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7] ‘보는’ 세대의 탄생

2026-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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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않는 아이들

 

2023년, 코로나 종식을 코앞에 두고 있던 시기에 1학년 담임을 맡았다. 입학 후 사흘도 지나지 않아 무언가 심각한 징조들이 읽혔다. 글자를 ‘읽어야’ 할 것으로 인식하지 않는(못하는) 1학년을 처음 만났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아이에게 문자 자극은 그냥 하나의 그림으로 존재하는 듯 보였다. 반면 길든 짧든 영상을 보여주면 모두가 몰입하며 시청했다. 이 아이들에게 ‘영상’을 활용해 한글 해득 교육을 해야 하는 것인가, 지난하겠지만 실물을 통한 교육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갈등했던 기억이 있다. 결론은 두 방법의 절충이었지만 당시의 충격은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당시 심각한 발달 지연을 보이는 아이들이 여럿이었다.

2025년 1학년 학생 중에 2학기가 되도록 한글 해독이 전혀 안 되는 아이가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나름 문해력 전문가로 담임교사, 상담교사, 교육복지전문가 등과 함께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보았지만 아이는 매번 ‘거부’의 몸짓을 강하게 보였다. ‘인지 부담’이 되는 활동을 거부하고, 교실에서는 가만히 앉아 수업에 참여하지 않았다. 다른 학생들의 수업을 방해하진 않았지만, 아이 자신이 스스로 학습을 방해하고 있었다. 그 아이가 하교 후 주로 하는 일은 스마트폰으로 먹방을 ‘보는’ 일이었다. 먹방을 보듯 다른 아이들의 학습 또한 ‘시청’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초등학교 1학년 교실에서 글을 읽지 못한다는 것은 여러 불편을 초래하는 일이다. 어떻게든 읽어보려고 애쓰는 아이들이 보편이었던 시대에서 ‘읽고 싶은 욕구’ 자체를 거세당한 아이들과 공존해야 하는 시대로의 전환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 아이가 유아 시절부터 스마트폰 영상으로 양육되는 경험을 하지 않았다면 다르지 않았을까? 어쩌면 그 아이는 21세기 ‘지니’●가 아닌가? 다락방에 갇혀 자란 지니와 스마트폰에 갇힌 개똥이는 유사한 발달 지연을 보인다. 

 

● 1970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발견된 아동으로 심각한 학대와 고립 속에 자란 야생아(feral child) 사례로 널리 알려졌다. 이 사례는 언어 습득의 ‘결정적 시기 가설’을 검증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다.

 

 

프랑스의 디지털 정책

 

2024년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 직속 전문가위원회는 「아이들과 스크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는 아이들의 환경이 디지털 기기의 일반화로 인해 현저히 달라졌으며 그 중심에 ‘스크린’이 있음을 집중 조명한다. 이 보고서의 디지털 기기에 대한 연령별 가이드라인은 다음과 같다. 

▪  3세 미만 : 스크린 전면 금지. 감각 운동과 초기 언어 습득이 일  어나는 결정적 시기로 스크린 노출을 전면 차단해야 한다. 

▪  3세~6세 : 스크린 사용 강력 비권장. 불가피한 경우 성인의 동석 하에 교육적 목적의 콘텐츠만 제한적으로 시청한다. 영유아 보육시설(어린이집, 유치원) 내 컴퓨터 및 TV 설치를 금지한다.

▪  11세 미만 : 개인 휴대폰 소유 금지

▪▪ 11세~13세 : 휴대폰 소유는 허용하되 인터넷 접속이 불가능한 기기만 허용한다.

▪▪ 15세 미만 : 소셜 미디어 사용 전면 금지. 15세 이후에도 윤리적으로 설계된 플랫폼에 한해서만 접속을 허용한다.

 

이 가이드라인은 내 마음의 대변인 같았다. 그러나 곧바로 ‘이게 대한민국에서 가능할까?’ 싶은 의문이 앞섰고, 이어서 ‘(우리나라처럼) 프랑스에서도 제대로 안 되고 있을 거야’라는 단정이 앞섰다. 그간 국민 여론이라는 이유로 무언가 대대적인 변화를 만들 것처럼 나섰던 정치권이 무엇 하나 시원하게 해결한 적이 없었으므로 프랑스라는 국가도 그럴 것 같았다.

