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03] 어른이 되기 위해 겪어야 할 네 가지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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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달은 멸종위기종이다


모든 어른은 한때 청소년이었지만, 청소년을 모른다. 눈부신 IT 기술은 세상을 하나로 연결하는 동시에 모든 세대를 단절시켜 놓았다. 하루 종일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아이가 어디서 누구를 만나며 어떻게 자기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는지 어른들은 잘 알지 못한다. 동시대에 전혀 다른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그러잖아도 종잡을 수 없는 ‘질풍노도’의 청소년들은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가 되었다.

지금 내 앞의 한 아이를 이해하기 어렵다면, 수억 년간 모든 생물들이 겪어온 역사 속으로 눈을 돌려 그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인간이 마주한 난제의 해결책을 자연에서 찾으려는 새로운 분야를 ‘생물열감’ 혹은 ‘생물모방’이라고 한다. 이 이론은 진화의 세월 동안 지구상의 동물 종이 근본적으로 같은 압박을 받아왔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의학자와 과학 저널리스트가 함께 쓴 『와일드 후드: Wildhood』는 생물열감의 관점에서 동물의 사춘기를 관찰하며 청소년기의 본질을 새롭게 조명한다. ‘모든 생명은 청소년기를 겪는다’는 진실에서 시작하는 이 책에는, 첫 페이지부터 ‘겁대가리 없이’ 백상아리 떼를 향해 돌진하는 청소년 해달이 등장한다. 

 

“수백 마리의 백상아리가 헤엄치는 차갑고 삭막한 죽음의 삼각지대 안으로 돌진하는 위대한 멍청이는 바로 청소년기에 접어든 해달이었다. 물론 무시무시한 상어 이빨이 순식간에 지나가면 피의 소용돌이와 함께 목숨을 잃는 해달도 종종 있었다. 그러나 대개 스릴을 즐기는 10대 해달들은 죽음의 삼각지대를 무사히 건너 피가 되고 살이 될 값진 경험과 새로운 자신감을 얻었다. 그리고 부모의 보호 아래에 있을 때보다 훨씬 더 바다 물정에 밝은 독립적인 청년기 해달로 거듭났다.” _13쪽

 

무모해 보일지라도 위험을 무릅쓰는 건 자연스런 발달과정이다. 무엇이 위험하고 어떻게 위험에 대처할 수 있는지를 배우는 이른바 ‘포식자 탐색(predator inspection)’ 과정은 성장과 성숙의 바탕이 된다. 다만 이를 겪는 시기가 혼란스럽고 힘겨운 이유는,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책에 따르면 수억 년 동안 와일드 후드를 지나는 다양한 동물 종에게 주어진 공통의 네 가지 과제가 있다. 두려움을 다루는 법, 관계를 맺는 법, 사랑하고 실망하는 법, 그리고 혼자 설 수 있는 법이다. 


 바버라 내터슨-호러위츠, 캐스린 바워스 씀, 김은지 옮김, <와일드 후드>, 쌤앤파커스, 2023

 

 어떻게 자신을 안전하게 지킬 것인가(안전, Safety)

 어떻게 사회적 지위에 적응할 것인가(지위, Status)

 어떻게 성적 소통을 할 것인가(성, Sex)

 어떻게 둥지를 떠나 스스로를 책임질 것인가(자립, Self-reliance)

 

책 속에는 이 과정을 치열하게 연습해나가는 세상 많은 ‘날것’들의 야생적 성장기가 등장한다. 어린 하이에나는 무리 내에서 자신의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여러 사회적 전략을 사용한다. 놀라운 것은 신체적 힘보다 사회적 기술(관계 형성, 타협, 관찰 등)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이를 연습해간다는 점이다. 어린 수컷 고래는 짝짓기 행동을 익히기 위해 선배들의 노래를 흉내내며 구애를 시도한다. 거절당하기도 하고 때론 성공하기도 하며, 성적 자신감을 얻는다. 성적 소통을 연습하는 일은 자기와 타인의 경계를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특히 부모 도움 없이 먹이를 구하는 일은 동물 청소년의 자립에서 가장 중요한 숙제다. 이를 가르치기 위한 동물 부모들의 교육열은 인간 못지않게 열성적이다. 표범은 새끼가 독립할 시기가 다가오면 먹이를 찾는 시간도 줄여가며 새끼의 사냥 능력을 기르는 데 집중한다. 미어캣으로 더 잘 알려진 남미의 몽구스는 생후 1개월 된 새끼를 선생님에게 보내 사냥법을 가르친다. 응석을 부리면 따끔하게 훈육도 한다. 청소년기를 지난 새끼 독수리가 홀로서기 시점을 자꾸 늦추면 어미 독수리는 공중에서 급강하해 발로 새끼를 때리며 ‘혼구녕’을 낸다.

와일드 후드가 사춘기와 다른 점은 딱 시기가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대체로 사춘기 때 시작하지만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기술들을 익혀야 끝난다. 수많은 동물 청소년의 좌충우돌 성장기를 인간에 빗대어본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생물종으로서 와일드 후드를 지나는 인간 청소년이 배워야 할 네 가지 과제는 변함 없을 것이다. 세상은 이들에게 안전, 지위, 성, 자립을 충분히 연습할 기회를 주고 있는가. 

어른이 되었지만 어른이 되지 못한, 이른바 ‘어른아이’가 늘고 있다. 대학교수에게 자녀의 학점을 따지는 부모, 자녀의 직장 상사에게 대신 전화를 걸어주는 부모, 혹여 발이 아플라 군대 간 아들에게 군화를 사서 보내는 부모들이 등장한 시대다. 와일드 후드를 끝내지 못한 청년들이 늘어가는 까닭이, 자연이 인간에게 부여한 성장의 공식을 충분히 거치지 못해서는 아닐까. 

비단, 동물만의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꽃 가꾸기를 좋아하는 어느 수녀님이 들려주신 이야기다. 귀한 수국을 얻어와 볕 잘 드는 마당에 심고 정성껏 가꾸었지만 이태가 지나도 꽃이 피질 않더란다. 급기야 유명한 정원사를 불러 도움을 청했다. 심겨진 위치와 일조량, 흙의 성분까지 꼼꼼이 분석한 정원사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 이런 말도 덧붙였다. “그게 원인이에요. 아무 문제가 없는 거.” 식물도 위기감을 느껴야 종을 유지하기 위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번식을 하는데, 너무 편안해서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귀한 자식 꽃길만 걷게 하고픈 게 모든 양육자들의 심정이다. 그러나 홀로 고통의 성장 과정을 겪어내야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다는 삶의 냉혹한 진실을 우리는 외면할 수 없다.


_장희숙(민들레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