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호 없는 교육감, 뭘 보고 찍나?
한 인터넷 게시판에 질문이 올라왔다. 정치색이 뚜렷한 시어머니가 매번 교육감만은 누굴 찍어야 하는지 자식들에게 묻는다고 했다. 번호도 없이 이름만 보고 찍어야 하는 교육감을 알아서 판단하기 어려워하신다는 거다. 다른 곳에 살고 있어서 해당 지역의 후보자 정보를 찾아 이름을 알려드리는데 이게 맞는지 모르겠다며 “다른 집들은 어떤가요?”라고 질문하자, 댓글이 주렁주렁 달렸다.
“시골에 계신 저희 부모님은 이장님께 물어보고 찍는대요.” “우리 어머님은 현수막 색깔 보고 이름을 기억해두셨는데, 막상 기표소 들어가니까 같은 성 씨가 둘이라서 헷갈렸다고 하시더라고요.” “저희 아버님은 아예 손바닥에 이름을 써서 들어가셨어요.” “저희 엄마는 그냥 맨앞에 있는 이름 찍고 나오셨다네요.”
노인들만의 문제일까. “애들이 다 커서 (혹은 자녀가 없어서) 교육에 관심이 없는데, 누굴 찍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반응은 주변에 흔하다. 교육감 선거 무효 투표율이 다른 선거에 비해 월등히 높은 것도 이런 이유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2022년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무효 투표율은 0.9%인 데 반해, 교육감 무효표는 5배가 넘는 4.9%에 달했다. 이틀 전 치러진 선거에서도 전국의 교육감 선거 무효표는 108만 7,120개에 달했다. 전체의 4%로 이 또한 다른 선거 무효표의 2.5배에 달하는 수치다.1)
독특한 투표용지 역시 유권자들의 선택을 어렵게 하는 이유로 꼽힌다. 후보자 간 형평성을 위해 다른 투표용지와 달리 가로로, 번호 없이, 이름만 적혀 있으며, 이름의 순서도 선거구마다 다르다. 이번 선거의 한 투표소에선 어느 시민이 “왜 교육감 투표지에 번호가 없느냐”며 공약집을 가져다 달라고 소동을 벌이는 일도 있었다. 고의적인 무효표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100만이 넘는 무효표는 교육감 직선제의 많은 문제점을 드러낸다.

교육감 투표용지 예시 (출처_중앙선관위)
‘정당 없는 정치선거’라는 구조적 모순
정부가 교육감을 임명하던 시절을 지나, 1991년 지방교육자치제가 부활한 뒤에 교육위원과 학교운영위원 등 선거인단이 선출하는 간선제가 시행됐다. 그러나 주민 참여가 제한되고 민주적 정당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이어지면서, 2007년 관련 법 개정을 통해 주민 직선제를 도입했다. 이후 2010년 지방선거부터 교육감 직선제가 본격 시행되었다.
교육감 직선제는 교육자치와 지방분권을 확대했다는 평가를 받는 한편, 후보 정보 부족에 따른 ‘깜깜이 선거’, 선거 비용 증가, 진영 대결 심화 등의 문제도 드러나고 있다. 교육감 선거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기 위해 정당 공천을 금지하고 후보자의 정당 활동도 엄격히 제한한다. 하지만 번호만 없을 뿐 진보, 보수 등 진영 논리를 교육정책보다 전면에 내세우는 건 관행이 되었다. 어떻게든 이름 석 자 알리기에 급급해진 후보들의 조급함은 특히 이번 선거에서 극명히 드러났다. 일부 지역에선 같은 진영 내에서조차 단일화에 실패하고 저마다 ‘진영 대표’임을 내세우며 유권자들에게 혼돈을 더했다.2) “특정 정당의 지지·추천을 내세우는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는 원칙을 깨고 자신에게 유리한 정치인의 이름과 얼굴을 홍보물에 넣는 일도 흔했다.
진취적인 교육정책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도 문제다. 이번에 진보 성향 교육감 후보들의 공동 공약 중 내신·수능 절대평가 전환이나 고교서열화 해소, 지방대학 균형발전 등은 교육감 권한 밖의 사안이다. 그마저도 구체적 실행 방안 없이 선언적 수준에 머물렀다. 보수 성향 후보들이 제시한 AI 교육 강화, 학력 신장, 교권 보호 등의 공약도 원론적 구호에 그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동성애·퀴어 교육 금지, 차별금지법 반대, 전교조 OUT 등을 내세우는 것 역시 교육정책보다 이념 논쟁을 앞세운 사례다.
교육감 후보 자격이 완화되면서 전문성 검증을 둘러싼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일부 후보들은 교육정책보다 정치적 이력과 진영 논리에 더 기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교육감 선거는 직선제 도입 취지와 달리 ‘정당 없는 정치 선거’라는 구조적 모순을 안은 채 강행되고 있다.