그러나 최근 알아본 바에 따르면 프랑스 정부는 이를 실제로 법제화해 실행 중이라고 한다. 「영유아 보육 국가 헌장」을 개정하여 모든 보육시설에 3세 미만 아동의 스크린 노출을 전면 금지하고, 3세 미만 자녀를 둔 모든 부모에게 스크린 노출 금지에 대한 교육용 안내문을 발송했다고 한다. 인터넷 접속이 안 되는 휴대전화만 소유할 수 있는 중학생(11~13세)들은 그마저도 교내 반입이 전면 금지되어 강제적 디지털 휴식Digital Pause 시간을 갖게 되었다. 이는 고등학교까지 확대되어 2026년 9월부터는 고등학생도 교내 스마트폰 반입이 금지될 예정이란다. 이에 더해 15세 미만의 소셜 미디어 사용도 전면 금지된다. 모든 플랫폼 기업에 연령 인증을 의무화하고, 미이행 시 막대한 벌금(글로벌 총 매출의 1%)을 부과하도록 법령을 개정한 것이다.

 

스크린에 몰입하는 아이들

 

우리나라는 어떤가? 겨우 수업시간에 ‘개인용 스마트 기기 사용을 금지’하는 수준이다. 이런 내용으로 「초·중등 교육법」이 개정되어 교사, 학부모들이 환영하기도 했지만 본격적으로 시행된 2026년 3월 이후, 교사들은 이런 전화를 숱하게 받았다. 

“선생님, 우리 애한테 학교 끝나고 나올 때 핸드폰 전원 켜라고 꼭 말해주세요. 애가 자꾸 까먹어서 연락이 안 되더라구요.”

이 요청에는 ‘불안 세대’●를 키우는 불안한 부모들의 궁여지책이 응축되어 있다. ‘개인화된 단독성들의 사회’●●에서 위험은 가늠할 수 없이 커졌고, 불안은 증폭되어 ‘지금 당장’ 연락이 되지 않으면 참을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아이들의 환경을 지배하는 스크린이 제아무리 위험하다 해도 지금 당장의 위험을 소거하기 위해 부지런히 아이들의 손에 스마트 기기를 쥐여줄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러한 환경 변화 속에서도 학교 정책은 오히려 디지털 노출을 더 확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1997년 교육인적자원부는 ‘교단 선진화 사업’으로 1조 4천억 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초등학교 교실에 컴퓨터와 TV를 들여놓았다. 1999년 강남의 모 초등학교로 첫 발령을 받았을 때만 해도 브라운관 TV는 방송 조회 외에는 사용할 일이 없었다. 그러다가 프로젝션 TV라는, 일반 가정집에서는 구경하기 힘든 대형 디스플레이가 들어오면서 스크린은 칠판을 압도했다. 

그러나 당시 아이들은 스크린에 몰입하지 않았다. 어렵게 구한 DVD로 40분짜리 애니메이션을 보여주면 항상 “선생님 그만 봐도 돼요?”라고 묻는 아이들이 여럿 있었다. 그랬던 아이들이 이제는 86인치 전자칠판 영상은 물론 6인치 스마트폰 영상에도 곧바로 빠져든다. 스크린이 압도하는 시대를 사는 아이들이니 당연한 결과다. 

미국의 심리학자 데이비드 레비는 이를 일찍이 ‘팝콘 브레인’이라고 명명한 바 있다. 팝콘이 터지듯 크고 강렬한 자극에만 뇌가 반응하는 현상이다. 강렬하고 즉각적인 자극에만 반응하고, 현실 세계에 무감각해지며, 주의력이 분산되고 그에 따라 집중력이 저하된다. 문제는 2026년을 사는 양육자들 처지도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다만, 현실 세계에서의 실물에 대한 경험, 사회적 관계에 대한 경험이 아이들보다는 더 축적되어 있을 뿐이다.

 

● 조너선 하이트, 『불안 세대』, 이충호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24. 

●● 안드레아스 레크비츠, 『과잉 히스테리 사회, 단독성들의 사회』, 윤재왕 옮김, 새물결, 2023.

 

 

‘보는 세대’로 자라는 아이들

 

프랑스는 아이들의 잃어버린 시간, 아니 스크린에 빼앗긴 시간을 찾기 위해 왜 이런 강력한 법안을 마련하고 시행하는 것일까? 2024년 1월 마크롱 대통령은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프랑스 아동·청소년의 우울증, 불안장애, 수면장애, 사이버 불링 등의 지표가 국가 보건 체계를 위협할 수준으로 폭증했다(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는 보고를 받고, ‘통제되지 않은 스크린’의 위험성을 막을 방안을 찾았다. 신경학자, 정신과 의사, 교육학자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는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가장 단호한 조치를 마련하고 대통령은 이를 시행하였다. 

