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08] 개인주의와 교육_존 홀트의 사상과 홈스쿨링 운동을 중심으로

2025-10-31
조회수 67

개인주의 지수를 나타낸 세계 지도. 빨간색일수록 개인주의 지수가 더 높다.  


개인주의 시대

 

‘개인주의’라는 말이 한국사회에서는 흔히 다른 사람의 희생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우선시하는 태도를 뜻하지만, 사상사적 의미로는 개인의 인권과 취향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경향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구는 개인주의 사회다. 우리사회처럼 정규직이 비정규직의 희생을 당연시하며 자기 이익 지키기에 여념이 없는, ‘나부터’ 또는 ‘나만’ 살자는 주의는 사실상 개인주의가 아니라 이기주의다. 본래적 의미의 개인주의는 넓은 의미의 공동체주의와 충돌하지 않는다.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자세는 공동체를 이루는 데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다. 

서구사회에서 ‘개인’이 등장한 시기는 독서 문화가 확산된 르네상스 시기와 맞물린다. 14세기 들어 책을 필사하는 수공업 공장 스크립토리움에 고용된 필경사들이 베껴 쓴 고전들이 날개 돋힌 듯 팔려나갔다. 책을 읽는 행위는 고독을 필요로 한다. 문자가 인류 문명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 레나드 쉴레인은 “책이 확산되면서 ‘(가톨릭)교회’라는 거대한 대륙은 ‘개인’이라는 작은 섬으로 쪼개졌다”1)고 말한다. 15세기 중엽에 발명된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거기에 기름을 끼얹었다. 16세기 초 종교개혁이 일어나면서 성경이 번역되고, 이제는 집집마다 성경 책을 두고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종교개혁 이후 개인적 판단에 의한 성서 해석의 길이 열리면서 종교에서의 개인주의 시대가 도래했다. 누구나 성서에 대한 자신의 이해가 더 옳다고 주장할 수 있게 되었다. 끝없이 분파가 나뉘게 되는 구조적 환경이 만들어진 셈이다. 가톨릭의 경우 교황청에서 성인으로 인정하는 절차를 통과해야만 성인이 될 수 있었지만, 개신교는 심지어 누군가가 스스로 재림 예수를 자처해도 이를 부인할 도리가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오늘날 개신교는 수많은 종파로 나뉘어 저마다 진리의 수호자를 자처하고, 곳곳에 재림 예수가 등장하여 천년왕국을 건설하고는 왕 노릇을 하기에 이르렀다. 

“믿음만으로 구원받는다” “강간이 믿음으로 행해졌다면 죄가 아니다”라는 루터의 주장은 주관적 도덕론을 낳았고 도덕의 개인화를 부추겼다. 믿음을 근거로 무슨 짓을 해도 정당화가 된다면 그 도덕은 더 이상 공동체의 윤리가 아니게 된다. 개인적 체험에 근거해 자신이 구원받았다고 주장하면 이를 부인할 수 있는 주체도 근거도 없었다. 종교개혁가들의 ‘만인 사제주의’는 누구나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었다고 주장할 수 있게 했다. 역설적이게도 이는 도덕적 상대주의를 낳으면서 의도치 않게 종교적 관용과 정치적 평등주의로 이어졌다. 루터도 칼뱅도 가톨릭 못지않게 이단을 심판하는 데 열을 올렸지만, 빠르게 늘어난 개신교 분파들이 저마다 정통성을 주장하면서 종교적 다원주의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서구의 개인주의는 개인의 경험을 중시하는 경험주의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것이다. 16세기에 활동한 프랑스의 문학가이자 철학자 몽테뉴는 자신의 체험에 근거한 느낌과 생각을 표현한 수상록을 출간했다. 문학에서 개인주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몽테뉴의 경험론과 회의론은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2) 개인주의 속에는 경험의 주체인 개개인의 판단력을 신뢰하고 다름을 인정하는 태도가 바탕에 깔려 있다. 계약의 주체이자 정치적 행위의 주체로서 개인의 권리를 옹호하는 개인주의는 근대의 발명품이라고 볼 수 있다. 