교육 주체, 그들의 목소리를 담았는가
교육계는 물론 시민들도 이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한국교육개발원 조사에 따르면 지방교육자치가 지역 특성에 맞는 다양한 교육 실천에 기여하냐는 물음에 ‘그렇지 않다/전혀 그렇지 않다’는 응답은 지난해 46.3%로 2021년에 비해 17%p 증가했다. 반면 ‘그렇다’는 응답은 같은 기간 13.7%p 급감했다.
“교육자치를 회복한다”는 직선제의 본래 취지를 살리려면 적극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시민들에게 후보의 정보 제공을 확대하는 방법, 추천위원회 등을 통해 후보와 정책에 대한 검증을 강화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지방자치의 장점을 살려 각 지역에 맞는 교육 현안을 해결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교육감은 예산, 돌봄, 학교시설, 통학안전 등 많은 영역에서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해야 하는 만큼, 유권자의 선택 부담을 줄이고 행정의 연계성을 높이기 위해 ‘자치단체장과의 러닝메이트제’ 같은 방안도 제시할 수 있다.
또 하나 놓치고 있는 것은 왁자지껄한 어른들의 잔치 속에 교육의 핵심 주체인 ‘학생’의 목소리가 없다는 사실이다. 약 500만 명의 공교육 학생, 16~17만 명에 이르는 학교 밖 청소년은 교육감의 정책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이해당사자이면서도 그 결정 과정에서 가장 멀리 있다. 현실적으로 학생들의 선거권 확보가 어렵다면 선거 과정에 학생 공약 평가단이나 공청회를 의무화하는 등으로 당사자들의 영향력을 높일 수도 있다. 이번 서울 교육감 후보의 단일화 투표에는 청소년도 시민참여단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 청소년들이 후보 선출 과정에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점이 시시하는 바가 크지만, 정작 본선에서 이들의 의견을 반영할 통로가 없다는 점은 역설적이다.
4년간 교육자치를 책임질 수장을 뽑는 일은 끝났다. 그러나 100만 개의 무효표가 던진 질문은 그대로 남았다. 교육감 직선제는 누구를 위한 제도이며, 누구의 목소리를 어떻게 담아내야 하는가. 4년 후 같은 과오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그 답을 찾는 일을 지금부터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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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교육감 아무나 찍었다”... 무효표 100만개 ‘대혼란’, 《한국경제》, 2026.06.04
2) 이번 선거에서 서울시 교육감 후보는 8명이었다.
_장희숙(민들레 편집장)
번호 없는 교육감, 뭘 보고 찍나?
한 인터넷 게시판에 질문이 올라왔다. 정치색이 뚜렷한 시어머니가 매번 교육감만은 누굴 찍어야 하는지 자식들에게 묻는다고 했다. 번호도 없이 이름만 보고 찍어야 하는 교육감을 알아서 판단하기 어려워하신다는 거다. 다른 곳에 살고 있어서 해당 지역의 후보자 정보를 찾아 이름을 알려드리는데 이게 맞는지 모르겠다며 “다른 집들은 어떤가요?”라고 질문하자, 댓글이 주렁주렁 달렸다.
“시골에 계신 저희 부모님은 이장님께 물어보고 찍는대요.” “우리 어머님은 현수막 색깔 보고 이름을 기억해두셨는데, 막상 기표소 들어가니까 같은 성 씨가 둘이라서 헷갈렸다고 하시더라고요.” “저희 아버님은 아예 손바닥에 이름을 써서 들어가셨어요.” “저희 엄마는 그냥 맨앞에 있는 이름 찍고 나오셨다네요.”
노인들만의 문제일까. “애들이 다 커서 (혹은 자녀가 없어서) 교육에 관심이 없는데, 누굴 찍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반응은 주변에 흔하다. 교육감 선거 무효 투표율이 다른 선거에 비해 월등히 높은 것도 이런 이유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2022년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무효 투표율은 0.9%인 데 반해, 교육감 무효표는 5배가 넘는 4.9%에 달했다. 이틀 전 치러진 선거에서도 전국의 교육감 선거 무효표는 108만 7,120개에 달했다. 전체의 4%로 이 또한 다른 선거 무효표의 2.5배에 달하는 수치다.1)
독특한 투표용지 역시 유권자들의 선택을 어렵게 하는 이유로 꼽힌다. 후보자 간 형평성을 위해 다른 투표용지와 달리 가로로, 번호 없이, 이름만 적혀 있으며, 이름의 순서도 선거구마다 다르다. 이번 선거의 한 투표소에선 어느 시민이 “왜 교육감 투표지에 번호가 없느냐”며 공약집을 가져다 달라고 소동을 벌이는 일도 있었다. 고의적인 무효표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100만이 넘는 무효표는 교육감 직선제의 많은 문제점을 드러낸다.
