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14] 유치원 교사들의 노동 환경이 곧 양육 환경이다

2026-05-08
조회수 278

ef4ff12579159.png 

최근 유치원 교사의 일상을 풍자한 개그우먼 이수지의 유튜브 영상이 큰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새벽부터 밤 늦도록 이어지는 과중한 업무로 다크서클이 나날이 짙어지는 얼굴에 애써 미소를 띄우며, 유치원에서 쓰는 물티슈의 화학 성분을 따지고 모기에 물렸다고 항의하는 부모들을 상대해야 하는 요즘 유치원 교사의 모습을 그린 ‘웃픈’ 영상을 보면서 이것이 과장이 아니라 오히려 순화된 영상이라는 증언이 이어졌다. 

자기 아이만 눈에 보이는 부모들은 온갖 시시콜콜한 요구사항들을 늘어놓는다. 원아 유치가 중요한 원장은 부모의 눈치를 살피기 바쁘고, 개중에는 교사를 종 부리듯 하는 원장도 있다. 유치원은 겉보기에 놀이동산처럼 행복한 웃음이 넘치는 공간인 듯하지만 한 꺼풀만 벗겨보면 갈등이 켜켜이 숨어 있는 공간이다. 하이톤의 목소리와 웃음 띤 얼굴로 아이들을 맞이하는 교사들 눈 아래 드리운 다크서클은 웃음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많은 유치원 교사들이 아파도 쉬지 못한다. 지난 2월 경기 부천에서 20대 교사가 독감 판정 후에도 출근하다 과로로 숨지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유치원 교사 근무 환경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다. 이수지의 영상도 이 사건에서 비롯된 것일 게다. 더불어민주당 김기표 의원이 「유아교육법」과 「영유아보육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현재 사립 유치원 교사가 병가를 낼 때 대체인력을 지원하는 교육청은 전국 17개 시·도 중 5곳(서울·부산·울산·충남·제주)뿐이다. 다른 시도에서는 대체교사를 확보하는 책임이 원장과 교사 개인에게 있다. 그러니 아파도 쉬지 못하고 일을 하게 된다. 법 개정안은 유치원·어린이집 교직원들의 쉴 권리를 보장하고, 업무 공백 시 대체인력 배치를 의무화하려는 것이다. 

유치원 알리미 공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전국 7,449개 유치원의 약 4만 명 교사 가운데 근속 2년 미만이 2만여 명으로 전체의 절반에 이른다. 이런 높은 이직율의 배경으로는 장시간 노동과 무급 초과근무, 학부모 민원, 원장 중심의 권위적인 조직문화 등이 꼽힌다. 서이초 교사의 죽음 이후 교권 보호가 사회문제가 되면서 2024년 11월, 민원을 교사 개인이 아닌 학교와 교육청이 대응하도록 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통과되고 각급 학교에 민원 대응 체계가 도입되었다. 

그런데 유아교육 현장은 여전히 사적 영역에 가깝다. 공론장에 나서서 문제 개선을 외치는 사람은 주로 공립 유치원 교사들이다. 작은 규모의 사립 유치원 교사들은 원장 눈치를 보느라 동료 교사의 죽음을 애도하는 집회에도 참석하지 못한다. 이수지의 영상 덕분에 유치원 교사들의 실태가 드러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유치원 교사들은 아이들이 처음 만나는 교사이자 부모를 대신해 아이를 보살피는 제2의 양육자이기도 하다. 교사들의 노동 환경이 곧 아이들의 양육 환경이자 교육 환경이다. 과로에 시달리고 학부모와 원장의 눈치 보기에 바쁜 교사들이 좋은 교사가 되기는 힘들다. 저 영상을 본 학부모들 중에는 교사들이 처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부터 하겠다고 마음먹기도 한다. 부모에게 보여주는 키즈노트를 쓰느라 야근을 해야 하는 교사의 입장을 헤아려 자기 아이의 키즈노트는 받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한 육아 커뮤니티에는 부모에게 보여줄 아이들 사진을 찍느라 정작 아이들을 보살필 겨를이 없는 교사들의 처지를 헤아려 “사진찍기 담당자를 따로 고용해 선생님을 존중하는 유치원을 찾아서 보내기로 했다”는 글이 올라온다. “교사들 착취 안 하는 어린이집을 추천해달라” “교사들 휴게시간 지원되고, 퇴근 후 업무 없고, 주말에 키즈노트 안 쓰게 하는 곳을 찾는다” 같은 글도 올라온다. 유치원 교사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것은 아이들의 삶을 개선하는 길이기도 하다. 부모와 교사는 육아 파트너이자 교육 동지다. 


