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9] AI가 쓴 글은 나쁜가

202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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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쓴 글일까

 

청소년들과 수업 중에, 한 학생이 서평을 발표했다. ‘이 책의 주제는 실존주의 철학과 연결된다’는 문장이 나오기에 실존주의 철학이 뭔지 물으니 당황한다. 잠시나마 ‘설마 하이데거를 읽었나?’ 했던 것이 머쓱해지는 순간이었다. 점수를 매기는 것도, 상을 주는 것도 아닌데 글쓰기 숙제를 내주면 AI에게 맡기는 아이들이 있다. 편리해서다. 숙제하느라 긴 시간 끙끙거리지 않아도 되고, 생각하는 고통도 피할 수 있다. 사람의 뇌는 효율을 따지기 마련이다.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아는데 부러 힘든 길을 택하기는 쉽지 않다. AI 글쓰기에 쉽게 길들여지는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 

AI로 글을 쓰는 것이 확산하고 있다고 체감한 건 작년 가을, 어느 공모전 심사에 참여했을 때다. 400여 편의 응모작 중 십수 편이 AI로 쓰거나, AI가 쓴 것을 조금 손본 것 같았다. 진짜 고민은 후보작 스무 편을 걸러놓고 나서 시작됐다. 차라리 출중한 작품이 있으면 나았으련만, 다 고만고만한 데다 이 중에도 AI가 쓴 것이 있으면 어쩌지 싶어서 최종 심사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졌다.(그림 분야를 심사하던 작가님도 난감해하셨다. 그분은 여러 해째 이 심사에 참여하는데, 출품작에서 AI 느낌이 난 건 작년이 처음이라고 했다.) 강력하지만 심증일 뿐, 입상에서 배제할 만큼 확실한 근거는 없기에 더욱 난처했다. 

출판계도 이런 흐름 속에서 혼란을 겪고 있다. 최근 신춘문예 등 대부분의 공모전 안내에는 “AI로 작성한 사실이 확인되면 당선 취소와 상금 환수”라거나 “AI 작성 글은 접수 불가”라는 요강이 달린다. 하지만 이 조항은 힘이 없다. 심사위원이 AI 사용 여부를 완벽히 판별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AI 감지 프로그램이 있지만 정확도가 높지 않다. 실제 당선이 취소된 사례도 생겨났는데, 이는 대개 독자 제보에 의해서였다. 당선작을 읽다가 “○○ 작품과 문장, 구조, 인물의 대사가 매우 유사하다”며 비교표를 제시하거나 간혹 프롬프트 지시어가 삭제되지 않은 것을 발견해 제보한 경우다. 정작 당사자는 자신이 누구의 글을 얼마나 표절했는지조차 모른다는 사실은 더욱 ‘웃픈’ 현실이다. 

이런 사정이 되자 아예 외부 투고를 받지 않는 곳도 생겨났다. 어느 잡지사는 다음 호에 실을 원고를 모집하면서 “딱 보면 압니다. AI로 쓴 것은 보내지도 마세요”라고 경고문 같은 안내문을 덧붙이기도 했다. 다소 거친 뉘앙스에는 마구잡이로 들어온 AI 원고를 읽다가 지친 편집자의 심경이 드러났다. 이런 사태를 사전에 막아보고자 원고를 받으면서 AI 활용 여부를 미리 체크하는 언론사도 있다. 

