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미니즘과 여성 혐오
“선생님, 페미니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여자들도 군대 가야 된다고 생각하세요?”
가끔 이런 질문을 받는다. 많은 남자 중고생들은 ‘페미니즘은 나쁜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러니까 저 질문을 뒤집으면 ‘당신도 혹시 꼴페미 아니냐?’는 뜻이기도 하다.
몇 년 전 가르친 학생 중에 학급 회장과 학생회 간부를 할 정도로 똑똑하고 언변이 좋았지만 극단적인 일베 행적을 보인 학생이 있었다. 학교에서 임원 수련회를 하는데 노무현 대통령을 조롱하는(부엉이 바위가 어쩌고 하는)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평소에도 자주 거리낌 없이 패드립(부모를 언급하는 패륜적 조롱의 말)과 여성 혐오 발언을 하던 그 아이는 군대 징집 제도에 대한 토론 수업을 마치고 난 직후, 교실에 있는 학생들이 다 듣도록 큰 목소리로 내게 “페미니즘에 대해 어찌 생각하시느냐?”고 물었다. 50대 후반의 경력교사도 낙인찍어 괴롭힐 수 있다는 자신감이 그 목소리와 눈빛에 묻어났다.
남자아이들은 몸으로는 여성을 약자라 생각하지만, 머리로는 여성에 대한 경계심이 있는 듯하다. 그것을 혐오감으로 버무려 두려워하면서 미워한다. 과거의 영화를 빼앗긴 젊은 남성은 힘은 약한 주제에 치고 올라오는 경쟁자를 경계하며(어쭈, 이것들이?) 혐오(어딜 나서?)한다. 내가 느낀 남자아이들의 정서를 거칠게나마 모아보면 이렇다.
▪ 이 좁은 경쟁 사회에서 상위권은 주로 여자애들이 차지한다. 어른들이 여자애들만 예뻐하면서 차별하며 우리를 길렀다. 그 중심에는 엄마 그리고 선생님(초등교사 80%가 여성)들이 있다. 그래서 엄마 또래 여자들이 싫다. 남자애들보고 까분다, 시끄럽다 혼내지만 초등학교 때 보면 남자애들보다 드센 여자애들도 많았다(이들은 주로 여자애들을 괴롭히는 남자아이들을 앞장서 혼내주는 전사 노릇을 했다). 그 똑똑하고 힘센 여자애들은 ‘무섭다.’
▪ 그러면서 여자들은 군대도 안 간다. 우리가 군대 가서 ‘뺑이’칠 때, 안 그래도 시험 잘 보던 여자애들은 공부할 시간을 더 번다. 그리고 공무원, 대기업, 공기업, 모든 좋은 자리를 여자애들이 차지한다. 이제는 남자들이 더 잘할 수 있는 군인, 소방직, 경찰직까지 여자들이 나서서 높은 자리를 차지한다. 불공평하지 않은가?
▪ 결혼하면 남자들한테도 집안일 해라, 육아도 같이 하자, 그러면서 애는 많이 안 낳으려 한다. 돈 못 버는 남자는 무시한다.
▪ 자기들 보고 예쁘다, 사귀자, 그러면 성추행이니 성희롱이니 하면서 남자를 범죄자 취급한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안 그러는데 우린 언제나 잠재적 성범죄자 취급을 당한다.
▪ 억울하다. 남자들은 다 죽으라는 거냐?