교육감 투표용지 예시 (출처_중앙선관위)
‘정당 없는 정치선거’라는 구조적 모순
정부가 교육감을 임명하던 시절을 지나, 1991년 지방교육자치제가 부활한 뒤에 교육위원과 학교운영위원 등 선거인단이 선출하는 간선제가 시행됐다. 그러나 주민 참여가 제한되고 민주적 정당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이어지면서, 2007년 관련 법 개정을 통해 주민 직선제를 도입했다. 이후 2010년 지방선거부터 교육감 직선제가 본격 시행되었다.
교육감 직선제는 교육자치와 지방분권을 확대했다는 평가를 받는 한편, 후보 정보 부족에 따른 ‘깜깜이 선거’, 선거 비용 증가, 진영 대결 심화 등의 문제도 드러나고 있다. 교육감 선거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기 위해 정당 공천을 금지하고 후보자의 정당 활동도 엄격히 제한한다. 하지만 번호만 없을 뿐 진보, 보수 등 진영 논리를 교육정책보다 전면에 내세우는 건 관행이 되었다. 어떻게든 이름 석 자 알리기에 급급해진 후보들의 조급함은 특히 이번 선거에서 극명히 드러났다. 일부 지역에선 같은 진영 내에서조차 단일화에 실패하고 저마다 ‘진영 대표’임을 내세우며 유권자들에게 혼돈을 더했다.2) “특정 정당의 지지·추천을 내세우는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는 원칙을 깨고 자신에게 유리한 정치인의 이름과 얼굴을 홍보물에 넣는 일도 흔했다.
진취적인 교육정책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도 문제다. 이번에 진보 성향 교육감 후보들의 공동 공약 중 내신·수능 절대평가 전환이나 고교서열화 해소, 지방대학 균형발전 등은 교육감 권한 밖의 사안이다. 그마저도 구체적 실행 방안 없이 선언적 수준에 머물렀다. 보수 성향 후보들이 제시한 AI 교육 강화, 학력 신장, 교권 보호 등의 공약도 원론적 구호에 그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동성애·퀴어 교육 금지, 차별금지법 반대, 전교조 OUT 등을 내세우는 것 역시 교육정책보다 이념 논쟁을 앞세운 사례다.
교육감 후보 자격이 완화되면서 전문성 검증을 둘러싼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일부 후보들은 교육정책보다 정치적 이력과 진영 논리에 더 기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교육감 선거는 직선제 도입 취지와 달리 ‘정당 없는 정치 선거’라는 구조적 모순을 안은 채 강행되고 있다.
교육 주체, 그들의 목소리를 담았는가
교육계는 물론 시민들도 이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한국교육개발원 조사에 따르면 지방교육자치가 지역 특성에 맞는 다양한 교육 실천에 기여하냐는 물음에 ‘그렇지 않다/전혀 그렇지 않다’는 응답은 지난해 46.3%로 2021년에 비해 17%p 증가했다. 반면 ‘그렇다’는 응답은 같은 기간 13.7%p 급감했다.
“교육자치를 회복한다”는 직선제의 본래 취지를 살리려면 적극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시민들에게 후보의 정보 제공을 확대하는 방법, 추천위원회 등을 통해 후보와 정책에 대한 검증을 강화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지방자치의 장점을 살려 각 지역에 맞는 교육 현안을 해결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교육감은 예산, 돌봄, 학교시설, 통학안전 등 많은 영역에서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해야 하는 만큼, 유권자의 선택 부담을 줄이고 행정의 연계성을 높이기 위해 ‘자치단체장과의 러닝메이트제’ 같은 방안도 제시할 수 있다.
또 하나 놓치고 있는 것은 왁자지껄한 어른들의 잔치 속에 교육의 핵심 주체인 ‘학생’의 목소리가 없다는 사실이다. 약 500만 명의 공교육 학생, 16~17만 명에 이르는 학교 밖 청소년은 교육감의 정책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이해당사자이면서도 그 결정 과정에서 가장 멀리 있다. 현실적으로 학생들의 선거권 확보가 어렵다면 선거 과정에 학생 공약 평가단이나 공청회를 의무화하는 등으로 당사자들의 영향력을 높일 수도 있다. 이번 서울 교육감 후보의 단일화 투표에는 청소년도 시민참여단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 청소년들이 후보 선출 과정에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점이 시시하는 바가 크지만, 정작 본선에서 이들의 의견을 반영할 통로가 없다는 점은 역설적이다.
4년간 교육자치를 책임질 수장을 뽑는 일은 끝났다. 그러나 100만 개의 무효표가 던진 질문은 그대로 남았다. 교육감 직선제는 누구를 위한 제도이며, 누구의 목소리를 어떻게 담아내야 하는가. 4년 후 같은 과오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그 답을 찾는 일을 지금부터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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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교육감 아무나 찍었다”... 무효표 100만개 ‘대혼란’, 《한국경제》, 2026.06.04
2) 이번 선거에서 서울시 교육감 후보는 8명이었다.
_장희숙(민들레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