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04] 대치동 키즈가 어른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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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0시 서울 대치동 학원가 풍경

 

나는 대치 키즈를 대표하지 못한다

 

일부러 밤 10시에 대치동 학원가를 찾아간다. 셀 수 없이 많은 학원들로부터 쏟아져나오는 학생들 사이에서 익숙한 한기를 느끼려고. 고등학생 때 사용했던 mp3 플레이어를 다시 충전해유선 이어폰을 꽂고 저장된 음악을 듣는다. 그때의 우울과 절망을 기억해내려고. 일기장으로 사용하던 A6 크기의 스프링 수첩을 펼쳐본다. 스스로 사라지고자 했던 그 충동을 다시 감각하려고.

나는 대치동을 경험한 수많은 학생들 중 그저 한 사람이다. 대치동의 빛과 그늘에 관한 이야기를 누군가가 해주기를 줄곧 기다리면서, 이따금 학원가를 거닐며 그곳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나 영화 따위를 상상하곤 했다. 그러다 2025년 2월 어느 날 새벽,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자다 깬 나는 대치동과 우울에 대한 경험담을 영상으로 찍어 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한 시간 만에 기획을 마치고 제대로 된 대본도 없이 휴대폰으로 영상을 찍어 바로 유튜브에 업로드했다. 누군가는 내가 올린 영상을 보곤 대치 키즈의 이야기를 용기내어 ‘대표해줘서’ 고맙다고 했지만, 나는 대치 키즈를 대표하지 못한다. 이건 명백한 사실이다. 대치동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고 모두가 나와 같은 무력감과 절망감을 느끼며 어른이 되었다고 하는 것은 분명히 틀린 말이다. 누군가는 이 환경 속에서 성취감과 효능감을 느끼며 자랐을 것이고, 그들과 나는 저마다 다르게 자라 다른 것을 느끼고 다르게 말하는 어른이 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에게 대치 키즈를 대표한다는 과분한 수식어를 달아주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나의 경험담에 공감하는 사람이 적지 않기 때문 아닐까.



그럼에도 나는 대치 키즈다

 

내가 대치 키즈를 대표할 수는 없지만, 그와 동시에 분명한 사실은 내가 대치 키즈라는 것이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12년의 세월을 대치동에서 보냈으니, 자칭으로나 타칭으로나 대치 키즈인 것은 맞다. 

내가 고등학생일 때 드라마 <스카이 캐슬>이 방영되었는데, 그 드라마를 보곤 너무 과장이라거나 현실과는 다른 점이 많다는 사람들의 반응을 보며 친구들과 쿡쿡 웃었다. “그거 과장 아닌데...” 하면서 씁쓸하게 웃으며 헤어져서는 각자의 학원으로 가던 뒷모습들을 기억한다. 내 옆자리 친구가 이른바 ‘학습 코치’를 받고 있었는데, 그 무렵 숙명여고에서 입시 비리 사건이 터졌다. 드라마에서 일어나던 일이 마냥 드라마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게 된 것이다.

내가 대치동에서 겪은 일들을 전부 기억해낸다면 아마 지면이 절대적으로 모자랄 것이다. 다행히 일부만 머릿속에 남아 있어 그 이야기만이라도 적어가고자 한다. 학원의 대형 강의실 앞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줄 서기나 고카페인 음료 혹은 알약 복용, 밤 10시 이후의 불법 야간 교습, 교내에서 벌어지는 교묘한 상장 몰아주기 같은 일들은 이미 많이 알려져 있으니, 내가 다르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무엇이 있을까 고민해보았다.

내신 과목의 경우 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배우지 않은 범위가 시험에 수두룩하게 포함되었다. 학교는 어떻게든 점수 줄 세우기를 통해 1등급을 만들어야 했고, 그 목표를 위해 학교가 선택한 방법은 간단했다. 시험 범위를 방대하게 만드는 것. 대개 이런 식이다. 대표적으로 영어 과목 같은 경우, 교과서나 수능 특강 지문 외에도 교육청 모의고사 한두 회 차의 전체 지문과 영단어장의 몇백 개 예문 등이 시험 범위에 포함되었다. 학생들은 교과서 지문을 포함한 모의고사 지문 몇십 개 그리고 단어 몇백 개의 예문과 그 단어장에 표기된 유의어와 반의어까지 암기해야 했다.