유산계급의 정치적 권리를 지키고자 했던 18-19세기 자유주의에 대항하여 사회주의가 등장하자 개인의 자유를 희생해서라도 재산을 지키고 싶어 했던 이들은 우익 전체주의인 파시즘을 지지했다. 2차대전을 치르면서 집단의 질서와 이익을 우선시하는 파시즘의 폭력성을 경험한 서구인들은 국가를 견제할 수 있는 시민 개개인의 정치적 권리를 더 중요시하게 되었다. 68혁명에서 부각된 반전사상과 표현의 자유, 소수자 보호 같은 가치는 개인주의 토대 위에 자라난 것이다. 개인주의가 철학 사조를 넘어 서구사회에 보편적으로 확산된 것은 68혁명 이후다. 여기에는 개인주의 문화가 팽배한 미국의 영향도 적지 않게 작용했다.

 

홈스쿨링운동과 개인주의

 

오랜 역사적 전통이 있는 유럽이나 아시아에서는 공동체의 존속이 개인의 권리보다 우선하는 것이 불문율이다. 서양은 개인주의, 동양은 공동체주의라고 도식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인류 보편적으로 공동체를 더 중시했지만 2차대전 이후 전체주의에 대한 반성으로 개인주의가 확산되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한편 미국사회는 개인의 권리를 더 중요시하는 독특한 문화를 갖고 있다. 신대륙에 이주하여 각자도생해야 했던 개척시대를 거치면서 형성된 미국 특유의 문화이기도 할 것이다. ‘개인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정부를 수립한다’고 선언한 미국 독립선언문은 개인의 생명과 자유 등 기본권의 추구가 공익보다 우선함을 천명하고 있다.3) 끊임없이 일어나는 총기 난사 사건에도 불구하고 총기 규제가 안 되는 이유도 여기 있을 것이다. 홈스쿨링이 미국에서 가장 활발한 배경 또한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표준화된 학교는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배려할 수 없는 한계를 갖고 있다. 보편교육을 지향하는 공교육이 안고 있는 한계이자 오늘날 ‘수요자중심 교육’을 강조하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사립학교는 공립학교가 채워주지 못하는 것을 제공해주는 수요자중심 교육의 한 유형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사립학교도 일단 선택한 뒤에는 학교의 교육 방침을 따라야 한다. 그에 비해 부모가 자녀에게 맞춤형 교육환경과 교육과정을 제공하는 홈스쿨링은 개인 맞춤형 교육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다. 

1970년대 이후 미국에서 확산되기 시작한 홈스쿨링 인구는 현재 300만 명 가까이로 추산된다(코로나 팬데믹 이후 부쩍 늘었다). 일찍이 존 홀트를 중심으로 새로운 교육운동으로 시작된 언스쿨링 운동이 홈스쿨링으로 기울면서 오늘날 미국의 홈스쿨링은 기독교 홈스쿨링 단체가 주도하는 형국이 되었다. 진화론을 부정하는 보수적인 기독교계의 관점에서 볼 때 탈종교적이고 보편교육을 지향하는 공교육은 미진한 데가 많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욱이 학교가 아이들의 안전을 보장해주지도 못하고 마약과 폭력의 온상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많은 독실한 기독교인 부모들은 홈스쿨링을 대안이라 여긴다.

미국에서 유독 홈스쿨링운동이 활발한 데는 기독교의 영향도 크지만, 국가보다 개인의 인권, 자유권을 우선시하는 미국의 정치문화가 기여한 바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에 비해 개인과 공동체의 균형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한 유럽사회의 경우 상대적으로 홈스쿨링이 미국보다 활발하지 않은 편이다. 그중에서도 국가주의 경향이 두드러진 독일은 아직도 홈스쿨링을 불법으로 간주하고 있는데, 최근 유럽인권재판소가 독일정부 편을 든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4) 

홈스쿨링이 과연 사회의 진보에 기여할지 보수적인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쪽으로 작용할지 아직은 알 수 없는 일이다. 미국같이 다문화적이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태도가 생활 속에 녹아 있는 사회에서도 홈스쿨링은 자칫 반동적인 경향으로 흐를 수 있다. 성서 연대기에 근거해 지구의 역사가 6천 년이라고 가르치는 독실한 크리스찬 부모 아래에서 자란 아이들이 건강한 시민이 될 수 있을까. 홈스쿨링은 개인적으로는 최선의 대안이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사회적 대안이 되기에는 무리가 있다. 초창기 홈스쿨링 운동을 이끈 홀트가 진화론을 부정하는 보수적인 기독교계가 중심이 된 지금의 미국 홈스쿨링 상황을 본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어쩌면 후대의 역사가들은 홈스쿨링 운동이 미국사회의 퇴행에 기여했다고 평가할지도 모른다.

