜨리고 교직 이탈률을 더욱 높일 거라 예측하고 있다. 이 정책은 교육활동 제재로 교사의 두려움과 무력감을 높이고, 의미 있는 교육활동을 하고자 하는 열정적인 교사들이 교실을 떠나게 만들 것이다.
불평등을 심화하는 공교육
교사가 부족해진 미국 오하이오 주는 2020년부터 교원 자격증이 없어도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이라면 범죄경력 조회 통과 후 학교에서 수업을 할 수 있게 규정을 바꾸었다. 이는 교사 부족을 임시로 해결하기 위한 방편이었으나 문제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현재도 교육 관할 지역의 요구에 따라 고등학교 졸업장만으로 교사 임용이 가능하다. 오하이오의 초등학교에는 요즘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교단에 서는 (18세) 어린 선생님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플로리다 주는 교사 부족 문제가 너무 심각해서 학부모, 경찰, 군인까지 나서서 수업을 메우고 있다. 교사인 친구의 말로는 이 사람들을 ‘따뜻한 시체’라 부른다고 한다. 이 표현은, 그들이 수업의 질을 높이거나 학생들과 의미 있는 교육적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몸만 있는 존재’로 여겨진다는 뜻으로, 교직 현장의 위기 의식과 체념이 뒤섞인 냉소적인 현실을 드러내는 말이다.
교사 부족에 따른 대체 인력 투입은 이미 학교 현장에 여러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수업 연속성이 깨져 수학이나 읽기 같은 과목에서 학업 성취도가 떨어지고, 학생들과의 관계 형성이 어려워 수업 참여도도 낮아지고 있다. 또한 기존 교사들에게 추가적인 부담을 주어 번아웃을 유발하고, 학교 전체의 조직 문화를 약화시키기도 한다. 특히 저소득층 지역의 학교에서 교사 부족 문제가 더 심각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과도한 대체 인력의 도입은 교육 격차를 더욱 확대하는 요인이 된다. 안정적인 교사 인력 확보는 모든 아이의 평등한 교육권을 지원하기 위한 사회적 과제인 것이다.
미국의 연방 교육부는 취약 계층 학생들을 위한 차별금지법 집행을 담당하고, 저소득층 지역의 학교와 장애 학생 교육을 위한 예산을 제공하는 등 모두가 평등한 교육의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공교육의 근간이 되는 정부기관이다. 그런데 트럼프는 2025년 3월, ‘교육부 해체’라는 행정명령을 내리고, 그 후 4개월 동안 교육부장관은 거의 절반에 가까운 1,300여 명의 교육부 공무원을 해고했다. 교육부 해체는 현재 헌법에 따라 국회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지만, 정부 권한 확대를 위한 연방 정부 축소라는 트럼프의 야심을 이루기 위한 예산 삭감은 이미 진행 중이며 현재 미국의 각급 학교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많은 학교들이 예산 삭감에 따라 교사 인력 예산을 감축하면서 교사들이 해고되거나 정교사 수가 줄어드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이 현상은 미국 정부가 공교육에 대해 갖고 있는 신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공교육은 민주주의와 평등, 인재 양성을 위한 투자가 아니라 경제성장에 도움되지 않는 국가적 손실이니 최소화하는 것이 마땅하고, 원한다면 각자의 자본을 활용해 다른 형태의 교육을 받으라는 메시지다. 이 방향은 결국 ‘교육의 사유화’를 강화하고 공교육 시스템을 약화시키는 흐름과 일맥상통한다. 이로 인해 자본에 따른 구조적 불평등은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다. 교육 재정이 풍부한 지역은 자체적으로 높은 교육 수준을 유지할 수 있겠으나, 연방 자금에 의존해왔던 저소득층 지역은 교육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교육의 내용, 권한, 불평등, 교사 이탈을 둘러싼 논란을 증폭시키는 이 움직임은 정치 양극화로 이어져, 현재보다 더 불평등한 미국 사회가 형성될 것이라 예상한다.
더는 선생님을 잃을 수 없다
정치적 상황은 다르지만 요즘 들어 한국의 온라인 사이트에서 자주 눈에 띄는 ‘교사 의원면직 후기’ ‘교사 그만두고 회계사 시험 준비’ 등 다양한 교사 퇴직 경험담을 보면서 미국의 교사 부족 상황이 자꾸만 떠오른다. 미국 교사들의 직업 만족도 추락, 그리고 이와 연결된 교사 전문성 하락 및 교사 부족 문제를 한국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눈을 마주치며 아이들과 소통하는 교사의 역할은 교육과정만큼이나 중요하다. 만족도가 추락하다 못해 영혼이 사라진 교사들이 아이들 곁에 머무르는 일을 막으려면, 교직 사회를 다시 세우는 게 급선무다. 더는 선생님을 잃을 수 없다.
글쓴이 김예진 _ 7년 동안 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다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옮겨온 지 3년째다. 낯선 환경 속에서 도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하루하루를 글로 담고 있다. ( 이 글은 계간 <민들레> 2025년 가을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