여기서 ‘암기’란, 한글로 번역된 문장을 보고 ‘원문 그대로’ 쓸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의미상의 일치는 인정되지 않으며 원문 그대로 ‘똑같이’ 쓰는 것을 말한다. 그렇기에 내신은 ‘누가 잘 외우나’의 싸움이었고 그 싸움에서 승리한다는 건 1등급을 쟁취해낸다는 말과 같았다. 그러다 보니 시험 전날이면 암기를 다 못했다는 긴장감과 불안감으로 구토를 하거나 급기야 쓰러지는 친구들이 있었고, 나 또한 셀 수 없이 자주 메스꺼움을 경험했다.

처음에는 무작정 암기시키는 학원의 내신 대비 방식에 의문이 들었는데 점차 알게 되었다. 이렇게 어떻게든 달달 외우지 않으면 시험 시간에 시험지의 마지막 문제까지 읽어내지도 못한다는 것을. 학생들이 감당할 수 없는 양의 시험 범위, 그 속에서 ‘모두 고르시오’로 끝나는 객관식 문항들, 지나치게 촘촘한 문제별 점수 분배. 그게 학교가 내신 1등급을 만들어내는 방법이었다.

 

빠져나갈 수 없는 수렁 같은 

 

내신 대비 학원의 경우, 해당 학교의 내신 수업을 하는 학원이 한정적이었으므로 학생들이 가는 학원도 두어 개로 정해져 있었다. 학원은 어떻게든 사탕 발린 말로 수강생을 늘려야 했고, 학원이 선택한 방법 또한 간단했다. ‘적중률 100%’라고 광고를 하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내신 시험 범위가 방대하기에 학원들은 출제 예상 문제나 지문들을 ‘짚어’주었다. 하지만 그조차 다 보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양이었다. 그렇게 많은 양을 짚어 주다 보면 당연히 짚어준 곳에서 출제되는 문항이 있기 마련이고, 학원들은 그것을 놓칠세라 ‘우리 학원에서 짚어준 게 100% 나왔다’라며 광고를 돌렸다.

이러한 학교의 방대한 시험 범위 공지, 그에 이은 내신대비학원의 방대한 족집게(?) 강의는 내신 1등급을 만들어내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지만 학생들에겐 너무나도 잔인한 방식이다. 왜냐하면 성적이 만족스럽지 않게 나온 경우, 학생은 탓할 대상이 자신밖에 없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범위를 공지했으며 학원에서는 예상 문항을 짚어주었으니, 소위 다 떠먹여주었는데 네가 받아먹지 못한 탓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거기에 “넌 왜 그것밖에 못하니” 하는 부모님의 한마디까지 거들어주면 완벽해진다. 수많은 학생들이 그렇게 연속적인 실패와 좌절을 경험한다.

학원에서 학생들의 등하원 시간이나 쪽지시험 점수, 숙제 완료 여부 등을 부모님의 휴대폰 메시지로 일일이 발송하는 경우는 허다했다. 강사가 개별적으로 부모님과 전화상담을 하는 것도 당연시했다. 그 상황을 학생의 관점에서 이야기하자면, 빠져나갈 수 없는 깊은 고통의 수렁 같았다. 우울증을 앓으면 그 증상으로 집중력 감소를 겪게 되는 경우가 많다. 집중력이 감소하면 학업 성취도와 공부의 효율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자연스레 시험 점수가 떨어지면 학원은 이를 가만히 두고 보지 않았다. 곧바로 아이들을 혼을 내거나 ‘공부 자극’을 명분으로 쓴소리를 내뱉고, 부모님들께는 아이에게 ‘격려’ 부탁드린다며 전화를 돌렸다. 내 아이가 공부에 집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 부모가 아이를 격려할 리 없다. 그들은 대개 아이를 나무랐고 그럴수록 아이의 우울은 심화되었다. 우울이 심화될수록 집중력은 더 감소한다. 악순환이 이어지는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정말 명석하다. 그런데 그렇게 똑똑한 아이들이 자신의 감정, 특히 우울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 같다. 영상을 보고 내게 연락을 해온 몇몇 청소년들만 봐도 그랬다. 죽고 싶은 건 아닌데 그렇다고 살고 싶지도 않다고 말하는 아이들,자책감과 자해에 대한 경험을 공유하고 또 거기에 공감하는 수많은 댓글들. 그럼에도 아이들은 해내고 싶어 한다. 그 성취의 목적은 대개 외부에 있었고 그렇게 주어진 목적만을 좇던 아이들이 깊게 병들어가는 것을 나는 너무도 많이 보았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어른이 되었나