_현병호(발행인)


[보론] 우리나라 유아교육운동의 간략 역사

 

구한말, 나라가 풍전등화 같던 시절 교육을 통해 나라를 일으키고자 도산 선생이 세운 대성학원(1906년)과 그 영향을 받아 남강 선생이 설립한 오산학교(1907년)를 비롯해 방방곡곡에 수많은 학교들이 생겨났다.1) 5천여 개에 이르렀던 사립학교는 조선총독부의 ‘사립학교령’ 반포 이후 1910년 5월 1,973개 교로, 그 5년 뒤에는 1,154개 교로 급격히 줄었다. 총독부의 교육 정책에서 유치원은 제외되었기 때문에 민족교육에 뜻을 품은 이들이 유치원 설립에 나섰지만 그 수는 40여 개를 넘지 않았다.2) 

일제강점기의 유치원은 경성유치원(1913년)처럼 조선인의 일본인화를 위한 관립 유치원, 이화유치원(1914년) 같은 선교 목적의 기독교 계열 유치원, 중앙유치원(1916) 등 민족 계열 유치원으로 나눌 수 있다.3) 동학이 아동의 존재에 눈을 뜬  뒤 3대 교주 손병희의 사위인 방정환이 어린이운동을 펼쳤지만4) 유아를 위한 시설을 만들거나 교육운동을 하지는 않았다.(그가 요절한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식민지 시절을 거쳐 전쟁으로 풍비박산이 난 나라에서 아이를 유치원을 보낼 만큼 여유 있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70년대까지만 해도 극소수의 아이들만 유치원을 다녔을 뿐 대부분의 아이들은 취학 전까지는 또래끼리 어울려 놀면서 자랐다. 

동네 골목길과 마을에서 자란 시골 아이들과 달리 개발시대에 집안에 방치된 도시 아이들을 위해 대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서울 창신동의 해송아기둥지를 비롯해 곳곳에 탁아소를 설립하여 지역운동과 보육운동을 활발히 펼쳤다.5) 국가가 방기한 영역을 민간이 메운 셈이다. 1976년부터는 공립 유치원인 병설유치원이 학교에 설치되기 시작하면서 유치원의 공교육화가 서서히 진행되었지만 보육은 여전히 민간의 영역으로 남았다. 

80년대는 유아교육의 전환기라 할 만한 시기로, 정부 차원에서도 유아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정책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1982년 「유아교육진흥법」이 공포되고 새마을유아원이 설립되면서 1987년에는 5세아 취원율이 57%에 이르렀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 유아교육기관은 「교육법」에 의한 유치원과 「유아교육진흥법」에 의한 새마을유아원6), 「영·유아보육법」에 의한 어린이집으로 나뉘게 된다. 이후 만5세 유치원 무상교육(2002), 저소득층 만3∼4세 아동 학비 지원(2004) 등이 이뤄졌다. 2012년에는 모든 만5세 아동에게 공통의 보육 및 교육과정을 제공하고 학비를 지원하는 ‘누리과정’이 시행되고7) 이듬해에는 만3~4세로 확대되었지만, 예산 문제를 둘러싸고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에 첨예한 갈등이 불거지기도 했다.

한편 70~80년대의 탁아운동은 90년대 후반 중산층 부모들을 중심으로 한 공동육아운동으로 이어졌는데8), 협동조합 방식으로 운영되는 공동육아어린이집은 레지오 에밀리아 유아교육9)을 벤치마킹한 것으로 민간 영역에 공공성을 도입한 의미 있는 시도였다. 공동육아 협동조합이 전국에 백여 개가 생겨나면서 공동육아어린이집의 ‘나들이’ 같은 문화가 유아교육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또한 2000년대 들어 생태유아교육학회가 만들어지고 숲유치원들이 생겨나면서 생태적인 유아교육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어린아이들은 자연에서 뛰어놀면서 자라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는 현장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조기교육을 강조하는 유치원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기도 하다. 각자도생 사회답게 세계화 바람을 타고 저마다 알아서 영어 조기교육에 매진하고 있고, 학원은 선행학습으로 학교교육을 무너트리고 있는 중이다. 오늘날 한국사회가 이처럼 공공보다 시장에 더 의지하게 된 것은 오랜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농촌공동체가 해체된 이후 우리나라는 사실상 각자도생의 나라가 되면서 사교육 시장이 급속히 팽창했다.10)

