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장체험학습 중 교통사고로 학생이 사망한 사건에 대해 인솔 교사에게 법적 책임을 지운 지난 2월의 법원 판결과 관련하여 한 교사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_편집실
그동안 교사들은 누구도 강제하지 않은 현장체험학습을 스스로 계획하여 떠났다. 아이들이 많은 것을 경험하고 성장하길 바라면서. 교실을 벗어나 지역사회로 혹은 평소 쉽게 방문하기 힘든 곳을 찾아 떠나는 그 노력은 분명 의미가 있었다. 학급 공동체가 특별한 추억을 만들면서도, 어떻게든 국가 교육과정이 강제하는 ‘성취 기준’을 비롯한 학습 요소도 촘촘히 엮어 그 당위성도 최대한 살리고자 애썼다.
그러나 오늘날 학교는 현장체험학습을 쉽게 실행할 수 없는 국면을 맞이했다. 사실 한순간에 일어난 일은 아니다. 다양한 사건과 판례 속에서 교사의 책임이 하나씩 늘어났다. 고속도로 한가운데에서 갑자기 화장실을 가고 싶어 하는 아이의 상황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창피함을 느끼지 않게 모든 문제를 처리해야 했고, 원하는 친구하고만 버스 옆자리에 앉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상반된 요구에도 모두가 만족하는 좌석 배치안을 내놓아야 하는 숙제를 떠맡기도 했다.
뿐인가. 교육청에서 지원되는 비용으로 무상 수학여행이나 현장학습을 떠나는데도 그 일정과 ‘비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응답하는 부모 의견에도 적절히 대응해야 했다. 그리고 예견치 못한 사건과 사고도 미리 막아야만 하는, 불가능한 과제를 짊어진 오늘에 이른다. 그래서 이젠 현장체험학습이라는 무거운 짐을 학교가 내려놓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런 움직임 때문에 현장체험학습이 영영 사라지는 건 아닐까, 염려하는 이들도 있는 줄 안다. 아이들의 경험 기회가 줄어든 현실에 분노하는 이들도, 이를 근거로 교사들을 비난하는 여론도 있다.
이 지점에서 이야기를 살짝 바꿔서 한 가족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부부는 한참 호기심이 많을 초등학생 자녀를 양육하면서 아이의 다양한 경험을 위해 가족여행을 계획했다. 그런데 걱정거리가 있었다. 활동적인 이 아이는 평소에 부모가 제지해도 멋대로 행동하기 일쑤였다. 우당탕탕 사고를 달고 살았다. 그래서 여행을 가기 전에도 여행 중에도 몇 번이나 주의를 시켰지만 아이는 역시나 아이. 부모의 당부에도 결국 아이는 지나가던 자동차에 부딪혀 크게 다쳤다.
세상에는 어른들의 말 한마디에 곧장 태도를 바꾸는 ‘모범적인’ 어린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차분하게 규칙에 순응하는 아이도 있지만,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해 끊임없이 움직이며 구속되는 걸 싫어하는 아이도 있다. 그런 아이에겐 규칙을 지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다양한 아이들이 어울려 지내는 교실에서는 더욱 그렇다. 아이들은 다 다르고, 어른의 지도에 쉽게 영향을 받지 않는 아이도 있는 법이며, 그들을 완벽히 통제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아이 본연의 특성 때문에 또는 사고를 낸 운전자의 부주의 때문에, 또는 아무리 아이를 조심시켰어도 맞닥뜨리게 되는 안타까운 우연의 연속 때문에 일어난 불의의 사고에 대해 부모를 처벌하는 것이 과연 옳을까? 많은 이들이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것이다. 무엇보다 사고의 원인이 부모에게 있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아무리 완벽하게 부모가 자녀를 위한 여행을 준비해도, 예견치 못한 상황을 만날 수도 있는 법이니까. 만에 하나 사회가 그 부모에게 책임을 묻는다면, 부모들이 자녀들을 데리고 자유롭게 여행도 다닐 수 있을까. 그런데 왜 교사에게는 사뭇 다르게 책임을 지우는 걸까.