남자아이들의 피해의식은 어디에서 오는가
20대 남성의 보수화가 공론화되기 시작한 건 박근혜 대통령 때였던 것 같다. 일간베스트(일베) 웹사이트를 중심으로 여성 혐오 논쟁이 번지고, 남성연대 성재기 대표가 투신 사망하고, 군 가산점 폐지 등 사회구조가 남성에게 불리해졌다는 주장이 떠돌던 그 무렵, 우리 학생들도 자주 접한다고 해서 ‘일베’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경악을 했다. 정치적으로 보수적이고 여성의 권리 주장에 반발하는 정도가 아니었다. 세월호 참사나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폄훼는 정치적 입장 때문에 그렇다고 하더라도, 포르노에 가까운 내용이 넘치고 패륜적인 이야기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오가는 사이트는 그야말로 범죄의 현장이었다. 그러나 당시 정권은 자기들을 지지하는 세력이라 생각해서인지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그 반대편에 있는 진보 진영에서는 어떠했는가. 그에 대한 제재가 우리가 그토록 어렵게 쟁취해낸 ‘표현의 자유’를 가로막는 빌미가 될 수 있지 않겠냐는 우려를 표했다. 지금은 그 사이트 하나를 쪼그라들게 만들 수 있지만 결국 나중에 진보적이고 올바른 정치적 견해에 대해서도 제재를 가하는 부메랑이 될지도 모른다며 ‘인터넷(네티즌)의 자정 능력을 믿어보자’고 했다. 그리고 그때 싹트기 시작한 일베 정신은 이제 많은 젊은 남성들의 ‘사상’이 되어버렸다. 그때 무럭무럭 자라난 그 감성과 정치적 지향이 지금의 10대, 20대 남성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 같다.
구시대의 유물은 청산되지 않아 남녀 차별이 남아 있는 이 사회에서 그 책임을 져야 하는 구세대 남자들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젊은 남자들이 그 혐의를 다 뒤집어쓰고 있다. 한창 연애를 해야 할 때지만 젊은 여성들의 경계심 때문에 자유롭게 이성을 사귈 수도 없다. 게다가 주변 (남성)문화는 여성에 대한 왜곡된 시선을 공기처럼 공유하고 있다. 일종의 ‘환경’이 되어서 그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남성들도 어떤 면에서는 피해자일 수 있다. 어수선하고 음란하고 폭력적인 학교 문화 때문에 고통을 호소하는 남학생들도 많다.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인권의식도 없고 무도한 인간이 되기 쉬우며 젠더 감수성 예민한 젊은 여성들로부터 외면당할 지경이다.
혜택은 없고, 불안은 높고, 이성에 대한 선망은 강렬하다. 젊은 남성의 삶은 불균형과 부조화 그 자체이다. 젊은 여성들도 불안하고 불안정하긴 마찬가지이지만 보다 공동체적인 방향으로 자존을 찾아가려는 경향이 강한 데 비해 남성들은 문화적으로 더욱 취약하다. 게임과 운동 외에 정신을 안정시켜줄 자기들만의 세계를 찾지 못한다. 어쩌면 해소하지 못한 그 불안감을 약자인 여성에게 쏟는 것인지도 모른다.
남녀평등 따위 아직 이루어지지도 않았고 사흘에 한 명꼴로 여성들이 연인이나 남편 등에게 살해되는 세상*, 남녀 급여가 30%나 차이 나는 세상이다. 그런데도 남자들은 ‘여성들이 우위를 점하는 세상’이라 불평등하단다. 여기까지 보면 객관성은 하나도 없이 더 많이 가지겠다고 징징대는 젊은 남자들이 한심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10대, 20대 남성들의 불편한 감정은 과거 아버지 세대처럼 남자로서 여자 위에 군림하며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는 징징거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한국여성의전화가 2023년 언론에 보도된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에 의한 여성 살해’를 조사한 결과 피해자 수는 최소 138명으로 추정된다.
아이들이 말하는 ‘혐오 사회’의 원인
아이들과 ‘혐오 표현’에 대한 토론을 하던 중 물었다. “어느 나라나 악성 댓글, 혐오 표현, 혐오 범죄는 있어요.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인터넷상에서 혐오 표현이 들끓는 나라도 별로 없죠. 모든 계층과 직업에 대한 혐오가 사방으로 뻗치는 이유가 뭘까요?”
많은 아이들이 인터넷 문화가 발달해서 그렇다는 식으로 대답했다. 이때 한 아이가 심각하게 “경쟁이 심해서 그래요”라고 대답하자 교실은 찬물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경쟁과 혐오/증오의 상관관계를 조용히 짚어가는 과정에서 공감의 물결이 일어났다. 그렇지. 모두가 모두와 경쟁해야 하는 세상, 아무리 열심히 해도 해낼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은 세상에 남는 건 미움뿐이지.