 

존 홀트의 사상과 진보교육운동


홈스쿨링 운동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존 홀트는 1923년 뉴욕에서 태어나 30세에 초등학교 교사가 되어 14년 동안 일하면서 학교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배움에 실패하는지를 주의 깊게 살폈다. 그는 학교라는 공간(또래 집단)에서 실패자로 낙인찍혀 살아가야 하는 공포감이 아이들로 하여금 배움에서 도망치게 만들고 아는 척하는 전략을 구사하도록 몰아간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실패하면 다른 아이들에게 놀림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어른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게 될 거라는 두려움 때문에 아이들은 오로지 정답을 찾는 데만 골몰했다. 그래서 ‘표정 읽기’, ‘웅얼거리기’, ‘교사가 자기 물음에 스스로 답하게 만들기’ 등 수많은 전략을 구사하면서 곤란한 상황을 모면한다. 이러한 전략은 아이들의 인격과 지성을 망가트리고 성장을 가로막는다.

홀트는 이런 실패에서 벗어나는 아이는 거의 없다고 보았다. 학교라는 제도 자체가 아이들에게 두려움을 불러일으켜서 나쁜 전략을 구사하게 만들기 때문에 아이들의 실패는 곧 학교의 실패, 교육의 실패인 셈이다. 1964년에 초판이 나온 『아이는 왜 실패하는가』5)는 교사로 있으면서 아이들이 어떻게 학습과 인간관계에서 실패하게 되는지를 깊이 있게 관찰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이 학교에서 아이들이 배움에 실패하는 과정을 기록한 ‘교실민속지’라면 이어서 나온 『아이들은 어떻게 배우는가』는 학교에서 배움을 강요당하기 이전 시기의 어린 아이들이 어떻게 세계를 탐구하고 배우는지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다. 

존 홀트는 아이들이 배움에 실패하는 것을 곧 교육의 실패로 여겼다. 학교교육에 희망을 걸기보다 아이들의 배움을 북돋울 수 있는 새로운 학습환경을 만드는 것이 더 낫다고 보고 1985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언스쿨링 운동에 매진했다. 1970년대에 미국에서 홈스쿨링 운동이 본격화하는 데는 1958년 스푸트닠 쇼크 이후 공교육에 불어 닥친 주입식 인지학습 강화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중도탈락생이 급증하면서 사회문제로 떠올랐고, 1970년을 기점으로 『학교는 죽었다』(라이머), 『교실의 위기』(실버만), 『탈학교 사회』(일리치) 등 학교교육을 비판하는 주요 저서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프리스쿨 운동이 함께 일어났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맞는 교육을 지향하는 진보주의 교육은 개인주의 경향을 띠기 마련이다. 홀트가 그러했듯이 홈스쿨링을 비롯해 진보적인 교육을 지지하는 이들은 배움을 강조한다. ‘학습자중심 교육’이라는 말도 교육보다 배움을 중시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배움(또는 학습)은 개인의 과업이다. 반면에 교육은 개인의 성장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공동체의 존속을 위한 것이다. 개인과 사회, 개인주의와 공동체주의의 긴장 관계는 인류가 존속하는 한 계속되겠지만 교육은 그 갈등 속에서 아이들이 성장할 수 있게 돕는 일이다.

 

.................................... 

1) 레너드 쉴레인, 『알파벳과 여신』, 윤영삼 조윤정 옮김, 콘체르토. 521쪽.

2) 루소의 수상집 『고독한 산책가의 몽상』은 몽테뉴 『수상록』의 맥을 잇는 개인주의 문학의 고전이다.

3) 우치다 타츠루는 이러한 관점이 미국이 근대국가로서 극적으로 성공한 원인이자 동시에 몰락의 원인이 될 거라고 예측한다.(『소통하는 신체』 194쪽)

4) 2019년 1월 10일 유럽인권재판소는 아동의 사회적 고립을 막기 위해 한 홈스쿨링 가정에서 아이들을 분리시킨 독일정부의 조치에 대해 부모의 친권을 침해한 것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5) 이 책의 원제는 ‘How children fail’이다. 홀트는 세상을 떠나기 3년 전인 1982년에 개정판을 내면서 20여 년 사이에 바뀐 생각을 덧붙였다.(1990년대에 샘터사에서 아ᄒᆡ뜰연구회의 번역으로 펴낸 책의 제목은 ‘아이는 어떻게 성공하는가’였다.)


글쓴이  현병호 _ 계간 《민들레》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