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0] ‘하면 된다’와 ‘되면 한다’ 사이

2026-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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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받은 만큼 일한다는 자세의 함정

 

개인의 삶을 중요하게 여기는 MZ세대에게 ‘워라밸’은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다.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워라밸(Work & Life Balance)이란 말에는 ‘일’과 ‘삶’을 대립 관계로 보는 시각이 담겨 있다. 일이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현실이 그런 말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일이 삶과 대립되거나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므로, 워라밸의 진정한 의미는 ‘일과 휴식의 균형’ 또는 ‘일터와 가정에 대한 관심의 균형’일 것이다. 

워라밸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이들은 일을 통한 자아실현보다 취미나 여가활동을 통한 사회적 자아실현에 더 관심을 보인다. SNS나 각종 동호회가 활성화되면서 사회적 자아실현의 새로운 통로가 열렸다. 투잡을 뛰는 직장인들도 적지 않다. 퇴근 후 자신의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거나 다양한 소규모 벤처 사업을 운영하기도 한다. 이들에게 직장은 자아실현의 장이라기보다 일종의 보험이다. ‘진정한’ 자기 일인 사업에 실패했을 때를 대비한 최후의 보루 같은 것. 

젊은 세대의 이직이 잦은 이유는 급여 수준과 사원 복지에 관한 정보 공유가 활발해진 때문이기도 하다. ‘블라인드’ 같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지금 직장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곳을 알게 되는 순간 굳이 이직 안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부양가족이 없는 경우 더 좋은 직장을 찾을 때까지 실직 기간을 감수할 여유도 있고, 단기 일자리를 찾는 것도 어렵지 않다. 개인들이 저마다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결과 공동체 수준에서는 나쁜 결과를 맞닥뜨리는 일은 종종 일어난다. 죄수의 딜레마 같은 것이다. 

워라벨을 따지는 MZ세대에겐 돈 받은 만큼만 일을 하겠다는 태도가 몸에 배어 있다. 일한 만큼 보수를 주지 않는 일터도 적지 않지만, 고용주 입장에서는 신입사원이 급여만큼 생산성에 보탬이 되지 않음에도 직원 교육을 위해 투자를 하는 입장이다. 시간이 지나면 자기 밥값 이상의 역할을 할 거라는 기대를 갖고서. 그런데 입사 1년 만에 그만두는 신입사원들이 늘어나면서 기업들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월급에 해당하는 일의 량을 계량하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실제로 자신이 받는 돈의 가치만큼만 일을 해서는 기업이 유지되지 않는다. 감가상각비 등 생산활동을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일터에서는 누구의 일인지 불분명한 일이 있기 마련이다. 그 일은 누군가 하면 좋지만 안 해도 누구의 책임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 일을 소홀히 하면 리스크가 쌓여 회사가 망할 수도 있다. 자기 일이 아님에도 눈에 띄는 일을 기꺼이 하는 사람이 있는 조직일수록 잘 작동하기 마련이다. 자기 일로 주어진 것만, 월급 받은 만큼만 일하는 사람만 있는 회사는 지속가능성이 낮다.

 

격차 사회를 넘어서는 길

 

지난날 “하면 된다”를 외치던 기성세대를 비웃기라도 하듯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은 “되면 한다”고 말한다. 계층간 격차가 벌어지면서 학교에서부터 ‘노력의 배신’을 경험한 때문이기도 할 테고, 과로사를 감수하며 일하던 기성세대의 관행을 조롱하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돈 받은 만큼만 일한다는 젊은 세대의 문제를 세대 문제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시대의 문제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50대가 오늘날 20대로 살아간다면 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부모에게 물려받은 똑같은 DNA인데 왜 부모 때와는 다른 선택을 할까. 시대가 바뀐 것이다. 변한 환경에 적응한 것일 뿐. 그렇다면 문제 해결을 위해 사람을 바꾸는 게 쉬울까 환경을 바꾸는 게 쉬울까.

근속연수에 비례해 임금(호봉)을 정하는 연공제(호봉제)는 우리 사회 임금 불평등의 주요 원인이다. 신입사원 임금을 100으로 잡았을 때 30년 근속자의 임금이 서구의 경우 170, 일본이 240 정도인데 비해 한국은 330~350에 이른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50대에 접어든 2010년대 들어 임금 부담이 두 배 가까이 늘면서 청년실업과 비정규직이 확대되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갈등, 세대간의 갈등이 깊어지고 저출산이 심화되는 배경에는 연공제 문화가 자리하고 있다.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에서 중추 역할을 한 베이비붐 세대, 그중 정규직에 몸 담은 이들은 경제성장의 수혜를 독점하다시피 했다. 연공제와 종신고용으로 높은 소득을 보장받았고, 부동산 붐을 타고 자산 소득이 급증했다. 사실상 자식 세대에게 돌아갈 몫의 상당 부분을 부모 세대가 차지한 것이다. 상속을 통해 후손에게 물려준다지만 자기 자식에게 부를 대물림하는 것에 그친다. 베이비붐 세대가 자산을 물려주기 시작하면서 MZ 세대 안에서도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세대간 격차보다 세대 내의 격차가 더 커지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가르는 것은 업무 능력이 아니라 입사 시험에 합격했는가의 여부다. 입사 시험 성적이 좋았다는 이유 하나로 무능한 직원도 수십 년 자리를 지키며 월급을 따박따박 받는다. 잘릴 걱정을 안 해도 되는 공기업의 경우 입사 때 토익 점수 한번 잘 받은 것으로 평생 놀고먹을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져 있는 셈이다. 게다가 연공제에 의해 해마다 월급이 오르고 연차가 쌓이면 승진도 한다. 시험 제도와 연공제가 결합되어 불공정한 게임이 벌어지는 것이다. 차장 대우, 부장 대우 같은 이상한 직급이 생겨나는 까닭은 연공제가 커버하지 못하는 개별 능력에 대한 보상을 하기 위함이다. 숙련도와 직무를 제대로 평가하는 시스템을 만들지 못한 채 연공 제도와 승진 제도를 적당히 섞어 보상 체계를 만들다 보니 기형적인 조직 체계가 만들어진다. 

20-30대가 60-70대처럼 우경화되는 까닭은 미래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연공제를 직무제 또는 연봉제로 바꾸고 임금피크제를 도입해 청년 일자리를 늘이고 비정규직을 줄여야 한다. 그러자면 사회적 대타협이 요구된다. 지금처럼 대기업이 하청기업을,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삥 뜯는’ 사회구조를 이대로 둔다면, 우리 사회는 서서히 와해될 것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가 함께 만들어낸 불평등한 사회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정부는 기업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주문하기 전에 공무원 사회에서 먼저 모범을 보여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 필요가 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다음 세대를 위해 기득권을 조금만 내려놓자고 설득해야 한다. 공무원 중 교직 공무원들, 그중 연차가 높은 교사와 교수들이 먼저 솔선수범할 수는 없을까. 다음 세대가 잘 성장하기를 3바란다면 지금처럼 젊은 기간제 교사들, 시간강사들을 착취하는 교육현장을 더이상 방관하거나 방조해서는 안된다.  

 

_현병호(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