한때는 한 교실에 서너 명 정도, 무슨 수를 써도 죽어라 공부를 안 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지금 교실 풍경을 옮겨보자면, ‘모두가 열심히 한다.’ 머리가 좋든 나쁘든, 선행을 했든 안 했든, 집이 가난하든 부자든 거의 모든 학생들이 매시간 열심히 한다. 처음에는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이 예뻤다. 그러다 의아해졌다. 어째서 아이들답지 않게 모두 열심히 공부하지? 그런데, 모두 다 열심히 하면 모두 다 공부를 잘할 수 있나? 어차피 성적은 줄을 서게 돼 있는데, 모두가 열심히 한다는 건 기대치와 기준치가 더 높아진다는 것 아닌가? 이렇게 모두 열심히 하면 스스로 극복할 수 없는 선천적 조건을 갖고 있는 학생들은 이 분위기에 짓눌리지 않을까. 그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공부를 좀 못해도, 아니 열심히 하지 않아도 사회에 나가서 존중받으면서 먹고살 수 있는 세상이라면 모두 한 방향만 바라보진 않을 것이다.
인간은 자기만의 능력과 능률, 경제적 자립, 전문성 같은 것을 인정받아야 자존감이 높아진다. 그래야 다른 이도 존중할 여유가 생긴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그런 것을 보장받을 ‘입지’가 없다. 그 입지는 직업과 경제력, 능력일 텐데 질 좋은 취업 자리가 너무 적다. 아직 취업 경쟁에 뛰어들지 않은 어린 학생들조차 미래에 내가 과연 잘 해낼 수 있을지 불안하고 자신감이 없는 게 사실이다. 이것은 심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현실인 것이다.
지금 20대 젊은이들의 취업률은 5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단다. 질 좋은 취업 자리가 많지 않아 젊은이들 대부분은 시험을 치러 들어갈 수 있는 대기업, 공기업, 공무원, 경찰, 소방, 교정직, 교사, 전문직 자격증에 도전한다. 그런데 그 경쟁률이 어마어마하다.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한 분야에 수년 간 공부하며 여러 번 낙방을 맛본다. 천 명을 뽑는데 만 명이 지원한다면 반드시 9천 명은 낙방한다. 좌절의 끝은 경쟁자에 대한 증오로 향한다. 이런 현상은 남녀를 떠나 이 시대 젊은이들의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세상에서 여성들은 남성들을 위협적 존재로 여기고 자신이 낳을 아이의 미래가 불안하기에 출산을 저어한다. 일종의 ‘출산파업’이다. 젊은 여성들이 세상에 ‘빅엿’을 먹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대체로 이런 것들을 말로 표현하지 않는다. 지금 세상에 대해 불공정하다, 억울하다, 큰 소리로 말하는 이들은 오히려 젊은 남성들이다. 그동안 당한 성적 괴롭힘에 대해 ‘미투’로 말하다가 더 크게 얻어맞고, 가까운 이들에게 폭력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는 게 기가 막힌 여성들은, 자기가 낳을 아이들에 대해 어떤 안전장치도 마련해주지 않는 세상에 기가 막힌 여성들은 목소리를 높여 맞서 싸워도 달라지지 않는 세상에 출산 거부로 답한다. 그런 여자들을 보면서 젊은 남자들은 “여자들은 애도 안 낳을 거면 군대나 가라” 한다.
35년 동안 남자 중학생들을 가르치며 별별 굴곡진 의식을 가진 아이들을 만났지만 이렇게 남녀가 서로 반목하고 싫어하는 시대를 본 적이 없다. 낙천적 성격으로 태어나 의지로 낙관하며 그 모든 세월을 견뎌온 나이 든 교사, 늙어가는 엄마는 과연 세상에 희망이 있긴 한 건지 의문을 품으며 고개를 숙인다. 얘들아 힘내자, 서로 미워하지 말고 싸우지 말자, 서로를 사랑하자, 이런 말을 더 이상 못 한다. 진짜 못된 놈들이 누구인지 제대로 바라보자고, 그들과 싸워 이기려면 우리가 같은 편이라는 것, 그들이 아무리 우리끼리 싸우라고 부추겨도 우리는 서로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주자고, 더는 말할 수가 없다. 그래서 더 막막하고 슬프다.
* 이 글의 전문은 계간《민들레》154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____________
안정선_남자중학교에서 35년째 근무하고 있다. 『교사와 부모 사이』, 『젠더 감수성을 키우는 교육』(공저) 같은 책을 썼다.