교사도 학생을 사랑한다. 교사도 학생이 성장하기를 바란다. 교사는 교실 속 존재들의 행복한 교육을 꿈꾼다. 그렇기에 굳이 가지 않아도 될 현장체험학습을, 학년 교육과정과 학급 교육과정을 설계하는 과정 중에 다양한 학습 요소와 연결하여 계획하는 것이다. 교육청 예산을 받아 일정을 세우고, 사전 답사를 통해 안전을 살피는 등 여러 수고로운 업무를 부가적으로 감당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사회는 조금씩 달라졌다. 현장체험학습 때 아이가 조금만 다쳐도, 조금만 아파도, 조금만 싸워도, 무언가 불편한 게 하나만 있어도, 담임 교사의 과실을 찾아 책임을 묻는다. 체험학습뿐 아니라 학교생활에서 일어나는 모든 과정에서 완벽한 대비와 대처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교사들은 무너졌다. 사법적 책임을 지게 되기도 하고, 비난과 공격을 받아 쓰러지기도 했다.
부모가 모든 부정적인 요소로부터 한두 명의 자녀조차도 오롯이 지켜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우리 사회는 어떤 논리로 적게는 십수 명, 많게는 몇십 명의 아이들을 인솔하는 교사에게 그 책임과 의무를 강요할 수 있을까. 진정으로 교육의 현장을 걱정하는 한 명의 사람으로서 그 대답을 듣고 싶다.
봄이 왔다. 꽃이 만발하고 따뜻한 온기가 바람에 감돌지만, 아이들의 발걸음은 교실 밖 봄바람을 마냥 따라가지 못한다. 그 발걸음은 교사와 학교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을 따라 흘러가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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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이준기 _ 교실에서 살아가는 학생과 교사의 교육적 순간들을 있는 그대로 알리기 위해 글을 쓴다. 꿈몽글 팀의 글 작가.
현장체험학습 중 교통사고로 학생이 사망한 사건에 대해 인솔 교사에게 법적 책임을 지운 지난 2월의 법원 판결과 관련하여 한 교사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_편집실
그동안 교사들은 누구도 강제하지 않은 현장체험학습을 스스로 계획하여 떠났다. 아이들이 많은 것을 경험하고 성장하길 바라면서. 교실을 벗어나 지역사회로 혹은 평소 쉽게 방문하기 힘든 곳을 찾아 떠나는 그 노력은 분명 의미가 있었다. 학급 공동체가 특별한 추억을 만들면서도, 어떻게든 국가 교육과정이 강제하는 ‘성취 기준’을 비롯한 학습 요소도 촘촘히 엮어 그 당위성도 최대한 살리고자 애썼다.
그러나 오늘날 학교는 현장체험학습을 쉽게 실행할 수 없는 국면을 맞이했다. 사실 한순간에 일어난 일은 아니다. 다양한 사건과 판례 속에서 교사의 책임이 하나씩 늘어났다. 고속도로 한가운데에서 갑자기 화장실을 가고 싶어 하는 아이의 상황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창피함을 느끼지 않게 모든 문제를 처리해야 했고, 원하는 친구하고만 버스 옆자리에 앉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상반된 요구에도 모두가 만족하는 좌석 배치안을 내놓아야 하는 숙제를 떠맡기도 했다.
뿐인가. 교육청에서 지원되는 비용으로 무상 수학여행이나 현장학습을 떠나는데도 그 일정과 ‘비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응답하는 부모 의견에도 적절히 대응해야 했다. 그리고 예견치 못한 사건과 사고도 미리 막아야만 하는, 불가능한 과제를 짊어진 오늘에 이른다. 그래서 이젠 현장체험학습이라는 무거운 짐을 학교가 내려놓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런 움직임 때문에 현장체험학습이 영영 사라지는 건 아닐까, 염려하는 이들도 있는 줄 안다. 아이들의 경험 기회가 줄어든 현실에 분노하는 이들도, 이를 근거로 교사들을 비난하는 여론도 있다.