최근 저출생 문제가 부각되면서 영유아 정책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어린이집 보육과정(0~2세)과 유치원 교육과정(3~5세)을 통합하는 유보통합 정책은 모든 영유아가 평등하고 질 높은 보육과 교육을 통해 인생의 첫 출발을 순조롭게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목적이다. 지난 6월 27일 발표된 교육부의 실행계획안11)은 “세계 최고… 유보통합” 운운하지만 성공적인 유보통합이 이루어지려면 무엇보다 재정 확보가 관건이다.12)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복지와 교육을 민간에 떠넘기는 오랜 관행을 벗고 국가의 책무로 받아들여야 할 시점이다. 시민사회의 역할은 정부와 국회의 의사결정 방향을 제시하고 국가가 놓치는 부분을 보완함으로써 개인과 국가 사이에서 공공영역을 확대하는 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 

............................... 

1) 조선총독부 자료에 의하면 1908년 경성 시내에만 백여 개의 사립학교가 있었으며, 전국적으로는 5천여 개의 학교에 20여만 명의 학생들이 있었다. 서당의 수도 만(萬)을 헤아린다고 기록하고 있다.

2) 1921년 전국에 47개 유치원이 있었는데 그중 32개가 우리나라 어린이를 위한 곳이었다.

3) 19세기 말에 경성과 부산, 인천 등지에 일본인 자녀를 위한 유치원이 몇 곳 생겨났지만 조선인 아이들을 위한 최초의 유치원은 1909년 함경도에 정토종이 설립한 나남유치원이다.

4) 방정환은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선포하고 1923년 5월 1일 조선소년운동협회 주최로 첫 기념식을 열었다. 1923년은 세이브더칠드런 창립자 에글렌타인 젭이 아동권리선언을 발표한 해이기도 하다. 1924년 국제연맹총회는 그 선언을 그대로 채택해 ‘아동 권리에 관한 제네바 선언’을 발표했다.

5) 1986년 지역사회아동교사회에서 시작한 지역사회탁아소연합회는 1997년 한국보육교사회로 전환했고, 탁아소는 어린이집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6) 1994년 「영·유아보육법」이 시행되면서 새마을유아원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으로 바뀐다.

7) 교육과정이 아동 발달단계에 대한 이해 없이 주먹구구식이어서 유아교육 학계가 자신들의 영향력을 키우고 관련업계인 어린이집/유치원의 이권을 위한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공립유치원은 1인당 월 11만원, 사립유치원과 어린이집은 운영지원비(22만원)와 방과후 활동비(7만원) 등 1인당 월 29만원을 지원한다.

8) 대학 시절 보육운동을 하던 이들이 1995년 공동육아연구원(현 ‘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을 설립하고 서울 신촌에 최초의 공동육아협동조합인 우리어린이집을 개원했다.

9) 이탈리아 북부 레지오 에밀리아에서 시작된 유아교육으로 1991년 뉴스위크지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10개 학교’ 중 하나로 선정하면서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아동중심, 놀이중심의 교육으로, 교실을 ‘제3의 교육자’라고 부를 만큼 교실 환경을 중요하게 여긴다. 활발한 상호작용과 예술성을 고려하여 교실을 설계하고, 지적 발달을 촉진할 수 있게 교구와 학습자료 등을 비치한다. 이는 몬테소리와 발도르프 교육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기도 하다.

10) 김현성, 『자살하는 대한민국』, 사이드웨이, 2024. 163-192pp.

11) 유보통합 추진을 위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2023년 12월 국회를 통과하면서 보건복지부의 보육 업무가 교육부로 통합되는 법적 근거가 만들어졌다.

12) 김병만, ‘세계 최고 영유아교육과 보육을 위한 유보통합 실행 계획(안)’을 들여다보다, 《교육 제4의 길》, 2024. 7.18.(https://21erick.org/column/131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