페미니즘과 여성 혐오
“선생님, 페미니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여자들도 군대 가야 된다고 생각하세요?”
가끔 이런 질문을 받는다. 많은 남자 중고생들은 ‘페미니즘은 나쁜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러니까 저 질문을 뒤집으면 ‘당신도 혹시 꼴페미 아니냐?’는 뜻이기도 하다.
몇 년 전 가르친 학생 중에 학급 회장과 학생회 간부를 할 정도로 똑똑하고 언변이 좋았지만 극단적인 일베 행적을 보인 학생이 있었다. 학교에서 임원 수련회를 하는데 노무현 대통령을 조롱하는(부엉이 바위가 어쩌고 하는)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평소에도 자주 거리낌 없이 패드립(부모를 언급하는 패륜적 조롱의 말)과 여성 혐오 발언을 하던 그 아이는 군대 징집 제도에 대한 토론 수업을 마치고 난 직후, 교실에 있는 학생들이 다 듣도록 큰 목소리로 내게 “페미니즘에 대해 어찌 생각하시느냐?”고 물었다. 50대 후반의 경력교사도 낙인찍어 괴롭힐 수 있다는 자신감이 그 목소리와 눈빛에 묻어났다.
남자아이들은 몸으로는 여성을 약자라 생각하지만, 머리로는 여성에 대한 경계심이 있는 듯하다. 그것을 혐오감으로 버무려 두려워하면서 미워한다. 과거의 영화를 빼앗긴 젊은 남성은 힘은 약한 주제에 치고 올라오는 경쟁자를 경계하며(어쭈, 이것들이?) 혐오(어딜 나서?)한다. 내가 느낀 남자아이들의 정서를 거칠게나마 모아보면 이렇다.
▪ 이 좁은 경쟁 사회에서 상위권은 주로 여자애들이 차지한다. 어른들이 여자애들만 예뻐하면서 차별하며 우리를 길렀다. 그 중심에는 엄마 그리고 선생님(초등교사 80%가 여성)들이 있다. 그래서 엄마 또래 여자들이 싫다. 남자애들보고 까분다, 시끄럽다 혼내지만 초등학교 때 보면 남자애들보다 드센 여자애들도 많았다(이들은 주로 여자애들을 괴롭히는 남자아이들을 앞장서 혼내주는 전사 노릇을 했다). 그 똑똑하고 힘센 여자애들은 ‘무섭다.’
▪ 그러면서 여자들은 군대도 안 간다. 우리가 군대 가서 ‘뺑이’칠 때, 안 그래도 시험 잘 보던 여자애들은 공부할 시간을 더 번다. 그리고 공무원, 대기업, 공기업, 모든 좋은 자리를 여자애들이 차지한다. 이제는 남자들이 더 잘할 수 있는 군인, 소방직, 경찰직까지 여자들이 나서서 높은 자리를 차지한다. 불공평하지 않은가?
▪ 결혼하면 남자들한테도 집안일 해라, 육아도 같이 하자, 그러면서 애는 많이 안 낳으려 한다. 돈 못 버는 남자는 무시한다.
▪ 자기들 보고 예쁘다, 사귀자, 그러면 성추행이니 성희롱이니 하면서 남자를 범죄자 취급한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안 그러는데 우린 언제나 잠재적 성범죄자 취급을 당한다.
▪ 억울하다. 남자들은 다 죽으라는 거냐?
