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8년, 구제금융 사태가 한창 진행되던 때 출판사를 차렸다. 전세금을 빼서 반지하 작은 집으로 옮기고 나머지 돈을 밑천 삼아 출판사업에 뛰어든 셈이다. ‘사업’이 아니라 ‘운동’이라 생각했기에 겁 없이 저지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사업가와 운동가 사이에서 기우뚱거리며 균형을 잡느라 밤낮 없이 애를 먹었다. 태생적으로 사업가 기질도, 운동가 기질도 부족했지만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다.
삼십 년 가까이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빚을 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소심한 성격 탓도 있지만 사업 감각이 없어서였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것이 사업의 기본 룰이건만 사업이 될 만할 때 은행 대출을 받을 생각을 못했다. 몇백만 원씩 월세를 내는 대신 대출 이자를 내고 사옥을 마련할 생각도 못했다. 덕분에 은행빚은 안 졌지만 사람들에게 물심양면의 빚을 졌다. 그러면서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살리다 보면 스스로 서게 되는’ 것이 삶의 이치임을 깨닫게 되었다. 삶은 곧 빚을 지는 일이라는 사실을.
민들레는 출판을 통한 교육운동을 하고자 만들어진 출판사다. 민들레출판사가 세상에 나오게 된 데는 ‘이한’이라는 청년의 역할이 컸다.(이한은 필명이다. 부모님이 알면 곤란하다며 필명으로 출간되기를 원했다.)1) 보리출판사 편집장으로 있을 때 처음 만난 그는 당시 서울법대 1학년생이었다. 수능시험을 치고서 책을 쓰기 시작해 몇 달 만에 A4 200장 분량의 원고를 완성해 제본까지 해서는 보내왔다. 겉표지에는 크게 ‘학교를 해체하라’라고 쓰여 있었다.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친구가 썼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놀라운 분석력과 통찰력이 담긴 원고였다. 자신이 경험한 학교 이야기와 함께 수많은 교육학 책들에서 뽑은 인용문들로 가득한 원고를 몇 개월에 걸쳐 필자와 소통하며 수정 작업을 하다 귀농 준비를 위해 출판사를 그만뒀는데, 어느날 이한이 최종 수정원고를 보내왔다. 보리에서는 출판이 힘들겠다고 했다면서. 다른 교육 관련 출판사들에 원고를 보내봤지만 교사들이 기본 독자층인 출판사들로서는 부담스러웠던지 하나 같이 거절했다. 이런 책을 내줄 출판사가 없다는 현실에 열을 받고 책임감도 느꼈다. 뜻이 통하는 친구들과 의논하면서 교육운동을 위한 출판사를 차리기로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학교를 해체하라’ 원고는 1998년 11월 ‘학교를 넘어서’라는 많이 순화된 제목으로 세상에 나왔다.(20대 청년의 혈기를 살리지 못한 것을 뒤늦게 후회했다.) 이 책과 함께 <탈학교운동과 자율교육운동의 물꼬를 틉니다!>라는 제호의 팸플릿을 제작해 공동육아와 교사 단체 같은 곳에 뿌렸다. 그 책자를 보고 구독을 신청한 사람들이 10여 명 되었다.(이들이 <민들레> 창간호의 첫 정기구독자들이었다.) 처음에는 팸플릿 형태를 구상했다가 지속가능한 매체가 되려면 정기간행물이 되어야 한다고 판단해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을 모토로 1999년 1월, 창간호 2천 부를 제작해 또 뿌렸다. 90년대 후반 교실붕괴 현상과 함께 대안교육운동이 시작되고, 전국 곳곳에 대안학교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정기독자가 빠르게 늘어났다
야생화 잡지 또는 원예 잡지로 오해하기 좋은 이름을 달고 있지만, 《민들레》는 은근히 과격한 교육 잡지다. ‘학교 안 다니면 안 되는가’라는 특집이 실린 창간호가 나왔을 때 지금은 고인이 되신 E.T 할아버지 채규철 선생님이 화상으로 손가락이 사라진 뭉툭한 손을 저으시며 “이 잡지 6호까지 나오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고 웃으며 말했지만, 올 6월 160호가 나왔다.
27년 전 《민들레》 창간사에서 비장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었다.
교육의 권리! 우리들은 이제까지 그 권리를 학교라는 거대한 괴물에게 저당 잡히고서 해마다 자신의 귀한 아이들을 제물로 바쳐왔습니다. 그저 우리 자신의 안녕을 바라면서…. 하지만 그 안녕이란 것이 무엇입니까? 아이를 제물로 바치고서 어느 누가 안녕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이제 그만 꿈에서 깨어납시다. 저 괴물에게 아이들을 바치기만 하면 우리 자신이, 우리의 마을이 안녕하리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아이들이 없는 마을에 무슨 희망이 있습니까? (…) 우리는 이제 더 이상 학교에 기대를 걸지 않으려고 합니다. 학교에 힘을 실어주지 않기. 그것이 또한 학교를 바꿀 수 있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창간호에서 소개한 홈스쿨링이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모임이 만들어지고 학교교육의 대안으로 떠올랐다. 자발적으로 학교를 뛰쳐나온 청소년들이 알음알음 출판사를 찾아와 모이면서 탈학교 청소년 동아리가 만들어졌다. 이 아이들의 목소리를 모아 『자퇴일기』라는 책을 펴냈다. 십대들의 목소리는 힘이 있었다. ‘민들레사랑방’이라는 이름으로 꾸려지던 청소년들의 자발적 모임이 2006년부터 ‘공간 민들레’라는 1년 과정의 대안학교 형태로 모습을 바꾸게 되었다. 학교를 뛰쳐나와 부모 몰래 찾아오던 청소년보다 부모 손을 잡고 오는 청소년들이 늘어나면서다.