단순히 ‘아이들이 스마트폰을 너무 많이 본다’는 우려를 넘어 국가가 주도하여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한 어린이의 뇌 발달과 교육 생태계를 회복할 수 없다는 절박한 위기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언어 발달과 인지 발달은 다른 노선에서 출발하지만 상보적 관계로 서로를 선도한다. 이는 풍부한 사회문화적 상호작용을 통해서 발달하는데, 영유아기부터 수동적 반응만 유도하는 스크린 타임의 폭발적 증가는 언어와 인지 발달에 악영향을 준다. 언어 발달의 결정적 시기를 놓치게 만들어 문해력 발달에도 악영향을 주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것이다. 

프랑스는 우리나라보다 먼저 학교 현장에 에듀테크 도입을 주도했다.● 2023년부터는 학습용 인공지능을 도입하였으나, 사적인 스크린은 엄격하게 배제하고 공공 에듀테크는 학습용으로 안전하게 고도화한다는 ‘투 트랙’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화면 속 화려한 시청각 자료가 학습조절 능력이 덜 형성되었거나 주의 통제력이 부족한 학생에게 인지 과부하를 일으키고 집중력을 분산시키는 역효과를 낳는다는 비판이 있었기 때문이다. 스마트 기기가 교사와 학생 간의 섬세하고 인간적인 교수학습 과정을 완전히 대체할 수 없고, 스마트 기기의 무분별한 도입이 오히려 교육 양극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적극 수용한 것이다.

충동을 조절하는 전두엽이 다 자라지 않은 아이들이 도파민 보상 회로에 갇혀 무방비로 알고리즘에 종속되는 현실을 묵과하며 인공지능이, 에듀테크가 학습 격차도 줄여주고 교사들의 잡무도 줄여줄 것이라는 환상을 교육부가 나서서 퍼뜨리는 대한민국은 어떤 길을 찾아야 할까? 빅테크 글로벌 기업들이 무한 스크롤, 자동 재생, 자극적인 알고리즘으로 아이들의 시간을 무한 잠식하면서 주의력을 착취하는 시대를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이렇게 고민하고 염려하는 사이에 아이들은 읽거나 쓰지 않는 세대, 몸을 부려 쓰지 않고 ‘보는 세대’로 자라고 있다. 가정의 돌봄 기능이 약한 아이들이 가장 먼저 ‘보는 세대’가 되고 있다. 그래서 가끔 생각해본다. 우리나라도 프랑스처럼 할 수 없을까? 현 대통령의 강력한 리더십이 이를 이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고개를 젓는다. 디지털 기술에 친화적인 정부, AI를 추종하는 것 같은 여당과 일반 여론 사이에 ‘발달 중인 미래세대’에 대한 고민이나 교육이 들어설 길이 있기는 할까!

2012년, 서울의 한 혁신학교에서 학부모 동아리로 ‘와글와글 놀이터’를 운영했다. 방과후에 학교 놀이터에서 놀 자유를 주되 학부모들이 품앗이처럼 돌아가며 학교 놀이터의 안전을 지켜주는 일이었다. 그때도 많은 아이들 손에는 스마트폰이 있었다. 그러나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있던 아이들이 어울려 노는 친구들을 보면서 스마트폰을 던져놓고 같이 놀더라는 증언들이 나왔다. 그렇게 와글와글 놀이터는 서울시로, 전국으로 퍼져갔다. 2026년의 아이들이라고 다를까? 그렇지 않을 거라고 감히 단언한다. 

『바른 마음』과 『불안 세대』의 저자 조너선 하이트는 ‘위험을 감수하는 놀이의 회복’을 위한 다양한 운동을 펼치고 있다. 어린이의 스크린 몰입을 적극적으로 제한하기 위한 제도나 정책이 시행되고 자리 잡는 과정이 지난하겠지만 지난 우리의 놀이 경험을 지렛대 삼아 다시 한번 놀이운동을 펼쳐야 할 시기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되어야 울지만, 우리의 실천은 언제나 황혼이 오기 전에 피어났다. 몸으로 놀면서 해보고, 그 경험을 말하고 쓰고 읽는 세대를 기르는 일은 우리 어른들의 몫이지 않은가! 


_한희정 (항동초등학교 교장. 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불안을 잠재우는 문해력 상담소』같은 책을 썼습니다. 이 글은 계간 민들레 160호에 실렸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