남자아이들의 피해의식은 어디에서 오는가
20대 남성의 보수화가 공론화되기 시작한 건 박근혜 대통령 때였던 것 같다. 일간베스트(일베) 웹사이트를 중심으로 여성 혐오 논쟁이 번지고, 남성연대 성재기 대표가 투신 사망하고, 군 가산점 폐지 등 사회구조가 남성에게 불리해졌다는 주장이 떠돌던 그 무렵, 우리 학생들도 자주 접한다고 해서 ‘일베’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경악을 했다. 정치적으로 보수적이고 여성의 권리 주장에 반발하는 정도가 아니었다. 세월호 참사나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폄훼는 정치적 입장 때문에 그렇다고 하더라도, 포르노에 가까운 내용이 넘치고 패륜적인 이야기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오가는 사이트는 그야말로 범죄의 현장이었다. 그러나 당시 정권은 자기들을 지지하는 세력이라 생각해서인지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그 반대편에 있는 진보 진영에서는 어떠했는가. 그에 대한 제재가 우리가 그토록 어렵게 쟁취해낸 ‘표현의 자유’를 가로막는 빌미가 될 수 있지 않겠냐는 우려를 표했다. 지금은 그 사이트 하나를 쪼그라들게 만들 수 있지만 결국 나중에 진보적이고 올바른 정치적 견해에 대해서도 제재를 가하는 부메랑이 될지도 모른다며 ‘인터넷(네티즌)의 자정 능력을 믿어보자’고 했다. 그리고 그때 싹트기 시작한 일베 정신은 이제 많은 젊은 남성들의 ‘사상’이 되어버렸다. 그때 무럭무럭 자라난 그 감성과 정치적 지향이 지금의 10대, 20대 남성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 같다.
구시대의 유물은 청산되지 않아 남녀 차별이 남아 있는 이 사회에서 그 책임을 져야 하는 구세대 남자들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젊은 남자들이 그 혐의를 다 뒤집어쓰고 있다. 한창 연애를 해야 할 때지만 젊은 여성들의 경계심 때문에 자유롭게 이성을 사귈 수도 없다. 게다가 주변 (남성)문화는 여성에 대한 왜곡된 시선을 공기처럼 공유하고 있다. 일종의 ‘환경’이 되어서 그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남성들도 어떤 면에서는 피해자일 수 있다. 어수선하고 음란하고 폭력적인 학교 문화 때문에 고통을 호소하는 남학생들도 많다.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인권의식도 없고 무도한 인간이 되기 쉬우며 젠더 감수성 예민한 젊은 여성들로부터 외면당할 지경이다.
혜택은 없고, 불안은 높고, 이성에 대한 선망은 강렬하다. 젊은 남성의 삶은 불균형과 부조화 그 자체이다. 젊은 여성들도 불안하고 불안정하긴 마찬가지이지만 보다 공동체적인 방향으로 자존을 찾아가려는 경향이 강한 데 비해 남성들은 문화적으로 더욱 취약하다. 게임과 운동 외에 정신을 안정시켜줄 자기들만의 세계를 찾지 못한다. 어쩌면 해소하지 못한 그 불안감을 약자인 여성에게 쏟는 것인지도 모른다.
남녀평등 따위 아직 이루어지지도 않았고 사흘에 한 명꼴로 여성들이 연인이나 남편 등에게 살해되는 세상*, 남녀 급여가 30%나 차이 나는 세상이다. 그런데도 남자들은 ‘여성들이 우위를 점하는 세상’이라 불평등하단다. 여기까지 보면 객관성은 하나도 없이 더 많이 가지겠다고 징징대는 젊은 남자들이 한심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10대, 20대 남성들의 불편한 감정은 과거 아버지 세대처럼 남자로서 여자 위에 군림하며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는 징징거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한국여성의전화가 2023년 언론에 보도된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에 의한 여성 살해’를 조사한 결과 피해자 수는 최소 138명으로 추정된다.
아이들이 말하는 ‘혐오 사회’의 원인
아이들과 ‘혐오 표현’에 대한 토론을 하던 중 물었다. “어느 나라나 악성 댓글, 혐오 표현, 혐오 범죄는 있어요.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인터넷상에서 혐오 표현이 들끓는 나라도 별로 없죠. 모든 계층과 직업에 대한 혐오가 사방으로 뻗치는 이유가 뭘까요?”
많은 아이들이 인터넷 문화가 발달해서 그렇다는 식으로 대답했다. 이때 한 아이가 심각하게 “경쟁이 심해서 그래요”라고 대답하자 교실은 찬물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경쟁과 혐오/증오의 상관관계를 조용히 짚어가는 과정에서 공감의 물결이 일어났다. 그렇지. 모두가 모두와 경쟁해야 하는 세상, 아무리 열심히 해도 해낼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은 세상에 남는 건 미움뿐이지.