우리 사회에서 20년 이상 지속되는 잡지는 흔치 않다. 오래된 잡지들이 그렇듯이 신선함을 유지하기가 어렵고, 신규 독자를 확보하기도 쉽지 않다. 해가 거듭될수록 오랜 독자와 신규 독자의 갭이 커지면서 편집 방향을 잡기가 힘들어진다. 더욱이 인터넷에 읽을거리가 넘쳐나면서 종이책 독자가 줄어들고 잡지 정기구독자도 나날이 줄어들면서 이태 전부터 계간지로 바뀌었다. 《민들레》는 장기 구독하는 열성 독자가 많은 편이고 전국 60여 곳에서 독자모임이 열리고 있지만 독자가 늘지 않으니 얼마나 더 지속될지 알 수 없다.
초창기에 민들레에서 홈스쿨링과 대안학교를 집중적으로 소개한 것은 학교를 상대화하고 다른 교육이 가능함을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넓게 보면 다양성이 강조되는 시대적 흐름의 결과이겠지만, 교육이 곧 학교교육은 아니라는 메시지가 우리 사회에 보편화된 데는 민들레도 일조했을 것이다. 그렇게 교육이 아닌 배움을 강조하고, ‘삶이 곧 교육’이라는 메시지를 부각하고자 오랫동안 애를 써왔지만, 나이를 먹으며 세상사를 좀더 알게 되고 공부를 폭넓게 하면서 민들레가 던져왔던 메시지들 속에 담긴 딜레마를 깨닫게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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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한은 대학을 졸업한 후 노동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며 『삶은 왜 의미 있는가』『중간착취자의 나라』『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같은 책을 쓰고, 『포스트 민주주의』『계급론』등 여러 권의 번역서를 냈다. 헌법재판소 연구원을 거쳐 지금은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이자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_현병호(민들레 발행인)
1998년, 구제금융 사태가 한창 진행되던 때 출판사를 차렸다. 전세금을 빼서 반지하 작은 집으로 옮기고 나머지 돈을 밑천 삼아 출판사업에 뛰어든 셈이다. ‘사업’이 아니라 ‘운동’이라 생각했기에 겁 없이 저지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사업가와 운동가 사이에서 기우뚱거리며 균형을 잡느라 밤낮 없이 애를 먹었다. 태생적으로 사업가 기질도, 운동가 기질도 부족했지만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다.
삼십 년 가까이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빚을 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소심한 성격 탓도 있지만 사업 감각이 없어서였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것이 사업의 기본 룰이건만 사업이 될 만할 때 은행 대출을 받을 생각을 못했다. 몇백만 원씩 월세를 내는 대신 대출 이자를 내고 사옥을 마련할 생각도 못했다. 덕분에 은행빚은 안 졌지만 사람들에게 물심양면의 빚을 졌다. 그러면서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살리다 보면 스스로 서게 되는’ 것이 삶의 이치임을 깨닫게 되었다. 삶은 곧 빚을 지는 일이라는 사실을.