이 지점에서 이야기를 살짝 바꿔서 한 가족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부부는 한참 호기심이 많을 초등학생 자녀를 양육하면서 아이의 다양한 경험을 위해 가족여행을 계획했다. 그런데 걱정거리가 있었다. 활동적인 이 아이는 평소에 부모가 제지해도 멋대로 행동하기 일쑤였다. 우당탕탕 사고를 달고 살았다. 그래서 여행을 가기 전에도 여행 중에도 몇 번이나 주의를 시켰지만 아이는 역시나 아이. 부모의 당부에도 결국 아이는 지나가던 자동차에 부딪혀 크게 다쳤다.
세상에는 어른들의 말 한마디에 곧장 태도를 바꾸는 ‘모범적인’ 어린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차분하게 규칙에 순응하는 아이도 있지만,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해 끊임없이 움직이며 구속되는 걸 싫어하는 아이도 있다. 그런 아이에겐 규칙을 지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다양한 아이들이 어울려 지내는 교실에서는 더욱 그렇다. 아이들은 다 다르고, 어른의 지도에 쉽게 영향을 받지 않는 아이도 있는 법이며, 그들을 완벽히 통제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아이 본연의 특성 때문에 또는 사고를 낸 운전자의 부주의 때문에, 또는 아무리 아이를 조심시켰어도 맞닥뜨리게 되는 안타까운 우연의 연속 때문에 일어난 불의의 사고에 대해 부모를 처벌하는 것이 과연 옳을까? 많은 이들이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것이다. 무엇보다 사고의 원인이 부모에게 있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아무리 완벽하게 부모가 자녀를 위한 여행을 준비해도, 예견치 못한 상황을 만날 수도 있는 법이니까. 만에 하나 사회가 그 부모에게 책임을 묻는다면, 부모들이 자녀들을 데리고 자유롭게 여행도 다닐 수 있을까. 그런데 왜 교사에게는 사뭇 다르게 책임을 지우는 걸까.
교사도 학생을 사랑한다. 교사도 학생이 성장하기를 바란다. 교사는 교실 속 존재들의 행복한 교육을 꿈꾼다. 그렇기에 굳이 가지 않아도 될 현장체험학습을, 학년 교육과정과 학급 교육과정을 설계하는 과정 중에 다양한 학습 요소와 연결하여 계획하는 것이다. 교육청 예산을 받아 일정을 세우고, 사전 답사를 통해 안전을 살피는 등 여러 수고로운 업무를 부가적으로 감당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사회는 조금씩 달라졌다. 현장체험학습 때 아이가 조금만 다쳐도, 조금만 아파도, 조금만 싸워도, 무언가 불편한 게 하나만 있어도, 담임 교사의 과실을 찾아 책임을 묻는다. 체험학습뿐 아니라 학교생활에서 일어나는 모든 과정에서 완벽한 대비와 대처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교사들은 무너졌다. 사법적 책임을 지게 되기도 하고, 비난과 공격을 받아 쓰러지기도 했다.
부모가 모든 부정적인 요소로부터 한두 명의 자녀조차도 오롯이 지켜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우리 사회는 어떤 논리로 적게는 십수 명, 많게는 몇십 명의 아이들을 인솔하는 교사에게 그 책임과 의무를 강요할 수 있을까. 진정으로 교육의 현장을 걱정하는 한 명의 사람으로서 그 대답을 듣고 싶다.
봄이 왔다. 꽃이 만발하고 따뜻한 온기가 바람에 감돌지만, 아이들의 발걸음은 교실 밖 봄바람을 마냥 따라가지 못한다. 그 발걸음은 교사와 학교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을 따라 흘러가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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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이준기 _ 교실에서 살아가는 학생과 교사의 교육적 순간들을 있는 그대로 알리기 위해 글을 쓴다. 꿈몽글 팀의 글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