하지만 AI를 활용한 글쓰기는 물론 소설 작법 책도 나오는 상황에서, 이미 많은 작가들도 창작에 AI를 활용하고 있다. 여든이 넘은 황석영 작가는 작년에 발표한 『할매』를 집필하며 챗GPT를 조수로 썼다고 밝힌 바 있다. 소설의 주요 요소를 입력해두고 AI와 대화를 나누며 작품을 완성했다는 그는 “열 명의 박사 학위자를 두고 일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열 명의 박사 같은 AI의 역할이 ‘조수’였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집필을 주도하는 창작자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창작에 활용하는 것과 창작을 대신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지만 그 경계가 모호한 까닭에, 일각에선 기성 작가에게 허용적인 AI 활용의 잣대가 예비 작가들에게만 엄격하다는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올 것이 왔다 

 

매 호 15편 내외의 글을 싣는 《민들레》 원고에도 올해 상반기를 지나며 이런 흐름이 감지되고 있다. 전부 AI로 쓴 글은 없었지만, 읽다 보면 어느 부분에서 AI가 쓴 글을 가져왔는지 확연히 구분이 되었다. 대체로 후반부나 마지막 문단이었다. 처음엔 자신의 생각으로 글을 써내려가다가 글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마무리를 어떻게 지어야 할지 모를 때 AI 도움을 받은 듯했다. 

이제 시작일 뿐, 이 흐름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편집자의 고민도 깊어진다. 어느 필자가 말끔한 (엄청 훌륭하지 않지만 딱히 하자도 없는) 글을 보내오며 “AI와 협업해 썼습니다”라고 밝힌다면 어떻게 할까. AI에게 맡긴 것도 아니고 AI의 도움을 받았을 뿐이라는데, 글을 수록하기 어렵다고 단번에 거절할 수 있을까? 아니면 “감사합니다!” 하고 흔쾌히 게재할 수 있을까? 

르포르타주 『먼저 온 미래』에서 소설가 장강명은 앞으로 AI가 사람을 능가하는, 창의적인 작품을 써낼 가능성을 인정한다. 그는 “AI가 못 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세간의 질문을 “우리는 무엇을 가치 있다고 생각할 것인가?”로 옮긴다. 

 

“소설을 쓸 때 나는 내가 주체적으로 일한다는 사실이 좋다. 원고가 안 풀린다면 머리를 쥐어뜯을 때도 나는 내 일의 주인이다. 매번 매 순간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고, 그게 만만찮은 모험이기에 꽤 흥분된다. 드물지만 상쾌한 몰입의 순간도 찾아온다. 내 개성이 듬뿍 담긴, 스스럼없이 ‘내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결과물을 생산하며 어떤 순간에는 틀림없이 온전한 보람을 맛본다.” _223쪽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데 들이는 시간과 노력 속에는 ‘과정의 주체’로서 내가 있다. AI가 쓴 글에 기대는 이들은 그 과정을 생략한 채 결실만을 얻길 기대한다. 그렇게 주어지는 결실은 일순 달콤할지라도 길게 보면 내 몸을 해치는 설탕과 같다. “그 안락함 때문에 자신의 능력은 퇴화되고 그 달콤함에 젖어 정신적 당뇨에 걸릴1)”지도 모른다. 따라잡을 수 없는 기술의 위험성을 이제야 경계한 듯, 최근 AI 개발 속도를 늦추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렇더라도 이미 우리 삶에 깊이 침윤한 AI를 떼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변화의 파고 속에서 내가 과정의 주체로 살아가고 있는지 아닌지, 그 사실은 자신만이 알 것이다. 

사람이 쓴 글의 가장 큰 특징은 문법에 어긋나는 요소들이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능숙한 전문 필자의 글이라도 반드시 고쳐야 할 것이 있다. 유명 작가들도 편집자의 손길을 거치지 않고는 책을 내기 어렵다. AI 흔적으로 얼룩진 글이 하도 많다 보니, 이젠 주술어가 맞지 않는 문장이나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틀린 문장을 만나면 그 ‘사람다움’에 외려 안심한다. AI가 쓴 글은 교정교열을 볼 일이 없지만, 어긋나는 문장 틈에서 빛나는 저자의 필력과 통찰에 감탄할 일도 없다. AI가 그마저 흉내 내지 않고서야, 인간의 인간다움은 불완전함으로 확인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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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joongang.co.kr/article/25433455


_장희숙(민들레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