민들레는 출판을 통한 교육운동을 하고자 만들어진 출판사다. 민들레출판사가 세상에 나오게 된 데는 ‘이한’이라는 청년의 역할이 컸다.(이한은 필명이다. 부모님이 알면 곤란하다며 필명으로 출간되기를 원했다.)1) 보리출판사 편집장으로 있을 때 처음 만난 그는 당시 서울법대 1학년생이었다. 수능시험을 치고서 책을 쓰기 시작해 몇 달 만에 A4 200장 분량의 원고를 완성해 제본까지 해서는 보내왔다. 겉표지에는 크게 ‘학교를 해체하라’라고 쓰여 있었다.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친구가 썼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놀라운 분석력과 통찰력이 담긴 원고였다. 자신이 경험한 학교 이야기와 함께 수많은 교육학 책들에서 뽑은 인용문들로 가득한 원고를 몇 개월에 걸쳐 필자와 소통하며 수정 작업을 하다 귀농 준비를 위해 출판사를 그만뒀는데, 어느날 이한이 최종 수정원고를 보내왔다. 보리에서는 출판이 힘들겠다고 했다면서. 다른 교육 관련 출판사들에 원고를 보내봤지만 교사들이 기본 독자층인 출판사들로서는 부담스러웠던지 하나 같이 거절했다. 이런 책을 내줄 출판사가 없다는 현실에 열을 받고 책임감도 느꼈다. 뜻이 통하는 친구들과 의논하면서 교육운동을 위한 출판사를 차리기로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학교를 해체하라’ 원고는 1998년 11월 ‘학교를 넘어서’라는 많이 순화된 제목으로 세상에 나왔다.(20대 청년의 혈기를 살리지 못한 것을 뒤늦게 후회했다.) 이 책과 함께 <탈학교운동과 자율교육운동의 물꼬를 틉니다!>라는 제호의 팸플릿을 제작해 공동육아와 교사 단체 같은 곳에 뿌렸다. 그 책자를 보고 구독을 신청한 사람들이 10여 명 되었다.(이들이 <민들레> 창간호의 첫 정기구독자들이었다.) 처음에는 팸플릿 형태를 구상했다가 지속가능한 매체가 되려면 정기간행물이 되어야 한다고 판단해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을 모토로 1999년 1월, 창간호 2천 부를 제작해 또 뿌렸다. 90년대 후반 교실붕괴 현상과 함께 대안교육운동이 시작되고, 전국 곳곳에 대안학교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정기독자가 빠르게 늘어났다
야생화 잡지 또는 원예 잡지로 오해하기 좋은 이름을 달고 있지만, 《민들레》는 은근히 과격한 교육 잡지다. ‘학교 안 다니면 안 되는가’라는 특집이 실린 창간호가 나왔을 때 지금은 고인이 되신 E.T 할아버지 채규철 선생님이 화상으로 손가락이 사라진 뭉툭한 손을 저으시며 “이 잡지 6호까지 나오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고 웃으며 말했지만, 올 6월 160호가 나왔다.
27년 전 《민들레》 창간사에서 비장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었다.
교육의 권리! 우리들은 이제까지 그 권리를 학교라는 거대한 괴물에게 저당 잡히고서 해마다 자신의 귀한 아이들을 제물로 바쳐왔습니다. 그저 우리 자신의 안녕을 바라면서…. 하지만 그 안녕이란 것이 무엇입니까? 아이를 제물로 바치고서 어느 누가 안녕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이제 그만 꿈에서 깨어납시다. 저 괴물에게 아이들을 바치기만 하면 우리 자신이, 우리의 마을이 안녕하리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아이들이 없는 마을에 무슨 희망이 있습니까? (…) 우리는 이제 더 이상 학교에 기대를 걸지 않으려고 합니다. 학교에 힘을 실어주지 않기. 그것이 또한 학교를 바꿀 수 있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창간호에서 소개한 홈스쿨링이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모임이 만들어지고 학교교육의 대안으로 떠올랐다. 자발적으로 학교를 뛰쳐나온 청소년들이 알음알음 출판사를 찾아와 모이면서 탈학교 청소년 동아리가 만들어졌다. 이 아이들의 목소리를 모아 『자퇴일기』라는 책을 펴냈다. 십대들의 목소리는 힘이 있었다. ‘민들레사랑방’이라는 이름으로 꾸려지던 청소년들의 자발적 모임이 2006년부터 ‘공간 민들레’라는 1년 과정의 대안학교 형태로 모습을 바꾸게 되었다. 학교를 뛰쳐나와 부모 몰래 찾아오던 청소년보다 부모 손을 잡고 오는 청소년들이 늘어나면서다.
우리 사회에서 20년 이상 지속되는 잡지는 흔치 않다. 오래된 잡지들이 그렇듯이 신선함을 유지하기가 어렵고, 신규 독자를 확보하기도 쉽지 않다. 해가 거듭될수록 오랜 독자와 신규 독자의 갭이 커지면서 편집 방향을 잡기가 힘들어진다. 더욱이 인터넷에 읽을거리가 넘쳐나면서 종이책 독자가 줄어들고 잡지 정기구독자도 나날이 줄어들면서 이태 전부터 계간지로 바뀌었다. 《민들레》는 장기 구독하는 열성 독자가 많은 편이고 전국 60여 곳에서 독자모임이 열리고 있지만 독자가 늘지 않으니 얼마나 더 지속될지 알 수 없다.
초창기에 민들레에서 홈스쿨링과 대안학교를 집중적으로 소개한 것은 학교를 상대화하고 다른 교육이 가능함을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넓게 보면 다양성이 강조되는 시대적 흐름의 결과이겠지만, 교육이 곧 학교교육은 아니라는 메시지가 우리 사회에 보편화된 데는 민들레도 일조했을 것이다. 그렇게 교육이 아닌 배움을 강조하고, ‘삶이 곧 교육’이라는 메시지를 부각하고자 오랫동안 애를 써왔지만, 나이를 먹으며 세상사를 좀더 알게 되고 공부를 폭넓게 하면서 민들레가 던져왔던 메시지들 속에 담긴 딜레마를 깨닫게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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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한은 대학을 졸업한 후 노동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며 『삶은 왜 의미 있는가』『중간착취자의 나라』『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같은 책을 쓰고, 『포스트 민주주의』『계급론』등 여러 권의 번역서를 냈다. 헌법재판소 연구원을 거쳐 지금은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이자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_현병호(민들레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