 

나는 수능 성적에 맞추어 대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현재 휴학 중이며 전공과 전혀 다른 일인 사진과 글쓰기에 몰두하며 살고 있다. 성인이 된 이후 몇 년간 끊임없는 자살성 사고(자살에 대해 깊이 생각하거나 스스로를 죽음으로 이끄는 사고의 유형)에 시달렸고 몇 차례 자살을 시도했다. 하지만 살아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아무래도 내 주변엔 대치 키즈 친구들이 많은데, 그들 또한 자신의 길을 어떻게든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 소위 명문대에 입학한 친구 A는 대치동에서 학원 실장 일을 겸하면서 매주 열 타임(30시간) 정도의 과외를 뛰며 살고 있다.

근황을 묻는 말에 그는 웃으며 “또 다른 대치 키즈들을 양산하고 있다”고 답했다. 대학을 다니면서 일주일에 학원 근무 20시간, 과외 30시간을 하며 살아가는 삶에 A는 제법 만족하는 듯 보였다. 오히려 내가 자주 그의 체력과 심리적 여유 등을 걱정하곤 했는데, 그에 무색하게 A는 몇 년째 비슷한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꾸려가고 있다. 그게 A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친구 B는 성인이 된 이후 극심한 우울증과 자살성 사고로 정신건강의학과 폐쇄병동 입퇴원을 열다섯 번가량 반복했다. 그는 입시가 자신이 앓고 있는 정신질환의 근원이 아니라고 생각해왔는데, 무엇이든 잘해야 하고 인정받아야만 하는 환경에서 자란 것이 지금의 B를 만든 거라는 주치의 말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폐쇄병동에 입원했을 때조차 토익 공부를 놓지 않았으며 이것을 ‘공부 강박’이라고 언급했다. 이로 인해 대학교는 여러 차례 질병 휴학을 했고, 그 상황을 ‘자신이 꿈꿔왔던 어른과는 너무나도 다른 삶’이라고 말했다.

B와 나는 자주 이런 이야기를 했다. 분명 멋진 어른이 될 거라 믿었던 어린 날의 우리 자신에게 너무 미안하다고. 그런 이야기를 한창 나눌 즈음엔 과거의 자신에게 다가가 사과를 하고 싶었다. 난 네가 꿈꾸는 것처럼 멋지게 자라지 못했다고, 자주 비틀거리고 이따금 쓰러지는 못난 어른으로 자랐다고. 네 꿈을 이루지 못했다고, 그래서 미안하다고.

하지만 사실상 과거의 자신에게 다가가 말을 건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아무리 내가 과거의 나에게 사과하고 싶어도 혹은 과거의 나를 꽉 끌어안고 싶어도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과거의 나는 묵묵히 뚜벅뚜벅 걸어 여기까지 왔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한 걸음의 후퇴도 없이. 그게 대견했다.

우리는 대치동에서 보낸 학창 시절에서 벗어났든 혹은 벗어나지 못했든 지금 살아 있다. 학창 시절에 꿈꿨던 미래와는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더라도 어쨌든 살아 있다. 살아서 우리의 하루하루를 개척해가고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죽음만을 바라보던 아이 또한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영웅이 되어 살고 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우리는 그 시기를 건너서도 살아갈 수 있다.


* 이 글의 전문은 계간《민들레》156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 


_소마 (사진을 찍고 글을 쓴다. 학창 시절을 대치동에서 보냈다. 학생들이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