한때는 한 교실에 서너 명 정도, 무슨 수를 써도 죽어라 공부를 안 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지금 교실 풍경을 옮겨보자면, ‘모두가 열심히 한다.’ 머리가 좋든 나쁘든, 선행을 했든 안 했든, 집이 가난하든 부자든 거의 모든 학생들이 매시간 열심히 한다. 처음에는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이 예뻤다. 그러다 의아해졌다. 어째서 아이들답지 않게 모두 열심히 공부하지? 그런데, 모두 다 열심히 하면 모두 다 공부를 잘할 수 있나? 어차피 성적은 줄을 서게 돼 있는데, 모두가 열심히 한다는 건 기대치와 기준치가 더 높아진다는 것 아닌가? 이렇게 모두 열심히 하면 스스로 극복할 수 없는 선천적 조건을 갖고 있는 학생들은 이 분위기에 짓눌리지 않을까. 그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공부를 좀 못해도, 아니 열심히 하지 않아도 사회에 나가서 존중받으면서 먹고살 수 있는 세상이라면 모두 한 방향만 바라보진 않을 것이다.
인간은 자기만의 능력과 능률, 경제적 자립, 전문성 같은 것을 인정받아야 자존감이 높아진다. 그래야 다른 이도 존중할 여유가 생긴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그런 것을 보장받을 ‘입지’가 없다. 그 입지는 직업과 경제력, 능력일 텐데 질 좋은 취업 자리가 너무 적다. 아직 취업 경쟁에 뛰어들지 않은 어린 학생들조차 미래에 내가 과연 잘 해낼 수 있을지 불안하고 자신감이 없는 게 사실이다. 이것은 심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현실인 것이다.
지금 20대 젊은이들의 취업률은 5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단다. 질 좋은 취업 자리가 많지 않아 젊은이들 대부분은 시험을 치러 들어갈 수 있는 대기업, 공기업, 공무원, 경찰, 소방, 교정직, 교사, 전문직 자격증에 도전한다. 그런데 그 경쟁률이 어마어마하다.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한 분야에 수년 간 공부하며 여러 번 낙방을 맛본다. 천 명을 뽑는데 만 명이 지원한다면 반드시 9천 명은 낙방한다. 좌절의 끝은 경쟁자에 대한 증오로 향한다. 이런 현상은 남녀를 떠나 이 시대 젊은이들의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세상에서 여성들은 남성들을 위협적 존재로 여기고 자신이 낳을 아이의 미래가 불안하기에 출산을 저어한다. 일종의 ‘출산파업’이다. 젊은 여성들이 세상에 ‘빅엿’을 먹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대체로 이런 것들을 말로 표현하지 않는다. 지금 세상에 대해 불공정하다, 억울하다, 큰 소리로 말하는 이들은 오히려 젊은 남성들이다. 그동안 당한 성적 괴롭힘에 대해 ‘미투’로 말하다가 더 크게 얻어맞고, 가까운 이들에게 폭력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는 게 기가 막힌 여성들은, 자기가 낳을 아이들에 대해 어떤 안전장치도 마련해주지 않는 세상에 기가 막힌 여성들은 목소리를 높여 맞서 싸워도 달라지지 않는 세상에 출산 거부로 답한다. 그런 여자들을 보면서 젊은 남자들은 “여자들은 애도 안 낳을 거면 군대나 가라” 한다.
35년 동안 남자 중학생들을 가르치며 별별 굴곡진 의식을 가진 아이들을 만났지만 이렇게 남녀가 서로 반목하고 싫어하는 시대를 본 적이 없다. 낙천적 성격으로 태어나 의지로 낙관하며 그 모든 세월을 견뎌온 나이 든 교사, 늙어가는 엄마는 과연 세상에 희망이 있긴 한 건지 의문을 품으며 고개를 숙인다. 얘들아 힘내자, 서로 미워하지 말고 싸우지 말자, 서로를 사랑하자, 이런 말을 더 이상 못 한다. 진짜 못된 놈들이 누구인지 제대로 바라보자고, 그들과 싸워 이기려면 우리가 같은 편이라는 것, 그들이 아무리 우리끼리 싸우라고 부추겨도 우리는 서로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주자고, 더는 말할 수가 없다. 그래서 더 막막하고 슬프다.
* 이 글의 전문은 계간《민들레》154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____________
안정선_남자중학교에서 35년째 근무하고 있다. 『교사와 부모 사이』, 『젠더 감수성을 키우는 교육』(공저) 같은 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